소낙비 김유정 l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피어 노벨라를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김유정의 소낙비 입니다 지금 우리는 1920 30년대 한국 단편 소설을 읽고 있죠 구십여년 전 이 땅에는 계급과 무지 그리고 빈곤 속에 또 여권은 전무한 사회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보다 먼저 새로운 문명에 접한 작가들은 그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김유정 의 소낙비 당시의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들어보세요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듯 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산매 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뛴다 뫼 밖으로 농군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마을 안의 공기는 쓸쓸했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 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매앰 매애맴 춘호는 자기 집 올 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 들은 묵삭은 오막살이집 방문 턱에 걸터앉아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사나흘 밤을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사에 고리삭은 그의 얼굴은 더욱 해쓱했다 아내에게 다시 한번 졸라 본다 그러나 위협하는 어조로 이봐 그래 어떻게 돈 이 원만 안 해줄 테여 아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갓 잡아온 새댁 처럼 감자만 씻을 뿐 잠자코 있다 된다 안된다 좌우간 이렇다 말이 없으니 춘호는 울화가 터져 죽을 지경이다 그는 타지에서 떠돌아 온 몸이라 자기를 믿고 장리를 주는 사람도 없고 또 그 알량한 집을 팔려고 해도 단 이삼 원의 작자도 내닫지 않으니 앞뒤가 꼭 막혔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는 나이 젊고 얼굴 똑똑하겠다 돈 이 원 쯤이야 어떻게라도 될 수 있겠기에 묻는건데 들은 체도 안하니 괘씸한 듯 싶었다 그는 배짱을 부리며 다시 한 번 돈 좀 안 해줄 테여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대꾸는 역시 없다 춘호는 노기충천하여 불현듯 문지방을 떠다밀며 벌떡 일어섰다 눈을 흡뜨고 벽에 기댄 지게막대를 손에 잡자 아내 옆으로 바람같이 달겨들었다 이년아 기집 좋다는게 뭐여 남편의 근심도 덜어 줘야지 끼고 자자는 기집이여 지게막대는 아내의 연한 허리를 모질게 후렸다 까부라지는 비명은 모지락스리 찌그러진 울타리를 벗어 나간다 곧 이어 지게막대는 앉은 채 고꾸라진 아내의 발뒤축을 얼러 볼기를 내려 갈겼다 이년아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조르는 게여 법 같이 호통을 치며 남편이 지게막대를 공중으로 다시 울리며 모지름을쓸 때 아내는 에그머니 하고 외마디를 질렀다 연이어 몸을 일으키자 엎어질듯 싸리 문 밖으로 내달렸다 얼굴에 눈물이 흐른 채 황그리는 걸음으로 문앞의 언덕을 달려 내려가 개울을 건너고 맞은쪽에 뚫린 콩밭 길로 들어섰다 너 네가 날 피하면 어딜 갈 테여 발길을 막는 듯한 의미 있는 호령에 달아나던 아내는 다리가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어 싸리문 안에 아직도 지게막대를 들고 섰는 남편을 바라본다 어른에게 죄진 어린애같이 입만 종깃종깃 하다가 남편이 뛰어나올까 겁이 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쇠돌 엄마 집에 좀 다녀올께유 쭈뼛 쭈뼛 변명을 하고는 가던 길을 다시 횡허케 내걸었다 아내라고 요새 이 돈 이 원이 금시로 필요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자격으로나 노동으로나 돈 이 원이란 감히 땅띔도 못해볼 형편이었다 벌이래야 하잘것 없는 것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남에게 뒤질까 영산이 올라 산으로 빼는 것이다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달고 거한 산중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도라지 더덕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우중충한 돌 틈바귀로 잔약한 몸이 맨발에 짚신짝을 끌며 강파른 산등을 타고 돌려면 젖 먹던 힘까지 녹아 내리는 듯 진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아랫도리를 단 외겹으로 두른 낡은 치맛자락은 다리로 허리로 척척 엉겨 걸음을 방해한다 땀에 불은 종아리는 거칠은 숲에 긁혀 쓰라림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무거운 흙내는 숨이 탁탁 막히도록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삶에 발버둥치는 순진한 그의 머리는 아무 불평도 일지 않았다 가물에 콩 나기로 어쩌다 도라지 순이라도 어지러운 숲 속에 하나 둘 뾰족이 뻗어오른 것을 보면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띠었다 때로는 바위도 기어올랐다 정히 못 기어오를 그런 험한 곳이면 칡덩굴에 매달리기도 한다 땟국에 절은 무명적삼은 벗어서 허리춤에다 꾹 찌르고 호랑이숲이라 이름난 강원도 산골에 매달려 기를 쓰고 허비적거린다 골 바람은 지날 적마다 알몸을 두른 치맛자락을 공중으로 날린다 그때마다 검붉은 볼기짝을 사양 없이 내보이니 칡덩굴이 그를 본다면 배를 움켜쥐어도 다 못 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윽한 산골이라 그 꼴을 비웃는 놈은 뻐꾸기뿐이었다 이리하여 해동갑으로 해갈을 하고 나면 캐어 모은 도라지 더덕은 얼러 사발 가웃 혹은 두어 사발 남짓하게 된다 그러면 동네로 내려와 주막거리에 가서 그걸 내주고 보리쌀과 사발 바꿈을 한다 그러나 요즘엔 그나마도 철이 겨워 소출이 없다 대신 남의 보리방아를 온종일 찧어주고 보리밥 그릇이나 얻어서는 집으로 돌아와 농토를 못 얻어 뻔뻔히 노는 남편과 같이 나누는 것이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니 돈 이 원커녕 당장 목을 딴대도 피라도 나올른지 의문이었다 만약 돈 이 원을 빌린다면 아는 집에서 보리라도 꾸어 파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온 동네 아낙네들이 치맛바람에 팔자 고쳤다고 쑥덕거리며 은근히 시새우는 쇠돌 엄마가 아니고는 노는 벌이를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그는 자기 꼴 주제에 제물에 눌려서 호사로운 쇠돌 엄마에게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쇠돌 엄마도 처음에야 자기와 같이 천한 농부의 계집이련만 어쩌다 하늘이 도와 동네 부자양반 이 주사와 은근히 배가 맞은 뒤로는 얼굴도 모양 내고 옷치장도 하고 밥 걱정도 안하고 아주 금 방석에 딩구는 팔자가 되었다 그리고 쇠돌 아버지도 이게 웬 땡이냔 듯이 아내를 내어논 채 눈을 살짝 감아버리고 이 주사에게서 나는 옷이나 입고 주는 쌀이나 먹고 연년이 신통치 못한 자기 농사에는 한 손을 떼고 히짜를 뽑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춘호 처가 쇠돌 엄마에게 죽어도 가지 않으려는 그 속 까닭은 사실 여기에 있다 바로 지난 늦은 봄 달이 뚫어지게 밝은 어느 밤이었다 춘호가 보름 게추를 보러 산모퉁이로 나간 것이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이젠 자고 오려나 생각하고 막 드러누워 잠이 들려는데 웬 난데 없는 황소 같은 놈이 뛰어들었다 허둥지둥 춘호 처를 마구 깔다가 놀라서 으악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난 일이 있었다 어수룩한 시골 일이라 별반 풍설도 안 나고 쓱싹 되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동네부자 이 주사의 소행임을 비로소 눈치 챘다 그런 이유로 춘호 처는 쇠돌 엄마와 직접 관계는 없다고해도 그를 대하면 공연스리 얼굴이 뜨뜻해지고 몹시 어색했다 마치 죄나 진 듯이 그리고 더우기 쇠돌 엄마가 새댁 나는 속옷이 세 개구 버선이 네 벌이구 행 하며 아주 좋다고 핸들대는 그 꼴을 보면 혹시 자기에게 한 점을 두고서 비양거리는 거나 아닌가 하는 옥생각으로 무안해서 고개도 못 들었다 한편으론 자기도 좀만 잘했더면 지금쯤은 쇠돌 엄마처럼 호강을 할 수 있었을 그런 갸륵한 기회를 깝살려버린 자기 행동에 대한 후회와 애탄으로 마음을 괴롭히는 그 쓰라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욕을 보더라도 나날이 심해가는 남편의 무지한 매보다는 그래도 좀 헐할 게다 오늘은 한맘 먹고 쇠돌 엄마를 찾아가려는 것이었다 춘호 처는 이번 걸음이 헛발이나 안 칠까하는 일념으로 심화를 하며 수양버들이 쭉 늘여박힌 논두렁길로 들어섰다 그는 시골 아낙네로는 용모가 매우 반반했다 좀 야윈 듯한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소위 동네의 문자대로 외입깨나 함직한 얼굴이었으되 추레한 의복이며 퀴퀴한 냄새는 거지를 볼지른다 그는 왼손 바른손으로 번갈아 치맛귀를 여며가며 속살이 삐어질까 조심조심이 걸었다 감사나운 구름송이가 하늘 신폭을 휘덮고는 차츰차츰 지면으로 처져 내리더니 그예 산봉우리에 엉겨 살풍경이 되고 만다 먼데서 개짖는 소리가 앞뒷산을 한적하게 울린다 빗방울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차차 굵어지며 무더기로 퍼부어내린다 춘호 처는 길가에 늘어진 밤나무 밑으로 뛰어들어가 비를 피하며 쇠돌 엄마 집을 멀리 바라보았다 북쪽 산기슭 높직한 울타리로 뺑 돌려 두르고 앉았는 오묵하고 맵시 있는 집이 그 집이었다 그런데 싸리문이 꼭 닫힌 걸 보면 아마 쇠돌 엄마가 농군청에 저녁 새참을 나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쇠돌 엄마 오기를 지켜보며 오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빗방울은 뚝뚝 떨어지며 그의 뺨을 흘러 젖가슴으로 스며든다 바람은 지날 적마다 냉기와 함께 굵은 빗발을 몸에 들여친다 비에 쪼로록 젖은 치마가 몸에 찰싹 감겨 허리로 궁둥이로 다리로 살의 윤곽이 그대로 비쳐올랐다 무던히 기다렸으나 쇠돌 엄마는 오지 않았다 하도 진력이 나서 하품을 해가며 정신없이 서 있느라니 왼편 언덕에서 사람 오는 발자취 소리가 들린다 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날쌔게 나무 틈으로 몸을 숨겼다 동이 배를 가진 이 주사가 지우산을 받쳐쓰고 쇠돌네 집을 향해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비록 키는 작달막하나 숱 좋은 수염이든지 온 동네를 털어야 단 하나뿐인 탕건이든지 썩 풍채 좋은 오십 전후의 양반이다 그는 싸리문 앞으로 가더니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문을 떠다밀고 속으로 버젓이 들어가버린다 이것을 보니 춘호 처는 다시금 속이 편치 않았다 자기는 개돼지같이 무시로 매만 맞고 돌아치는 천덕꾼이다 안팎으로 겹귀염을 받으며 간들대는 쇠돌 엄마와 사람된 치수가 두드러지게 다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쇠돌 엄마의 호강을 너무나 부럽게 우러러보는 반동으로 자기도 잘했더면 하는 턱없는 희망과 후회가 전보다 몇 갑절 쓰린 맛으로 그의 가슴을 찌푸뜨렸다 쇠돌네 집을 하염없이 건너다보다가 어느덧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굴러내린다 언덕에서 쓸려내리는 사탯물이 발등까지 개흙으로 덮으며 소리쳐 흐른다 빗물에 폭 젖은 몸뚱아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당황한 시선으로 사방을 경계해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시선을 돌려 그 집을 쏘아보며 속으로 궁리해 본다 안에는 확실히 이 주사 뿐일 게다 그때까지 걸렸던 싸리문이라든지 또는 울타리에 널은 빨래를 여태 안 걷어 들이는 것을 보면 어떤 맹세를 두고라도 분명히 이 주사 외엔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놓고 비를 맞아가며 그 집으로 달려들었다 봉당으로 선뜻 뛰어오르며 쇠돌 엄마 기슈 하고 인기척을 낸다 물론 쇠돌 엄마의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그 음성이 나자 안방에서 이 주사가 번개같이 머리를 내밀었다 자기딴엔 꿈밖이란 듯 눈을 두리번 두리번하더니 옷 위로 볼가진 춘호 처의 젖가슴 아랫배 넓적다리로 발등까지 슬쩍 음흉히 훑어보고는 거나한 낯으로 빙그레 한다 그리고 자기도 봉당으로 주춤주춤 나오며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리면 하고 매우 일이 딱한 듯이 어름어름한다 이 비에 어딜 갔에유 지금 요 밖에 나갔지 그러나 곧 올 걸 있는 줄 알고 왔는디 춘호 처는 이렇게 혼잣말로 낙심하며 섭섭한 낯으로 머뭇머뭇 하다가 그냥 돌아갈 듯 봉당 아래로 내려섰다 이 주사를 쳐다보며 물차는 제비같이 산드러지게 그럼 요담에 오겠에유 안녕히 계시유 하고 작별의 인사를 올린다 지금 온댔는데 좀 기다리지 담에 또 오지유 아닐세 좀 기다리게 여보게 여보게 이봐 춘호 처가 간다는 바람에 이 주사는 체면도 모르고 기가 올랐다 허둥거리며 재간껏 만류했지만 암만해도 안될 듯싶다 춘호 처가 여기엘 찾아온 것도 큰 기적이려니와 뇌성벽력에 구석진 곳이겟다 이렇게 솔깃한 기회는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는 눈이 뒤집히어 입에 물었던 장죽을 쭉 뽑아 방안으로 치뜨리고는 계집의 허리를 뒤로 다짜고짜 끌어안아서 봉당 위로 끌어올렸다 계집은 몹시 놀라며 왜 이러서유 이거 놓세유 하고 몸을 뿌리치려는 앙탈을 한다 아니 잠깐만 이 주사는 그래도 놓지 않으며 허겁스러운 눈짓으로 계집을 달랜다 흘러내리는 고의춤을 왼손으로 연신 치우치며 바른팔로는 계집을 잔뜩 움켜잡고는 엄두를 못 내어 짤짤매다가 간신히 방안으로 꺾꺾 몰아넣었다 안으로 문고리는 재빠르게 채였다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추 잎에 부딪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해 갔다 얼마쯤 지난 뒤였다 이만하면 길이 들었으려니 안심하고 이 주사는 날숨을 후우 하고 돌린다 실없이 고마운 비 때문에 발악도 못 치고 앙살도 못 피우고 무릎 앞에 고분고분 늘어져 있는 계집을 대견히 바라보며 빙긋이 얼러 보았다 계집은 온몸에 진땀이 쭉 흐르는 것이 꽤 더운 모양이다 벽에 걸린 쇠돌 엄마의 적삼을 꺼내 계집의 몸을 말쑥하게 훌닦기 시작한다 발끝부터 얼굴까지 너 열 아홉이지 하고 이 주사는 취한 얼굴로 얼간히 물어보았다 니에 하고 메떨어진 대답 계집은 이 주사 손에 눌리어 일어나도 못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다 이 주사는 계집의 몸을 다 씻고 나서 한숨을 내뽑으며 담배 한 대를 턱 피워 물었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 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없자 원 그래서야 어떻게 산단 말이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는 거냐 그러다 혹시 맞아죽으면 정장 하나 해볼 곳 없는 거야 허니 네 명이 아까우면 덮어놓고 민적을 가르는 게 낫겠지 하고 계집의 신변을 위해 염려를 마지않다가 번뜻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너 참 아이 낳다가 죽었다더구나 니에 어디 난 듯이나 싶으냐 계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지며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외면했다 이 주사도 그까짓 것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웬 녀석의 냄새인지 무 생채 썩는 듯한 시크무레한 악취가 불시로 코청을 찌르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그런 줄은 소통 몰랐으나 알고 보니 비위가 몹시 역했다 그는 빨고 있는 담배통으로 계집의 배꼽께를 똑똑히 가리키며 얘 이 살의 때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씻는단 말이냐 하고 모처럼의 기분을 상한 것이 앵하단 듯이 꺼림한 기색으로 혀를 찬다 하지만 계집이 참다 참다 이내 무안에 못 이겨 일어나 치마를 입으려 하니 그는 역정을 벌컥 냈다 옷을 빼앗어 구석으로 동댕이 치고는 다시 그 자리에 끌어앉혔다 그리고 자기 딸이나 책하듯 아주 대범하게 꾸짖었다 왜 그리 계집이 달망대니 좀 듬직치가 못하구 춘호 처가 그 집을 나선 것은 들어간 지 약 한 시간 만이었다 비가 여전히 쭉쭉 내린다 그는 진땀을 있는 대로 흠뻑 쏟고 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천행으로 오늘 일은 성공이었다 그는 몸을 솟치며 생긋했다 그런 모욕과 수치는 난생 처음 당하는 봉변으로 지랄 중에도 몹쓸 지랄이었으나 성공은 성공이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우기 돈 이 원을 줄테니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에서 넌즈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마웠고 벅찬 짐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만 애키는 것은 자기 행실이 만약 남편에게 발각되는 나절엔 대매에 맞아죽을 것이다 그는 일변 기뻐하며 일변 애를 태우며 자기 집을 향해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가분가분 내려달렸다 춘호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려 뿌루퉁하니 홀로 앉았다 그는 고향인 인제를 등진 지 벌써 삼년 해를 이어 흉작에 농작물은 말도 못되고 따라서 빚장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는 날로 심했었다 마침내 하릴없이 집 세간살이를 그대로 내버리고 알몸으로 밤도주를 했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는다고 나이 어린 아내의 손목을 끌고 이 산 저 산을 넘어 표랑했다 그러나 우정 찾아들은 곳이 고작 이 마을이나 산 속은 역시 일반이다 어느 산골엘 가 호미를 잡아봐도 정은 조그만치도 안 붙었고 그곳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이 품을 벌려 그를 맞을 뿐이었다 터무니없다 하여 농토를 안 준다 일 구멍이 없으니 품을 못 판다 밥이 없다 결국 그는 피폐해 가는 농민 사이를 감도는 엉뚱한 투기심에 몸이 달떴다 요사이 며칠 동안을 두고 요 너머 뒷산 속에서 밤마다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기미를 알았다 그는 자기도 한몫 보려고 끼룩거렸지만 좀체로 밑천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원 수가 좋아서 이 이 원이 조화만 잘한다면 금시 발복이 못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삼 사 십 원 따서 동네의 빚이나 대충 가리고 옷 한 벌 지어 입고 진저리나는 이 산골을 떠나는 것이 그의 배포였다 서울로 올라가 아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고 둘이서 다구지게 벌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산 구석에서 굶어죽을 맛이야 없었다 그래서 젊은 아내에게 돈 좀 해오라니까 요리 매낀 조리 매낀 매만 피하고 곁들어주지 않으니 그 소행이 여간 괘씸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집으로 달려들자 미처 입도 벌리기 전에 남편은 이를 악물고 주먹 뺨을 냅다 붙인다 너 이년 매만 살살 피하고 어디 가 자빠졌다 왔니 볼치 한 대를 얻어맞고 아내는 오기가 걸려 벙벙했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려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겁을 하여 살려달라고 두 손으로 빌며 개신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 낼 돈 낼 되유 하며 돈이 변통됨을 삼가 아뢰는 그의 음성은 절반이 울음이었다 남편이 반신반의하여 눈을 찌긋하다가 낼 하고 목청을 돋았다 네 낼 된다유 꼭 되여 네 낼 된다유 남편은 시골 물정에 능통하니만치 난데없는 돈 이 원이 어디서 어떻게 되는 것까지는 추궁해 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저으기 안심한 얼굴로 방문턱에 걸터앉으며 담뱃대에 불을 그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도 마음을 놓고 감자를 삶으러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니 남편이 곁으로 걸어오며 측은한 듯이 말린다 병 나 방에 들어가 어여 옷이나 말려 감자는 내 삶을께 먹물같이 짙은 밤이 내렸다 비는 더욱 소리를 치며 앙상한 그들의 방벽을 앞뒤로 울린다 천정에서 비는 새지 않으나 집지은 지가 오래 되어 고래가 물러앉다시피 된 방이라 도배를 못한 방바닥에는 물이 스며들어 귀죽축하다 거기다 거적 두 잎만 덩그렇게 깔아놓은 것이 그들의 침소였다 석유 불은 없어 캄캄한 바로 지옥이다 벼룩이는 사방에서 마냥 스물거린다 그러나 등걸 잠에 익숙한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누워 줄기차게 퍼붓는 밤비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가난으로 인해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모르고 나날이 매질로 불평과 원한에 복대기는 그들도 이 밤에는 불시로 화목했다 단지 남편의 품에 들은 돈 이 원을 꿈꾸어보면서 서울 언제 갈라유 남편의 왼팔을 베고 누웠던 아내가 남편을 향해 응석 비슷이 물어보았다 그는 남편에게 서울의 화려한 거리며 후한 인심에 대해 여러 번 들은 바 있어 일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몽상은 해보았으나 실지 구경은 못해보았다 얼른 이 고생을 벗어나 살기 좋은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곧 가게 되겠지 빚만 좀 없어도 가뜬하련만 빚은 낭종 줴더라도 얼핀 가유 염려 없어 이 달 안으로 꼭 가게 될 거니까 남편은 썩 쾌히 승낙했다 사실 그는 동네에서 일컬어주는 질꾼으로 투전장의 가보쯤은 시루에서 콩나물 뽑듯하는 능수였다 내일 밤 이 원을 가지고 벼락같이 노름판에 달려가서 있는 돈이란 깡그리 모집어올 생각을 하니 그는 은근히 기뻤다 그리고 교묘한 자기의 손재간을 홀로 뽐냈다 이번이 서울 첨이지 그는 서울 바람 좀 한번 쐬었다고 큰 체를 하며 팔로 아내의 머리를 흔들어 물어보았다 성미가 워낙 겁겁한지라 지금부터 서울 갈 준비를 착착 하고 싶었다 그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두메 산골 구석에서 자라먹은 아내를 데리고 가면 서울사람에게 놀림도 받을 게고 거리끼는 일이 많을 듯싶었다 그래서 서울 가면 꼭 지켜야 할 필수 조건을 아내에게 일일이 설명치 않을 수 없었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사람에게 꼬라리 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를 하십니까로 하게유를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가고 볼 눈은 또릿또릿히 볼지라 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모기소리로 네 네 를 하였다 남편은 두어 시간 가량을 샐 틈 없이 꼼꼼하게 주의를 다져놓고는 서울의 풍습이며 생활 방침 등을 자기의 의견대로 그럴싸하게 이야기하여 오다가 말끝이 어느덧 화장술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 여자가 서울에 가서 안잠을 잘 자주면 몇 해 후에는 집까지 얻어 갖는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소문을 일찍 들은 바 있어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마닥 기름도 바르고 분도 바르고 버선도 신고 해서 쥔 마음에 썩 들어야 한참 신바람이 올라 주워 삼기다가 옆에서 쌔근쌔근 소리가 들리므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는 이미 곯아져 잠이 깊었다 이런 망할 거 남 말하는데 자빠져 잔담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며 바른팔을 들어 이마 위로 흐트러진 아내의 머리칼을 뒤로 쓰담아넘긴다 세상에 귀한 것은 자기 아내 명색이 남편이면서 이날까지 옷 한 벌 변변히 못해 입히고 고생만 짓시킨 그 죄가 너무나 큰 듯 가슴이 뻐근했다 그는 왁살스러운 팔로 아내의 허리를 꼭 껴안아 자기 앞으로 바특이 끌어당겼다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치고 점심때는 생기로운 볕까지 들었다 쿨렁쿨렁 눈물나는 소리는 요란히 들린다 시내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의 고함이며 농부들의 희희낙락한 미나리도 기운차게 들린다 비는 춘호의 근심도 씻어간 듯 오늘은 그에게도 즐거운 빛이 보였다 저녁 새참 때 되었을걸 얼른 빗고 가봐 그는 갈증이 나서 아내를 계속 재촉했다 아직 멀었어유 뭘 아내는 남편의 말대로 벌써부터 머리를 빗고 앉았으나 원체 달포나 가리지 않아 엉클은 머리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는 호랑이 같은 남편과 오랜만에 정다운 정을 나누어 보니 근래에 볼 수 없던 화색이 얼굴에 떠돌았다 어느 때에는 매적하게 생글생글 웃어도 보았다 아내가 꼼지작거리는 것이 보기에 퍽이나 갑갑했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레빗을 쑥 뽑아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 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가며 머리에다 번지르하게 발라놓았다 그래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찔러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놓았던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봐 하다가 바루 곧 와 응 하고 남편은 그 이 원을 고히 받고자 손색 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22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