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Ferguson: 소설가, 김영하 부인 아내 결혼 작품 가족 이야기

소설가, 김영하 부인 아내 결혼 작품 가족 이야기 김영하의 나이는 1968년 11월 11일 출생 고향은 강원도 화천군으로 군인의 아들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영하 학력은 보면 잠실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11)살에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그 이전의 기억이 모두 상실되었다고 하는데 이 경험과 관련된 내용은 그의 단편집 작품 호출에 실린 <도드리>에서 소재로 활용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친구들을 그럴 듯한 이야기로 속이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할 정도로 타고난 필력을 자랑합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결혼을 했으며 사랑꾼이기도 한데 그 내용에 대해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죠 소설가 김영하는 아내를 위해 시를 못 쓰니까 소설을 하나 썼다고 방송에서 밝혔는데 실제로 그가 발간한 책 중에 ‘이십 년을 함께해온 아내 은수에게, 사랑과 경의를 담아’라고 적힌 문구가 공개됩니다

김영하 아이 자녀는 삼십대 초반 나이에 낳지 않겠다고 정했다고 합니다 김영하 아내 역시 이를 동의했기에 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부인 대신 요리는 자신이 한다고 밝혔는데요 직업이 전업주부는 아닌가 보네요 아무리 그래도 부인을 주방에서 은퇴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왜 그렇게 했냐는 물음에 그는 부인이 주부로서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에 그걸 없애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했다고 하는데 참 멋있는 분 같습니다

아재의 나이이이지만 꼰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수다에서도 지식 자랑이 아닌 호감을 느끼게 만들더군요 소설가 김영하 작품을 보면 신세대의 도회적 감수성을 냉정한 시선과 메마른 감성으로 그려낸다는 평을 듣습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았으며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었죠 하룻밤에 단편소설 1편을 쓰기도 하는 속필로도 유명했습니다 1995년 계간지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2005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의 또 다른 직업이 있기도 합니다

핫이슈 l 소설가 심상대, 공지영 성추행 미투 논란 “결혼 부인 자녀 집안 아들 딸” 가정사 언급

소설가 심상대, 공지영 성추행 미투 논란 "결혼 부인 자녀 집안 아들 딸" 가정사 언급 공지영 작가가 문인 심상대 작가에게 과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공 작가는 28일 페이스북에 심 작가의 신간 ‘힘내라 돼지’(나무옆의자)에 관한 기사를 링크한 후 “내 평생 단 한 번 성추행을 이자에게 당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공 작가는 “그때 술집에 여러 명이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 밑으로 손이 들어오더니 망설임 없이 내 허벅지를 더듬었다”며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치고 고소하려는 나를 다른 문인들이 말렸다”고 적었습니다심 작가는 2015년 내연관계에 있는 여성을 여러 차례 때리고 차에 감금하려 한 혐의(특수상해 등)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1990년 등단해 2016년 제21회 한무숙문학상을, 2012년 제6회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작가 입니다출판사 나무옆의자 측은 “(공 작가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 심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소설가 심상대 프로필

본관은 삼척 출생: 1960년 1월 25일 (소설가 심상대 나이 58세)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심미주의적 문체로 삶의 위기와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탐문하는 작가로 정교한 언어 감각과 탁월한 기법의 묘, 뚜렷한 색채를 통해 첫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소설가 심상대 학력 강릉제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사 소설가 심상대 작품 소설 《묵호를 아는가》 《명옥헌》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망월》 《떨림》 《심미주의자》 《단추》

심상대 아내 소설가 심상대 결혼을 한 것으로 압니다 가족은 가난한 소설가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제 아내와 딸과 아들은 빈부(貧富)따위에 연연하는 천격(賤格)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빠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지요

⊙ 54세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수료 ⊙ 19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작품집 《묵호를 아는가》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편의 소설》

⊙ 중편소설 , 장편소설 《나쁜 봄》, 산문집 《갈등하는 神》 《탁족도 앞에서》 ⊙ 현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수상  공지영 몸매

핫이슈 l 공지영 성추행 폭로, 소설가 심상대 프로필 “결혼 부인 자녀 “힘내라 돼지 나쁜봄 작가”

공지영 성추행 폭로, 소설가 심상대 프로필 "결혼 부인 자녀 "힘내라 돼지 나쁜봄 작가" 작가 심상대가 성추행 폭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28일 공지영은 지난해 출소한 뒤 새로운 소설을 출판한 작가 심상대를 향해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그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있다"라고 저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앞서 사랑하던 여성을 신체 및 무기로 폭행해 전치 10주의 상처를 입힌 뒤 "니가 거짓말을 해서 내가 때리는 것이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여성 범죄로 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앞서 여러 차례 어마어마한 규모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나 작품 활동이 활발하지 못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고 합니다 과거 한 매체를 통해 "지난 7년 간 출판사로부터 받은 인세가 100만 원 뿐이다 작가가 책을 펴내고도 몇 권이 팔렸는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이 문제다"라며 "앞으로 인지를 붙이는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겠다"라고 밝혔던 것 입니다 일각에서는 공지영의 폭로로 이슈몰이 중인 그에 대해 "'작가로서의 목표', '돈에 대한 욕망'의 결핍으로 인해 여성에게 끊임없이 손대는 게 아니냐"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가 심상대 프로필   본관은 삼척 소설가 심상대 고향 강원도 강릉시 출생: 1960년 1월 25일 (소설가 심상대 나이 58세)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심미주의적 문체로 삶의 위기와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탐문하는 작가로 정교한 언어 감각과 탁월한 기법의 묘, 뚜렷한 색채를 통해 첫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소설가 심상대 학력 강릉제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사

작품 소설 《묵호를 아는가》 《명옥헌》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망월》 《떨림》 《심미주의자》 《단추》 소설가 심상대 결혼 소설가 심상대 아내 미공개 

소설가 심상대 자녀 딸 아들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자녀를 낳지 않았던 이유, 아흔 노모 버리고 목을 맨 이유 등등 궁금증 5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자녀를 낳지 않았던 이유, 아흔 노모 버리고 목을 맨 이유 등등 궁금증 5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현장에서는 유산을 가족에게 남기고 장례와 시신 처리 역시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된다고 하는데요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누구인지, 마광수 교수의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 교수, 그리고 자녀를 낳고 살지 않았던 이유, 아흔이 넘은 노모를 홀로 남기도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등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1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로 66년 생 마감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대표적 섹슈얼리티 작가로 칭송받고 비난받았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향년 66세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자살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전 마광수 교수가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했다는 점으로 미뤄 봐서, 정년 퇴임 후 학교를 나가게 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로 귀결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마광수 교수의 우울증의 원인이 된 사건이 과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두 소설 작품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의 필화 사건, 다시 말해 두 작품이 성적으로 너무 야하고 외설적이다며 권력이나 문단에서 핍박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1989년에 출간된 마광수 교수의 초기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교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저급한 소설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1992년에 출간한 즐거운 사라는 외설적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정권으로부터 체포당해 수감까지 당하며 우울증이 커졌고, 이후 3년 반 이상을 교수직을 휴직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과거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2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무엇? 특히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은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섹슈얼리티 사건인데요 당시 서울대 모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출간에 즈음해서,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을 내기도 했었을 정도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마광수 교수는 결정적으로 1992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로 인해 포승줄에 묶여 긴급 체포를 당해서 교도소에 갇히기도 하며, 모교인 연세대로부터 면직을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데요

  이후 1998년 우여곡절끝에 연세대에 다시 복직되었지만, 2000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이유가 불문명한 논문 실적 등의 문제를 빌미 삼아 국문학과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재임용을 거부당하게 됩니다  마광수 교수는 평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 당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당시 동료 교수들이 똘똘 뭉쳐 자신을 쫓아내려는 상황세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울화병이 생겨 사경을 헤맬 정도까지 갔다고 합니다  이후 2002년 어찌어찌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를 재개했지만, 또 다시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을 하게 되고,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로 복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는 2006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가 또 다시 검찰에 의해 구속이되어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즐거운 사라는 마광수 교수를 전과 2범으로 만든 그 유명한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3  마광수 교수 결혼 생활과 별거와 이혼, 전 부인 김방옥 교수 누구? 소설가 마광수 교수는 1985년 35살의 나이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김방옥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가 서른 살이 넘은 대학 교수가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느냐는 성화에 오래 전부터 친구처럼, 동료처럼 알고 지내던 동료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인데요  마광수 교수의 부인 김방옥 교수는 1952년 생으로 마광수 교수보다 한 설 연하의 여자로,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대 후반 한국연극학회 회장직을 역임한 연극계의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러나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친구이자 연인과의 결혼이어서 모든 면에서 말이 잘 통할 것으로 보생각했지만, 막상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혼 생활 3년, 별거 2년을 합쳐 5년의 기간이 흐른 후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마광수 교수와 김방옥 교수와의 결혼은 이혼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러나 마광수 교수에게 김방옥 교수는 결혼 전 10년 이상을 연애를 하며 가장 사랑했던 여자였기에,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사랑을 깨뜨렸다고 봐도 무방한 자유주의자의 삶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입니다

   4  마광수 교수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이유, 두 사람 사이 자녀가 없었던 이유? 마광수 교수는 부인 김방옥 교수와 사이에 자녀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해서 유명한 사항인데요 마광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에게 결혼 후 3년 간은 피임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유는 그 기간 동안 이혼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논리만큼이나 본인의 삶의 태도 역시 그대로 부인 김방옥과도 3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않았고, 3년간 함께 살고, 2년간 별거를 한 후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광수 교수가 밝힌 이혼 사유로는 처음 6개월을 제외하고는, 둘이 같이 자는 것도 불편하고, 저녁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불편하고,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면서, 마광수 교수로서는 불편한 점이 자꾸 자꾸 생겨나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5  정년 퇴임, 반토막난 연금, 아흔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고 위에서 마광수 교수의 자살 이유로 과거 필화 사건으로 인한 울화병과 우울증을 들었지만, 그러나 실형 선고를 받은 전과자로서 정년 퇴직후에도 연금이 반토막이 난 경제적인 상황 역시 마광수 교수를 자살로 내 몬 이유로 크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있어요 (혹자는 연금이 반토막이 아니라, 아예 연금이 지급이 안되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마광수 교수는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게 되는데요 이후 마광수 교수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90살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한 달 간병비만 250만원 이상이 나오고, 거기에 정년 퇴직으로 월급이 없어진 상태에서 300에서 500만원 정도 나오는 교수 연금마저 전과자라는 이유로 반토막나서 지급이 되니 생활고가 무척 심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유서 내용이 유산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넘긴다, 시신 처리 역시 그 가족에게 맡긴다는 가족에 대한 규정이 다소 불분명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크지 않았나 싶어요 아흔 넘은 노모가 발견하면 어머니에게, 혹시라도 전 부인이 발견하게 되면 전부인에게 이런 식으로요 해직 경력 때문에 명예교수 직함도 달지 못한채로 퇴직을 해서 문학적으로나 실생활 삶의 현장에서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님인데요 자식의 죽음에 대한 기억조차 흐릿할지 모를 아흔 넘은 노모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마광수 교수님의 선택이 너무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업데이트] 내용 정정합니다 마광수 교수님이 모시고 살던 아흔 노모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관련 내용 제대로 알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마도 교수님은 정년 퇴임 이후 홀로 된 상황, 나이듦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과거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등에서 기인된 우울증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네요 정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현장에서는 유산을 가족에게 남기고 장례와 시신 처리 역시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된다고 하는데요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누구인지, 마광수 교수의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 교수, 그리고 자녀를 낳고 살지 않았던 이유, 아흔이 넘은 노모를 홀로 남기도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등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1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로 66년 생 마감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대표적 섹슈얼리티 작가로 칭송받고 비난받았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향년 66세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자살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전 마광수 교수가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했다는 점으로 미뤄 봐서, 정년 퇴임 후 학교를 나가게 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로 귀결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마광수 교수의 우울증의 원인이 된 사건이 과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두 소설 작품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의 필화 사건, 다시 말해 두 작품이 성적으로 너무 야하고 외설적이다며 권력이나 문단에서 핍박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1989년에 출간된 마광수 교수의 초기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교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저급한 소설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1992년에 출간한 즐거운 사라는 외설적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정권으로부터 체포당해 수감까지 당하며 우울증이 커졌고, 이후 3년 반 이상을 교수직을 휴직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과거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2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무엇? 특히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은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섹슈얼리티 사건인데요 당시 서울대 모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출간에 즈음해서,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을 내기도 했었을 정도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마광수 교수는 결정적으로 1992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로 인해 포승줄에 묶여 긴급 체포를 당해서 교도소에 갇히기도 하며, 모교인 연세대로부터 면직을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데요 이후 1998년 우여곡절끝에 연세대에 다시 복직되었지만, 2000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이유가 불문명한 논문 실적 등의 문제를 빌미 삼아 국문학과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재임용을 거부당하게 됩니다 마광수 교수는 평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 당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당시 동료 교수들이 똘똘 뭉쳐 자신을 쫓아내려는 상황세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울화병이 생겨 사경을 헤맬 정도까지 갔다고 합니다

  이후 2002년 어찌어찌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를 재개했지만, 또 다시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을 하게 되고,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로 복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는 2006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가 또 다시 검찰에 의해 구속이되어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즐거운 사라는 마광수 교수를 전과 2범으로 만든 그 유명한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3  마광수 교수 결혼 생활과 별거와 이혼, 전 부인 김방옥 교수 누구? 소설가 마광수 교수는 1985년 35살의 나이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김방옥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가 서른 살이 넘은 대학 교수가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느냐는 성화에 오래 전부터 친구처럼, 동료처럼 알고 지내던 동료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인데요  마광수 교수의 부인 김방옥 교수는 1952년 생으로 마광수 교수보다 한 설 연하의 여자로,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대 후반 한국연극학회 회장직을 역임한 연극계의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러나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친구이자 연인과의 결혼이어서 모든 면에서 말이 잘 통할 것으로 보생각했지만, 막상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혼 생활 3년, 별거 2년을 합쳐 5년의 기간이 흐른 후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마광수 교수와 김방옥 교수와의 결혼은 이혼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러나 마광수 교수에게 김방옥 교수는 결혼 전 10년 이상을 연애를 하며 가장 사랑했던 여자였기에,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사랑을 깨뜨렸다고 봐도 무방한 자유주의자의 삶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입니다

 4  마광수 교수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이유, 두 사람 사이 자녀가 없었던 이유? 마광수 교수는 부인 김방옥 교수와 사이에 자녀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해서 유명한 사항인데요 마광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에게 결혼 후 3년 간은 피임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유는 그 기간 동안 이혼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논리만큼이나 본인의 삶의 태도 역시 그대로 부인 김방옥과도 3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않았고, 3년간 함께 살고, 2년간 별거를 한 후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광수 교수가 밝힌 이혼 사유로는 처음 6개월을 제외하고는, 둘이 같이 자는 것도 불편하고, 저녁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불편하고,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면서, 마광수 교수로서는 불편한 점이 자꾸 자꾸 생겨나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5  정년 퇴임, 반토막난 연금, 아흔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고 위에서 마광수 교수의 자살 이유로 과거 필화 사건으로 인한 울화병과 우울증을 들었지만, 그러나 실형 선고를 받은 전과자로서 정년 퇴직후에도 연금이 반토막이 난 경제적인 상황 역시 마광수 교수를 자살로 내 몬 이유로 크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있어요 (혹자는 연금이 반토막이 아니라, 아예 연금이 지급이 안되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 마광수 교수는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게 되는데요 이후 마광수 교수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90살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한 달 간병비만 250만원 이상이 나오고, 거기에 정년 퇴직으로 월급이 없어진 상태에서 300에서 500만원 정도 나오는 교수 연금마저 전과자라는 이유로 반토막나서 지급이 되니 생활고가 무척 심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유서 내용이 유산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넘긴다, 시신 처리 역시 그 가족에게 맡긴다는 가족에 대한 규정이 다소 불분명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크지 않았나 싶어요 아흔 넘은 노모가 발견하면 어머니에게, 혹시라도 전 부인이 발견하게 되면 전부인에게 이런 식으로요 해직 경력 때문에 명예교수 직함도 달지 못한채로 퇴직을 해서 문학적으로나 실생활 삶의 현장에서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님인데요 자식의 죽음에 대한 기억조차 흐릿할지 모를 아흔 넘은 노모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마광수 교수님의 선택이 너무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설가 김영하 부인 아내 결혼 작품 가족 이야기

소설가 김영하 부인 아내 결혼 작품 가족 이야기 김영하의 나이는 1968년 11월 11일 출생 고향은 강원도 화천군으로 군인의 아들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영하 학력은 보면 잠실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11)살에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그 이전의 기억이 모두 상실되었다고 하는데 이 경험과 관련된 내용은 그의 단편집 작품 호출에 실린 에서 소재로 활용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친구들을 그럴 듯한 이야기로 속이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할 정도로 타고난 필력을 자랑합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결혼을 했으며 사랑꾼이기도 한데 그 내용에 대해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죠  소설가 김영하는 아내를 위해 시를 못 쓰니까 소설을 하나 썼다고 방송에서 밝혔는데 실제로 그가 발간한 책 중에 ‘이십 년을 함께해온 아내 은수에게, 사랑과 경의를 담아’라고 적힌 문구가 공개됩니다

김영하 아이 자녀는 삼십대 초반 나이에 낳지 않겠다고 정했다고 합니다 김영하 아내 역시 이를 동의했기에 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부인 대신 요리는 자신이 한다고 밝혔는데요 직업이 전업주부는 아닌가 보네요 아무리 그래도 부인을 주방에서 은퇴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왜 그렇게 했냐는 물음에 그는 부인이 주부로서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에 그걸 없애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했다고 하는데 참 멋있는 분 같습니다

 아재의 나이이이지만 꼰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수다에서도 지식 자랑이 아닌 호감을 느끼게 만들더군요 소설가 김영하 작품을 보면 신세대의 도회적 감수성을 냉정한 시선과 메마른 감성으로 그려낸다는 평을 듣습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았으며 프랑스어로 번역되기도 했었죠 하룻밤에 단편소설 1편을 쓰기도 하는 속필로도 유명했습니다 1995년 계간지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95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2005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의 또 다른 직업이 있기도 합니다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자녀를 낳지 않았던 이유, 아흔 노모 버리고 목을 맨 이유 등등 궁금증 5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자녀를 낳지 않았던 이유, 아흔 노모 버리고 목을 맨 이유 등등 궁금증 5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현장에서는 유산을 가족에게 남기고 장례와 시신 처리 역시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된다고 하는데요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누구인지, 마광수 교수의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 교수, 그리고 자녀를 낳고 살지 않았던 이유, 아흔이 넘은 노모를 홀로 남기도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등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1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로 66년 생 마감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대표적 섹슈얼리티 작가로 칭송받고 비난받았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향년 66세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자살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전 마광수 교수가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했다는 점으로 미뤄 봐서, 정년 퇴임 후 학교를 나가게 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로 귀결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마광수 교수의 우울증의 원인이 된 사건이 과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두 소설 작품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의 필화 사건, 다시 말해 두 작품이 성적으로 너무 야하고 외설적이다며 권력이나 문단에서 핍박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1989년에 출간된 마광수 교수의 초기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교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저급한 소설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1992년에 출간한 즐거운 사라는 외설적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정권으로부터 체포당해 수감까지 당하며 우울증이 커졌고, 이후 3년 반 이상을 교수직을 휴직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과거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2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무엇?

특히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은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섹슈얼리티 사건인데요 당시 서울대 모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출간에 즈음해서,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을 내기도 했었을 정도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마광수 교수는 결정적으로 1992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로 인해 포승줄에 묶여 긴급 체포를 당해서 교도소에 갇히기도 하며, 모교인 연세대로부터 면직을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데요 이후 1998년 우여곡절끝에 연세대에 다시 복직되었지만, 2000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이유가 불문명한 논문 실적 등의 문제를 빌미 삼아 국문학과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재임용을 거부당하게 됩니다

마광수 교수는 평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 당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당시 동료 교수들이 똘똘 뭉쳐 자신을 쫓아내려는 상황세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울화병이 생겨 사경을 헤맬 정도까지 갔다고 합니다  이후 2002년 어찌어찌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를 재개했지만, 또 다시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을 하게 되고,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로 복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는 2006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가 또 다시 검찰에 의해 구속이되어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즐거운 사라는 마광수 교수를 전과 2범으로 만든 그 유명한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3  마광수 교수 결혼 생활과 별거와 이혼, 전 부인 김방옥 교수 누구? 소설가 마광수 교수는 1985년 35살의 나이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김방옥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가 서른 살이 넘은 대학 교수가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느냐는 성화에 오래 전부터 친구처럼, 동료처럼 알고 지내던 동료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인데요  마광수 교수의 부인 김방옥 교수는 1952년 생으로 마광수 교수보다 한 설 연하의 여자로,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대 후반 한국연극학회 회장직을 역임한 연극계의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러나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친구이자 연인과의 결혼이어서 모든 면에서 말이 잘 통할 것으로 보생각했지만, 막상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혼 생활 3년, 별거 2년을 합쳐 5년의 기간이 흐른 후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마광수 교수와 김방옥 교수와의 결혼은 이혼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러나 마광수 교수에게 김방옥 교수는 결혼 전 10년 이상을 연애를 하며 가장 사랑했던 여자였기에,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사랑을 깨뜨렸다고 봐도 무방한 자유주의자의 삶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입니다  4  마광수 교수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이유, 두 사람 사이 자녀가 없었던 이유? 마광수 교수는 부인 김방옥 교수와 사이에 자녀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해서 유명한 사항인데요

마광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에게 결혼 후 3년 간은 피임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유는 그 기간 동안 이혼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논리만큼이나 본인의 삶의 태도 역시 그대로 부인 김방옥과도 3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않았고, 3년간 함께 살고, 2년간 별거를 한 후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광수 교수가 밝힌 이혼 사유로는 처음 6개월을 제외하고는, 둘이 같이 자는 것도 불편하고, 저녁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불편하고,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면서, 마광수 교수로서는 불편한 점이 자꾸 자꾸 생겨나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5  정년 퇴임, 반토막난 연금, 아흔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고

위에서 마광수 교수의 자살 이유로 과거 필화 사건으로 인한 울화병과 우울증을 들었지만, 그러나 실형 선고를 받은 전과자로서 정년 퇴직후에도 연금이 반토막이 난 경제적인 상황 역시 마광수 교수를 자살로 내 몬 이유로 크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있어요 (혹자는 연금이 반토막이 아니라, 아예 연금이 지급이 안되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마광수 교수는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게 되는데요 이후 마광수 교수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90살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한 달 간병비만 250만원 이상이 나오고, 거기에 정년 퇴직으로 월급이 없어진 상태에서 300에서 500만원 정도 나오는 교수 연금마저 전과자라는 이유로 반토막나서 지급이 되니 생활고가 무척 심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유서 내용이 유산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넘긴다, 시신 처리 역시 그 가족에게 맡긴다는 가족에 대한 규정이 다소 불분명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크지 않았나 싶어요 아흔 넘은 노모가 발견하면 어머니에게, 혹시라도 전 부인이 발견하게 되면 전부인에게 이런 식으로요 해직 경력 때문에 명예교수 직함도 달지 못한채로 퇴직을 해서 문학적으로나 실생활 삶의 현장에서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님인데요

자식의 죽음에 대한 기억조차 흐릿할지 모를 아흔 넘은 노모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마광수 교수님의 선택이 너무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업데이트] 내용 정정합니다 마광수 교수님이 모시고 살던 아흔 노모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관련 내용 제대로 알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마도 교수님은 정년 퇴임 이후 홀로 된 상황, 나이듦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과거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등에서 기인된 우울증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네요 정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 지난달 “달코미 왕자”와 결혼 | 서울 KR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 지난달 “달코미 왕자”와 결혼 귀여니는 지난달 결혼해 태국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귀여니는 평소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신랑을 ‘달코미 왕자’로 지칭하며 애정을 드러내왔다

귀여니 에이전시 측은 “현재 귀여니가 신혼여행 중이라 연락을 취할 수 없다”며 “돌아오면 연락을 다시 취해보겠다”고 스포츠경향에 말했다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 지난달 결혼…신랑 애칭은 ‘달코미 왕자’ 귀여니는 2000년대 초반 10대 층을 겨냥한 이모티콘이 섞인 인터넷 소설 장르를 개척했다 ‘그놈의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등이 인터넷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다수 영화화하기도 했다 귀여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글을 쓰고 만화책으로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나눠주고는 했다고 한다

2001년 17살 때 연재한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200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2011년에는 판타지 소설 팜피넬라를 발표했다 2012년 서울종합예술학교 방송구성작가예능학과 겸임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이유(사망 별세) 마광수 부인 김방옥(아내 가족) 마광수 이혼이유, 사유 결혼 재혼 나이 학력 고향 종교 프로필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이유(사망 별세) 마광수 부인 김방옥(아내 가족) 마광수 이혼이유, 사유 결혼 재혼 나이 학력 고향 종교 프로필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는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성윤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며 곡절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나왔습니다

성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가 담긴 소설로 널리 알려졌지만 문학 인생의 출발은 시 였습니다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등단 28세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천재로 불렸습니다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펴내고 이듬해 10월 음란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되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즐거운 사라는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즐거운 사라가 스승 제자의 성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음란물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예술과 외설,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논쟁이 번졌습니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한 그는 해직 경력 탓에 명예교수 직함도 얻지 못했고 필화 사건의 상처와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에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교수사회에서 계속 왕따로 지냈고, 글을 썼지만 이상하게 계속 비주류로 맴돌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마녀사냥 당하기 쉬운 주제가 성(性)이라며 우울해지지만 별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2017년 9월 5일 소설가 마광수씨가 자신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경찰은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고 자살로 추정했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1985년 결혼했다가 5년 뒤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았습니다 이혼 이유에 관해서는 알려진바 없습니다 빈소는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차려졌습니다 마광수 작가 프로필, 전 대학교수

나이 1951년 4월 14일 (고향 서울) ~ 2017년 09월 5일(사망 별세) 학력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종교 무종교 가족 김방옥 부인(이혼) 자녀 없음, 데뷔 1989년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자녀를 낳지 않았던 이유! 아흔 노모 버리고 목을 맨 이유 등등 궁금증 5@@

즐거운 사라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 이유!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자녀를 낳지 않았던 이유! 아흔 노모 버리고 목을 맨 이유 등등 궁금증 5@@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현장에서는 유산을 가족에게 남기고 장례와 시신 처리 역시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된다고 하는데요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누구인지, 마광수 교수의 결혼 생활, 부인 김방옥 교수, 그리고 자녀를 낳고 살지 않았던 이유,@ 아흔이 넘은 노모를 홀로 남기도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등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1  소설가 마광수 교수 자살로 66년 생 마감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대표적 섹슈얼리티 작가로 칭송받고 비난받았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향년 66세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자살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전 마광수 교수가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했다는 점으로 미뤄 봐서, @정년 퇴임 후 학교를 나가게 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로 귀결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근데 안타까운 것은 마광수 교수의 우울증의 원인이 된 사건이 과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두 소설 작품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의 필화 사건, @다시 말해 두 작품이 성적으로 너무 야하고 외설적이다며 권력이나 문단에서 핍박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1989년에 출간된 마광수 교수의 초기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교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저급한 소설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1992년에 출간한 즐거운 사라는 외설적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정권으로부터 체포당해 수감까지 당하며 우울증이 커졌고, 이후 3년 반 이상을 교수직을 휴직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과거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2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무엇? 특히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은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섹슈얼리티 사건인데요

@당시 서울대 모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출간에 즈음해서,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을 내기도 했었을 정도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마광수 교수는 결정적으로 1992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로 인해@ 포승줄에 묶여 긴급 체포를 당해서 교도소에 갇히기도 하며, 모교인 연세대로부터 면직을 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데요 이후 1998년 우여곡절끝에 연세대에 다시 복직되었지만, 2000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이유가 @불문명한 논문 실적 등의 문제를 빌미 삼아 국문학과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재임용을 거부당하게 됩니다 마광수 교수는 평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 당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 당시 동료 교수들이 똘똘 뭉쳐 자신을 쫓아내려는 상황세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울화병이 생겨 사경을 헤맬 정도까지 갔다고 합니다 이후 2002년 어찌어찌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를 재개했지만, 또 다시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을 하게 되고,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로 복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는 2006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가 또 다시 검찰에 의해 구속이되어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즐거운 사라는 마광수 교수를 전과 2범으로 만든 그 유명한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3  마광수 교수 결혼 생활과 별거와 이혼, 전 부인 김방옥 교수 누구? 소설가 마광수 교수는 1985년 35살의 나이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김방옥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가 서른 살이 넘은 대학 교수가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느냐는 성화에 오래 전부터 친구처럼, 동료처럼 알고 지내던 동료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인데요  마광수 교수의 부인 김방옥 교수는 1952년 생으로 마광수 교수보다 한 설 연하의 여자로,@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대 후반 한국연극학회 회장직을 역임한 연극계의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러나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친구이자 연인과의 결혼이어서 모든 면에서 말이 잘 통할 것으로 보생각했지만, 막상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혼 생활 3년, 별거 2년을 합쳐 5년의 기간이 흐른 후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마광수 교수와 김방옥 교수와의 결혼은 이혼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러나 마광수 교수에게 김방옥 교수는 결혼 전 10년 이상을 연애를 하며 가장 사랑했던 여자였기에, @오히려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사랑을 깨뜨렸다고 봐도 무방한 자유주의자의 삶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입니다

 4  마광수 교수 부인 김방옥과의 이혼 이유, 두 사람 사이 자녀가 없었던 이유? 마광수 교수는 부인 김방옥 교수와 사이에 자녀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해서 유명한 사항인데요@ 마광수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에게 결혼 후 3년 간은 피임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유는 그 기간 동안 이혼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논리만큼이나 본인의 삶의 태도 역시 그대로 부인 김방옥과도 3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않았고, @3년간 함께 살고, 2년간 별거를 한 후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광수 교수가 밝힌 이혼 사유로는 처음 6개월을 제외하고는, 둘이 같이 자는 것도 불편하고,@ 저녁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불편하고,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면서,@ 마광수 교수로서는 불편한 점이 자꾸 자꾸 생겨나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5  정년 퇴임, 반토막난 연금, 아흔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고 위에서 마광수 교수의 자살 이유로 과거 필화 사건으로 인한 울화병과 우울증을 들었지만, @그러나 실형 선고를 받은 전과자로서 정년 퇴직후에도 연금이 반토막이 난 경제적인 상황 역시 마광수 교수를 자살로 내 몬 이유로 크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있어요 @ (혹자는 연금이 반토막이 아니라, 아예 연금이 지급이 안되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마광수 교수는 지난 2016년 8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게 되는데요 @이후 마광수 교수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에서 90살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한 달 간병비만 250만원 이상이 나오고, 거기에 정년 퇴직으로 월급이 없어진 상태에서 300에서 500만원 정도 나오는 교수 연금마저 전과자라는 이유로 반토막나서 지급이 되니 생활고가 무척 심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유서 내용이 유산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넘긴다, @시신 처리 역시 그 가족에게 맡긴다는 가족에 대한 규정이 다소 불분명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크지 않았나 싶어요

아흔 넘은 노모가 발견하면 어머니에게@혹시라도 전 부인이 발견하게 되면 전부인에게 이런 식으로요 해직 경력 때문에 명예교수 직함도 달지 못한채로 퇴직을 해서 문학적으로나 실생활 삶의 현장에서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소설가 마광수 교수님인데요@ 자식의 죽음에 대한 기억조차 흐릿할지 모를 아흔 넘은 노모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마광수 교수님의 선택이 너무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