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 김동리,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읽어 드릴 이야기는 1961년 사상계에 발표된 김동리의 등신불 입니다 등신불은 양자강 북쪽에 있는 정원사의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의 이름이다 등신금불 또는 그냥 금불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이 등신불 등신금불로 불리워지는 불상에 대해 보고 듣고 한 그대로를 여기다 적으려 하거니와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정원사라는 먼 이역의 고찰을 찾게 되었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으로 끌려 나간 것은 일구사삼년 이른 여름 내 나이 스물 세 살 나던 때였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북경에서 서주를 거쳐 남경에 도착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거기서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엔 주둔이라기보다 대기에 속하는 편이었으나 다음 부대의 도착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나중에는 교체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주둔군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대체로 인도지나나 인도네시아 방면으로가게 된다는 것을 어림으로 짐작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오래 남경에 머물면 머물수록 그만치 우리의 목숨이 더 연장되는 거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체부대가 하루라도 더 늦게 와 주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빌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실상은 그냥 빌고 있는 심정만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서 이 기회에 기어이 나는 나의 목숨을 건져 내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런 기회를 위하여 미리 약간의 준비까지 해 두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불교 학자로서 일본에와 유학을 하고 돌아 간 특히 대정대학 출신으로 사람들의 명단을 조사해 둔 일이 있었다 나는 숨겨둔 작은 쪽지에서 남경 진기수란 이름을 발견했을 때 야릇한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머리 속까지 횡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낯선 이역의 도시에서 더구나 나 같은 일본군에 소속된 한국 출신 학병의 몸으로써 그를 찾고 못 찾고 하는 일이 곧 내가 죽고 사는 판가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들 그때의 그러한 용기와 지혜를 내 속에서 나는 자아내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부대가 앞으로 사흘 이내에 남경을 떠난다고 하는 그것도 확실한 정보가 아니고 누구의 입에선가 새어 나온 말이지만 조마조마한 고비에 정심원에 있는 포교사를 통하여 진기수씨가 남경 교외의 서공암이라는 작은암자에 독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내가 서공암에서 진기수씨를 찾게 된 것은 땅거미가 질 무렵 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 합장을 올리며 무수히 머리를 수그림으로써 나의 절박한 사정과 그에 대한 경의를 먼저 표한 뒤 솔직하게 나의 처지와 용건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평생 처음 보는 타국 청년 그것도 적군의 군복을 입은 나에게 그러한 협조를 쉽사리 약속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의 두 눈이 약간 찡그러지며 입에서는 곧 거절의 선고가 내릴 듯한 순간 나는 미리 준비하고 갔던 흰 종이를 끄집어 내어 내 앞에 폈다 그리고는 바른편 손 식지 끝을 물어서 살을 떼어낸 다음 그 피로써 다음과 같이 썼다 원면살생 귀의불은 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며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 나는 이 여덟 글자의 혈서를 두손으로 받들어 그의 앞에 올린 뒤 다시 합장을했다 이것을 본 진기수씨는 분명히 얼굴 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반드시 기쁜 빛이라 할 수는 없었으나 조금 전의 그 거절의 선고만은 가셔진 듯한 얼굴이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진기수씨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 오게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갔다 깊숙한 골방이었다 진기수씨는 나를 그 컴컴한 골방 속에 들여 보내고 자기는 문을 닫고 도로 나가 버렸다 조금 뒤 그는 법의 한 벌을 가져와 방안으로 디밀며 이걸로 갈아 입게 하고 또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나의 가슴 속을 후끈하게 적셔 주는 듯 했다 내가 옷을 갈아 입고 났을 때 이번에는 또 간소한 저녁상이 디밀어졌다 나는 말없이 디밀어진 저녁상을 또한 그렇게 말없이 받아서 지체없이 다 먹어 치웠다 내가 빈 그릇을 문밖으로 내어놓자 밖에서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이내 진기수씨가 어떤 늙은 중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 분을 따라가게 소개장은 이분에게 맡겼어 큰절의 내 법사 스님한테 가는 나는 무조건 네 네 하며 곧장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를 살려 주려는 사람에게 무조건 나를 맡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길은 일본 병정들이 알지도 못하는 산속 지름길이야 한 백 리 남짓 되지만 오늘이 스무 하루니까 밤중 되면 달빛도 좀 있을 게구 그럼 불연 깊기를 나무관세음보살 그는 나를 향해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수그렸다 나는 목이 콱 메어옴을 깨달았다 눈물이 핑 돈 채 나도 그를 향해 잠자코 합장을 올렸다 어둡고 험한 산길을 늙은 중 경암은 거침없이 걸었다 아무리 발에 익은 길이라 하지만 군데군데 나뭇가지가 걸리고 바닥이 패이고 돌이 솟고 게다가 굽이굽이 골짜기 계곡물이 가로지르는 우거진 수풀속의 지름길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잘 뚫고 나가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믿는 것은 젊음 하나 뿐이련만 그는 이십 리나 삼십 리를 걸어도 힘에 부치어 쉬자고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쉴새 없이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어 가며 그의 뒤를 따랐으나 한참씩 가다 보면 어느덧 그를 어둠 속에 잃어 버리곤 했다 나는 몇 번이나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우고 돌에 채여 무릎을 깨우고 하며 대사 대사 그를 불러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경암은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리며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이나 내가 가까이 가면 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휙 돌아서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밤중도 훨씬 넘어 조각달이 수풀사이로 비쳐 들면서 나는 비로소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경암이 제 아무리 앞에서 달린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그를 놓치지는 않으리라 맘속으로 다짐했다 이렇게 정세가 바뀌어졌음을 그도 느끼는지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서자 그는 나를 흘낏 돌아다보더니 한 쪽 팔을 들어 먼데를 가리키며 반원을 그어 보이고는 이백 리 라고 했다 이렇게 지름길을 가지 않고 좋은길로 돌아가면 이백 리 길이라는 뜻인 듯했다 나는 한 마디 얻어들은 중국말로 쎄 쎄 하고 장단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했다 우리가 정원사 산문 앞에 닿았을 때는 이튿날 늦은 아침녘이었다 경암은 푸른 수풀 속에 거뭇거뭇 보이는 높은 기와집들을 손가락질로 가리키며 자랑스런 얼굴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하오 하오 를 되풀이했다 산문을 지나 정문을 들어서니 산무데기 같은 큰 다락이 정면에 버티고 섰다 현판을 쳐다보니 태허루라고 씌어 있었다 태허루 곁을 돌아 안마당 어귀에 들어서니 정면 한 가운데 높직이 앉아 있는 가장 웅장한 건물이 법당이라고 짐작이 가나 그 양 옆으로 첩첩이 가로 세로 혹은 길쭉하게 눕고 혹은 높다랗게 서고 혹은 둥실하게 앉은 무수한 집들이 모두 무슨 이름에 어떠한 구실을 하는 것들인지 첫 눈엔 그저 황홀하고 얼떨떨할 뿐이었다 경암은 나를 데리고 그 첩첩이 둘러 앉은 집들 사이를 한참 돌더니 청정실이란 조그만 현판이 붙은 조용한 집 앞에 와서 기척을 했다 방문이 열리더니 한 스무 살이나 될락말락한 젊은 중이 얼굴을 내 밀며 알은 체를 한다 둘이서 한참동안 말을 주고 받고 한 끝에 경암이 나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키가 성큼하게 커 뵈는 노승이 미소 띤 얼굴로 경암과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노승 앞에 발을 모으고 서서 정중히 합장을 올렸다 어저께 진기수씨 앞에서 연거푸 머리를 수그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한 번만 정중하게 머리를 수그려 절을 했던 것이다 노승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자리를 가리킨 뒤 경암이 내어 드린 진기수씨의 편지를 펴 보았다 불은이로다 편지를 읽고 난 노승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그때는 알아듣지 못 했지만 나중에 가서 알고 보니 그랬다 그리고 이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노승이 두어해 전까지 이 절의 주지를 지낸 원혜대사로 진기수씨가 말한 자기의 법사 스님이란 곧 이분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원혜대사의 주선으로 그가 거처하고 있는 청정실 바로 곁의 조그만 방 한 칸을 혼자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그 방으로 인도해 준 원혜대사의 젊은 시봉은 저와 이웃이죠 하며 희고 넓적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청운이라 부른다고 했다 나는 방 한 칸을 따로 쓰고 있었지만 결코 방안에 들어앉아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나를 죽을 고비에서 건져 준 진기수씨나 그의 법명은 혜운이었다 원혜대사의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결코 남의 입에 오르내릴 짓을 해서는 안되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아침 일찌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예불을 끝내면 청운과 함께 청정실 안팎과 앞뒤의 복도와 뜰을 먼지 티끌 하나 없이 쓸고 닦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스님들을 따라 산에 가 약도 캐고 식량 준비도 거들었다 이 절에서도 전쟁 관계로 식량이 딸렸으므로 산중의 스님들은 여름부터 식용이 될 만한 풀잎과 나무 뿌리 같은 것들을 캐러 산으로 가곤 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내 방에 끓어 앉아 불경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청운에게 중국어를 배웠다 이것은 나의 열성에다 청운의 호의가 곁들어서 그런지 의외로 빨리 진척이 되어 사흘만에 이미 간단한 말로 물론몇 마디씩이지만 대화하는 흉내까지 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방에 혼자 있을 때라도 취침 시간 이외엔 방안에 번듯이 드러눕지 않도록 내 자신과 씨름을 했다 그렇게 버릇을 들이지 않으려고 나는 몇 번이나 내 자신에게 다짐을 놓았는지 모른다 졸음이 와서 정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밖으로 나와 어정대며 바람을 쐬곤 했다 처음엔 이렇게 막연히 어정대며 바람을 쐬던 것이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어정대지 않게 되었다 으레껀 가는 곳이 정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저 금불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물론 나는 법당 구경을 먼저 했다 본존을 모셔 둔 곳이니 만큼 그 절의 풍도나 품격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라는 까닭으로서 보다도 절 구경은 으레껀 법당이 중심이라는 종래의 습관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법당에서 얻은 감명은 우리 나라의 큰 절이나 일본의 그것에 견주어 그렇게 자별하다고 할 것이 없었다 기둥이 더 굵대야 그저 그렇고 불상이 더 크대야 놀랄 정도는 아니요 그 밖에 채색이나 조각에 있어서도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에 비하여 더 정교한 편은 아닌 듯 했다 다만 정면 한가운데 높직이 모셔져 있는 세 위의 금불상을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힘겨룸을 시켜 본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더 놀라운 힘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힘 겨룸을 시켜 본다면 하는 가정에서 말한 것이지만 그네 들의 눈으로 보면 자기네의 부처님이 그만큼 더 거룩하게만 보일는지 모를 일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위에서 말한 더 놀라운 힘이 체력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어떤 거룩한 법력이나 도력으로 비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특히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은 금불을 구경한 뒤였다 금불각 속에 모셔져 있는 등신금불을 보고 받은 깊은 감명이 그 절의 모든 것을 특히 법당에 모셔져 있는 세 위의 큰 불상을 거룩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압력 같은 것이 되어 나타났다고나 할까 물론 나는 청운이나 원혜대사로부터 금불각에 대하여 미리 들은 바도 없으면서 금불각이 앉은 자리라든가 그 집 구조로 보아 약간 특이한 느낌이 그 안의 등신불을 구경하기 전에 이미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법당 뒤곁에서 길 반 가량 높이의 돌계단을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약 오륙십 미터 거리의 석대가 구축되고 그 석대가 곧 금불각에 이르는 길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그 석대가 똑같은 크기의 넓적넓적한 네모잽이 돌로 쌓아져 있는데 돌 위엔 보기 좋게 거뭇거뭇한 돌 옷이 입혀져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법당 뒤곁의 동북쪽 언덕을 보기 좋은 돌로 평평하게 쌓아서 석대를 만들고 그 위에 금불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게다가 추녀와 현판을 모두 돌아가며 도금을 입히고 네 벽에 새긴 조상과 그림에 도금을 많이 써서 그야말로 밖에서는 보는 건물 그 자체부터 금빛이 현란했다 나는 본디 비단이나 종이나 나무나 쇠붙이 따위에 올린 금물이나 금박 같은 것을 웬지 거북해하는 성미라 금불각에 입혀져 있는 금빛에도 그러한 경계심과 반감 같은 것을 품고 대했지만 하여간 이렇게 석대를 쌓고 금칠을 하고 할 때는 그들로서 무엇인가 아끼고 위하는 마음의 표시를 하느라고 한 짓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아끼고 위하는 것이 보나마나 대단한 것은 아니리라고 혼자 속으로 미리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나의 과거 경험으로 본다면 이런 것은 대개 어느 대왕이나 황제의 갸륵한 뜻으로 순금을 많이 넣어서 주조한 불상이라든가 또는 어느 천자가 어느 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친히 불사를 일으킨 연유의 불상이라든가 하는 따위 대왕이나 황제의 권리를 보여 주기 위한 금빛이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이 금불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좀처럼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굳어졌다 적어도 은화 다섯 냥 이상의 새전이 아니면 문을 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선남 선녀의 큰 불공이 있을 때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도 본사 승려 이외에 금불각을 참례하는 자는 또 따로 새전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구나 신도들의 새전을 긁어모으기 위한 술책으로 좁쌀 만한 언턱거리를 가지고 연극을 꾸미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으리라고 나는 아주 단정을 하고 도로 내 방으로 돌아왔다가 그때 마침 청운이 중국어를 가르쳐 주려고 왔기에 저 금불각이란 게 뭐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물어 보았다 왜요 청운이 빙긋이 웃으며 도로 물었다 구경 갔더니 문을 안 열어 주던데 지금 같이 가 볼까요 뭐 담에 보지 담에라도 그럴 거예요 이왕 맘 난 김에 가 보시구려 청운이 은근히 권하는 빛이기도해서 나는 그렇다면 하고 그를 따라 나갔다 이번에는 청운이 숫제 금불각을 담당한 노승에게서 쇳대를 빌려와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문앞에 선 채 그도 합장을 올렸다 나는 그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미묘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그가 합장을 올릴 때도 그냥 멍하니 불상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선 내가 예상한 대로 좀 두텁게 도금을 입힌 불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내가 미리 예상했던 그러한 어떤 불상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지고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의 결가부좌상이었다 그렇게 정연하고 단아하게 석대를 쌓고 추녀와 현판에 금물을 입힌 금불각 속에 안치되어 있음직한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 라고나 할까 너무도 거리가 멀고 어이가 없는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일찌기 본적도 상상 한 적도 없는 그러한 어떤 가부좌상이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나는 미묘한 충격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미묘한 충격을 나는 어떠한 말로써도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처음 보았을 때 받은 그 경악과 충격이 점점 더 전율과 공포로 화하여 나를 후려갈기는 듯한 어지러움에 휩싸일 뿐이었다고나 할까 곁에 있던 청운이 나의 얼굴을 돌아다 보았을 때도 나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며 정강마루와 아래턱을 그냥 덜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부처님도 아니다 불상도 아니야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나의 목구멍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말도 새어 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아침 인사를 드리 러 갔을 때 스님은 어저께 금불각 구경을 갔었니 하고 물었다 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참배했었다고 대답하자 스님은 꽤 만족한 얼굴로 불은이로다 했다 나는 맘속으로 그건 부처님이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가 아니었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깨달았으나 굳이 입을 닫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스님은 내 맘속을 헤아리는 듯 그래 어느 부처님이 제일 맘에 들더냐 하고 물었다 나는 실상 그 등신불에 질리어 그 곁에 모신 다른 불상들은 거의 살펴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른 부처님은 미처 보지도 못했어요 가운데 모신 부 부처님이 어떻게 나 무 무서운지 나는 또 아래턱이 덜덜덜 떨리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원혜대사는 말없이 떨리는 나의 얼굴을 가만히 건너다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나는 지금 금방 내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한 듯한 야릇한 반발이 내 속에서 폭발되었다 그렇지만 아니었어요 부처님의 상호 같지 않았어요 나는 전신의 힘을 다하여 겨우 이렇게 말해 버렸다 왜 머리에 얹은 것이 화관이 아니고 향로래서 그러니 그렇지 그건 향로야 원혜대사는 조금도 나를 꾸짖는 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그러한 불만에 구미가 당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잠자코 원혜대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곁에 있던 청운이 두어 번이나 나에게 눈짓을 했을 만큼 나의 두 눈은 스님을 쏘아 보듯이 빛나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하면 부처님이 아니고 나한님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나한님도 머리 위에 향로를 쓴 분은 없잖아 오백나한중에도 나는 역시 입을 닫은 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스님의 얼굴을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지 않았다 그렇지 본래는 부처님이 아니야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어 본래는 이 절 스님인데 성불을 했으니까 부처님이라고 부른 게지 자네도 마찬가지야 스님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나도 머리를 숙이며 합장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청정실로 건너 올 때 청운은 나에게 턱으로 금불각 쪽을 가리키며 나도 첨엔 이상했어 그렇지만 이 절에서 영검이 제일 많은 부처님이라고 영검이라고 나는 이렇게 물었지만 실상은 청운이 서슴지 않고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더욱 놀랐던 것이다 조금 전에도 원혜대사로 부터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때까지의 나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습관화된 개념으로써는 도저히 부처님과 스님을 혼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래서 그렇게 새전이 많다오 청운의 대답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들려 주었다 스님의 이름은 잘 모른다 당나라 때다 일천수백 년 전이라고 한다 소신공양으로 성불을 했다 공양을 드리고 있을 때 여러가지 신묘하고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것을 보고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서 아낌없이 새전과 불공을 드렸는데 그들 가운데 영검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영검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기 금불각 등신불에 빌어서 아이를 낳고 병을 고치고 한 사람의 수효는 수천 수만을 헤아린다 그 밖에도 소원을 성취한 사람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나도 청운에게서 소신 공양이란 말을 들었을 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 그럴 테지 나는 무슨 뜻인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잇달아 눈을 감고 합장을 올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의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염불이 흘러 나왔다 아아 그 고뇌 그 비원 나의 감은 두 눈에서는 눈물이 번져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는 발작과도 같이 곧장 염불을 외었다 나도 처음 뵜을 때는 가슴이 뭉클 했다오 그 뒤에 여러번 보고 나니까 차츰 심상해지더군 청운은 빙긋이 웃으며 나를 위로 하듯이 말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무래도 석연치 못한 것이 있다 소신 공양으로 성불을 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부처님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모든 불상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은 거룩하고 원만하고 평화스러운 상호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가까운 부처님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러운 맛은 지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금불각의 가부좌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벗어나지 못한 고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떠한 대각보다도 그렇게 영검이 많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머리 속에서는 잠시도 이러한 의문들이 가셔지지 않았다 더구나 청운에게서 소신공양으로 성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금불이 아닌 새까만 숯덩이가 곧잘 눈에 삼삼거려 배길 수 없었다 사흘 뒤에 나는 다시 등신금불을 찾았다 사흘 전에 받은 충격이 어쩌면 나의 병적인 환상의 소치가 아닐까 하는 마음과 또 청운의 말대로 여러 번 봐서 심상해 진다면 나의 가슴에 사무친 오뇌와 비원의 촉수도 다소 무디어지리라는 생각에서 이다 문이 열리자 나는 그날 청운이 하던 대로 이내 머리를 수그리며 합장을 올렸다 입으로는 쉴새 없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눈까풀과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며 나의 눈이 열렸을 때 금불은 사흘 전의 그 모양 그대로 향로를 이고 앉아 있었다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듯한 부처님의 상호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가부좌상 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그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전날처럼 송두리째 나의 가슴을 움켜잡는 듯한 전율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나의 가슴은 이미 그러한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으로 메워져 있었고 또 그에게서 거룩하고 원만한 것의 상징인 부처님의 상호를 기대하는 마음은 가셔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합장을 올리며 입술이 바르르 떨리듯 오랫동안 나무아미타불을 부른 뒤 그 앞에서 물러났다 그 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청운과 더불어 원혜대사에게 저녁 인사를 갔을 때 스님은 나를 보고 너 금불을 보고 나서 괴로워 하는구나 했다 나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 금불각에 있는 그 불상의 기록을 봤느냐 스님이 또 물으시기에 내가 못 봤다고 했더니 그러면 기록을 한번 보라고 했다 이튿날 내가 청운과 더불어 아침 인사를 드릴 때 원혜대사는 자기가 금불각에 일러 두었으니 가서 기록을 청해서 보고 오라고 했다 나는 스님께 합장하고 물러나와 곧 금불각으로 올라갔다 금불각의 노승이 돌함에서 내어 준 폭이 한 뼘 남짓 길이가 두 뼘 가량되는 책자를 받아 들었을 때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두터운 표지 위에는 금 글씨로 만적선사 소신성불기 라 씌어 있고 책모리에는 금물이 먹여져 있었다 표지를 젖히자 지면은 모두 재빛 바탕이요 그 위에 사연은 금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었다 만적은 법명이요 속명은 기 성은 조씨다 금릉서 났지만 아버지가 어떤 이 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했는데 사구에게 한 아들이 있어 이름을 신 이라 했다 나이는 기와 같은 또래로 모두가 여나믄 살씩 되었었다 하루는 어미 장씨가 두 아이에게 밥을 주는데 가만히 독약을 신의 밥에 감추었다 기가 우연히 이것을 엿보게 되었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이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사씨 집의 재산을 탐냄으로써 전실 자식인 신을 없애려고 하는짓이라 하였다 기가 슬픈 맘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신의 밥을 제가 먹으려 할 때 어머니가 보고 크게 놀라 질색을 하며 그것을 빼앗고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밥이 아니다 어째서 신의 밥을 먹느냐 했다 신과 기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뒤 신이 자기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기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집을 나갔으니 내가 반드시 찾아 데리고 돌아오리라 하고 곧 몸을 감추어 중이 되고 이름을 만적이라 고쳤다 처음에는 금릉에 있는 법림원에 있다가 나중은 정원사 무풍암으로 옮겨서 거기서 해각선사에게 법을 배웠다 만적이 스물 네 살 되던 해 봄에 나는 본래 도를 크게 깨칠 인재가 못되니 내 몸을 이냥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함과 같지 못하다 하고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데 그 때 마침 비가 쏟아졌으나 만적의 타는 몸을 적시지 못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불빛이 환하더니 홀연히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었다 모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크게 불은을 느끼고 모두가 제 몸의 병을 고치니 무리들이 말하기를 이는 만적의 법력 소치라 하고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여졌다 새전으로써 만적의 탄 몸에 금을 입히고 절하여 부처님이라 하였다 그 뒤 금불각에 모시니 때는 당나라 중종 십 육년 성력 이년 삼월 초하루다 내가 이 기록을 다 읽고 나서 청정실로 돌아가니 원혜대사가 나를 불렀다 기록을 보고 나니 괴롬이 덜하냐 스님이 물었다 처음같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마는 그 괴롭고 슬픈 빛은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한 일이야 기록이 너무 간략하고 섬소해서 라고 했다 그것이 자기는 그보다 훨씬 많은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씨였다 그렇지만 천 이백 년도 넘는 옛날 일인데 기록 이외에 다른 일을 어떻게 알겠읍니까 또 내가 물었다 이에 대하여 원혜대사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절에서는 그것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러니까 그만치 금불각의 등신불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 영검을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원혜대사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물론 천이백 년간 등신금불에 대하여 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원혜대사가 정리해서 간단히 한 이야기이다 만적이 중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대개 기록과 같다 그러나 그가 자기 몸을 불살라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동기에 대해서는 전해 오는 다른 이야기가 몇 있다 그것을 차례로 쫓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만적이 처음 금릉 법림원에서 중이 되었는데 그때 그를 거두어 준 스님에 취뢰라는 중이 있었다 그 절의 공양을 맡아 있는 공양주 스님이었다 만적은 취뢰 스님의 상좌로 있으면서 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취뢰 스님이 그에 대한 일체를 돌보아 준 것이다 만적이 열 여덟 살 때 그러니까 그가 법림원에 들어온지 오년 뒤 취뢰 스님이 열반하시게 되자 만적은 스님의 은공을 갚기 위하여 자기 몸을 불전에 헌신할 결의를 했다 만적이 그 뜻을 법사 운봉선사에게 아뢰자 운봉선사는 만적의 그릇됨을 보고 더 수도를 계속하도록 타이르며 사신을 허락지 않았다 만적이 정원사의 무풍암에 해각선사를 찾았다는 것도 운봉선사의 알선에 의한 것이다 그가 해각선사 밑에서 지낸 오 년 간의 수도생활이란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이었으나 법력의 경지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만적이 스물 세 살 나던 해 겨울에 금릉 방면으로 나갔다가 전날의 사신을 만났다 열 세 살 때 자기 어머니의 모해를 피하여 집을 나간 사신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이 사신을 찾아 역시 집을 나왔다가 그를 찾지 못하고 중이 된 채 어느덧 꼭 십년만에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만난 사신을 보고는 비록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린 만적으로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착하고 어질던 사신이 어쩌면 하늘의 형벌을 받았단 말인가 사신은 문둥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적은 자기의 목에 걸렸던 염주를 벗겨서 사신의 목에 걸어 주고 그 길로 곧장 정원사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만적은 화식을 끊고 말을 잃었다 이듬해 봄까지 그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뿐이었다 그때까지의 목욕 재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듬해 이월 초하룻날 그는 법사 스님 운봉선사와 공양주 스님 두 분만을 모시고 취단식을 봉행했다 먼저 법의를 벗고 알몸이 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 목 위만 남겨 놓고 전신에 감았다 그리고는 단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개고 앉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는것과 동시에 곁에서 들기름 항아리를 받들고 서 있던 공양주 스님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기름을 들어부었다 기름을 다 붓고 취단식이 끝나자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은 합장 을 올리고 그 곁을 떠났다 기름에 결은 만적은 그때부터 삼월 초하루까지 한 달 동안 단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갠 채 합장을 한 채 숨쉬는 화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례에 한 번씩 공양주 스님이 들기름 항아리를 안고 흰 천으로 만든 장막안으로 들어가 어깨에서 부터 다시 기름을 부어 주고 돌아가는 일밖에 그 누구도 이 장막 안을 엿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 달이 찬 뒤 이날의 성스러운 불공에 참여하기 위하여 산중의 스님들은 물론이요 원근 각처의 선남 선녀들이 모여들어 정원사 법당 앞 넓은 뜰을 메꾸었다 소신공양은 오시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백을 헤아리는 승려가 단을 향해 합장을 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이 불려지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씌워진 향로에서는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의 정진으로 말미암아 거의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만적의 육신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숨골 정수리를 뚫었을 때는 저절로 몸이 움칠해졌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가슴이 조금씩 앞으로숙여져 갔다 들기름에 결은 만적의 육신이 연기로 화하여 나가는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선 오백의 대중은 아무도 쉬지 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신시말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웬일인지 단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만적의 머리 위로는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염불을 올리던 중들과 그 뒤에서 구경하던 신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눈이 휘둥그래 져서 만적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뒤 삼 년간이나 그칠 날이 없었다 이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가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고 석대를 쌓았다 원혜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맘속으로 이렇게 해서 된 불상이라면 과연 지금의 저 금불각의 등신금불같이 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처님 불상 가운데서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등신불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난 원혜대사는 이제 다시 나에게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자네 바른 손 식지를 들어 보게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해 오던 금불각이나 등신불이나 만적의 분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외에서 진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겐지 이제 그만 손을 내리어도 좋다는겐지 뒷말이 없는 것이다 태허루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 북소리가 목어와 함께 으르렁 거리며 들려온다

[책 읽어주는 여자] 이효석의 뽕, 1/2,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피어 노벨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나도향의 대표작 세 개를 꼽는다면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그리고 뽕을 들 수 있겠죠 사실주의 경향으로 씌여진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로 평가받는 나도향의 뽕 영화 뽕을 보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만큼은 다 잊으시고 새로운 이야기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소설 속으로 다 함께 들어가 볼게요 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자 쇠죽을 쑤던 머슴 삼돌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묻는다 어젯밤에는 어딜 가셨었나 하면서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슬쩍 질러 맨머리를 번쩍 들고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이야 어딜가든 그쪽이 알아서 뭐하게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운 눈을 흘겨보며 톡 쏴버린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했을 테지만 워낙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염치없이 추근추근 쫓아다니면서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은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뭘 그리 화를 내슈 어젯밤 안주인 심부름으로 그쪽 집엘 갔었으니깐 하는 말이지 하고 털 벗은 송충이 처럼 군데 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을 숯 검정 묻은 손가락으로 두어 번 쓰다듬는다 어젯밤에도 김참봉 아들네 사랑방에서 자고 오셨겠지 삼돌은 싱긋 웃는 가운데에도 남의 약점을 쥔 비겁한 즐거움이 나타났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망나니 같은 놈 하는 말이 입 바깥까지 나왔던 안협집은 꿀꺽 다시 집어삼키면서 남이 어디서 자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하며 물동이를 이고 다시 나가려니까 흥 두고 보지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았다가는 듣기 싫어 흥 별꼬락서니를 다 보겠네 강원도 철원 용담이라는 곳에 김삼보라는 자가 있으니 나이는 삼십 오륙 세쯤에 키는 작달막하고 목은 다가붙고 얼굴빛은 노르께하며 언제든지 가죽창 박은 미투리에 대갈편자를 박아 신고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엉덩이를 내 저으므로 동네에선 그를 땅딸보 김삼보 아편쟁이 김삼보 오리 궁둥이 김삼보라고 불렀다 그는 한 달에 자기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이틀이면 꽤 오래 있는 셈이고 보통은 하루 뿐이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나돌아 다니니 몇 해 전까지도 잘 알지 못했으나 차차 동네에서 소문이 돌기를 노름꾼 김삼보라는 말이 퍼졌다 차차 알게된 것은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접경을 넘어 다니며 골패 투전으로 먹고 지낸다는 것이다 그 노름꾼 김삼보의 아내가 아까 말하던 안협집이니 안협은 강원 평안 황해 삼도에 걸친 읍의 이름이다 그 안협집을 김삼보가 얻어 오기는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안협집이 스물한 살 되던 해인데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술 파는데서 눈이 맞았다고 하기도 하고 안협집이 김삼보에게 반해서 따라 왔다기도 하고 또는 그런 것 저런 것도 아니라 그녀의 전남편과 노름을 해서 빼앗았다고도 하는데 위인 된 품으로 봐선 맨 나중 말이 가장 유력할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이 말을 한다 처음에 안협집이 동네에 오자 그 동네 그 또래 여자들은 모두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안협집이 비록 몸은 그리 귀하게 태어나진 못했지만 인물이 남달리 고운터라 동네 젊은것들이 암연히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게 되고 또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네들의 예쁘지 못한 얼굴을 쥐어뜯고 싶기도 했으니 지금까지 나만한 얼굴이면 하는 자만심 있던 젊은 여자들에게 가엾게도 자가결함이 폭로되는 환멸을 느끼게했다 그러나 안협집은 촌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자란데다가 먼저 안 것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남편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 다 있지 하는 굳은 신조는 자기 목숨을 제외하곤 무엇이든지 제공하여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열 대 여섯 살에 참외 한 개에 원두막 총각녀석들에게 정조를 빌린 것이나 벼 몇 섬 저고릿감 한 벌에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분량과 방법이 조금 높아졌을 뿐 그 관념은 동일했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온 뒤에도 동네에서 돈푼이나 있고 얌전한 젊은 사람은 거의 다 한 번씩은 후려 냈으니 그것을 남자 편에서 실없는 짓 좋아하는 이에게 먼저 죄가 있다 하는 것보다도 안협집에게 그 책임이 더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보다 더 큰 죄는 그 남편되는 노름꾼 김삼보에게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 까닭은 남편 노름꾼이 한 달에 한 번을 올까 말까 하면서도 올 적에는 빈손으로 오는 때가 많으니 젊은 여인 혼자 지낼 수가 없어 자연히 이집 저집 다니며 품방아도 찧어 주고 김도 매주고 잔일도 해주며 얻어먹던 중 한번은 어떤 집 서방님에게 실없는 짓을 당하고 나서 쌀 한 말과 피륙 두 필을 받게 되었다 하니 그것처럼 좋은 벌이가 없다는 생각에 차츰차츰 자기 스스로 벌이를 시작했고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거래 단골을 트듯이 이사람 저사람 집어먹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차차 눈이 높아지니까 웬만한 목도꾼 패장이나 장돌림 조금 올라서서 경찰 나리쯤은 눈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고 적어도 그곳에서는 돈푼도 상당하고 여간해서 손아귀에 들지 않는다는 자들을 얼러 보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일도 하지 않고 지내며 모양을 내고 거드름을 부리고 다니는데 자기 남편이 오면 이번에는 얼마나 따셨소 하고 포르께한 눈을 사르르 내리뜬다 딴 게 뭔가 밑천까지 올렸네 노름꾼 삼보는 목 뒤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안협집은 전에 없던 바가지를 긁으며 불알 두 쪽을 달구서 그래 계집만두 못하단 말이요 하고서 할 말 못할 말을 불어서 풀을 잔뜩 죽여 놓은 뒤에 혹시 남편이 알면 경이 내릴까봐 노자랑 밑천 푼을 주어서 떠나보낸다 그럼 울며 겨자 먹기로 삼보는 혼자 한숨을 쉬면서 허허 참 실상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불알보다 계집 편이 훨씬 낫군 하고 봇짐을 짊어지고 가버린다 이렇게 이삼 년을 지내고 난 어떤 가을 삼돌이란 놈이 그 뒷집에 머슴으로 왔다 놈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빌어먹던 놈인진 모르지만 논을 맬 때 콧소리나마 아르렁타령 마디나 똑똑히 하고 술잔이나 먹을 줄 알며 동료들 가운데 나서면 제법 구변이나 있는 듯 떠들어 젖히는 것이 그럴듯하고 게다가 힘이 쎄서 송아지 한 마리 옆에 끼고 개천 뛰기는 밥 먹듯하니 동네에서는 호랑이 삼돌이로 이름이 높다 놈이 음침해서 오던 때부터 동네 계집으로 반반한 것은 남 모르게 모두 건드려 보았지만 안협집 하나가 내내 말을 듣지 않으니 추근추근 귀찮게 구는 중이었다 때마침 여름이 되서 자기 집 안주인이 누에를 놓고 혼자는 힘이 드니까 안협집을 불러 같이 누에를 길러 실을 낳거든 반분하자는 약속을 한 뒤에 여름 내 함께 누에를 치게 된 걸 알고 기회만 엿보면서 흥 계집년이 배때가 벗어서 말쑥한 서방님만 얼르더라 어디 두고 보자 너도 깩소리 못 하고 한 번 당해야 할걸 건방진 년 하고는 술이 취하면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안주인이 치는 누에가 거의 오르게 되자 뽕이 다 떨어졌다 자기 집 울타리에 심은 뽕은 어림도 없이 다 따다 먹였고 그 후엔 삼돌을 시켜서 날마다 십리나 되는 건넛 마을 친척집 뽕을 얻어다 먹였지만 그것도 이제는 발가숭이가 되었다 이제는 뽕을 사다 먹이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다 먹이자면 돈이 든다 안주인 노파는 생각해 보았다 개량 뽕이 좋기는 좋지만 돈을 여간 받아야지 그리고 일일이 사서 먹였다가는 뽕값으로 다 들어가고 남는게 없겠어 그의 생각에는 돈 한푼 안 들이고 공짜로 누에를 땄으면 좋겠는 거다 돈 한푼을 들인다 하면 그 한푼이 전 수확에서 나오는 이익의 전부 같이 생각되어 못 견뎠다 뿐만 아니라 자기 혼자 이익을 먹는것 같으면 모르지만 안협집하고 동업으로 하는 것이니 안협집이 비록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한다 해도 그 힘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한 푼 만 못해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 공짜로 뽕을 돈 안 들이고 얻어 올 궁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안협집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뽕 때문에 큰일이요 하며 안협집에게는 무슨 도리가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글쎄 안협집 생각은 주인의 마음과는 또 달라서 남의 주머니 돈 백 냥이 내 주머니 돈 한 냥만 못하다 그래서 돈 주면 살텐데 하는 듯이 심상하게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 와야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들에 나갔던 삼돌이 툭 튀어 들어오다가 이 소리를 들었다 제딴에는 동정하는 표정으로 그거 큰일이네요 어떡하나 한참 허리를 짚고 생각해 보더니 헝 참 그 뽕은 좋더라만 생김새도 미선조각 같이 된 놈이 기름이 지르르 흐르는데 그놈을 먹이기만 하면 고치가 차돌같이 여물텐데 들으라는 말인지 혼자말인진 모르나 한마디 탁 던지고 말이 없다 귀가 반짝 띈 주인은 어디 그런 것이 있단 말이냐 하며 궁금증 난 사람처럼 묻는다 네 저 새술막에 있는 뽕밭이요 거기 있는 거 말씀이에요 혹시 좋은 수가 있을까 하려다가 남의 뽕밭 더구나 그것으로 살아가는 양잠소 뽕이라 말씨름만 하는 것이 될 것 같아서 응 나도 봤지 그게 그렇게 잘됐나 잘 됐겠지 그렇지만 그런 거야 있으면 뭐하니 언제 보셨어요 보기야 여러 번 봤지 올봄에 두릅 따러 갔다가도 보고 삼돌인 한참 있다가 싱긋 웃더니 은근하게 쥔 마님 제가 뽕을 한 짐 져다 드리면 탁주 많이 사 주실래요 듣던 중에도 그렇게 반가운 소리가 또 어디 있겠나 그럼 조오치 따오기만 하면 탁주가 문제야 귀찮스런 삼돌이도 이런 땐 쓸 만 하다는 듯 안협집도 환심 얻으려는 듯 웃음을 웃으며 삼돌을 본다 삼돌은 사내자식의 솜씨를 네 앞에 보여 주리라 하는 듯 기운이 나며 만족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자정 때나 되어 삼돌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문 밖으로 나갔다 나갔다가 한 두어 시간 만에 무엇인지 지고 오더니 그것을 뒤꼍 건넌방 뒤 창 밑에 뭉뚱그려 놓았다 이튿날 보니 딴은 미선쪽 같은 기름이 흐르는 뽕잎이었다 어디서 난걸까 주인하고 안협집은 수군수군 했다 그 녀석이 밤에 도둑질 해온 거겠지 뽕은 참 좋군 그렇지 참 좋네요 날마다 이만큼씩 만 가져오면 넉넉히 먹이겠는데요 두 사람은 뽕을 또 따오지 않을까봐 아무 말도 않고 뽕이 참 좋더라 오늘도 좀 또 따오지 하고 충동인다 놈은 두 손을 내저으며 쉬 떠들지 마세요 큰일나요 그게 그렇게 쉬우면 그 노릇만 하게요 까딱하다간 다리 마디가 두 동강이 난다구요 도둑해 온 삼돌이나 받아들인 두 사람이나 도둑질 왜 했어 하는 말은 없지만 서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하루는 주인이 안협집더러 이봐요 이번엔 임자가 하루 저녁 가봐요 그놈이 혹시 못 가게 되더라도 임자가 대신 갈 수 있게 말이예요 또 고삐가 길며는 밟힌다구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둘이 가서 한몫에 많이 따오는게 좋지 않겠소 안협집이 삼돌을 꺼리는 줄 알지만 제 욕심에 입맛이 달아서 자꾸 자꾸 충동인다 따다가 잡히면 어쩌구요 뭘 밤중에 누가 알우 그리고 혼자 가래나 삼돌이 놈하고 가랬지 글쎄 운이 나빠 잡히거나 하면 욕이죠 잡히는 것보다도 안협집의 걱정은 보기도 싫은 삼돌이 녀석하고 밤 중에 무인지경에를 같이 가라니 그것이 딱한 일이다 안협집은 정조가 헤프기로 유명한 만큼 또 매몰스럽기도 유명해서 한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죽어도 막무가내다 만냥 금을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삼돌이 그 중에 하나가 되어 간장을 태우는 모양이다 안협집은 생각하고 생각해서 결심해 버렸다 빌어먹을 녀석이 그 따위 맘을 먹거든 저 죽고 나 죽지 내가 기운은 없어도 하고 쌀쌀하게 눈을 가로뜨고 맘을 다져 먹었다 그리고는 뽕을 따러 가기로 했다 삼돌은 어깨춤이 저절로 추어진다 아하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드디어 때가 왔네 인제는 제가 꼭 당했지 삼돌은 신이 나서 저녁 먹고 마당 쓸고 소 여물 주고 도야지 병아리 새끼 다 몰아넣고 앞뒤로 돌아다니며 씻은 듯 부신 듯 다 해놓고 목물하고 발 씻고 등거리 잠뱅이 까지 갈아입은 후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듬뿍 한모금 빨아서 휘~ 내뿜으며 시간 오기만 기다린다 안협집은 보자기를 가지고 삼돌을 따라서 뽕밭을 향해 길을 나선다 날이 유달리 깜깜해서 앞의 개천까지 자세히 보이질 않는다 돌부리가 발끝을 건드리면 안협집은 어머 소리를 내며 천방지축으로 다리도 건너고 논 이랑도 지나고 해서 길 반쯤 왔다 삼돌은 속으로 궁리를 했다 뽕을 따기 전에 논이랑으로 끌고가 아니지 그러다가 뽕두 못 따가지고 오면 어쩔려고 저도 열녀가 아닌 다음에야 당하고 나면 할 말 없지 아주 그런 버릇이 없는 년 같으면 모르지만 옳지 좋은 수가 있어 뽕을 잔뜩 따서 이어 주면 지가 항우의 딸 년이야 큭 한번은 중간에서 쉬겠지 그럼 그때에 이렇게 궁리를 하다가 너무 말이 없으니까 심심파적도 될 겸 또는 실없는 농담도 좀 해서 마음을 떠보면 나중에 성사의 전제도 만들어 놓을 겸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다 삼보는 언제나 온대요 몰라 언제는 온다 간다 말하고 다니나 그래 영감은 밤낮 나돌아다니니 혼자 지내기 쓸쓸하시겠어 놈이 모르는 것 같이 새삼스레 시치미를 뗀다 별걱정 다 하네 어서 앞서 가 난 길이 서툴러 못 가겠어 매우 쌀쌀하시네 난 거기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지만 김참봉 아들은 쇠귀신 같은 놈이라 아무리 다녀도 잇속 없을걸 내 말이 틀리진 않지 안협집은 삼돌이 아주 터놓고 말을 하는 걸 들으니까 분해서 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대로 참으면서 뭐가 어째 말이라면 다 하는 줄 아는군 하고 뒤로 조금 떨어져 걸어간다 전엔 그 녀석이 미웠지만 남의 약점을 들어 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더 더러웠다 뽕밭에 왔다 삼돌이 철망으로 울타리 친 것을 들어 주자 안협집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삼돌은 그 무거운 다리를 성큼 하여 밭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발끝에 삭정이 가시를 밟아서 딱 우지끈 소리가 나고는 조용했다 삼돌은 손에 익어서 서슴지 않고 따지만 안협집은 익숙하지도 못한 데다가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려서 마음대로 안 된다 삼돌인 뽕을 따면서도 이따가 안협집을 꾀일 궁리를 하지만 안협집은 이것 저것 다 잊어버리고 손에 닥치는 대로 뽕을 땄다 얼마쯤 땄을 때 갑자기 안협집의 뒤에서 누구야 하고 범 같은 소리를 지르는 남자 목소리가 안협집의 간담을 서늘 하게 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최서해 5원 75전,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피어노벨라에서는 현재 한국 근대단편소설 읽기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노벨라의 이야기로 오늘도 소설 한편 뚝딱 들어보세요 마음과 몸이 편안한 시간 오늘 이야기는 최서해의 5원 75전 주인공의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단편인데요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하고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장안에는 궂은비가 내리고 삼각산엔 첫눈이 쌓이던 날이었다 나는 온 종일 엎드려서 신문 잡지 원고지와 씨름을 했다 마음은 묵직하고 머리가 띵한 것이 무엇을 읽어도 눈에 들지 않고 붓을 잡아도 역시 무엇이 써질 듯 하면서 써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화가 더럭더럭 나서 보던 잡지로 낯을 가리고 누워 버렸다 눈을 감았으나 졸음이 올 리가 없다 끝도 없고 머리도 없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는 터져 버리고 떠올라서는 터져 버렸다 생각의 실마리가 흐트러지고 그것이 현실과 항상 뒤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면 가슴이 갑갑하고 누웠던 자리까지 배기는 듯 편치 않았다 그만 벌떡 일어났다 일어났으나 또한 별수 없었다 바깥 날이 흐리니 방안은 어두컴컴해서 침울한 기분을 한껏 돋우었다 비는 개었는지 밖은 고요했다 나는 책상 위에 손을 얹고 멀거니 앉아서 창문만 보고 있었다 나리 나지막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나리 계세요 아까보다 좀 높게 불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대답이 없다 그런데 그 소리는 바로 내 방 창문 앞에서 울렸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소리인지 알았다 김 주사 나리 허허 이번에는 흐릿한 창문에 어둑한 그림자를 묵직 실으면서 더 가까이 와서 불렀다 나는 나를 나리 하고 찾을 리는 만무하다 하면서도 미닫이를 슥 열었다 주인이었다 허허허 툇마루에 비스듬히 올라 앉아서 두 손으로 마룻바닥을 짚고 나를 보는 주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벌써 그 웃음의 뜻을 알았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무슨 일이 있어요 정색하고 물었다 주인은 아첨 비슷하게 싱긋 웃더니 말하기 어려운 듯 머뭇머뭇했다 나 역시 다시 입을 못 벌리고 미닫이 고리를 잡은 채 주인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나는 낯이 근질근질함을 깨달았다 난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허 이것 참 큰일났습니다 왜요 지금 종로에 나갔다 들어오니 저놈의 자식들이 전기를 끊어 놓고 갔어요 선웃음치는 주인의 낯에는 그득한 어둠이 흘렀다 전기를 끊다뇨 글쎄 지난 달 전기세를 여태까지 못 냈죠 그것도 여러 달이면 모르지만 겨우 한 달 밀렸는데 다시 와서 재촉도 없이 끊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제가 있었으면 말마디나 했겠지만 안에서들만 있는데 왔으니 거 이거 저녁에 불을 못 보겠으니 이런 큰일이 없습니다 주인은 팔짱을 끼고 툇마루 기둥에 기대 앉아서 하늘을 쳐다본다 그것 참 안 됐습니다 나는 문을 닫지도 못하고 시원한 대답을 주지도 못했다 은연한 주인의 말 가운데에는 요구 조건이 있긴 하지만 지갑이 쇠냄새를 맡은 지가 하도 오래된 판이니 그 요구를 들을 수 없었다 들을 수 없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가 버릴 수도 없었다 아이 그놈의 난장이 같은 일본 놈이 저한테 전기 청원을 안 했다고 앙심을 먹었단 말이죠 앙심은 왜 그 놈한테 말하면 그 놈이 의뢰금 얼마를 떼어 먹지요 그게 미워서 회사에 직접 말했더니 그 놈이 앙심을 먹었단 말씀이지요 이놈에 세상 주인은 서리고 서렸던 분을 한꺼번에 쏟칠 듯이 혼자 언성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한탄 비스듬하게 뿜었다 세상이란 그런 거죠 정작 책임을 지어야 할 나는 남의 소리하듯 쓸쓸히 대답했다 좀 어떻게 변통할 수 없을까요 주인은 화제를 슬쩍 바꿔 나를 본다 나는 벌써 그 소리가 나올거라 짐작은 했지만 주인의 시선이 내 낯을 스칠 때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네 하자니 거짓말이 되겠고 아니 하자니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글쎄 어떻게 하나 나는 주인의 시선을 피해 방안을 보면서 겨우 한 마디 했다 가슴이 맥맥한 것이 획책이 없었다 흥 나를 보던 주인은 어이없는 코웃음을 쳤다 니가 그럴 테지 그 웃음은 마치 나를 비웃는 듯이 들렸다 나는 더욱 무색했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모든 자존은 그만 이 순간에다 깨뜨러져 버렸다 아무 권리가 없었다 좀 어떻게 변통을 해 보세요 주인의 소리는 사형 선고같이 들렸다 나는 온몸이 장판속으로 자지러져 드는 듯했다 벌써 몇 달이냐 서너 달이 되도록 동전 한푼 이렇다는 말없이 파먹어 주었으니 이제는 주인 볼 면목이 없다 선금을 준다 하고 들어 와 놓고 한 달 두 달 이렇게 넉달이나 버텨 오니 주인인들 갑갑하지 않을 수 없었다 K사에서 560원 받을 것이 있지만 오늘 내일 하고 그것조차 얼른 주지 않으니 나도 속이려고 해서 속인 건 아니지만 근질근질하고 마음이 조리조리해서 세 끼 밥상 받을 때마다 살이 쪽쪽 내리는 듯했다 사실 살이 내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 서너 달 사이에 눈이 꺼지고 볼이 들어가서 보는 사람마다 중병을 앓았냐고 물었다 주인이 넉넉하거나 우락부락한 처지 같으면 사정도 해 보고 뱃심도 부려 보겠지만 그도 퍽 가난한 형세요 극히 온순한 사람이었다 또 나라는 위인이 그렇게 뱃심이 든든치 못한 터이니 밤낮 은근히 마음만 골릴뿐이었다 이렇게 서너 달이나 끌어 왔지만 주인은 첫날이 막날같이 내게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어떤 때 내가 쓸쓸히 앉았으면 담배까지 사다 주었다 그것 뿐인가 신던 양말까지 깨끗이 빨아다 놓았다 피차 같은 사람으로 누구는 먹고 누구는 지어 주며 누구는 부리고 누구는 부리우라는 패를 차고 있는건가 그런 것 저런 것 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양심은 아팠다 창밖에 빚꾼들이 모여 와서 주인을 땅땅 조르는 때면 내 기운은 더욱 줄어졌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빚꾼들까지 나를 노리는 듯하고 그네들께 쪼들려서 하늘만 쳐다보는 주인의 낯은 보기가 괴로와서 그럴때면 변소에 가는 것까지 주저거려졌다 이렇게 되니 무슨 일이 손에 잡히랴 그렇다고 방안에 자빠져 있을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집에 박혀서 꾸물꾸물 날을 보내면 일하기 싫어하는 부랑자패 같기도 해서 주인 보기가 더 안됐고 어디 나갔다 들어오면 행여나 해서 방에 슬그머니 따라 들어와서 눈치만 슬몃슬몃 보는 주인의 낯은 더 볼 수 없었다 죽도록 빌려준 것도 끌기만 하면서 주지 않고 나 때문에 돈 변통을 다니던 B까지 절망이 되는 바람에 나는 아주 두문불출할 작정으로 변소 출입 외에는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이렇게 들어앉으니 공상만 펄펄 자라 갔다 하루에도 머릿속에 청기와 집을 몇 백 개씩 지어 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눈을 번쩍 뜨면 그 모든 것이 돋아 오르는 햇발에 스러지는 안개가 되어버리고 어디까지든 현실은 현실이라는 느낌이 머리를 치는 때면 모면할 수 없는험악한 운명이 큰 물결같이 금방 목을 덮는 것 같아서 퍽 불쾌하고 괴로왔다 이런 때면 내게는 예술도 종교도 철학도 국가도 인류도 부모도 처자도 없었다 다만 내 앞을 가로막은 그 이상한 빗장 밖엔 없었다 그래도 버릇을 버리지 못해 책을 집어들거나 원고지를 대하면 무엇을 읽었는지 무엇을 쓰려고 했던지 막연할 뿐이었다 역시 떠오르는 것은 현재 내 앞을 가로막은 빗장이었다 이렇게 될수록 주인의 낯보기가 더욱 싫었다 문 밖에서 그의 음성만 들려도 괜히 신경이 들먹거렸다 그리고 안에서들까지 음식 범절에 등한히 하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사실 주인이 한 때 오늘은 좀 어떻게 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하다가도 글쎄 그러고 싶어도 되질 않아 그럽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더 말하지는 않아도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때마다 주인은 나보다 몇 층 위에 앉은 듯 쳐다 보였다 주인의 낯을 쳐다볼 때마다 그는 나를 내려누르고 내 몸을 얽는 무엇 같아서 나중엔 주인과 나 사이가 점점 멀어져 절교한 친구 사이처럼 허성허성 함을 깨달았다 어떤 때 다른 할 말이 있어도 나는 주저거리고 입을 못 열었다 밖에 나서면 길바닥에 깔린 돌까지 아무 권리와 세력 없는 나를 비웃고 꾸짖는 듯했다 이러던 판에 주인의 전기 타령이 나왔다 글쎄 그러면 이를 어쩝니까 주인의 낯에는 웃음이 스러졌다 글쎄 그거 안됐네요 난 연방 안됐구려만 불렀다 주인은 이마를 찡그렸다 이거 불을 켜야 안 쓰겠습니까 주인은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울듯울듯한 소리 속에 불평이 그득 흘렀다 나는 아무 말없이 문턱에 팔을 고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잔뜩 찌푸린 날씨가 또 무엇이 올 것 같다 바람은 없지만 쌀쌀한 기운이 뼈를 찔렀다 어디 좀 나가 보세요 오 원 칠십 오 전이에요 오르는 불평을 억제하려고 하면서도 억제치 못해 주인의 말은 떨렸다 글쎄 보시는 형편에 지금 어디가서 육 원 돈이나 얻는단 말씀입니까 난 너무도 어이없는 김에 이렇게 말했다 주인은 그래도 이젠 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른다 좀 나가 보세요 K사에 가 보시든지 내가 그새 너무도 미안해서 K사에서 좀 어떻게 될거 같은데 하고 주인을 대할 때마다 되뇌였고 또 어디 나갔다 들어올 때면 K사에 갔다 온다고 해서 나도 밥값 때문에 상당히 고심한다는 자취를 보이느라고 애쓴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 때문에 주인은 K사 타령을 끄집어낸 것이다 글쎄 K사도 이제 시간이 다 지난 다음에 가면 뭘 합니까 그러면 이 밤을 어떡합니까 전기를 끊어 놓았으니 주인은 기막히다는 듯이 울적 소리를 높이더니 다시 언성을 낮춰서 그래도 나리야 좀 변통을 해 보세요 하는 것은 마치 돈 받으려는 사람이 돈 꾸러온 사람 같았다 그걸 보니 나는 알 수 없이 가슴이 쯔르르 했다 글쎄 지금은 못해요 내일 봅시다 네좀 참으세요 허허 난 선웃음을 쳤다 내일요 이 밤은 어떡하구요 주인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밤엔 뭐 초를 사다 켭시다 흥 나도 내 소리에 우스워서 흥 하여 버렸다 하 초 살 돈은 있읍니까 주인은 입을 딱 벌렸다 글쎄 지금 없는 돈을 어디서 변통한다는 말입니까 없다니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없는 걸 없다고 안 하고 그래 있다고 해야 옳단 말입니까 난 짜증을 벌컥 내면서 벌떡 일어 서서 모자를 집어 썼다 주인은 아무 소리 없이 어색히 웃으면서 축대에 내려서는 나를 쳐다보았다 큰일이나 한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나오기는 했지만 갈 데가 없다 길 잃은 시골뜨기처럼 질적한 다방골 골목을 어청어청 헤어나왔지만 내 정신으로 내가 걷는 것 같지 않았다 멋없이 짜증낸 것을 생각하니 나도 우스웠다 더구나 멀쓱해서 쳐다보던 주인의 얼굴이 떠올라서 부끄럽고 미안스러웠다 연세로 봐서 내겐 아버지 뻘이나 되는 이가 무엇 때문에 나리 나리하고 아첨을 한담 난 알수 없이 가슴이 뻐근했다 어디 가서든 돈을 얻어야지 하고 혼자 결심을 했지만 결국 갈 데가 없다 물인지 땅인지 모르고 어청어청 종로 네거리까지 나왔을 때 머리에 언뜻 B군이 떠올랐다 B군은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고 또 나의 동창이다 그가 일본 가는 길에 서울에 잠깐 들렀었다 난 그를 찾아가려고 발을 서대문 쪽으로 돌렸다 어느새 전등은 눈을 떴다 질적한 거리는 번쩍번쩍 빛났다 컴컴할 하숙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졸여서 부리나케 걸었다 하지만 남의 노자를 잘라쓰고 얼른 채워 놓지 못하는 날이면 그의 길이 체연될 것을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 사람 내일이나 모레 줄 테니 자네 돈 오 원만 취해 주게 응 지금 급하니 B군은 쾌히 승낙했다 하늘을 가졌으면 이보다 더 기쁘며 땅을 맡았으면 이보다 더 좋으랴 나는 의기양양하게 하숙으로 향했다 난 전등이 꺼져서 껌껌한 문간을 지나 들어갔다 마당은 컴컴했다 두어방 미닫이에 비친 불빛은 꺼불꺼불했다 어느 때는 어디 나갔다가도 슬그머니 들어오던 나는 기침을 하면서 내 방문을 열었다 컴컴한 방 속에서 누릿한 장판 냄새가 흘러 나왔다 주인은 따라 나와서 초에 불을 켰다 아 김 주사 용서하세요 제가 홧김에 불쾌한 소리를 주인은 아까 일이 미안스럽다는 사과를 한다 나는 도리어 낯이 후끈했다 아니 천만에요 저야말로 참 제 홧김에 괜히 하면서 나는 오 원 지폐를 주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주인은 벙끗 웃었다 아무쪼록 노여워 마세요 천만에 말씀을 하십니다 주인도 나와 같이 웃었다 이 찰나 주인과 나 사이에 가로질렀던 담벽이 툭 터져서 더욱 가까와진 듯 했다 아까 피차 찌그러지던 낯은 티만치도 찾을 수 없었다 아아 단돈 오 원이로구나 나는 가슴이 찌르르하여 눈물이 핑돌았다 또 다시 내일이나 모레 주마 B군에게 한 말이 떠올라서 이마를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 김유정의 아내, 1/2,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한 박자 쉬어가는 곳 피어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유정의 아내입니다 김유정은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29세에 요절한 작가죠 그리고 1930년대에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또는 의식구조 자체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들어주세요 그럼 김유정의 아내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던지 이쁘다고는 안할 것이다 아주 여자에 환장된 놈이라면 모르지만 나도 맨날 같이 지내긴하지만 아무리 잘 봐주려고해도 요만큼도 이쁘지가 않다 하지만 마누라가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 황소같은 아들만 줄창 빼 놓으면 그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죽을 밖에 별 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써 일 못해 이걸 누가 열쳤다고 그냥 먹여주냐 그러니 내 말이 젊을때 되는 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두자 하는 것이지 그리고 에미가 낯짝 글럿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다 아 바루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겟지만 즈 에미는 쥐였다 논 개떡 같에도 인석은 좀 똑똑하고 깔끔하게 생겼냐 말이다 비록 먹고 돌아서면 또 달라고 불 아귀처럼 덤비기는 하지만 참 인석이야말로 나한테는 아버지 보담도 할아버지 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마누라가 나한테 되지 않은 큰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이녀석을 낳았기 때문이다 전에야 그 상판대길 가지고 어디 끽소리나 했냐 흔히 말하길 마누라 얼굴은 제 눈의 안경이라 한다마는 아무리 썩은 눈깔이라도 이 얼굴만은 어째 볼 도리 없을거다 이마가 훌떡 까지고 양미간이 멀면 소견이 탁 티었다곤 한다 그럼 좋기는 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둥글넓적이 내려온 하관에 멋없이 쑥내민 게 입이란다 두툼은 하지만 위로 들린 입술 말 좀 하려들면 그닥 깨끗치 못한 윗니가 보기싫게 뻔찔 드러난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한복판에 달린 코나 좀 똑똑이 생겼다면 좀 낫겠다 첫째 눈에 띠는 것이 콘데 이렇게 말하면 흉을 보는 거 같지만 좀 잘 봐주려고 해도 먼 산 바라보는 도야지의 코가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걸 어쩌냐 꼴이 이러니 밤이면 내 눈치만 슬슬 살핀다 오늘은 구박이나 안할까 하고 은근히 애를 태우는 것이지 이게 가여워서 피곤한 몸 무릅쓰고 대개는 내가 먼저 말을 걸게된다 온종일 뭘 했느냐는둥 싸리문 좀 고쳐 놓으라 했더니 어떻게 됐냐는 둥 아니면 오늘 밤엔 웬일인지 코가 훨씬 좋아보인다는 둥 그러면 이 마누라가 금세 헤에 벌어지고 힝하게 내 곁에 와 앉어서는 어깨를 기대고 슬근슬근 부빈다 그리고 코가 좋아보인다니 정말 그러냐고 몸이 닳아서 묻고 또 묻고 한다 저도 믿지못할 그 사실을 한때의 위안이나마 또 한 번 들어보자는 심정이겠지 그 속을 알고 진짜 콧날이 스나부다 하면 마누라 대답이 뒷간엘 갈적마다 잡아댕기고 했드니 혹 나왔을지 모른다나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땐 한나절 밭고랑에서 시달린 몸이 그만 축 느러진다 그럼 말 한마디 붙일새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어버리지 그러면 제 얼굴 때문에 그런줄 알고 한구석에 가서 시무룩해서 앉었다 얼굴을 모로 돌려서 턱을 뻐쭉 쳐들고 있는걸 보면 흣 제깐엔 옆얼굴이나 한번 봐달라는 속셈이지 경을 칠 옆얼굴이라고 기름 짠 깨 찌꺼기지 뭐 좀 나은 줄 알고 이러든 마누라가 똘똘이를 낳아 놓고는 갑작이 세도가 댕댕해졌다 내가 들어가도 네 놈 은제 봤냔 듯이 좀체 거들떠보는 법이 없다 눈을 스르르 내려깔고는 잠자코 애한테 젖만 먹인다 내가 좀 애 머리라도 쓰담으면서 이자식 밤낮 잠만 자나 가만 둬 왜 깨놓고 싶은감 하고 사정없이 내 손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난 처음엔 어떻게 되는 셈인지 몰라서 멀거니 천장만 한참 쳐다봤다 내 자식 내가 만지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건 무슨 경우야 하지만 잘 따져 보니까 내가 억울할 건 조금도 없다 마누라가 나한테 큰체를 해야 될 권리가 있다는 걸 내 차차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턴 내가 이년 하면 저는 이놈 하고 대들기로 무언중 계약이 된거다 동네에서는 남의 속은 모르고 우리를 깍따귀들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툭하면 서루 대들려고 노리고만 있으니 말이지 하긴 요즘엔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을가봐서 만나기만 하면 이놈 저년 하고 먼저 대들기가 일쑤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만나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요 당신오면 같이 먹을려구 하고 일어나 반색을 하겠지만 우리는 안 그러기다 누가 그렇게 괭이 소리로 달라붙냐 방에 떡 들어서는 길로 우선 넓적한 그 궁뎅이를 발길로 퍽 드려 질른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차려 이눔이 웨 이래 다릴 꺾어놀라 하고 마누라가 고개만 겨우 돌리면서 나무 판 돈 뭐했어 또 술 처먹었지 이렇게 제법 탕탕 호령을 한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고 또 마누라 데리고 사는 멋이 있다 손자새끼 같은 낯을 해가지고 마누라 어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 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겠니 마누라 좋다는 건 욕하고 치고 차고 다 이러는 멋에 음 그렇게 치고 보면 혹 궁한 살림에 쪼들려서 악에 받힌 놈의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다 매한가지겠지 가다가 속이 맥맥하고 부하가 끓어오를 적이 있지 않냐 농사는 지어도 남는 거 없고 빚 에는 몰리고 게다가 집에 들어스면 자식놈 킹킹거려 마누라는 옷이 없으니 떨고 있어 이런 때 그냥 배길 수 있나 트죽태죽 꼬집어 가지고 마누라 비녀쪽을 턱 잡고는 한바탕 후들겨 대는구나 한참 그 지랄을 하고나면 등줄기 에 땀이 뿍 흐르고 한숨까지 후 이쯤하면 웬만치 속이 가라앉을 때지 그담엔 마누라를 도로 밀처버리고 담배 한 대 피어 물면 된다 이멋에 마누라가 고마운 물건이라 하는 것이고 내가 또 고년을 못잊어 하는 까닭이 거기 있는거다 그렇지 않다면 저를 계집이라고 등을 뚜덕여주고 그 못난 코를 좋아 보인다고 가끔이나마 추어줄 맛이 뭐야 하지만 마누라가 훌쩍거리고 앉어서 우는 걸 보면 이건 좀 재미가 없다 지가 주먹심으로든 입심으로든 나헌테 덤빌랴면 어림도 없지 쌈의 시초는 누가 먼저 걸어던간에 언제든지 경을 팥 다발같이 치고 나앉는 건 마누라 차지렸다 이리와 자빠져 자 곤둬 너나 자빠져 자렴 하고 마누라가 독이 올라서 돌아다도 안보고 튕긴다 그치만 한 서너 번 내려오라고 권하면 나중엔 저절로 내 옆으로 스르르 기어들게 된다 그리고 눈물 흐르는 상판으로 벙긋이 흘겨보이는 거이 아니냐 하니까 마누라로 보면 두들겨맞고 튕기는 멋에 나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원수같이 늘 싸운다고 정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분치고 우리것만치 찰떡처럼 끈끈한 놈은 다시 없을게다 미우면 미울수록 싸우면 싸울수록 잠시를 떨어지기가 아깝도록 정이 착착 붙는다 부부의 정이란게 이런건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영문모를 찰거머리 정이다 나 뿐 아니라 마누라도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같이 자리에 누으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업지 않지 하고 정말 잘난듯이 바짝바짝 대 든다 그럼 나는 이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겠냐 하 기가 막혀서 천정을 처다보고 피익 한마디 한다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구 다닐까 내니깐 이년아 데리구 살지 누가 건드리니 그 낯짝을 뭐 니 얼굴은 얼굴인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 거 내니깐 데리구살지 이러면 또 일어나서 땀 한번 흘 리고 다시 들어누울 수 밖에 없다 아 내 얼굴이 불밤송이 같다니 이래도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서 나중에 땅마지기나 만져볼 놈이라고 좋아하시던 이 얼굴인데 씨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손짓 발짓 하고 그러는게 성가셔서 쯪 대개는 그대로 넘어 간다 그래 내 너 이뻐할게 자식이나 줄줄이 나라 먹이지도 못할걸 자꾸 나서 뭘 하게 굶겨 죽일랴구 아 이년아 꿔다 먹이진 못하니 하고 소리는 뻑 지르지만 뒤는 캥긴다 더끔더끔 모아 두었다가 먹이지나 못하면 그걸 어떻게 하냐 줴다 버리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고 떼송장이 난다면 그래 이런 걸 보면 마누라가 나보다 훨씬 생각이 있는 걸 알 수 있겠다 물론 십 리 만큼 벌어진 양미간을 봐도 나완 한참 다르지만- 우리가 요즘 먹는것은 내가 나무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다 여름 같으면 품이나 팔겠지만 눈이 척척 쌓였으니 얼음을 깨먹겠냐 하기야 산골에서 어느 놈 치고 별수 있겠냐마는 하루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들이고 그 다음 날엔 읍에 갔다가 판다 나니깐 참 쌍지개질도 할 근력이 되겠지만 잔뜩 쌓은 나무 두 지개를 혼자서 차례대로 이놈 져다 놓고 쉬고 저놈 져다 놓고 쉬고 이렇게 해서 장찬 삼십 리 길을 한나절에 들어가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은제 한 지개 한 지개씩 팔아서 목구녕을 축일 수 있겠냐고 잘 받으면 두 지개에 팔십 전 운 나쁘면 육십 전 육십오 전 그걸로 좁쌀 콩 미역 뭐 그런걸 사들고 돌아 오는게지 죽을 쑤었으면 좀 오래 가겠지만 우리는 더럽게 그런 짓 안한다 먹다 못먹어서 뱃가죽을 웅켜쥐고 나슬지언정 으레 밥이지 똘똘이는 네 살짜리 어린애니깐 한 보시기 나는 즈 아버지니까 한 사발에다가 또 반 사발을 더먹고 그런데 마누라는 유독 두 사발을 처먹지 않냐 여자라 좋다 했더니 이게 밥버러지가 아닌가하고 한때는 가슴이 선뜻할 만큼 겁이 났다 없는 놈이 양이나 좀 적어야지 이렇게 계속 처먹으면 너 웬밥을 이렇게 처먹니 하고 눈을 크게 뜨니까 마누라 대답이 애난 배가 그렇지 그럼 저도 앨 나보지 하고 샐쭉이 토라진다 앗따 그래 마냥 처먹어라 나중 밥값은 그 배때기에 다 있고 거기 있는 거니까 어떤 때에는 내가 좀 들 먹고라도 그대로 내주고 말겠다 경을 칠 하지만 참 너무 처먹는다 그러나 마누라가 떡꾹이 농간을 해서 떡국이 농간하다 본래 재간이 없 더라도 나이가 들어 오랜 경험으로 제법 능숙한 솜씨를 보이다 그러나 마누라가 떡국이 농간을 해서 나보다 한결 응큼한 구석이 있다 아깐 농사를 지어 뭐하냐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 들병이 술이 든 병을 들고 남사당 패등 공연패를 따라다니며 술을 파는 여인 하기는 내 주변으론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사실 참 훌륭한 생각이다 밑지는 농사보다는 이밥에 고기에 옷 마음대로 먹고 입고 좀 호강이냐 하지만 마누라 얼굴을 이윽히 뜯어 보다가 고만 풀이 죽는구나 들병이에게 술 먹으러 오는 건 계집 의 얼굴 보자 하는 건데 어떤 밸 없는 놈도 저 낯짝엔 몸 달아 할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니 참 분하다 마누라가 조금만 똑똑이 나왔더라면 수가 나는걸 멀뚱이 쳐다보고 쓴 입맛만 다시니까 그 눈치를 챘는지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어야지-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겠니 그럼 하면 하지 못할 게 뭐야 이렇게 아주 번죽 좋게 장담을 한다 들병이로 나가서 식성대로 밥 좀 한바탕 먹어 보자는 속이겟지 몇 번 다져 물어도 제가 꼭 할 수 있다니까 앗따 그러면 한번 해보자꾸나 뭐 밑천이 드는 것도 아니고 소리나 몇 마디 반반히 가르쳐서 데리고 나스면 고만이니까 내가 밤에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를 앞에 앉히고 소리를 가르친다 우선 내가 무릎장단을 치며 아리랑 타령을 한 번 부르는거다 아리랑 아리랑

[책 읽어주는 여자] 심청 김유정 ,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유정의 심청입니다 1936년 문예지 중앙에 발표된 단편소설입니다 거반 오정이나 바라보도록 요때기를 들쓰고 누었든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키어 대문밖으로 나섰다 매캐한 방구석에서 혼자 볶을치 만치 볶다가 열벙거지가 벌컥 오르면 종로로 튀어나오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종로가 항상 마음에 들어서 그가 거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버릇이 시키는 노릇이라 울분할 때면 마지못하여 건숭 싸다닐 뿐 실상은 시끄럽고 더럽고해서 아무 애착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의 심청이 별난 것이었다 팔팔한 젊은 친구가 할일은 없고 그날그날을 번민으로만 지내곤 하니까 나중에는 배짱이 돌라앉고 따라 심청이 곱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불평을 남의 얼굴에다 침 뱉듯 뱉아붙이기가 일수요 건뜻하면 남의 비위를 긁어놓기로 한 일을 삼는다 그게 생각나면 좀 잗달으나 무된 그 생활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향락일런지도 모른다 그가 어실렁어실렁 종로로 나오니 그의 양식인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연은 마음의 거울이다 온체 심보가 이뻔새고 보니 눈에 띠는 것마다 모두 아니꼽고 구역이 날 지경이다 허나 무엇보다도 그의 비위를 상해 주는건 첫째 거지였다 대도시를 건설한다는 명색으로 웅장한 건축이 날로 늘어가고 한편에서는 낡은 단층집은 수리조차 허락지 않는다 서울의 면목을 위하야 얼른 개과천선하고 훌륭한 양옥이 되라는 말이었다 게다 각 상점을 보라 객들에게 미관을 주기 위하야 서루 시새워 별의별 짓을 다해가며 어떠한 노력도 물질도 아끼지 않는 모양 같다 마는 기름때가 짜르르한 헌 누데기를 두르고 거지가 이런 상점 앞에 떡 버티고서서 나리 돈한푼 주 하고 어줍대는 그 꼴이라니 눈이시도록 짜증 가관이다 이것은 그 상점의 치수를 깎을뿐더러 서울이라는 큰 위신에도 손색이 적다 못할지라 또는 신사 숙녀의 뒤를 따르며 시부렁거리는 깍쟁이의 행세 좀 보라 좀 심한 놈이면 비단껄 이고 단장 뽀이고 닥치는 대로 그 까마귀발로 웅켜 잡고는 돈 안낼 테냐고 제법 훅닥인다 그런 봉변이라니 보는 눈이 다 붉어질 노릇이 아닌가 거지를 청결하라 땅바닥의 쇠똥말똥만 칠게 아니라 문화생활의 장애물인거지를 먼저 치우라 천당으로 보내든 산채로 묶어 한강에 띠우든 머리가 아프도록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어청어청 종로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입으로는 자기도 모를 소리를 괜스리 중얼거리며 나리 한 푼 줍쇼 언제 어데서 빠졌는지애송이거지 한 마리 기실 강아지의 문벌이 조금 더 높으나 암튼 한 마리가 그에게 바짝 붙으며 긴치않게 조른다 혓바닥을 길게 내뽑아 웃입술에 흘러나린 두 줄기의 노란 코를 연실 훔쳐가며 졸르자니 썩 바쁘다 왜 이럽쇼 나리 한 푼 주세요 그는 속으로 피익 하고 선웃음이 터진다 허기진 놈 보고 설렁탕을 사달라는게 옳겠지 자기보고 돈을 내랄적엔 요놈은 거지 중에도 제일 액수 사나운 놈일 게다 그는 들은 척 않고 그대루 늠름이 걸었다 그러나 대답 한 번 없는데 골딱지가 낫는지 요놈은 기를 복복 쓰며 보채되 정말 돈을 달라는 겐지 혹은 같이 놀자는 겐지 나리 웨 이럽쇼 웨 이럽쇼 하고 사알살 약을 올려가며 따르니 이거 성가셔서라도 걸음 한 번 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고개만을 모루 돌리어 거지를 흘겨보다가 이 꼴을 보아라 그리고 시선을 안으로 접어 꾀죄죄한 자기의 두루마기를 한번 쭈욱 훑어보였다 하니까 요놈도 속을 채렸는지 됨됨이 저렇고야 하는 듯싶어 저도 좀 노려보드니 제출물에 떨어져 나간다 전차길을 건너서 종각 앞으로 오니 졸찌에 그는 두 다리가 멈칫하였다 그가 행차하는 길에 다섯 간쯤 앞으로 열댓살 될락말락한 한 깍쟁이가 벽에 기대여 앉었는데 까빡까빡 졸고 있는 것이다 얼굴은 뇌란게 말라빠진 노루가죽이 되고 화루전에 눈 녹 듯 개개풀린 눈매를 보니 필야 신병이 있는 데다가 얼마 굶기까지 하얐으리라 금시로 운명하는듯 싶었다 거기다 네 살쯤 된 어린 거지는 시르죽은 고양이처럼 큰놈의 무릎 위로 기어오르며 울 기운 조차 없는지 입만 벙긋 벙긋 그리고 낯을 째프리며 투정을 부린다 꼴을 봐한 즉 아마 시골서 올라온지도 불과 며칠 못되는 모양이다 이걸 보고 그는 잔뜩 상이 흐렸다 이 벌레들을 치워주지 않으면 그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문득 한 호기심이 그를 긴장시켰다 저 쪽을 바라보니 길을 치고 다니는 나리가 이 쪽을 향하야 꺼불적꺼불적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뜻밖의 나리였다 고보 때에 같이 뛰고 같이 웃고 같이 즐기든 그리운 동무 예수를 믿지 않는 자기를 향하야 크리스찬이 되도록 일상 권유하든 선량한 동무이었다 세월이란 무엔지 장래를 화려히 몽상하며 나는 장래 톨스토이가 되느니 칸트가 되느니 떠들며 껍적이든 그 일이 어제 같건만 자기는 끽 주체궂은 밥통이 되었고 동무는 나리로 그건 그렇고 하여튼 동무가 이자리의 나리로 출세한 것만은 놀램과 아울러 아니 기쁠 수도 없었다 오냐 저게 오면 어떻게 나의 갈 길을 치워주겠지 그는 머직아니 섰는 채 조바심을 태워가며 그 경과를 기다리었다 딴은 그의 소원이 성취되기까지 시간은 단 일분도 못걸렸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았다 아야야 으 응 갈테야요 이자식 골목안에 백여 있으라니 깐 왜 또 나왔니 기름강아지 같이 뺀질뺀질한 망할 자식 아야야 으름 응 아야야 갈텐데 왜 이리차세요 으 으 하며 기름강아지의 울음소리는 차츰 차츰 멀리 들리운다 이자식 어서 가봐 쑥 들어가 하는 날 벽력 소란하든 희극은 잠잠하였다 그가 비로소 눈을 뜨니 어느덧 동무는 그의 앞에 맞닥드렸다 이게 몇 해만이란 듯 자못 반기며 동무는 허둥지둥 그 손을 잡아흔든다 아 이게 누구냐 너 요새 뭐하니 그도 쾌활한 낯에 미소까지 보이며 참 오래간만이로군하다가 나야 늘 놀지 그런데 요새두 예배당에 잘다니나 음 틈틈이 가지 내 사무란 그저 늘 바쁘니까 대관절 고마우이 보기 추한 거지를 쫓아주어서 나는 웬일인지 종로깍쟁이라면 이가 북북 갈리는걸 천만에 그야 내 직책으로 하는 걸 고마울 거야 있나 하며 동무는 건아하야 흥있게 웃는다 이 웃음을 보자 돌연히그는 점잖게 몸을 가지며 오 주여 당신의 사도 베드로를 내리사 거지를 치워주시니 너머나 감사 하나이다 하고 나즉이 기도를 하고 난 뒤에 감사와 우정이 넘치는 탐탁한 작별을 동무에게 남겨 놓았다 자기가 베드로의 영예에서 치사를 받은 것이 동무는 무척 신이나서 으쓱이는 어깨로 바람을 치올리며 그와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때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전신줄에서 물찍똥을 내려깔기 며 비리구 배리구 지저귀는 제비의 노래는 그 무슨 곡조인지 알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이태준 돌다리,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오늘 이야기는 이태준의 돌다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을 참 잘 살았다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생각하세요 그 삶은 또 어떤가요 오늘 이태준의 돌다리 들으면서 단 한번의 소중한 인생에 대해 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샘마을 동네보다는 누르테테한 가닥나무들만 묘지를 둘러 그 삶은 또 어떤가요 어느 것이라고 집어 낼 수는 없어도 창섭이 마침 방학으로 와 있던 여름이었다 창옥은 저녁 먹다 말고 갑자기 복통으로 뒹굴었다 읍으로 뛰어가서 의사를 청해 왔다 의사는 주사를 놓고 돌아갔다 의사는 바쁘다고 하라는 대로 환자를 데리고 갔지만 다시 하루를 지나 창섭은 뜻을 세워 서울에서도 정평이 있는 한 권위자가 된 것이다 창옥아 기뻐해줘 네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창섭은 바람도 쌀쌀할 뿐 아니라 지금은 단풍철도 지나고 바위를 갈라내서까지 고르고 넓은 길로 닦아졌다 창섭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기 집 논과 밭들이었다 그전부터 있었던 거지만 밭 하루갈이도 늘리지는 못한 것으로도 나를 부자 소린 못 들어도 불러 보며 묵례를 보냈다 아버니께서 멍덜을 손수 이룩허신 밭을 더 좋은 논으로 더 기름진 밭이 되도록 닦달만 해가기에도 내겐 벅찬 일일거다 하고 절약해 쓰고 남는 돈이 있으면 비뚤어진 논 모양을 바로 잡고 그러다 아들이 의사가 된 후로는 동네 길들은 물론 남을 주면 땅을 버린다고 소작을 주지 않았고 일꾼 셋이 저희들 농사 해 가지고 나간다는 둥 환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창섭의 아버지는 땅을 위해서는 곡식을 거둔 뒤 그루만 남은 논과 밭이라도 다시 하루를 지나 흙의 부드러움이 마치 시루떡 모판을 대하는 것처럼 누구의 눈에나 탐스럽게 흐뭇해 보였다 이런 땅을 팔기엔 아무리 수입이 몇 배 더 나은 하지만 은행에 빌리는 방법으로는 삼만 원 돈을 만들 수가 없었고 어머니께선 겨울이면 해마다 기침이 도지신다 진작부터 내가 모셔야 했을 거다 천생 부모님이 서울로 가셔야 한다 땅 전부를 소작하도록 맡기고서는 서울 가서 편안히 계실 날이 하루도 없으실거다 아버님의 말년을 편안히 해드리기 위해서도 땅은 전부 없애 버릴 필요가 있는거다 창섭은 샘마을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가에는 살얼음이 잡힌 찬물에 무릎까지 걷고 들어서서 예 좀 급히 여쭤 봐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동네 사람 수십 명이 개울은 동네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어 비가 오면 진흙탕에서 헤어날 수 없었는데 하룻밤 비에도 넘치기 일쑤라 이 큰 돌다리의 내력을 들은 것이 너이 증조부님 돌아가셨을 때다 징검다리로야 건네올 수가 있니 다리부터 이렇게 넓구 튼튼한 돌루 놓으신 거란다 눈에 익은 정자나무가 서있는 논이며 몇 해 전 어느 장마엔 어찌 된 셈인지 가운데 제일 큰 장이 내려앉아 떠내려갔던 것이다 논둑에 선 정자나무는 길이는 열 자가 넘는 자연석 그대로라 몇 사람의 힘으로는 손을 댈 염두부터 내지 못했다 더구나 불과 수십 보 이내에 면의 보조를 얻어 난간까지 달린 완전히 잊혀진 채 던져져 있던 것이었다 한다한 보통보다 썩 뛰어난 곡식값보다는 다른 물가들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오늘루 가야 되서요 아무두 안 데리구 왔습니다 오늘루 갈 걸 뭘 허러와 조상님들 산소나 사당보다 굶는단 소린 안 듣고 살도록 물려주시구 가셨다 드럭드럭 탐내 모아선 뭘 허니 할아버니께서 쇠똥을 맨손으로 움켜다 넣시던 논 아버니께서 멍덜을 손수 이룩허신 밭을 더 좋은 논으로 더 기름진 밭이 되도록 닦달만 해가기에도 내겐 벅찬 일일거다 하고 절약해 쓰고 남는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는 품을 몇씩 들여서까지 비뚤어진 논 모양을 바로 잡고 밭에 돌을 추려 바람맞이로 담을 두르고 개울엔 둑막이를 했다 그러다 아들이 의사가 된 후로는 아들 학비로 쓰던 몫까지 들여서 동네 길들은 물론 읍길과 정거장 길까지 닦아 놓았다 남을 주면 땅을 버린다고 매우 근면 성실한 사람이 아니면 소작을 주지 않았고 소를 두 필이나 매고 일꾼을 세 명씩이나 두고 적지 않은 전답을 전부 자농으로 버티어 왔다 실속이 타작만 못하다는 둥 일꾼 셋이 저희들 농사 해 가지고 나간다는 둥 이해만을 따져 비평하는 소리가 많았지만 창섭의 아버지는 땅을 위해서는 자기의 이해만으로 타산하려 들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임자를 가진 땅들이라 곡식을 거둔 뒤 그루만 남은 논과 밭이라도 그 바닥이 고르고 그 언저리들이 바르고 흙의 부드러움이 마치 시루떡 모판을 대하는 것처럼 누구의 눈에나 탐스럽게 흐뭇해 보였다 이런 땅을 팔기엔 아무리 수입이 몇 배 더 나은 병원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아버지께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은행에 빌리는 방법으로는 삼만 원 돈을 만들 수가 없었고 서울서 큰 서양식 건물을 손에 넣기란 돈만 있다고 아무 때나 될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께선 내년이 환갑이시다 어머니께선 겨울이면 해마다 기침이 도지신다 진작부터 내가 모셔야 했을 거다 그런데 내가 시골로 올 순 없고 천생 부모님이 서울로 가셔야 한다 한동네서도 땅을 당신만치 못 거둘 사람에겐 소작을 주지 않으셨다 땅 전부를 소작하도록 맡기고서는 서울 가서 편안히 계실 날이 하루도 없으실거다 아버님의 말년을 편안히 해드리기 위해서도 땅은 전부 없애 버릴 필요가 있는거다 창섭은 샘마을에 들어서자 동구에서 이내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가에는 살얼음이 잡힌 찬물에 무릎까지 걷고 들어서서 동네 사람들을 추겨서 돌다리를 고치고 계셨다 어떻게 갑자기 오느냐 예 좀 급히 여쭤 봐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 먼저 들어가 있거라 동네 사람 수십 명이 쇠고삐로 두 길이는 흘러내려간 다릿돌을 동아줄에 얽어 끌어올리고 있었다 개울은 동네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어 아래위로 징검다리는 서너 군데나 놓여 있지만 하룻밤 비에도 넘치기 일쑤라 모두 이 큰 돌다리로 통행하던 것이었다 창섭은 어려서 아버지께 이 큰 돌다리의 내력을 들은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너이 증조부님 돌아가셨을 때다 산소에 상돌을 해오시는데 징검다리로야 건네올 수가 있니 그래 너이 조부님께서 다리부터 이렇게 넓구 튼튼한 돌루 놓으신 거란다 그 후 오륙십 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는데 몇 해 전 어느 장마엔 어찌 된 셈인지 가운데 제일 큰 장이 내려앉아 떠내려갔던 것이다 두께가 한 자는 충분히 되고 폭이 여섯 자 길이는 열 자가 넘는 자연석 그대로라 몇 사람의 힘으로는 손을 댈 염두부터 내지 못했다 한자는 약 삼십 센티미터 더구나 불과 수십 보 이내에 면의 보조를 얻어 난간까지 달린 한다한 나무다리가 놓인 뒤의 일이라 이 돌다리는 동네 사람들에겐 완전히 잊혀진 채 던져져 있던 것이었다 한다한 보통보다 썩 뛰어난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다리 고치는 사람들 점심을 짓느라고 역시 여러 명의 동네 아낙네들과 허둥거리고 계셨다 웬일인데 어째 혼자만 오니 어머니는 손자아이들부터 보이지 않음을 물으신다 오늘루 가야 되서요 아무두 안 데리구 왔습니다 오늘루 갈 걸 뭘 허러와 이젠 어머니도 함께 서울로 모셔 가려구요 서울루 제발 아이들허구 한데서 살아 봤음 원이 없겠다 하고 어머니는 땅보다 조상님들 산소나 사당보다 손자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끌리시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버지만은 그처럼 단순히 들떠질 마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뒤를 쫓아 이내 개울에서 들어왔다 아들은 의사인 아들은 마치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설명하듯 냉정하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아들인 자기가 부모님을 진작 모시지 못한 것이 잘못인 것 한집에 모이려면 자기가 병원을 버리기보단 부모님이 농토를 버리시고 서울로 오시는 것이 순리인 것 병원은 나날이 환자가 늘어 가나 입원실이 부족해서 오는 환자의 삼분의 일밖에 수용 못 하는 것 지금 시국에 큰 건물을 새로 짓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때마침 교통이 편한 자리에 삼층 건물이 하나 나온 것 인쇄소였던 집인데 전체가 콘크리트여서 방화 방공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삼층은 살림집과 직공들의 합숙실로 씌였던 것이라 입원실로 바꾸기에 용이한 것 각층에 수도 가스가 다 들어온 것 그러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것 저렴하기는 하지만 삼만 이천 원이라 지금의 병원을 팔면 일만 오천 원쯤은 받겠지만 그것은 집을 고치는 데 그리고 수술실의기계를 완비하는 데 다 들어갈 것이니 집값 삼만 이천 원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 시골에 땅을 둔대야 일년에 고작 삼천 원의 실리가 떨어질지 말지 하지만 땅을 팔아다 병원만 확장해 놓으면 적어도 일년에 만 원 씩은 이익을 뽑을 자신이 있는 것 돈만 있으면 땅은 이담에라도 서울 가까이라도 얼마든지 좋은 것으로 살 수 있는 것 아버지는 아들의 의견을 끝까지 잠잠히 들었다 그리고 점심이나 먹어라 나두 좀 생각해 봐야 대답허겠다 하고는 다시 개울로 나갔고 떨어졌던 다릿돌을 올려 놓고 나서야 들어와서 점심상을 받았다 점심을 자시면서였다 원 요즘 사람들은 힘두 줄었나 봐 그 다리 첨 놀 때 내가 어려서 봤는데 불과 여남은이서 거들던 돌인데 장정 수십 명이 한나절 동안 씨름을 허다니 나무다리가 있는데 그건 왜 고치시나요 너두 그런 소릴 허는구나 나무가 돌만허다든 넌 그 다리서 고기 잡던 생각두 안 나니 서울루 공부 갈 때 그 다리 건너서 떠나던 생각 안 나 시쳇사람들은 모두 인정이란 게 사람헌테만 쓰는 건 줄 알드라 내 할아버니 산소에 상돌을 그 다리로 건네다 모셨구 내가 천자문 끼구 그 다리루 글 읽으러 댕겼다 네 어미두 그 다리루 가마 타구 내 집에 왔어 나 죽거든 그 다리루 건네다 묻어라 난 서울 갈 생각 없다 네 천금이 쏟아진대두 난 땅은 못 팔겠다 내 아버님께서 손수 이룩허시는걸 내 눈으루 본 밭이구 내 할아버님께서 손수 피땀 흘려 모으신 돈으루 장만허신 논들이야 돈 있다고 어디가 느르지논 같은게 있구 독시장밭 같은 걸 사 느르지논 옥답으로 유명한 철원군 지역의 논이름 독시장밭 철원군에 있는 밭이름 느르지 논둑에 선 느티나문 할아버님께서 심으신 거구 저 사랑마당에 은행나무는 아버님께서 심으신 거다 그 나무 밑에 설 때마다 난 그 어룬들 동상이나 다름없이 경건한 마음이 솟아 우러러보군 헌다 땅이란 걸 어떻게 일시 이해를 따져 사구 팔구 허느냐 땅 없어 봐라 집이 어딨으며 나라가 어딨는 줄 아니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거야 돈 있다구 땅이 뭔지두 모르구 욕심만 내서 문서쪽으로 사 모으기만 하는 사람들 돈놀이처럼 변리만 생각허구 제 조상들과 그 땅이 어떤 인연이란 건 도무지 생각지 않구 헌신 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 다 내 눈엔 괴이한 사람들루 밖엔 뵈이지 않드라 네가 뉘 덕으루 오늘 의사가 됐니 내 덕인 줄만 아느냐 내가 땅 없이 뭘루 밭에 가 절하구 논에 가 절해야 쓴다 자고로 하늘 하늘 허나 하늘의 덕이 땅을 통허지 않군 사람헌테 미치는 줄 아니 땅을 파는 건 그게 하늘을 파는거나 다름없는 거다 땅을 밟구 다니니까 땅을 우습게들 여기지 땅처럼 응과가 분명헌 게 무어냐 하늘은 차라리 못 믿을 때두 많다 하지만 힘들이는 사람에겐 힘들이는 만큼 땅은 반드시 후헌 보답을 주시는 거다 세상에 흔해 빠진 지주들 땅은 소작인들헌테나 맡겨 버리구 떡 허니 도회지에 가 앉어 소출은 팔어다 모두 도회지에 낭비해 버리구 땅 가꾸는 덴 단돈 일 원을 벌벌 떨구 땅으루 살며 땅에 야박한 놈은 자식으로 치면 후레자식 셈이야 땅이 말을 할 줄 알어 봐라 배가 고프단 땅이 얼마나 많으냐 해마다 걷어만 가구 땅은 자갈밭이 되는 걸 아나 둑이 떠나가니 아나 거름 한번 제대로 넣나 정 급허게 돼서 소작인이 우는 소리나 해야 요즘 너이 신식 의사들 주사침 놓듯 애꿎인 화학비료만 갖다 털어넣지 그렇게 땅을 홀대 허구 인제 죽어서 땅이 무서워 어디루들 갈 텐가 창섭은 입이 얼어 버렸다 손만 부볐다 자기의 생각이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었던 걸 대뜸 깨달았다 땅에는 이해를 초월한 일종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아버지에게 아들의 이단적인 계획이 용납될 리 만무였다 아버지는 상을 물리고도 말을 계속했다 너로선 어떤 수단을 쓰든 병원부터 확장허려는 게 과히 엉뚱헌 욕심은 아닐 줄두 안다 그러나 욕심을 부려선 못쓰는 거다 의술은 예로부터 인술이라지 않니 매살 순탄허게 진실허게 해라 네가 가업을 이어나가지 않는다구 탓허지 않겠다 넌 너루서 발전헐 길을 열었구 그게 또 모리지배의 악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인술이잖니 내가 어떻게 불평을 하겠니 다만 삼사 대 집안에서 공들여 이룩해논 전장을 남의 손에 내맡기게 되는 게 저으기 애석헌 심사가 없달 순 없구 팔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나 죽은 뒤에 누가 거두니 너두 이제두 말했지만 너두 문서쪽만 쥐구 서울에 앉어 지주 노릇만 허게 그따위 지주허구 소작인 틈에서 땅들만 얼마나 곯는지 아니 안된다 팔거다 나 죽을 임시엔 다 팔거다 돈에 팔 줄 아니 사람헌테 팔 거다 건너 용문이는 우리 느르지논 같은 건 한 해만 부쳐 보구 죽어두 농군으로 태어난던 걸 한으로 삼지 않겠다구 했다 독시 장밭을 내논다구 해봐라 문보나 덕길이 같은 사람은 길바닥에 나앉드라두 집을 팔아 살려구 덤빌 게다 그런 사람들이 땅 임자 안 되구 누가 돼야 옳겠니 그러니 아주 말이 난 김에 내 유언이다 그런 사람들 무슨 돈으로 땅값을 한 몫에 내겠니 몇몇 해구 그 땅 소출을 팔아서 연년이 갚어 나가게 헐 테니 너두 땅값을랑 그렇게 받어 갈 줄 미리 알구 있거라 그리구 네 어머니가 먼저 가면 내가 묻을 거구 내가 먼저 가게 되면 네 어머닌 그때 네가 서울루 데려가렴 난 샘마을서 이렇게 야인으로나 죄 없는 밥 먹다가 야인인 채 묻힐 걸 흡족히 여긴다 자식의 젊은 욕망을 들어 못 주는 게 애비 된 맘으루두 섭섭허다 그렇지만 이 늙은이헌테두 그만 신념쯤 지켜 오는 게 있다는 걸 무시하지 말어 다오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 담배를 피우며 다리 고치는 데로 나갔다 옆에 앉았던 어머니는 두 눈에 눈물을 쭈루루 흘리셨다 너이 아버지가 여간 고집이시냐 아니에요 아버지가 어떤 어른이신 건 오늘 제가 더 잘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진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창섭도 코허리가 찌르르했다 자기가 계획하고 온 일이 실패한 것쯤은 차라리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아버지와 자기와의 세계가 격리되는 일종의 결별의 심사를 체험하는 때문이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고쳐 놓은 돌다리를 건너 저녁차를 타러 가버렸다 동구 밖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양을 지키고 섰을 때 아버지 마음도 정말 임종에서 유언이나 하고 난 것처럼 외롭고 한편으로 불안스러운 마음이었다 아버지는 종일 개울에서 허덕였지만 저녁에 잠도 달게 오지 않았다 젊어서 서당에서 읽던 백낙천의 시가 다 생각이 났다 늙은 제비 한 쌍을 두고 지은 노래였다 제 뱃속이 고픈 것은 참아 가며 입에 얻어 문 것은 새끼들부터 먹여 길렀으나 새끼들은 자라서 나래에 힘을 얻자 어디로인지 저희 좋을 대로 다 날아가 버리어 야위고 늙은 어버이 제비 한 쌍만 가을 바람 소슬한 추녀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광경을 묘사했고 나중에는 그 늙은 어버이 제비들을 가리켜 새끼들만 원망하지 말고 너희들이 새끼 적에 역시 그러했음도 깨달으라는 풍자의 시였다 중국 당나라 백낙천의 연자가 흥 노인은 어두운 천장을 향해 쓴웃음을 짓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누구보다도 먼저 어제 고쳐 놓은 돌다리를 보러 나왔다 흙탕이라고는 어느 돌틈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앞쪽에도 가운데에도 끝에도 맑기만 한 소담한 물살이 우쭐우쭐 춤추며 빠져 내려갔다 한가운데로 가서 쾅 굴러 보았다 발바닥만 아플 뿐 끄떡이 있을 리 없다 노인은 쭈루루 집으로 들어와 소금 접시와 수건을 가지고 나왔다 제일 낮은 받침돌에 내려앉아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나중에는 다시 이가 저린 물을 한입 물어 마시며 일어섰다 속에 있는 모든 게 씻기는 듯 시원했다 그리고 수염에 묻은 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어떤 한계를 넘는 법은 없다 물이 분수없이 늘어 떠내려갔던 게 아니라 자갈이 밀려 내려와 물구멍이 좁아졌든지 아니면 어느 받침돌의 밑이 물살에 굴러 쓰러졌던 그런 까닭일게다 미리 바닥을 치고 미리 받침돌만 제대로 보살펴 준다면 만년을 간들 무너질 리 없을거다 그저 늘 보살펴야 하는 거다 사람이란 하늘 밑에 사는 날까진 하루라도 천지자연의 이치에 방심을 해선 안 되는 거다

[책 읽어주는 여자] 복덕방, 이태준,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노벨라가 읽어 드리는 이태준의 복덕방 들으시면서 새로운 하루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철석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버리는 소리가 났다 주먹구구에 골똘했던 안초시에겐 놀랄 만한 폭음이었던지 다리 부러진 돋보기 너머로 꼭 모이를 쪼으려는 닭의 눈을 하고 수챗구멍을 내다본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거피해 버린녹두 껍질 녹두 빈대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한 오륙 년째 안초시는 말끝마다 젠장 아니면 흥 하는 코웃음을 붙이곤 한다 추석이 벌써 내일 모레지 젠장 안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했던 것은 거짓말이었던지 아래 윗니가 송곳 끝처럼 날카로워짐을 느꼈다 안초시는 빈 입에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빠드득 소리가 나게 한번 물어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 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빨아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쉽게 들리 질 않는다 거기는 한 조각의 녹두빈대나 한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진한 슬픔과 더 횡한 고적함이 품겨 있는 것 같았다 혹혹 소매 끝을 불어 보고 손 끝으로 튀겨 보기도 하다가 목침을 세우고 눕고 말았다 이사는 팔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가만 천이라 사로 했으니 사천이라 사천 평 매 평에 아주 줄여 잡아 오 환씩만 하게 돼두 사 환 칠십오 전씩이 남으니 그럼 사사는 십륙 일만 육 천 환하구 안초시가 다시 주먹구구를 거듭해서 얻어 낸 총액이 일만 구천 원 단 천 원만 들여도 일만 구천 원이 되리라는 셈속이니 만 원만 들이면 그게 얼만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마가 화끈했다 도사렸던 무릎을 얼른 곧추세우고 뒤나 보려는 사람처럼 쪼그렸다 마코 갑이 번연히 빈 것인 줄 알면서도 다시 집어다 눌러 보았다 주머니엔 단돈 십 전 그것도 안경 다리를 고친다고 벌써 세 번짼가 네 번째 딸에게서 사오십 전씩 얻어 가지고는 번번이 담뱃값으로 다 내어보내고 만 최후의 십 전 안초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백통화 한 푼을 얹은 야윈 손바닥 가만히 떨린다 서참의의 투박한 손을 생각하면 너무나 얇고 잔망스러운 손이거니 했다 그러나 이따금 술잔은 얻어먹고 이렇게 내 방처럼 그의 복덕방에서 잠까지 빌려 자건만 한 번도 집 거간이나 해먹는 서참의의 생활이 부럽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한번쯤은 무슨 수가 생겨 다시 한번 내 집을 쓰게 되고 내 밥을 먹게 되고 내 힘과 내 낯으로 다시 한번 세상에 부딪혀 보려니 믿어졌다 초시는 전에 어떤 관상쟁이가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주먹을 쥐어야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늘 그렇게 쥐어야지 했지만 문득 생각이 나 내려다볼 때는 으레 엄지손가락이 얄밉도록 밖으로만 쥐어져 있었다 그래서 드팀전을 하다가도 실패를 했고 그래서 집까지 잡혀서 장농가게를 내었다가도 그만 화재를 보았거니 하는 것이다 이놈의 엄지손가락아 안으로 좀 들어가아 젠장 하고 연습삼아 엄지손가락을 먼저 안으로 넣고 아프도록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았다 그리고 당장 내어보낼 돈이면서도 그 십 전짜리를 그렇게 쥔 주먹에 단단히 넣고 담배 가게로 나갔다 이 복덕방에는 늘상 세 늙은이가 모인다 언제 누가 와서 집을 보러 가자고 할지 몰라 늘 갓을 쓰고 앉아서 행길을 잘 내다보는 얼굴 붉고 눈 방울 큰 노인은 주인 서참의다 참의로 다니다가 합병 후에는 다섯 해를 놀면서 시기를 엿보았지만 별수가 없을 것 같아 이럭저럭 심심 파적으로 갖게 된 것이 이 가옥 중개업이었다 처음엔 겨우 굶지 않을 만한 수입이었으나 다이쇼 팔구년 이후로는 시골 부자들이 세금에 몰려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만 몰려들고 그런데다가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 다옥정 같은 중앙지대에는 그리 고옥만 아니면 만 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그 판에 봄 가을로 어떤 달에는 삼사백 원 수입이 있다 그러기를 몇 해 지나 가회동에 수 십 간 집을 세웠고 또 몇 해 지나지 않아서는 창동 근처에 땅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중개업자도 많이 늘었고 건양사 같은 큰 건축회사가 생겨 당자끼리 직접 팔고 사는 것이 원칙 처럼 되어 가기 때문에 중개료 수입은 전보다 훨씬 준 셈이다 하지만 이십여 간 집에 학생을 치고 싶은 대로 치기 때문에 서참의의 수입이 없는 달이라고 쌀값이 밀리거나 나뭇값에 졸릴 형편은 아니다 세상은 먹구 살게 마련이야 서참의가 흔히 하는 말이다 칼을 차고 훈련원에 나서 병법을 익힐 땐 한번 호령만 하고 보면 산천이라도 물러설 것 같던 그 기개와 오늘의 자기 한낱 가쾌로 복덕방 영감으로 기생 갈보 따위가 사글셋방 한 간을 얻어 달래도 예 예 하고 따라나서야 하는 만인의 심부름꾼인 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눈물이 아니 날 수도 없다 워낙 술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 땐 남몰래 이런 감회를 이기지 못해 술집에 들어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호반의 기개란 흔히 혈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인지 몸에서 혈기가 줄어듬에 따라 그런 감회를 일으키는 일도 요즘은 적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집에서 점심을 먹다 듣노라니 무슨 장사치의 외치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귀에 익은 목청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가 제법 무엇을 사라는 소리가 아니라 유리병이나 간장통 팔거이쏘 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그 목청이 보면 꼭 알만한 사람 같아서 일어나 마루 들창으로 내어다봤다 이번엔 가마니나 신문 잡지나 팔 거이쏘 하면서 가마니 두어 개를 지고 한 손엔 저울을 들고 중노인이나 된 사나이가 지나가는데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어디서 알았으며 이름이 무엇이며 애초에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가 감감해지고 말았다 오라 그렇군 분명 저런 하고 그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유리병과 간장통을 외는 소리가 골목 안으로 사라져 갈 즈음에야 서참의는 그가 누구인 것을 깨달아 냈다 동관 김참의 허 나이는 자기보다 훨씬 연소 했으나 학식과 재기가 있는데다 호령 소리가 좋아 상관에게 늘 칭찬 을 받던 청년 무관이었었다 이십여 년 뒤에 들어도 갈 데 없이 그 목청이요 그 모습이었다 전날의 그를 생각하고 오늘의 그를 보니 적이 감개에 사무쳐 밥숟가락을 멈추고 냉수만 거듭 마셨다 그러나 전에 혈기 있을 때와는 달라 그런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반인 둘째 아들이 학교에 갔다 들어서는 것을 보고 또 싸전에서 쌀값 받으러 오자 마누라가 선선히 시퍼런 지전을 내어 헤는 것을 볼 때 서참의는 이내 속으로 거저 살아야지 별수 있나 저렇게 개가죽을 쓰고 돌아다니는 친구 도 있는데 에헴 뿐만 아니라 그런 절박한 친구 에다 대면 자기는 얼마나 훌륭한 지체냐 하는 자존심도 없지 않았다 지난 일 그까짓거 생각할 거 뭐 있나 사는 날까지 허허허 여생을 웃으며 살 작정이었다 그래 그런지 워낙 좀 실없는 티가 있는데다 요즘 와서는 누구에게나 농지거리가 늘어 갔다 그래서 늘 눈이 달리고 뾰로통한 입으로 말끝마다 젠장 소리만 나오는 안초시와는 성미가 맞지 않았다 쫌보야 술 한잔 사주랴 쫌보라는 말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 같아 안초시는 이내 발끈해서 네깟 놈 술 더러워 안 먹는다 한다 화투패나 밤낮 떼면 느이 어멈이 살아온다던 하고 서참의가 발끝으로 화투장 들을 밀어 던지면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쌔근쌔근 하다가 부채면 부채 담뱃갑이면 담뱃갑 자기의 것을 냉큼 집어 들고 다시는 안 올 듯이 새침해서 나가 버린다 조게 계집이문 천생 남의 첩감이야 하고 서참의는 껄껄 웃어 버리지만 안초시는 이렇게 돼서 올라가면 한 이틀씩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안초시 딸의 무용회 날 밤이었다 안경화라고 한동안 토월회에도 다니다가 대판에 가 있느니 동경에 가 있느니 하더니 오륙 년 뒤에 무용가라 이름을 날리며 서울에 나타났다 바로 제일회 공연 날 밤이었다 서참의가 조르기도 했지만 안초시도 딸의 사진과 이야기가 신문마다 나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서 공짜표를 얻을 수 있는 대로 얻어 가지고 서참의뿐 아니라 여러 친구들에게 돌렸다 허 저기 한가운데서 지금 한창 다릿짓 하는게 자네 딸인가 남들은 다 멍멍히 앉았는데 서참의가 해괴한 것을 보는 듯 마땅치 않은 어조로 물었다 무용이란 건 문명국일수록 벗구 한다네 그려 약기는 한 안초시는 미리 이런 대답으로 막았다 모를 일이네 원 지금 총각놈들은 모두 등신인가 바 왜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탄하였다 우린 총각 시절에 저런 걸 보문 그냥 못 배기지 빌어 먹을 녀석 나잇값을 못 하구 개야 저건 개 안초시가 분통이 발끈거려 하는 소리였다 한 가지가 끝나고 불이 환하게 켜졌을 때다 도루 차라리 여배우 노릇을 댕기라구 그래라 여배운 그래두 저렇게 넓적다릴 내놓구 덤비진 않더라 그 자식 오지랖 경치게 넓으네 네가 안방 건는방이 멫 칸이요나 알았지 뭘 쥐뿔이나 안다구 그래 보기 싫거든 나가렴 안초시는 화를 발끈 냈다 그랬더니 서참의도 안방 건넌방 말에 화가 나서 꽤 높은 소리로 넌 또 뭘 아니 요 쫌보야 하고 일어서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안초시는 거의 달포나 서참의의 복덕방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걸 박희완 영감이 가서 데리고 왔었다 박희완 영감이란 세 영감 중의 하나로 안초시처럼 이 복덕방에 와서 잠을 자기까지는 안 하지만 꽤 쏠쏠히 놀러 오는 늙은이다 아니 놀러 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와서 공부도 한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을 하겠다고 속수국어독본을 노상 끼고 와서 삼국지 읽던투로 긴상 도코에 유키이마스카 어쩌고를 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수국어독본 뚜껑이 손때에 절고 또 어떤 때는 목침 위에 받쳐 베고 낮잠도 자서 머리때까지 새까맣게 절어 조선총독부 편찬이란 잔 글자들은 보이지 않게 되도록 대서업 허가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나 내나 다 산 것들이 업은 가져 뭘 허니 무슨 세월에 흥 하고 어떤 때 안초시는 한나절이나 화투패를 떼다 안 떨어지면 그 화풀이로 박희완 영감이 들고 중얼거리는 속수국어독본을 툭 채어 행길로 팽개치며 그랬다 넌 또 무슨 재수를 바라구 밤낮 화투패나 떨어지길 바라니 난 심심풀이지 그러나 속으로는 박희완 영감보다 더 세상에 대한 야심이 끓었다 딸이 평양으로 대구로 다니며 지방 순회까지 해서 제법 돈냥이나 걷힌 것 같지만 연구소를 내느라고 집을 뜯어 고친다 유성기를 사들인다 교제를 하러 돌아다닌다 하느라고 더구나 귀찮게만 아는 이 애비를 위해 쓸 돈은 예산에부터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얘 낡은 솜이 돼서 그런지 삯바느질이 돼서 그런지 바지 솜이 모두 치어서 어떤 덴 홑옷이야 암만해두 샤쓰 한 벌 사입어야겠다 하고 딸의 눈치만 보아 오다 한번은 입을 열었더니 어련히 알아서 사드릴라구요 하고 딸이 대답은 선선히 하였지만 샤쓰는 그해 겨울이 다 지나도록 구경도 못 했다 셔츠는 커녕 안경다리를 고치겠다고 돈 일 원만 달래도 일 원짜리를 굳이 바꿔다가 오십 전 한 닢만 주었다 안경은 돈을 좀 주무르던 시절에 장만한 것이라 테만 오륙 원 먹은 것이어서 오십 전만으로 그런 다리는 어림도 없었다 오십 전짜리 다리도 있지만 살 바에는 말쑥하고 맵시 있는 것을 택하던 초시의 성미라 더구나 면상에서 짝짝이로 드러나는 것을 사기가 싫었다 차라리 종이 노끈인 채 쓰기로 하고 오십 전은 담뱃값으로 나가고 말았다 안경다린 왜 안 고치셨어요 딸이 그날 저녁에 물었다 흥 초시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은 며칠 뒤에 또 오십 전을 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버지 보험료만 해두 한 달에 삼 원 팔십 전씩 나가요 했다 보험료나 타먹게 어서 죽어 달라는 소리로도 들렸다 그게 내게 상관 있니 아버지 위해 들었지 누구 위해 들었게요 그럼 초시는 정말 날 위해 하는거문 살아서 한푼이라두 다우 죽은 뒤에 내가 알 게 뭐냐 소리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십 전이면 왜 안경다릴 못 고치세요 초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좋고 낮은 걸 가리실 처지예요 그러나 오십 전은 또 마코 값으로 다 나갔다 이러기를 아마 서너 번째다 자식도 소용 없어 더구나 딸자식 그저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지 초시는 돈의 긴요성을 날로 날로 더욱 심각하게 느꼈다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 심심해서 운동삼아 좀 나다녀 보면 거리마다 짓느니 고층 건축들이요 동네마다 느느니 그림 같은 문화주택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물에서 갓 튀어나온 메기처럼 미끈미끈한 자동차가 등덜미에서 소리를 꽥 지른다 돌아다보면 운전수는 눈을 부릅떴고 그 뒤에는 금시곗줄이 번쩍거리는 살찐 중년 신사가 빙그레 웃고 앉았는 것이었다 예순이 낼 모레 젠장할 것 초시는 늙어 가는 것이 원통했다 어떻게 해서나 더 늙기 전에 적게 돈 만 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내 손으로 다시 한번 이 세상과 교섭해 보고 싶었다 지금 이 꼴로서야 문화주택이 암만 서기로 내게 무슨 상관이며 자동차 비행기가 개미떼나 파리떼처럼 퍼지기로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냐 세상과 자기와는 자기 손에서 돈이 떨어진 그 즉시로 인연이 끊어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면 송장이나 다름없지 뭔가 초시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지가 이미 오래였다 무슨 수가 없을까 아니면 무슨 그루테기가 있어야 비비지 그러다가도 그래도 돈냥이나 엎질러 본 녀석이 벌기도 하는 게지 하고 그야말로 무슨 그루터기만 만나면 꼭 벌기는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관변에 있는 모 유력자를 통해 비밀리에 나온 말인데 황해 연안에 제이의 나진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관청에서만 알 뿐이지만 축항 용지는 비밀리에 매수되었으며 머지않아 당국자로부터 공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거기가 황무진가 전답들인가 초시는 눈이 뻘개 물었다 밭이라데 밭 그럼 매평 얼마나 간다나 좀 올랐대 관청에서 사는 바람에 아무리 시굴 사람들이기루 그만한 눈치 없겠나 그래두 무슨 일루 관청서 사는지는 모르거든 그래 그래 그리 오르진 않었대 아마 평당 이십오륙 전씩이면 살 수 있다나 보데 하지만 화중지병이지 뭘 허나 우리가 음 초시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정말이기만 하면 한 시각이라도 먼저 덤비는 놈이 더 먹는 판이다 나진도 오륙 전 하던 땅이 한번 개항된다는 소문이 나자 그해에 오륙 전의 백 배 이상이 올랐고 삼사 년 뒤에는 땅 나름이지만 어떤 요지는 천 배 이상 오른 데가 많다 다 산 나이에 오래 끌 건 뭐 있나 올 해 안에 넘겨두 최소한도 오환씩야 문제 없을테지 혼자 생각한 초시는 대관절 어디란 말야 거기가 하고 나앉으며 물었다 그걸 낸들 아나 그럼 그 모씨라는 이만 알지 그리게 날더러 단 만 원이라도 자본을 움직이면 자기는 거기서도 어디어디가 요지 라는거 설계도를 복사해 낸 사람이니까 그 요지만 사겠다는 말이지 그리구 많이두 바라질 않어 비용 죄다 제치구 순이익의 이 할만 달라는 거야 그럴 테지 누가 그런 자국을 일러주구 구경만 하자겠나 이 할이라 이 할 초시는 생각할수록 이것이 훌륭한 그 무슨 그루터기가 될 것 같았다 나진의 선례도 있거니와 박희완 영감 말이 만주국이 되는 바람에 중국과의 관계가 미묘해져서 황해 연안에도 나진과 같은 사명을 갖는 큰 항구가 필요할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도 추측할 바라 했다 초시의 상식에도 그것은 믿을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피죤을 사서 거기서 아주 한 대를 피워 물고 왔다 어째 박희완 영감이 종일 보이질 않는다 다른 데로 자금운동을 다니나 보다 했다 서참의는 점심 전에 나간 사람이 어디서 흥정이 한 자리 떨어지느라고 그런지 아직 돌아오질 않는다 안초시는 미닫이틀 위에서 낡은 화투를 꺼냈다 허 이거 봐라 여간해선 잘 떨어지지 않던 거북 패가 단번에 뚝 떨어진다 누가 옆에 있어 좀 봐 줬으면 싶었다 아무래두 이게 심상칠 않어 이제 재수가 티나 부다 초시는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행길로 내던졌다 출출하던 판에 담배만 몇 대를 피고 나니 목이 컬컬해진다 앞집 수채에 뜨물에 떠내려 가다 막힌 녹두 껍질이 그저 누렇게 보인다 오냐 내년 추석엔 초시는 이날 저녁에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했다 실패는 했을지라도 그래도 십수 년을 상업계에서 논 안초시라 출자를 권유하는 수작만은 딸이 듣기에도 딴사람인 듯 놀라웠다 딸은 즉석에서는 가부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내 잊혀지지는 않았던지 다음날 아침엔 딸 편이 먼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초시가 박희완 영감에게 묻던 이상으로 시시콜콜히 캐어물었다 그러면 초시는 또 박희완 영감 이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소상히 설명했고 일년 안에 청장을 하더라도 최소한 오십 배 이상의 순이익이 날 것이라 장담 장담했다 딸은 솔깃했다 사흘 안에 연구소 집을 어느 신탁 회사에 넣고 삼천 원을 돌리기로 했다 초시는 금시발복이나 된 듯 뛰고 싶게 기뻤다 서참의 이놈 날 은근히 멸시했것다 내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 난 집을 살 테다 네깟놈이 천생 가쾌지 별거냐 그러나 신탁회사에서 돈이 되는 날은 웬 처음 보는 청년 하나가 초시의 앞을 가리며 나타났다 그는 딸의 청년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손에 단 일 전도 넣지 않았고 꼭 그 청년이 나서서 돈을 쓰며 처리하게 했다 처음엔 팩 나오는 노염을 참을 수가 없었으나 며칠 밤을 지내고 나니 적어도 삼천 원의 순이익이 오륙만 원은 될 것이라 만 원 하나야 어디로 가랴 하는 타협이 생겨서 안초시는 으슬으슬 그 이를테면 사위녀석격인 청년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일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삼천원 어치 땅을 사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해도 거기는 축항이 된다는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와 다사도에는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 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 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했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돈을 쓸 때는 일 원짜리 한 장 만져도 못 봤지만 벼락은 초시에게 떨어졌다 서너 끼씩 굶어도 밥 먹을 정신이 나지도 않았거니와 밥을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밑 도리듯 하는 건가 탄식만할 뿐이었다 밥보다는 술과 담배가 그리웠다 물론 안경다리는 그저 못 고쳤다 그러나 이제는 오십 전짜리는 커녕 단 십 전짜리도 얻어 볼 길이 없다 추석 가까운 날씨는 해마다의 그때와 같이 맑았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번에도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매 끝을 불거나 떨지는 않았다 고요히 흘러 내리는 눈물을 그 더러운 소매로 닦았을 뿐이다 여름이 극성스럽게 덥더니 추위도 그럴 징조인지 예년보다 무서리가 일찍 내렸다 서참의가 늘 지나다니는 식은관사에 울타리가 넘게 피었던 코스모스들이 끓는 물에 데쳐 낸 것처럼 시커멓게 무르녹고 말았다 참의는 머리가 띵했다 요즘 와서 울기 잘하는 안초시를 한번 위로해 주려 엊저녁에는 데리고 나와 청요릿집으로 추탕집으로 새로 두 점을 치도록 돌아다닌 때문 같았다 조반이라고 몇 술 뜨기는 했지만 혀도 그냥 뻑뻑하다 안초시도 그럴 것이니까 해는 벌써 오정 때지만 끌고 나와 해장술이나 먹으리라하고 부지런히 내려와 보니 웬일인지 복덕방이라고 쓴 베 발이 아직 내어 걸리질 않았다 이 사람 봐아 어느 땐 줄 알구 코만 고누 그러나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닫이를 밀어 젖힌 서참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안초시의 입에는 피 얼굴은 잿빛이다 방 안은 움 속처럼 음습한 바람이 휭 끼친다 아니 참의는 우선 미닫이를 닫고 눈을 비비고 초시를 들여다보았다 안초시는 벌써 아니요 안초시의 시체일 뿐 둘러보니 무슨 약병인 듯한 것 하나가 굴러져 있다 참의는 한참 만에야 이 일이 슬픈 일인 것을 깨달았다 허 파출소로 갈까 하다 그래도 자식한테 먼저 알려야겠다 하고 말로만 듣던 그 안경화 무용연구소를 찾아가서 안경화를 데리고 왔다 딸이 한참 울고 난 뒤다 관청에 어서 알려야지 아니예요 그 하지 마세요 딸은 펄쩍 뛰었다 하지 말라니 저 저라니 제 명예도 좀 하고 그는 애원했다 명예 안 될 말이지 명예를 생각하는 사람이 애빌 저 모양으루 세상 떠나게 해 안경화는 엎드려 다시 울었다 그러다가 나가려는 서참의의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절 살려 주세요 소리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그럼 비밀은 내가 지킬 테니 나하자는 대루 할까 네 서참의는 다시 앉았다 부친 위해서 보험 든 거 있지 네 간이보험이요 무슨 보험이든 얼마나 타게 되누 사백팔십 원요 부친 위해 들었으니 부친 위해 다 써야지 그럼요 에헴 그럼 돌아간 이가 늘 속샤 쓰를 입구싶어 했어 상등 털샤쓰를 사다 입히구 그 위에 진견으로 수의 일습 구색 맞춰 짓게 허구 선산은 있나 묻힐 데가 웬걸요 없어요 그럼 공동묘지라도 특등지루 널찍하게 사구 장례식을 장하게 해야 말이지 초라하게 해버리면 내가 그저 안 있을거야 알아들어 네에 하고 안경화는 그제야 핸드백을 열고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았다 안초시의 소위 영결식이 그 딸의 연구소 마당에서 열렸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갔다 박희완 영감이 무얼 잡혀서 가져 왔다는 부의 이 원을 서참의가 장례비가 넉넉하니 자네 돈 그 계집애 줄 거 없네 하곤 우선 술집에 들러 거나하게 곱빼기들을 한 것이다 영결식장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고 무용가 안경화를 봐서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서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느라고 끽끽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 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을 했다 그 뒤를 따라 한 이십 명이 관 앞에와 꾸벅거렸다 그리고 뭐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 했을 때 에헴 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참의도 한마디 없을 순 없다는 듯이 나섰다 향을 한움큼이나 집어 놓자 연기가 시커멓게 올려 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헴 하더니 조사를 한다 나 서참읠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만 호살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 아무튼지 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 이 사람 취했네그려 하며 서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했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 보았지만 으흐흑 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책 읽어주는 여자] 제1과 제1장, 이무영, 2부,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집은 조그만 동산 밑 이 동네 면장이 첩 집으로 지었던 것을 일백 삼십 원에 사기로 했다 퇴직금이었다 그 앞으로 수택네집 소유인 천여평의 밭도 있어 거기에 심었던 무우와 배추도 그대로 수택의 소유로 이전이 되었다 첩의 집이었던 만큼 회칠도 했고 조그만 반침도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골집이다 수택의 큰 이불장만은 역시 들어가지를 않아서 봉당에다 받침을 하고 놓기로 했다 짓다 만 터라 마루가 없어서 그들 부처는 거기다 마루라도 들였으면 했으나 애들아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물가 비싼 세상에 마루는 들여 뭣 한다든 마루가 없어 밥을 못 먹진 않는다 하는 바람에 아내는 실쭉해 하면서도 대꾸만은 없었다 김영감은 아들 내외가 대처사람인 체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양복대기를 꼬이고 나오는 것도 눈에 가시처럼 대했고 며느리의 트레머리도 못 마땅해 한다 그래서 그 처는 쪽을 지었고 수택은 고의 적삼을 장만했다 시굴 시굴 해두 난 이런 시굴은 못 봤어요 산이 하나 변변한가 물 한 줄기가 시원한가 이런 곳에 와서 살 바엔 만주 벌판에 가서 황무지를 일쿠어 먹지 사실 수택도 아내의 이 말에는 동감이었다 전에는 무심히 보아 그랬던지 자연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나 멀쑥한 포플러와 아카시아 숲이 실개천 가에 나 있을 뿐 이렇다는 특징도 없는 산천이다 장성해서는 가본 일도 없었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대로라면 그 아카시아 숲 앞에는 상당히 깊은 물도 있었고 큰 고기도 은비늘을 번득이었고 숲에서는 매미며 꾀꼬리도 울었던 것 같이 기억이 되었지만 다시 가보니 조그만 웅덩이에는 오금에 차는 물이 고였고 날이 가문 탓도 있겠지만 송사리 떼가 발소리에 놀라 쩔쩔맬 뿐이다 숲 속의 원두막 정취도 그지없이 시적인 듯이 기억이 되었으나 막상 가보니 그 또한 평범하기 짝이 없다 숲 속은 그나마도 습했다 월여를 두고 가물었다건만 발을 들여 놀 때마다 지적지적 한다 꾀꼬리가 울었다고 기억한 것도 그의 착각이었다 이런 숲에 들어오면 꾀꼬리도 목이 쉬리라 싶었다 이런 데서도 우는 꾀꼬리가 있다면 필시 청상과부가 된 꾀꼬리겠지 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자연 이었던가 속기나 한 것처럼 허무해서 우두커니 섰으려니까 김영감이 꼴 지게를 지고 나온다 옛다 이건 네거다 이런데 와 살자면 모두 배워야지 숫돌 물이 뿌옇게 그대로 말라붙은 낫이다 수택은 아무 말없이 받아 들고 따라 가다가 자연에 대해 한 마디 했다 뭐 경치 애 넌 경치만 먹구 살 작정이냐 여기 경치가 어때서 산이 없나 물이 없나 숲이 있겠다 십리만 나가면 수리조합 보가 있겠다 볼 게 뭐 있어요 그것이 자기 아버지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퉁명스럽게 사방을 두리번 거리려니까 그래 여기 경치가 서울만 못하단 말이냐 하기가 무섭게 지게를 벗겨 내던지고는 상스러울 만큼 수택의 목덜미를 잡아 가랑이 속에다 집어 넣는다 자 봐라 먼산이 보이고 저 숲이며 저 물 하며 이만하면 되잖느냐 수택은 너무 서두는 통에 어리둥절하고만 있었다 엄한 독선생을 만난 때처럼 부자유 했다 그래 보렴 세상이란 모두 거꾸루 봐야 하는 게다 경치 경치 하지만 제대루 볼 땐 보잘것 없던 것이 가랭이 밑으로 보니까 희한하잖느냐 사람 산다는 것두 그러니라 너들 눈엔 여기 사람들 사는 게 우습지 허지만 여기 사람들은 상팔자야 두메로 들어가 보면 조밥이구 보리밥이구 간에 하루 한 낄 제대로 못 얻어 먹는다 그런 걸 내려다보면 되나 거꾸로 봐야지 너들 눈엔 우리가 이러구 사는게 개 돼지같이 뵈겠지만서두 알구 보면 신선야 신선 너들 월급쟁이에다 대 그 연기만 자옥한 들판에서 사는 서울 사람들에다 대 보렴 네 여기 사람들이 어떻던 너들처럼 얼굴이 새하얗진 않지 그게 신선이 아니구 뭐냐 이 급조 된 젊은 신선은 그 날 해가 지도록 끌려 다니며 왁새에 서뻑서뻑 손을 베며 풀을 베었다 하면 되리라고 생각한 낫질이 그 좁은 원고지 간에 글자를 써 넣기보다 이렇게 어려울거라곤 생각 못했던 것이었다 아침에는 새벽같이 끌리어 일어났다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어험 소리가 문턱에 난다 나가 보면 김영감의 삼태기에는 벌써 쇠똥이 그득하게 담겨져 있었다 네 봐라 이 놈이 줄 땐 허리가 아퍼도 논에다 넣두면 베가 그저 시커매지는구나 그까짓 암모니아에다 대 그걸 한 가마에 5원씩 주고 사다 넣느니 이 놈을 며칠 주었으면 돈 벌구 거름 생기구 자 어서 차빌 차려라 네 댁두 깨우구 해가 똥구멍까지 치밀었는데 몸이 근지러워 어떻게 질펀히 눴단 말이냐 수택 부부는 처음에는 허영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세숫물까지 떠다 바치라던 수택과 처가 매일처럼 그 드센 일을 한다 해서 동네에서 화제거리가 될 것은 상상만 해도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수택이 헌 양복조각을 입고 밭을 맨다거나 삽을 짚고 물꼬를 보러 간다거나 비틀비틀 꼴 지게를 지고 개천을 건너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경이의 눈으로 그를 맞았던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비탈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동이를 해먹었을 때도 그들은 웃는 대신 동정의 눈으로 보아주었고 호미를 들고 남편 뒤를 따라 나서는 것을 보고는 이웃집 달순이며 앞집 봉년이를 큰일이나 난 듯 불러다 구경을 시키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의 이런 경이의 시선을 등 뒤에 느끼며 일을 했다 이런 것이 그들에게는 심지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잘하는 것이 자랑도 되었지만 못하는 것이 부끄럼이 되지 않는 유리한 조건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애 어멈아 너 그렇게 호밀 깊이 묻으면 배추 뿌리에 바람이 들잖겠냐 요걸 요렇게 다루어 가지구 살짝 흙을 일으키고 이쪽 손으론 풀을 집어내야지 허 그래두 그러는구나 옳지 옳지 이렇게 새며느리 실상은 헌 며느리 지만 며느리 한테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어느새 수택의 등뒤에 와서 서 있는 것이었다 에이끼 미련한 것 배추밭 매는 걸 밥 먹듯 하는구나 밥 한 술 떠 넣구 반찬 한 가지 집어 먹구 그 식이 아니냐 아 이쪽으룬 흙을 이렇게 일으키면서 왼손으룬 풀을 집어 내야지 그걸 어떻게 따루 따루 아직 손에 안 익어 그렇습니다 아버지 수택은 이렇게 변명을 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 밤에는 거적 한 잎이 등에 지워 진다 물꼬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네게 준 건 난 모른다 농사 다 지어논 게니까 거둠세까지 네 손으로 해서 꼭꼭 챙겨놔야 삼동을 나지 동구를 벗어나오니 약간 일그러진 달이 아카시아 숲에 걸렸다 말복도 지난지 오래건만 아직도 바람은 무더웠다 천변에는 여기저기 동네 부인들이 보리밥 먹기에 흘린 땀을 들이고 아이들은 조약돌을 또닥또닥 두드린다 실개천 물소리도 제법 여물다 풀 숲에서 반딧불이 반짝이고 개구리 소리가 으슥히 어울리는 것이 역시 아직도 여름밤이다 수택은 빨래자리로 놓은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양치를 했다 아침 저녁으로 반죽한 치분으로만 닦아온 이가 물로만 웅얼웅얼 해서 뱉아도 입안이 환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는 삽을 질질 끌고 징검다리를 건너 논길로 들어섰다 광대 줄타듯 하던 논두덩도 어느새 평지처럼 평탄해진 것 같고 아랫종아리에 채이는 이슬이 생기있는 감촉을 준다 아스팔트를 거닐다가 상점에서 뿌린 물이 한 방울만 튀어도 시비를 걸던 일이 마치 옛날 꿈 같았다 이만하면 나도 농촌 제 1과는 마친 셈인가 구수한 풀내가 코를 통해서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그것이라고 느끼며 수택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려 본다 밤 이슬에 눅눅하니 젖은 셔츠에서도 차츰차츰 불쾌한 감촉이 없어져 간다 쫄쫄쫄 윗논배미서 아랫논으로 떨어지는 물꼬 소리에 금시 벼폭이 부쩍부쩍 살이 찌는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문학적인 감각 때문만이 아닌것 같다 여남은 다랑이 건너 도두룩한 밭 모롱이에서 누군지 단소를 처량스럽게 불고 있다 역시 물꼬 보는 사람이겠지 그 맞은편 아카시아가 몇 주 선 둔덕 원두막에서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술집 여인들이 놀러 나왔는지 여자들의 웃음 소리가 가끔 섞여 나온다 수택은 물꼬를 삥 한 번 둘러보고 원두막으로 어슬렁어슬렁 올라 갔다 발소리에 노랫소리가 뚝 그치며 누군지 소리를 딱 지른다 누구유 나요 어 서울 서방님이신가 그래 요샌 꼴지게가 등에 제법 붙든가 꺼르르 웃음이 터진다 시골 살면 그야말로 말소리에서도 흙내와 된장내가 나는 겐가 수택은 원두막 사닥다리를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내게선 언제부터나 흙냄새가 나려는고 분명히 울음 소리다 그도 여자의 아니 듣고 있을수록 그 울음 소리에는 귀가 익다 누굴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이 아주 띄었다 어느 땐지 멀리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뿐 어린 것들의 숨소리조차 고요하다 옆을 더듬어 보니 어린 것들만 만져지고 응당 그 옆에 누웠어야 할 아내가 없다 수택은 그대로 죽은 듯이 누워 눈에 정기를 모았다 또 울음 소리다 그것은 마치 앵금 줄을 긋는 듯 싶은 애절한 울음소리다 아내였다 여보 여보 대답 대신 울음 소리가 한층 높아 진다 그도 일어나서 아내의 옆으로 갔다 왜 그러오 말을 해야 알지 뉘가 뭐라 그럽디까 아뇨 그럼 어디가 아프오 또 말이 없다 말을 해야 알잖소 왜 그러오 설사가 나요 아내는 이 한 마디를 하고는 그대로 흑흑 느낀다 그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탁 터졌다 나이 삼십이 된 여자가 설사 난다구 자다 말구 일어나 앉아 운다 흐흐흐흐 설사가 자꾸자꾸 나니까 그렇지요 울음 반 말 반이다 그는 또 한 번 커다랗게 웃었다 그래 설사가 나면 약을 사다 먹든지 밥을 한끼 굶고서 하는데 아내는 그만둬요 당신처럼 무심한 이가 어딨어요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오던 날부터 설사 하구 눈이 퀭 하니 들어가도 일언반사가 없으니 그러기에 약을 사다 먹으랬지 내야 집에 붙어 있어야 알지 아내는 또 모를 소리를 한다 이렇게 나는 설사에 약이 무슨 소용이예요 밥을 갈아 먹어야지 그제야 수택은 설사 나는 원인을 눈치챘던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듣고 생각하니 자기도 오던 이튿날부터 설사가 났다 갑자기 물을 갈아 먹어 그려러니 했으나 며칠을 두고 설사가 계속되었다 실상은 아직까지도 소화가 그렇게 좋지는 못한 셈이었다 보리 끝이 자꾸 뱃속에 들어가서 장을 꼭꼭 찌르나봐요 필련이두 자꾸 배가 아프다고 저녁마다 한바탕씩 울고야 잠들어요 흥 창자두 흙내를 맡을 줄 알아야 할까보구나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직 살림 면모가 갖추어 지지도 못했고 여름에 따로 불을 때느니 밥만은 큰집에서 함께 먹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자니 시골에선 지금 이 철엔 꽁보리밥으로 신곡장을 대는 동안이다 쌀밥만 먹던 창자에 갑자기 깔깔한 보리쌀만 들어가니 문화생활만 해 오던 소화기가 태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 쌀을 좀 두어 달라지 사실 나두 늘 배가 쌀쌀 아팠는데 그걸 난 몰랐구려 야단나게요 아버님이 이번엔 또 창자를 거꾸로 달구 먹으라고 걱정하지 않으시겠어요 가랑이 속으로 경치를 본 이야기를 아내는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그만 자요 내 낼 아침에 아버님께 말씀해서 당분간은 쌀을 좀 섞어 먹도록 할테니까 그는 어린애를 달래듯 아내를 재웠다 추수만 끝나면 남편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데 유일한 희망을 붙이고 있는 줄을 알고 근 이십 일이나 설사를 하면서도 군말 한 마디 안했다는데 표시는 안했지만 여간 감격한 것이 아니었다 부디 그런 마음을 버리지 말라 했다 이튿날부터 쌀이 반은 섞여졌다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수택은 용기를 못 내고 필련이를 시켜 할아버지를 조르게 했던 것이다 할 수 없구나 그것들이 창자까지 사람 창잘 못 가졌으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시겠지 딸애는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재미나게 웃었다 그러나 쌀의 분량은 점점 줄어갔다 그 대신 보리가 늘었고 조가 뛰어 들었다 감자니 기장 같은 잡곡도 간혹 섞였다 하루 바삐 신곡이 나기를 기다리는것이 지금의 수택 부처와 어린애들에겐 유일한 낙이었다 이때부터 수택의 창작욕도 부쩍 늘어갔다 오래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서 매대기를 치던 어떤 장편소설의 상이 거의 가다듬어질 무렵에는 수택이가 물꼬를 매고 이듬매기를 해준 벼도 누렇게 익어갔다 집 앞 텃밭의 배추도 제법 자리를 잡고 토실토실 살쪄 갔다 사람이란 이렇게 욕심이 많은 겐가 싶었다 손이라야 몇 번 댄 곡식도 아니건만 야무지게 여문 벼알이며 배추 한폭에까지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한 그윽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깨알처럼 싀여진 원고지의 글자를 보는 때의 그 애정 그 감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년 내 피와 땀을 흘려야 벼 한 톨 얻어먹지 못하고 빈 손만 털고 일어나는 소작인들의그 애절해 하던 심정도 지금에서야 이해되는 것 같았고 매년 그러리라는 것을 빤히 내다 보면서도 그 농사를 단념하지 못하는 그네들의 심정도 이해되는 것 같았다 타작마당에서 벼 한 톨이라도 더 차지할 것을 전제로 할 애정 임에는 틀림 없겠지만 단지 그러한 의욕만으로 그처럼 이나 벼 한 폭 배추 한 잎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종이 값도 못되는 원고료를 전제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보는 동안에는 그러한 관념이 전혀 없이 그저 맹목적인 정열을 글자 한 자 한 자 마다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했다 애정이란 이해관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수택은 또 한 번 생각한다 이 애정 그것으로 인류는 살아가는 것이요 이 애정으로 도덕을 삼는 데서만 인류는 행복될 것이다 싶었다 아버지가 늘 말하던 소위 흙냄새와 된장내란 결국 이런 애정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대처사람들에게서는 흙냄새가 안 난다는 그 말은 곧 이 이해를 초월한 애정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언젠가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 도둑을 잡았다고 자기 아버지는 그를 때렸다 도둑질은 분명히 악이다 악을 제지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선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그리고 가져야 할 위대한 정신인 동시에 본능이다 이 선 이 본능에 대해서 그의 아버지는 지게작대기로서 예물했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도둑질을 악으로서 인정치 않는 것일까 하면 그렇지는 않다 흙 속에서 나서 흙과 같이 자라고 흙과 더불어 살아온 그에게는 포근포근한 흙의 감정과 김가고 이가고 정가고 간에 씨만 뿌려주면 길러주는 그러한 흙의 애정 속에서 살아온 그는 없어서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놈 보다도 흙의 냄새를 맡을 줄 모르고 흙의 애정을 유린한 철두철미 대처사람인 아들에게 보다 더 증오를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수택은 무서운 정열로 자기의 농작물을 사랑했다 그것은 자기의 작품을 사랑하던 그 정열이었다 문득 꺼칠해진 벼폭을 발견하고는 인쇄된 자기 작품에서 전후 뒤바뀐 귀절을 발견할 때와 똑 같이 놀랐다 그것은 그지없이 불쾌한 순간이었다 수택은 그대로 논으로 뛰어들었다 아랫동아리부터 벼폭이 노랗게 말라 든다 이삭은 알맹이 한 개 안 든 빈 쭉정이었다 격한 나머지 그는 벼폭을 잡고 나꾸었다 각충이란 놈이 밑 대궁에 진을 치고 보기 좋게 까먹은 것이었다 그는 삼십여 년의 반생 동안 이처럼 격한 일이 없었다 이만큼 어떤 물건이나 생물에 대해서 증오를 느껴 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자기 혈관 속에 이토록이나 잔인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처음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는 벼폭을 발기고 일일이 각충을 잡아냈다 그래서는 돌 위에다 놓고 짓찧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 처음으로 미움다운 미움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수택은 처음 고향에 돌아와서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디찬 것을 느꼈었다 말만 고향이지 눈에 익은 얼굴도 거의 없었다 파도에 밀린 뱃조각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어 태반은 타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때 그 차디찬 시선에 그는 일종의 반감까지 일으킨 일이 있었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그래도 자기 아버지가 아들에게 품고 있던 증오보다는 오히려 나은 것이었다 싶었다 그렇다 하루바삐 나도 대처 사람의 탈을벗고 흙과 친하자 그래서 흙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를 때 누군지 귀에다 대고 소리를 꽥 지른다 그것은 퇴화다 그것은 대처 사람인 또 다른 수택이었다 물방울 한 개만 튀어도 시비를 가리고 파리 한 마리에 상을 찡그리고 백화점에서 한 시간씩이나 넥타이틀 고르던 도회인의 반역이었다 퇴화 퇴화 좋다 아니 패배다 패배자의 역변이다 도시생활 문명사회에서 생활 경쟁에 진 패배자의 자위수단이다 그것은 아무것이든 좋다 그는 이렇게 발악을 했다 이렇게 마음의 투쟁은 날을 거듭할수록에 격렬해 갔다 수택이 자기의 피에는 흙의 전통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누르면 누를수록 문화에 주린 도회인의 반항은 억세갔다 포근포근한 흙을 밟는 평범한 감촉보다도 가죽을 통해서 오는 포도의 감촉이 얼마나 현대적인가 했다 그것은 마치 낡을 대로 낡은 지폐를 만질 때와 빠작 소리가 그대로 나는 손이 베어질 것 같은 새 지폐를 만질 때 감촉과의 차이와도 같았다 사람에게서나 자연에서나 입체적인 선의 미가 그리웠다 아니다 참자 흙과 친하자 수택은 벌떡 일어났다 참새떼가 와 하고 풍긴다 이 젊은 도회인이 도회의 환상에 사로잡힌 동안 참새떼들은 양양해서 벼 톨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여 우이 건너 다랑이로 옮겨 앉는 참새를 쫓으면서 논둑을 달렸다 참새떼는 적어도 수 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한 마리가 한 알씩만 까 먹었대도 수백 톨을 까 먹었을 것이다 그는 달리다 말고 벼 이삭에 눈을 주었다 누렇게 익은 벼폭들이 생기가 없다 그때 울컥하고 가슴에 치미는 것이 있다 증오였다 도시 생활에서 세련이 된 현대인의 증오였다 갖은 정성과 피와 땀으로 가꾼 곡식을 장난하듯 까 먹고 다니는 참새에 대한 증오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에 찬다 우여 우이 꼼짝도 않고 참새떼는 못 견디어 하는 이삭에 그대로 조롱조롱 매달렸다 그는 무서운 정열로 기관총을 사모했다 전쟁 영화에서 보듯이 한 번 빙 둘렀으면 톡톡 소리와 함께 소나기처럼 떨어질 참새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 도회인의 감각은 기분으로 나마 위안을 받은 것이었다 집에 도둑이 든 날 수택을 때릴때 아버지가 자기에게 느끼던 증오도 이런 것이었을까 한결 볕이 얇아졌다 벌레 소리도 훨씬 애조를 띠고 달빛도 감상을 띠었다 이 집 저 집에서 마당질 소리가 나고 밤이면 다듬이 소리도 여물어 갔다 수택의 집에서도 새벽부터 타작이 시작되었다 한 모로는 벼를 져 나르고 한 모에서는 때려라 소리를 연발하며 위세를 올렸다 한 모에서는 도급기가 붕붕 하고 돌아간다 여인네들의 치맛자락에서도 바람이 난다 수택도 벗어 붙이고 지게를 졌다 아직 다리는 허청거리나 그래도 대여섯 묶음씩 져 날랐다 이제는 그의 노동을 신성시 하는 사람도 없었고 동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명실공히 한 농부였다 서투른 낫질에 손가락을 두 개나 처맸지만 보는 사람도 그것을 큰 상처로 알지도 않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아내 역시 호미자루에 터진 손바닥이 아물지를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혼자 일어나 앉아 밤을 새어가며 울지는 않았다 아프니 자시니 했다가 그 말이 시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동정 대신에 핀잔을 맞을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끔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에게만 후하지 자식들 한테는 너무 박하다는 불평을 말하는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시인을 하는 정도로써 가라앉았다 사실 그 자신도 다소 심하지 않은가 하는 불평은 여러 번 품었었다 손에 익잖은 자식이 서투른 낫질을 하다가 손을 다치어도 먼저 핀잔부터 주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증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도 부리나케 볏단을 져 날랐다 이 볏단의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거의 전부가 낡아빠진 맥고모자를 뒤꼭지에 붙인 되바라진 젊은 친구의 손으로 넘어가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수택은 그것을 억지로 생각지 않으려 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 위인이 나와서 버티고 선 후로는 분명히 얼굴에 검은빛을 띠웠다 자식에게 그런 눈치를 안 보이려고 비상한 노력을 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엿보였다 수택도 아버지의 이 노력에 협조를 했다 도합 스물두 마지기에서 사십 석이 났다 사십 석에서 스물 닷 섬이 소작료로 제해졌다 사십 석에서 스물 닷 섬 열 닷 섬 그의 지식은 처음 긴요하게 쓰여 졌다 그러나 이 지식은 정확성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서 비료대로 한 섬 두 말이 제해졌고 아내와 아이들의 설사를 치료한 쌀값으로 장리변을 쳐서 열두 말이 떼였다 지세도 또 몇 말인지 떼였다 그는 말질을 하는 되강구가 바로 지주나 되는 것처럼 그의 손목이 미웠다 우루루 덤비어 되강구의 목덜미를 잡아 나꾸고 볏더미 속에다 처박고 싶은 충동을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었다 수택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옴팡하니 들어간 눈에서는 황혼을 뚫고 무시무시한 살기 띤 빛이 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방공연습을 할 때의 그 휘황한 몇 줄의 탐조등 광선을 연상하였다 김영감은 꼼짝도 않고 한 자리에 서 있었다 볏더미를 보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사음을 노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영감은 내년 이때까지 살아갈 길을 궁리하는 것이었다 자 짊어져라 수택은 깜짝 놀랐다 남은 벼 여남은 섬이 가마니에 채워졌다 전혀 자신은 없었으나 벼 이백 근을 못 지겠노란 말도 하기 싫어서 지겟발을 디밀었다 어차 옆에서는 벌써 지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도 엇차 소리를 쳤다 땅띰도 않는다 자 들어 줄께니 엇차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무릎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오금은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대로 똑 꺾인다 안되겠느니 다른 사람이 지라느니 이론이 분분하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 지기까지는 버티었다 이를 북북 갈며 기를 썼다 힘을 북 주었다 오금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리가 허청하며 모여 선 사람들의 저것 저것 소리를 귓결에 들으며 그대로 픽 한 쪽으로 넘어 가고 말았다 넘어간 순간 에이끼 천치자식 하는 김영감의 소리와 함께 빗자루가 눈앞에 휙 한다 머리에 동였던 수건이 벗겨졌다 나오게 내 짐세 나와 하는 누군지의 말을 영감의 호통같은 소리가 삼켰다 놔 두개 놔 둬 나이 사십이 된 자식이 벼 한 섬 못 지겠는가 져라 져 어서 일어나 그는 이를 악물고 또 힘을 북 주었다 오금이 번쩍 떴다 뒤뚝뒤뚝 몇 걸음 옮겨 놓는데 눈과 콧속이 화끈하며 무엇인지 흘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저 피 코필 쏟는군 내려 놓게 하는 동네 사람들 소리 끝에 놔들 두게 죄다 남이 피땀을 흘리구 지어논 농살 먹는 세상에 제 손으로 진 제 곡식을 못 져다 먹는 놈이 있단 말인가 놔들 두게 수택은 눈물과 코피를 확확 쏟아 가면서도 그래도 자꾸 걸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 빈처, 현진건,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현진건의 대표작 빈처입니다 1921년 문예지 개벽에 발표된 빈처는 현진건의 자전적 소설이지요 작가로 등단하기 전 그와 아내가 생활고를 겪으면서 서로 의지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단편입니다 그것이 어째 없을까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 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 하나가 남았는데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을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늘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최근 이년 동안에 돈 한푼 나는데 없고 그대로 앉아 굶을 수는 없어 기구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에 들여 밀거나 고물상 한구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다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건만 이슬을 실은 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비가 오는 까닭인지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비인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이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빌어먹을 것 되는 대로 되어라 나는 점점 견딜 수 없어 두 손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며 중얼거려 보았다 이 말이 더욱 처량한 생각을 일으킨다 나는 또 한번 후 한숨을 내쉬며 왼팔을 베고 책상에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 이 순간 오늘 지낸 일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늦게야 점심을 마치고 내가 막 궐련 한 개를 피워물 적에 한성은행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찾아왔다 친척은 다 멀지 않게 살아도 가난한 꼴을 보이기도 싫고 찾아갈 적마다 무엇을 꾸어 내라고 조르지도 아니하였건만 행여나 무슨 구차한 소리를 할까봐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여 나는 발을 끊었고 따라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다만 T는 촌수가 가까운 때문인지 자주 우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성실하고 공순하여 소소한 일들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이었다 동년배인 우리들은 늘 친척간에 비교거리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의 평판이 항상 좋지 못했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애는 돈 푼이나 모을 것이야 그러나 K는 아무짝에도 못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시러베 아들놈 이것이 그네들의 평판이었다 내가 문학인지 무엇인지 한다는 소리가 까닭없이 그네들의 비위에 틀린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네들의 생일이나 흑은 대사 때에 돈 한푼 이렇다는 일이 없고 T는 소위 착실히 돈벌이를 해 가지고 국수 밥 값이라도 보조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아니 되어 T는 잘 살 것이고 K는 거지가 될 것이니 두고 보아 오촌 당숙은 이런 말씀까지 하였다 한다 입 밖에는 아니 내어도 친부모 친형제까지도 심중으로는 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부모는 달라서 화가 나시면 네가 그러 하다가는 말경에 비렁뱅이가 되고 말 것이야 라고 꾸중은 하셔도 사람이라 늦복 모르는거다 그런 사람은 또 그렇게 되느니라 하시는 것이 스스로 위로하는 말씀이고 또 며느리를 위로하는 말씀이었다 이것을 보아도 하는 수 없는 놈이라고 단념을 하시면서 그래도 잘되기를 바라시고 축원하시는 것을 알겠다 여하간 이만하면 T의 사람됨을 가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우 리집에 올 때면 지어서 쾌활하게 웃으며 힘써 재미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단둘이 고적하게 그날 그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더 할 수 없이 반가웠었다 오늘도 그가 활발하게 집에 쑥 들어 오더니 신문지에 싼 기름 한 것을 이것 봐라하는 듯이 마루 위에 올려놓고 분주히 구두끈을 끄른다 이것은 무언가 내가 물었다 저어 제 처의 양산이예요 쓰던 것이 벌써 낡았고 또 살이 부러졌다나요 그는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벙글벙글 하면서 대답을 한다 그는 나의 아내를 돌아보며 돌연히 아주머니 좀 구경하시렵니까 하더니 싼 종이와 집을 벗기고 양산을 펴 보인다 흰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 놓은 양산이었다 검정이는 좋은 것이 많아도 너무 칙칙해 보이고 회색이나 누렁이는 하나도 그것이야 싶은 것이 없어서 이것을 산걸요 그는 이것보다도 더 좋은 것을 살수가 있다하는 뜻을 보이려고 애를 쓰며 이런 발명까지 한다 이것도 퍽 좋은데요 이런 칭찬을 하면서 양산을 펴들고 이리저리 흘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에는 나도 이런 것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역력히 보인다 나는 갑자기 불쾌한 생각이 와락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오며 아내의 양산 보는 양을 빙그레 웃고 바라보고 있는T에게 여보게 방에 들어오게그려 우리 이야기나 하세 T는 따라 들어와 물가 폭등에 대한 이야기며 자기의 월급이 오른 이야기며 주권을 몇주 사 두 었더니 꽤 이익이 남았다든가 각 은행 사무원 경기에서 자기가 우월한 성적을 얻었다든가 이런것 저런것 한참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T를 보내고 책상을 향하여 짓던 소설의 결미를 생각하고 있을 즈음 여보 아내의 떠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귀 곁에서 들린다 핏기없는 얼굴에 살짝 붉은 빛이 들며 어느결에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세요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에 번쩍이며 불쾌한 생각이 벌컥 일어난다 그러나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히 있었다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봐야지요 아내가 T의 양산에 단단히 자극을 받은 것이다 예술가의 처 노릇을 하려는 독특한 "결심이 있는 그는 좀처럼 이런 소리를 입밖에 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무엇에 상당한 자극을 받으면 참고 참았던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진 않으나 심사가 어쩐지 좋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동정심이 없지는 아니하되 동시에 불쾌한 생각을 억제키 어려웠다 잠깐 있다가 불쾌한 빛을 나타내며 급작스럽게 살 도리를 하라면 어찌 할 수가 있소 차차 될 때가 있겠지 아이구 차차갈 말씀 그만두구려 어느 천년에 아내의 얼굴에 붉은 빛이 짙어지며 전에 없던 홍분한 어조로 이런 말 까지 하였다 자세히 보니 두 눈에 은은히 눈물이 괴었다 나는 잠시 멍멍하게 있었다 성난 불길이 치받쳐 올라온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소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사나운 어조로 몰풍스럽게 소리를 떽 질렀다 어이휴 살짝 얼굴빛이 변해지며 어이없이 나를 보더니 고개가 점점 수그러지며 한 방울 두 방울 방울방울 눈물이 장판 위에 떨어진다 나는 이런 일을 가슴에 그리며 그래도 내일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옷을 찾는 아내의 심중을 생각해 보니 말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가을 바람과 같이 설렁설렁 심골을 문지르는 것 같다 쓸쓸한 빗소리는 굵었다 가늘었다 의연히 적적한 밤공기에 더욱 처량히 들리고 그을음 앉은 등피 속에서 비치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우는 듯 조는 듯 구차히 얻어 산 몇 권 양책의 표제 금자가 번쩍거린다 장 앞에 초연히 서 있던 아내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들릴 듯 말 듯 목안의 소리로 오호 옳지 참 그날 찾었소 아니예요 벌써 저 인천 사시는 형님이 오셨던 날 아내가 애써 찾던 그것도 벌써 전당포의 고운 먼지가 앉았구나 종지 하나라도 차근차근 아랑곳하는 아내가 그것을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 모르는 것을 한참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가슴이 어째 답답해지며 누구하고 싸움이나 좀 해 보았으면 소리껏 고함이나 질러 보았으면 실컷 맞아 보았으면 하는 이상한 감정이 부글부글 피어 오르며 전신에 이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 옷이 어째 몸에 끼이며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점점 구차한 살림에 싫증이 나서 못 견디겠지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그 거슴츠레 한 눈이 둥그래지며 네에 어째서요 무얼 그렇지 싫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이렇게 말이 오락가락함에 따라 나는 흥분의 도가 점점 짙어간다 그래서 아내가 떨리는 소리로 어째 그런 줄 아세요 하고 반문할 적에 나를 숙맥으로 알우 라고 격렬하게 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살짝 분한 빛이 눈에 비치어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괘씸하다는 듯이 흘겨 보며 그러면 그걸 모를까 오늘까지 잘 참아 오더니 인제는 점점 기색이 달라지는 걸 뭐 물론 그럴 만도 하지마는 이런 말을 하는 내 가슴에는 지난 일이 활동사진 모양으로 얼른얼른 나타난다 육 년 전 그때 나는 십육 세이고 저는 십팔 세였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지식에 목마른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 마시려고 표현히 집을 떠났었다 광풍에 나부끼는 버들잎 모양으로 오늘은 지나 내일은 일본으로 굴러 다니다가 금전의 탓으로 지식의 바닷물도 흠씬 마셔 보지도 못한 채 반 거뒤충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시집올 때에는 방글방글 피려는 꽃봉오리 같던 아내가 어느 겨를에 기울어 가는 꽃처럼 두 뺨에 선연한 빛이 스러지고 벌써 두어 금 가는 줄이 그리어 졌다 처가 덕으로 집간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 우리는 소위 살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냈었지만 한푼 나는 데 없는 살림이라 한 달 가고 두 달이 갈수록 점점 곤란해질 따름이었다 나는 보수없는 독서와 가치없는 창작으로 해가 지며 날이 새며 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망연케 몰랐다 그래도 때때로 맛있는 반찬이 상에 오르고 입은 옷이 과히 추하지 아니함은 전적으로 아내의 힘이었다 전들 무슨 벌이가 있으리요 부끄럼을 무릅쓰고 친가에 가서 눈치를 보아가며 구차한 소리를 하여 가지고 얻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장구한 세월에 어찌 늘 그럴수가 있으랴 말 경에는 아내가 가져온 세간과 의복에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잡히고 파는 것도 나는 아는 체도 아니하였다 그가 애를 쓰며 퉁명스러운 옆집 할멈에게 돈푼을 주고 시켰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나의 성공만 마음 속으로 깊이 깊이 믿고 빌었었다 어느 때에는 내가 무엇을 짓다가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쓰던 것을 집어 던지고 화를 내면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세요 저는 꼭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줄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차 잘될 근본 이야요 하고 그는 스스로 흥분되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하는 적도 있었다 내가 외국으로 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에 띠어 까닭없이 구식 여자가 싫어졌었다 그래서 나이 일찍이 장가든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 어떤 남학생과 어떤 여학생이 서로 연애를 주고받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공연히 가슴이 뛰놀며 부럽기도 하고 비감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낫살이 들어갈수록 그런 생각도 없어지고 집에 돌아와 아내를 겪어보니 의외로 그에게서 따뜻한 맛과 순결한 맛을 발견하였다 그의 사랑이야말로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헌신적 사랑이었다 이런 줄을 점점 깨닫게 될 때에 내 마음이 얼마나 행복스러웠으랴 밤이 깊도록 다듬이를 하다가 그만 옷입은 채로 쓰러져 곤하게 자는 그의 파리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하고 감격이 극하여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내 스스로 아다시피 내가 별로 천품은 없으나 어쨌든 무슨 저작가로 몸을 세워 보았으면 하여 나날이 창작과 독서에 전심력을 바쳤다 물론 아직 남에게 인정될 가치는 없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자연 일상 생활이 말유하게 되었다 이런 곤란에 그는 근 이 년 견디어 왔건만 나의 하는 일은 오히려 아무 보람이 없고 방안에 놓였던 세간이 줄어지고 장롱에 찼던 옷이 거의 다 없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 그다지 견딜성 있던 그도 요사이 와서는 때때로 쓸데없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손잡이를 잡고 마루 끝에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산만 바라보기도 하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실신한 사람 모양으로 멍청히 앉아 있기도 하였다 창경으로 비치게 어스름한 햇빛에 나는 흔히 그의 눈물머금은 근심어린 얼굴을 발견하였다 이런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들며 일없이 마누라 하고 부르면 그는 몸을 움칫하고 고개를 저리 돌리어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네에 네에 하고 울음에 떨리는 가는 대답을 한다 나는 등에 물을 끼얹는 듯 몸이 으쓱해지며 처량한 생각이 싸늘하게 가슴에 흘렀다 그러지 않아도 자비하기 쉬운 마음이 더욱 심해지며 내가 무자격한 탓이다 하고 스스로 멸시를 하고 나니 더욱 견딜 수 없다 그럴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는 아니해도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며 계집이란 할 수 없어 혼자 이런 불평을 중얼거렸다 환등처럼 하나씩 둘씩 이런 일이 가슴에 나타나니 무어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어졌다 나의 유일의 신앙자이고 위로자이던 처까지 인제는 나를 아니 믿게 되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네가 육 년 동안 내 살을 깎고 저미었구나 이 원수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매 그의 불같던 사랑까지 없어져 가는 것 같았다 낸들 마누라를 고생시키고 싶어서 시키겠소 비단 옷도 해주고 싶고 좋은 양산도 사주고 싶어요 그러길래 온종일 쉬지 않고 공부를 아니하우 남 보기에는 편편히 노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본들 모른단 말이오 나는 점점 강한 가면을 벗고 약한 진상을 드러내며 이와같은 가소로운 변명까지 하였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비소하고 모욕하여도 상관이 없지만 마누라까지 나를 아니 믿어 주면 어찌 한단 말이오 내 말에 스스로 자극이 되어 가지고 마침내 아아 길이 탄식을 하고 그만 쓰러졌다 이 순간에 고개를 숙이고 아마도 하염없이 입술만 물어뜯고 있던 아내가 홀연 여보 울음소리를 떨면서 무너지듯이 내 얼굴에 쓰러진다 용서 하고는 복받쳐 나오는 울음에 말이 막히고 불덩이 같은 두 뺨이 내 얼굴을 누르며 흑흑 느끼어 운다 그의 두 눈으로부터 샘 솟듯 하는 눈물이 제 뺨과 내 뺨 사이를 따뜻하게 젖어 퍼진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 내린다 뒤숭숭하던 생각이 다 이 뜨거운 눈물에 봄눈 슬듯 스러지고 말았다 한참 있다가 우리는 눈물을 씻었다 내 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몰랐다 용서하여 주세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정 몰랐어요 이런 말을 하는 아내는 눈물에 부어 오른 눈꺼풀을 아픈 듯이 꿈적거린다 암만 구차하기로 싫증이야 날까요 가만가만히 변명을 하는 아내의 눈물 흔적이 어릉어룽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겨우 심신이 가뜬하였다 어제 일로 심신이 피곤하였는지 그 이튿날 늦게야 잠을 깨니 간밤에 오던 비는 어느 결에 그쳤고 명랑한 햇발이 미닫이에 높았다 아내가 다시금 장문을 열고 잡힐 것을 찾을 즈음에 누가 중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가 누군가하고 귀를 기울일 적에 밖에서 아씨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급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처가에서 부리는 할멈이었다 오늘이 장인 생신이라고 어서 오라는 말을 전한다 오늘이야 참 옳지 오늘이 이월 열엿새 날이지 나는 깜박 잊었어 원 아씨는 딱도 하십니다 어쩌면 아버님 생신을 잊는단 말씀이야요 아무리 살림이 재미가 나시더래도 시큰둥한 할멈은 선웃음을 쳐가며 이런 소리를 한다 가난한 살림에 골몰하느라고 자기 친부의 생신까지 잊었는가 함에 정지가 더욱 측은하였다 오늘이 본가 아버님 생신이래요 어서 오시라는데 어서 가구려 당신도 가셔야 나는 처가에 가기가 매우 싫었었다 그러나 아니 가는 것도 내 도리가 아닐 듯하여 하는 수 없이 두루마기를 입었다 아내는 머뭇머뭇하며 양미간을 보일 듯 말 듯 찡그리다가 곁눈으로 살짝 나를 엿보더니 돌아서서 급히 장문을 연다 흥 입을 옷이 없어서 망설거리는구나 나도 슬쩍 돌아서며 생각하였다 우리는 서로 등지고 섰건만 그래도 아내가 거의 다 빈 장안을 들여다보며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눈살을 찌푸린 양이 눈 앞에 선연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아 가세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아내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내는 당목옷으로 갈아 입고 내 마음을 알았던지 나를 위로하는 듯이 방그레 웃는다 나는 더욱 쓸쓸하였다 우리집은 천변 배다리 곁이었고 처가는 안국동에 있어 그 거리가 꽤 멀었다 나는 천천히 가노라 하고 아내는 속히 오느라고 오건만 그는 늘 뒤떨어졌다 내가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그는 늘 멀리 떨어져 나를 따라 오려고 애를 쓰며 주춤주춤 걸어온다 길가에 다니는 어느 여자를 보아도 거의 다 비단옷을 입고 고운 신을 신었는데 당목옷을 허술하게 차리고 청록당혜로 타박타박 걸어오는 양이 나에게 얼마나 애연한 생각을 일으켰는지 한참만에 나는 넓고 높은 처갓집 대문에 다다랐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적에 낯선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본다 그들의 눈에 이 사람이 누구인가 아마 이 집 하인인가 보다 하는 경멸히 여기는 빛이 있는 것 같았다 안 대청 가까이 들어오니 모두 내게 분분히 인사를 한다 그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는 어째 비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욕하는 것 같기도 하여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후끈거린다 그 중에 제일 내게 친숙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내보다 삼년 맏이인 처형이었다 내가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므로 그때 그는 나를 못견디게 시달렸다 그때는 그게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하더니 지금 와서는 그때 그러한 것이 도리어 우리를 무관하고 정답게 만들었다 그는 인천 사는데 자기 남편이 기미를 하여 가지고 이번에 돈 십만 원이나 착실히 땄다 한다 그는 자기의 잘 사는 것을 자랑하고자 함인지 비단을 내리감고 얼굴에 부유한 태가 질질 흐른다 그러나 분으로 숨기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눈 위에 퍼렇게 멍든 것이 내 눈에 띄었다 왜 마누라는 어쩌고 혼자 오세요 그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하다가 중문편을 바라보더니 그러면 그렇지 동부인 아니하고 오실라구 혼자 주고받고 한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슬쩍 돌아다 보니 아내가 벌써 중문 앞에 들어섰다 그 수척한 얼굴이 더욱 수척해 보이며 눈물 괸 듯한 눈이 하염없이 웃는다 나는 유심히 그와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분간을 못 할 만큼 그들의 얼굴은 흡사하다 그런데 얼굴빛은 어쩌면 저렇게 틀리는지 하나는 이글이글 만발한 꽃같고 하나는 시들시들 마른 낙엽같다 아내를 형이라고 해도 믿겠다 딴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아니하고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셨다 그래도 바늘 방석에 앉은 것처럼 앉아 견딜 수가 없다 집에 가려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골치가 띵하며 내가 선 방바닥이 마치 폭풍에 노도하는 파도 같이 높았다 낮았다 어찔어찔해서 곧 쓰러질 것 같다 이 거동을 보고 장모가 황망히 일어 서며 술이 저렇게 취해 가지고 어데로 갈라구 여기서 한잠 자고 가게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아니예요 집에 가겠어요 취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를 어쩌나 장모는 걱정을 하시더니 할멈 어서 인력거 한 채 불러 오게 한다 취중에도 인력거를 태우지 말고 삯을 나를 주었으면 책 한 권을 사 보련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력거를 타고 얼마 안 가 그만 잠이 들었다 한참 자다가 잠을 깨어 보니 방안에 벌써 남포불이 켜 있는데 아내는 어느결에 왔는지 외로이 앉아 바느질을 하고 화로에서는 무엇이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하였다 아내가 나의 잠깬 것을 보더니 급히 화로에 얹힌 것을 만져 보며 인제 그만 일어나 진지를 잡수세요 하고 부리나케 일어나 아랫목에 파묻어둔 밥 그릇을 꺼내어 미리 차려 둔 상에 얹어서 내 앞에 갔다 놓고 일변 화로를 당기어 더운 반찬을 집어 얹으며 자아 어서 일어나세요 한다 나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부시시 일어났다 머리가 오히려 아프며 목이 몹시말라서 국과 물을 연해 들이켰다 물만 잡수셔서 어째요 진지를 좀 잡수셔야지 아내는 이런 근심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서 고기도 뜯어 주고 생선 뼈도 추려 주었다 이것은 다 오늘 처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는 맛나게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내 밥상이 나자 아내가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면 지금껏 내 잠 깨기를 기다리고 밥을 먹지 아니 하였구나 하고 오늘 처가에서 본 일을 생각하였다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 듯 했던 것이 어제 일이 있은 후로 그 벽이 점점 엷어져 가는 듯하며 가엾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일어 났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 장인 생신 잔치로부터 처형 눈 위에 멍든 것에 옮겨갔다 처형의 남편이 이번 그 돈을 딴 뒤로는 주야로 요리점과 기생집에 돌아 다니더니 얼마 전 어떤 기생을 얻어 가지고 미쳐 날뛰며 집에만 들면 집 안 사람을 들볶고 걸핏하면 처형을 친다 한다 이번에도 별로 대단치 않은 일에 처형에게 밥상으로 냅다 갈겨 바로 눈 위에 그렇게 멍이 들었다 한다 그것 보아 돈푼이나 있으면 다 그런 것이야 정말 그래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야요 아내는 충심으로 공명해 주었다 이 말을 들으며 마음 속으로 옳다 그렇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행복하다 하였다 이틀 뒤 해 어스름에 처형은 우리집에 놀러 왔다 마침 내가 정신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쓸쓸하게 닫혀 있는 중문이 찌긋둥하며 비단 옷 소리가 사오락사오락 들리더니 아랫목은 내게 빼앗기고 웃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가 문을 열고 나간다 아이고 형님 오셔요 아내의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처형이 계집 하인에게 무엇을 들리고 들어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날 매우 욕을 보셨죠 못 잡숫는 술을 무슨 짝에 그렇게 잡수세요 그는 이런 인사를 하다가 급작스럽게 계집 하인이 든 것을 빼앗더니 신문지로 싼 것을 끄집어 내어 아내를 주며 내 신 사는데 네 신도 한 켤레 샀다 그날 청록당혜를 말을 하려다가 나를 곁눈으로 흘끗 보고 그만 입을 닫친다 그것을 왜 또 사셨어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을 들이며 아내가 치사하는 것도 들은 체 만체 하고 처형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 적에 사랑방 양반을 졸라서 돈 백 원을 얻었겠지 그래서 오늘 종로에 나와서 옷감도 바꾸고 신도 사고 그는 자랑과 기쁨의 빛이 얼굴에 퍼지며 싼 보를 끌러 이런 것이야 하고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자세히는 모르나 여하간 값 많은 품 좋은 비단인 듯하다 무늬 없는 것 무늬 있는 것 회색 초록색 분흥색이 갖가지로 윤이 흐르며 색색이 빛이 나서 나는 한참 황홀하였다 무슨 칭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참 좋은 것인데요 이런 말을 하다가 나는 또 쓸쓸한 생각이 일어난다 저것을 보는 아내의 심중이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문득 일어남이라 모두 좋은 것만 골라 사셨네요 아내는 인사를 차리느라고 이런 칭찬은 하나마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처형은 자기 남펀의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 밉살스럽다는 둥 그 추근추근하다는 둥 말 끝마다 자기 남편의 불미한 점을 들다가 문득 이야기를 끊고 일어선다 왜 벌써 가시려고 하셔요 모처럼 오셨는데 반찬은 없어도 저녁이나 잡수세요 하고 아내가 만류하니 아니 곧 가야지 오늘 저녁 차로 떠날 것이니까 가서 짐을 매어야지 아직 차 시간이 멀었어 아니 그래도 정거장에 일찍이 나가야지 만일 기차를 놓치면 오죽 기다리실라구 벌써 오늘 저녁 차로 간다고 편지 까지 했는데 재삼 만류함도 돌아보지 않고 그는 흘흘이 나간다 우리는 그를 보내고 방에 들어왔다 그까짓 것이 기다리는데 그다지 급급히 갈 것이 무엇이야 아내는 하염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옷감 봐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니 하여도 물질의 만족만 얻으면 그짓으로 기뻐하고 위로하는 그의 생활이 참 가련하구먼 하였다 참그런가 봐요 아내도 웃으며 내 말을 받는다 이때에 처형이 사준 신이 그의 눈에 띄었는지 아니면 나를 꺼려 보고 싶은 것을 참았는지 그것을 집어 들고 조심조심 펴 보려다 말고 머뭇머뭇한다 그 속에 그를 해케 할 무슨 위험품이나 든 것같이 어서 펴 보구려 아내는 이 말을 듣더니 작히 좋으랴 하는 듯이 활발하게 싼 신문지를 헤친다 퍽 이쁜 걸요 그는 근일에 드문 기쁜 소리를 치며 방바닥 위에 사뿐 내려놓고 버선을 당기며 곱게 신어 본다 어쩌면 이렇게 맞어요 연해연방 감사를 부르짖는 그의 얼굴에 혼연한 희색이 넘쳐 흐른다 묵묵히 아내의 기뻐하는 양을 보고있는 나는 또 다시 여자란 할 수 없어 하는 생각이 들며 조심하였을 따름이다 함에 밤빛같은 검은 그림자가 가슴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면 아까 처형의 옷감을 볼 적에도 물론 마음 속으로는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다만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을 따름이다 겨우 어서 펴 보구려 하는 한 마디에 가슴에 숨겼던 생각을 속임없이 나타내는구나 하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저는 모르고 새신 신은 발을 쳐들며 신 모양이 어때요 매우 이뻐 겉으로는 좋은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마음은 쓸쓸하였다 내가 제게 신 한 켤레를 사 주지 못하여 남에게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거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처형이 동서를 밉다거니 무엇이니 하면서도 기차를 놓치면 남편이 기다릴까 염려하여 급히 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도 알 수 있다 부득이 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 마는 기실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날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났다 어느 때라도 제 은공을 갚아줄 날이 있겠지 나는 마음을 좀 너그러이 먹고 이런 생각을 하며 아내를 보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다 네에 아내는 제 귀를 못 미더워하는 듯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하고 힘있게 말하였다 정말 그럴 것 같아 그러믄요 그렇고말고요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무명 작가인 나를 저 하나만 깊이깊이 인정해준다 그러길래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참아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마음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 팔로 덥석 아내의 허리를 잡아 내 가슴에 바싹 안았다 그 다음 순간에는 뜨거운 두 입술이 그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물끓듯 넘쳐흐른다

[책 읽어주는 여자] 감자, 김동인,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동인의 감자입니다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감자는 간결한 문체로 사건의 경과만을 철저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제시한 자연주의 소설입니다 싸움 간통 살인 도둑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 이 위에 드는 농민 이었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 년이나 위인데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 마지막에 복녀를 산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 밭깨나 얻어주면 종자나 뿌려둔 뒤에는 후치질도 안하고 김도 안 매고 그냥 버려두었다가는 가을에 가서는 되는 대로 거두어서 금년은 흉년이네 하고 전주집에는 가져도 안가고 자기 혼자 먹어버리고 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한밭을 이태를 연하여 붙여본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그 동네에서는 밭을 못 얻으리 만큼 인심과 신용을 잃고 말았다 복녀가 시집을 온 뒤 한 삼사 년은 장인의 덕으로 이렁저렁 지내갔으나 이전 선비의 꼬리인 장인도 차차 사위를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가에까지 신용을 잃게 되었다 그들 부처는 여러 가지로 의논하다가 하릴없이 평양 성 안으로 막벌이로 들어왔다 그러나 게으른 그에게는 막벌이나마 역시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연광정에 가서 대동강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찌 막벌이인들 될까 한 서너 달 막벌이를 하다가 그들은 요행 어떤 집 행랑 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 하여 쫓겨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 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가지고 남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벳섬 좀 치워달라우요 남 졸음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이십 년이나 밥 처먹구 그걸 못치워 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 이년 뭘 이러한 싸움이 그치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집에서도 쫓겨나왔다 이젠 어디로 가나 그들은 하릴없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리어오게 되었다 칠성문 밖을 한 부락으로 삼고 그곳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업은 거러지요 부업으로는 도둑질과 자기네끼리의 매음 그밖에 이 세상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죄악이었었다 복녀도 그 정업으로 나섰다 그러나 열 아홉 살의 한창 좋은 나이의 여편네에게 누가 밥인들 잘 줄까 젊은 거이 거랑은 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거니 어쩌거니 핑계는 대었지만 그런 핑계에는 단련된 평양 시민의 동정은 역시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드는 편이었었다 그 가운데서 잘 수입되는 사람은 하루에 오리짜리 돈 만으로 일원 칠팔십 전의 현금을 쥐고 돌아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극단으로 나가서는 밤에 돈벌이 나갔던 사람이 그날 밤 사 백 여 원을 벌어 가지고 와서 그 근처에서 담배장사를 시작한 사람까지도 있었다 복녀는 열 아홉 살이었었다 얼굴도 그만하면 빤빤하였다 그 동네 여인들이 보통 하는 일을 본받아서 그도 돈벌이 좀 잘하는 사람의 집에라도 간간 찾아가면 매일 오륙십 전은 벌 수가 있었지만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냈다 굶는 일도 흔히 있었다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끓었다 그때 평양 부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데 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 부로 쓰게 되었다 빈민굴 여인들은 모두 다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 명 쯤이었었다 복녀도 그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 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사이에 차고 하였다 하루에 삼십이 전 씩의 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엿새 하는 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부 한 여나믄 사람은 언제나 송충이는 안 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품삯은 일하는 사람의 삯전보다 팔 전이나 더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감독은 한 사람뿐이었는데 감독도 그들이 놀고 있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때때로는 자기까지 섞여서 놀고 있었다 어떤 날 송충이를 잡다가 점심 때가 되어 나무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 감독이 그를 찾았다 복네 얘 복네 왜 그릅네까 그는 약통과 집게를 놓고 뒤로 돌아섰다 좀 오나라 그는 말없이 감독 앞에 갔다 얘 너 음 데 뒤 좀 가보자 뭘 하례요 글쎄 가야 가디요 형님 그는 돌아서면서 인부들 모여 있는데로 고함쳤다 형님두 갑세다가례 싫다 얘 둘이서 재미나게 가는데 내가 무슨 맛에 가갔니 복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면서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가보자 감독은 저편으로 갔다 복녀는 머리를 수그리고 따라갔다 복네 갔구나 뒤에서 이러한 조롱 소리가 들렸다 복녀의 숙인 얼굴은 더욱 발갛게 되었다 그날부터 복녀도 일 안하고 품삯 많이 받는 인부 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아직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이 하는 짓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어디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 일본말로 하자면 삼 박자같은 좋은 일은 이것뿐이었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이 된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 뒤부터는 그의 얼굴에는 조금씩 분도 바르게 되었다 일년이 지났다 그의 처세의 비결은 더욱 더 순탄히 진척되었다 그의 부처는 이제는 그리 궁하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이것이 결국 좋은 일이라는 듯이 아랫목에 누워서 벌신벌신 웃고 있었다 복녀의 얼굴은 더욱 이뻐졌다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 복녀는 돈 좀 많이 벌은 듯한 거지를 보면 이렇게 찾는다 오늘은 많이 못 벌었쉐다 얼마 도무지 열 서너 냥 많이 벌었쉐다가레 한 댓 냥 꿰주소고레 오늘은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 난 원 이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더라 자 꿰주디 그대신 응 알아있디 난 몰라요 해해해해 모르믄 안 줄 테야 글쎄 알았대두 그른다 그의 성격은 이만큼까지 진보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 밭에 감자며 고구마 배추를 도둑질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잣개나 잘 도둑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도둑질 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중국인 왕 서방이었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집에 가 왕 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믄 가디 훤 것두 못 갈까 복녀는 엉덩이를 한번 홱 두른 뒤에 머리를 젖기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 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네 아니야 복녀는 홱 돌아서보았다 거기는 자기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 형님두 들어갔댔쉐까 님자두 들어갔댔나 형님은 뉘 집에 나 눅서방네 집에 님자는 난 왕 서방네 형님 얼마 받았소 눅 서방네 그 깍쟁이 놈 배추 세 페기 난 삼원 받았디 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십 분쯤 뒤에 그는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원을 내어놓은 뒤에 아까 그 왕 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 뒤부터 왕 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 한참 왕 서방이 눈만 멀찐멀찐 앉아 있으면 복녀의 남편은 눈치를 채고 밖으로 나간다 왕 서방이 돌아간 뒤엔 그들 부처는 일원 혹은 이원을 가운데 놓고 기뻐하고 하였다 복녀는 차차 동네 거지들한테 애교를 파는 것을 중지하였다 왕 서방이 분주하여 못 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 왕 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 복녀의 부처는 이제 이 빈민굴의 한 부자였었다 그 겨울도 가고 봄이 이르렀다 그때 왕 서방은 돈 백원으로 어떤 처녀를 하나 마누라로 사오게 되었다 흥 복녀는 다만 코웃음만 쳤다 복녀 강짜하갔구만 동네 여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면 복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웃고 하였다 내가 강짜를 해 그는 늘 힘있게 부인하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생기는 검은 그림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놈 왕 서방 네 두고 보자 왕 서방이 색시를 데려오는 날이 가까왔다 왕 서방은 아직껏 자랑하던 길다란 머리를 깎았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마침내 색시가 오는 날이 이르렀다 칠보단장에 사인교를 탄 색시가 칠성문 밖 채마 밭 가운데 있는 왕 서방의 집에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왕 서방의 집에는 중국인들이 모여서 별한 악기를 뜯으며 별한 곡조로 노래하며 야단하였다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 서서 눈에 살기를 띠고 방안의 동정을 듣고 있었다 다른 중국인들이 새벽 두시쯤 하여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복녀는 왕 서방의 집 안에 들어갔다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워 있었다 신랑 신부는 놀라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것을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는 왕 서방에게 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웃음이 흘렀다 자 우리집으로 가요 왕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눈만 정처 없이 두룩두룩 하였다 복녀는 다시 한번 왕 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 우리 오늘 밤 일이 있어 못 가 일은 밤중에 무슨 일 그래두 우리 일이 복녀의 입에 아직껏 떠돌던 이상한 웃음은 문득 없어졌다 이까짓 것 그는 발을 들어서 치장한 신부의 머리를 찼다 자 가자우 가자우 왕 서방은 와들와들 떨었다 왕 서방은 복녀의 손을 뿌리쳤다 복녀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섰다 그가 다시 일어섰을 때는 그의 손에 얼른얼른 하는 낫이 한 자루 들리어 있었다 이 되놈 죽에라 이놈 나 때렸디 이놈아 아이구 사람 죽이누나 그는 목을 놓고 처울면서 낫을 휘둘렀다 칠성문 밖 외따른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왕 서방의 집에서는 일장의 활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활극도 곧 잠잠하게 되었다 복녀의 손에 들리어 있던 낫은 어느덧 왕 서방의 손으로 넘어가고 복녀는 목으로 피를 쏟으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다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무덤으로 못 갔다 왕 서방은 몇 번을 복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복녀의 남편도 때때로 왕 서방을 찾아갔다 둘의 사이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 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 의사 왕 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 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