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현진건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한박자 쉬어 가는 곳 피어 노벨라예요 노벨라가 읽어드리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들으시면서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 인력거꾼 김첨지에겐 오랫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곳도 문 밖은 아니지만 문 안에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해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전 둘째 번에 오십전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은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란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밥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는 아니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나 충실했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기는 커녕 옆으로 눕지 못하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싶다 병이 이토록 심해지기는 열흘전에 조밥을 먹고 체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랫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그의 아내가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만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까 처박질하더니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괴로와했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조랑복은 어쩔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질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로 돌아 왔건만 이슬이 맺혔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했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조밥도 못 먹는 주제에 설렁탕은 또 처먹고 눈 돌아가게 라고 야단을 쳤지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세살먹이 개똥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주머니가 다 된 목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지는 보자마자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이 겨울방학이라 귀향하려는 것이겠지 오늘 가기로 작정은 했으나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 첨지를 보고 뛰어나온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 질질 끌고 비록 낡은 양복일망정 비를 온통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겠는가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했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그만 만족 했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때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겼다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름을 받았을 때 환자는 뼈만 남은 얼굴에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집에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했다 그때에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따 젠장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정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자는 말을 들은 순간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했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랐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제이의 행운이 겹친 것보다도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생각했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올시다 릿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렇게 진날은 좀 더 주셔야지요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했다 달음질을 한다기보단 거의 나는 듯했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구르는게 아니라 마치 얼음을 지쳐 나가는 스케이트 처럼 미끄러져 가는 듯했다 언 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했지만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가 무거워 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 자기를 노리는 듯했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시우 기차 놓치겠구먼 인력거에 탄 학생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김첨지는 또 다시 달음질했다 집이 차차 멀어 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했다 다리를 빨리 놀려야만 쉴새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랄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손에 쥐어보니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 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안 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쇼 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밖이었다 노동으로 흐른 땀이 식자 굶주린 창자에서 또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시작하니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지 절절히 느껴졌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 이 비를 맞으면서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가야 한담 에이 빌어먹을 비가 왜 남의 상판 을 팍팍때려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 게걸 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으니 그것은 이러고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쌀이 무서우니 정거장 바로 앞에 섰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에도 여러 번 해 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 앞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지게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했다 얼마가 지나 기차가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는 김첨지의 눈엔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아니면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만지가 한참 동안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거의 구걸하는 거지처럼 연해연방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가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손을 댔다 왜 이래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전차가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처 타지 못한 손님 하나가 있었다 굉장히 큰 가방을 들고 있는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 안에 짐이 크다고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다가갔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면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면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 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며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인 듯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방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가지고 이 진땅에 어찌 가노 라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할 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했다 흐리고 비 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 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췄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 갈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고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을 마주 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이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했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폈다 그 모습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 다고 구해 다고 하는 듯했다 그때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그의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은 주홍이 덧는 듯하고 온 턱과 뺨이 시커멓게 구레나룻으로 덮여서 노르탱탱한 얼굴에 바짝 말라 여기저기 고랑이 패고 수염도 턱밑에만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와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네 문안에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테니 한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집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했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이나 되는 듯 고맙기도 했다 자네는 벌써 한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오늘 재미가 좋아 보이 김첨지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아따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웬 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생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했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때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구 제육 간 콩팥 북어 빈대떡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한다면 거기 있는 모든 음식을 깡그리 집어 삼켜도 시원치 않겠지만 우선은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했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했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켜고 말았다 셋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때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워낙에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했다 계속해서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했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어라 했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는데 돈이 사십 전일세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다구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 치며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됨직한 빡빡머리에게 이놈아 왜 술을 안 부어 하고 야단을 쳤다 빡빡이는 희희 웃으며 치삼에게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 내며 이런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아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그는 허리춤을 훔칫훔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그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은전 몇 푼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 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며 더욱 성을 낸다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갑자기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들의 눈은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렸다 그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님을 태우고 정거장에 가질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마님인지 여학생 이신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 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홱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같은 소리를 냈다 모두들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처신도 없지 허허허 웃음 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들이 사라도 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난리를 피우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계속 코를 들이마시면서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엣기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진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살아만 있다구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자네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마냥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는데 치삼이도 불안을 느낀 듯 김첨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화를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 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 어치를 채워서 곱배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에다 또 집 전체를 세든 것도 아니고 안채에서 뚝 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 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때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을 것이다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아니 깨뜨린다기 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른지 모른다 어쩌면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런 난장맞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느낌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떨어진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자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 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년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하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했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 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 했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 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봐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거 봐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이봐 죽은게야 왜 말이 없어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로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알이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장만 보느냐구 응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였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셨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ASMR] 짧은 소설 읽어주는 사람 | The Giving Tree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옛날 옛적에 나무가있었습니다 나무가 사랑하는 소년이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몸통을 위로 올라가서 가지에서 휘두르고 사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숨바꼭질을 할 것입니다 그는 피곤했을 때 나무 그늘에서 자곤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나무를 가지고 놀 수 없었습니다

나무는 그 소년이 어렸을 때와 같이 놀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소년은 말했다 "아니오, 너무 커졌기 때문에" 몇 년 후, 그 소년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사과를 모아서 옮겼습니다 몇 년 후 소년은 가지를 잘라 집을지었습니다

소년은 배를 타고 항해를 떠나고 나무는 소년에게 줄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도망 갔다 그리고 그 소년은 할아버지가되었고 나무는 쉴 곳을 제공했습니다 나무는 행복했다 나무는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남은 게 없어 난 그냥 오래된 그루터기 미안 해요" 옛날 옛적에 나무가있었습니다 나무가 사랑하는 소년이있었습니다

동백꽃 김유정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 한편 뚝딱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이 오늘 이야기예요 작가 김유정의 고향은 강원도여서 그의 작품에는 강원도 방언이 자주 나오는데요 오늘 이야기의 제목인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의 강원도 방언이랍니다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으면 알싸한 생강 향기가 나고 꽃에서도 그 향기가 난다고 해요 옛날 여인들이 동백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동백기름을 머리에 발랐는데요 강원도는 동백나무가 자랄 환경이 안 되어서 생강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내서 동백기름 대신 썼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동백나무 또는 동박나무랍니다 노란 동백꽃 그 알싸한 향기가 나는 이야기 김유정의 동백꽃 함께 들어보세요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겼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가려고 나올 때였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야단스럽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 놈이 또 엉겨붙었다 대강이가 크고 꼭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점순네 수탉이 덩치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거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면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 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고놈의 기집애가 요새 들어서 왜 나를 못 잡아먹어 고렇게 아르릉 거리는지 참 모를 일이다 나흘 전 감자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건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건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야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쓸데 없는 수작을 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안하고 서로 만나도 본체만체 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자기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걸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냐 내가 이렇게 내뱉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했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자기 집 쪽을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 속에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내 턱밑으로 불쑥 내민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내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 있는거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은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지 거의 삼년째가 되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점순이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 진 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엔 눈물까지 어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횡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가 동네 어른이 너 얼른 시집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간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내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질게 후려 쌔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먹는 게 실례라면 주면 그냥 주지 니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지 않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기 때문에 늘 굽신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왔을 때 집이 없어 곤란하게 지낼 때 집터를 빌리고 또 그 위에 집을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네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없을거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우리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 하고 일을 저질렀다간 점순네가 노할 거고 그럼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그런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거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였다 나무를 한 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어디서 닭이 죽는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타리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씨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게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만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거다 난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지만 사방을 한번 휘둘러 보고나서야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알았다 잡은 참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냐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하지만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그대로 의젓하게 앉아서 제 닭 가지고 하듯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거다 이러는 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맞춰서 미리부터 닭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네 보라는 듯 내 앞에서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의 집에 뛰어 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서 닭이 맞을 때마다 지게 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벼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거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에이그 더럽다 더러워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횡하고 돌아내리는데 이 서슬에 놀란 암탉이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지똥을 찍 갈긴다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이 단단히 든 듯싶다 나는 약이 오를대로 올랐는데 점순인 나의 등을 향해서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야 너 배냇병신이지 거기까진 참을만 했으나 야 니 아버지가 고자라며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라구 할 양으로 열딱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려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 오는데 아까한 그욕을 울타리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꾸 한 마디 못한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여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 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만들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잇속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서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고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의 반 접시 정도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바로는 용을 못쓸 테니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횃속에다 가두어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안에서 헌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 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엉켜붙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이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 드득 푸드득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 뿐 그럴듯하게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면서 면두를 쪼았다 큰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면서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까 그제서는 억세고 사나운 그 대강이 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때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타리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눈쌀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하고 머리끝까지 신이 뻐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난 넋이 풀려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닭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도 못하고 막 곯는다 이번엔 점순이가 깔깔거리면서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해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도무지 먹질 않는다 나는 할 수 없이 닭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렸다 그리고 고추장 물을 타서 그 구멍 으로 조금씩 들여 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지만 난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 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 물을 먹이고 나서 난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오늘도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았으니 이 망할 계집애가 틀림없이 우리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였다 소나무 삭정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확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쳐 줘야 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췄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려 있다 그 틈에 끼어 앉아 점순이가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란 건 고 앞에서 또 푸드득 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를 약을 올리려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이 틀림없다 난 약이 오를 대로 올라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 막대기를 뻗치고 허둥 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내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이었다 닭도 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지만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그 눈깔이 꼭 여우 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달려드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뉘 집 닭인데 하며 배를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으론 일을 저질렀으니 이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게 될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떨결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너 다음부턴 안 그럴거니 하고 물을 때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우선 눈물을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지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했다 다음에 또 그래 봐 내가 계속 못살게 굴 테니까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거야 닭 죽은 건 염려 마 내가 안 이를 테니까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내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 온 정신이 고만 아찔했다 너 암말 말어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이효석의 뽕, 1/2,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피어 노벨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나도향의 대표작 세 개를 꼽는다면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그리고 뽕을 들 수 있겠죠 사실주의 경향으로 씌여진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로 평가받는 나도향의 뽕 영화 뽕을 보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만큼은 다 잊으시고 새로운 이야기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소설 속으로 다 함께 들어가 볼게요 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자 쇠죽을 쑤던 머슴 삼돌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묻는다 어젯밤에는 어딜 가셨었나 하면서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슬쩍 질러 맨머리를 번쩍 들고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이야 어딜가든 그쪽이 알아서 뭐하게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운 눈을 흘겨보며 톡 쏴버린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했을 테지만 워낙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염치없이 추근추근 쫓아다니면서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은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뭘 그리 화를 내슈 어젯밤 안주인 심부름으로 그쪽 집엘 갔었으니깐 하는 말이지 하고 털 벗은 송충이 처럼 군데 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을 숯 검정 묻은 손가락으로 두어 번 쓰다듬는다 어젯밤에도 김참봉 아들네 사랑방에서 자고 오셨겠지 삼돌은 싱긋 웃는 가운데에도 남의 약점을 쥔 비겁한 즐거움이 나타났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망나니 같은 놈 하는 말이 입 바깥까지 나왔던 안협집은 꿀꺽 다시 집어삼키면서 남이 어디서 자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하며 물동이를 이고 다시 나가려니까 흥 두고 보지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았다가는 듣기 싫어 흥 별꼬락서니를 다 보겠네 강원도 철원 용담이라는 곳에 김삼보라는 자가 있으니 나이는 삼십 오륙 세쯤에 키는 작달막하고 목은 다가붙고 얼굴빛은 노르께하며 언제든지 가죽창 박은 미투리에 대갈편자를 박아 신고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엉덩이를 내 저으므로 동네에선 그를 땅딸보 김삼보 아편쟁이 김삼보 오리 궁둥이 김삼보라고 불렀다 그는 한 달에 자기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이틀이면 꽤 오래 있는 셈이고 보통은 하루 뿐이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나돌아 다니니 몇 해 전까지도 잘 알지 못했으나 차차 동네에서 소문이 돌기를 노름꾼 김삼보라는 말이 퍼졌다 차차 알게된 것은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접경을 넘어 다니며 골패 투전으로 먹고 지낸다는 것이다 그 노름꾼 김삼보의 아내가 아까 말하던 안협집이니 안협은 강원 평안 황해 삼도에 걸친 읍의 이름이다 그 안협집을 김삼보가 얻어 오기는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안협집이 스물한 살 되던 해인데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술 파는데서 눈이 맞았다고 하기도 하고 안협집이 김삼보에게 반해서 따라 왔다기도 하고 또는 그런 것 저런 것도 아니라 그녀의 전남편과 노름을 해서 빼앗았다고도 하는데 위인 된 품으로 봐선 맨 나중 말이 가장 유력할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이 말을 한다 처음에 안협집이 동네에 오자 그 동네 그 또래 여자들은 모두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안협집이 비록 몸은 그리 귀하게 태어나진 못했지만 인물이 남달리 고운터라 동네 젊은것들이 암연히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게 되고 또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네들의 예쁘지 못한 얼굴을 쥐어뜯고 싶기도 했으니 지금까지 나만한 얼굴이면 하는 자만심 있던 젊은 여자들에게 가엾게도 자가결함이 폭로되는 환멸을 느끼게했다 그러나 안협집은 촌구석에서 아무렇게나 자란데다가 먼저 안 것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남편도 있고 먹을 것 입을 것 다 있지 하는 굳은 신조는 자기 목숨을 제외하곤 무엇이든지 제공하여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열 대 여섯 살에 참외 한 개에 원두막 총각녀석들에게 정조를 빌린 것이나 벼 몇 섬 저고릿감 한 벌에 그것을 빌리는 것이 분량과 방법이 조금 높아졌을 뿐 그 관념은 동일했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온 뒤에도 동네에서 돈푼이나 있고 얌전한 젊은 사람은 거의 다 한 번씩은 후려 냈으니 그것을 남자 편에서 실없는 짓 좋아하는 이에게 먼저 죄가 있다 하는 것보다도 안협집에게 그 책임이 더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보다 더 큰 죄는 그 남편되는 노름꾼 김삼보에게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 까닭은 남편 노름꾼이 한 달에 한 번을 올까 말까 하면서도 올 적에는 빈손으로 오는 때가 많으니 젊은 여인 혼자 지낼 수가 없어 자연히 이집 저집 다니며 품방아도 찧어 주고 김도 매주고 잔일도 해주며 얻어먹던 중 한번은 어떤 집 서방님에게 실없는 짓을 당하고 나서 쌀 한 말과 피륙 두 필을 받게 되었다 하니 그것처럼 좋은 벌이가 없다는 생각에 차츰차츰 자기 스스로 벌이를 시작했고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거래 단골을 트듯이 이사람 저사람 집어먹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차차 눈이 높아지니까 웬만한 목도꾼 패장이나 장돌림 조금 올라서서 경찰 나리쯤은 눈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고 적어도 그곳에서는 돈푼도 상당하고 여간해서 손아귀에 들지 않는다는 자들을 얼러 보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일도 하지 않고 지내며 모양을 내고 거드름을 부리고 다니는데 자기 남편이 오면 이번에는 얼마나 따셨소 하고 포르께한 눈을 사르르 내리뜬다 딴 게 뭔가 밑천까지 올렸네 노름꾼 삼보는 목 뒤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안협집은 전에 없던 바가지를 긁으며 불알 두 쪽을 달구서 그래 계집만두 못하단 말이요 하고서 할 말 못할 말을 불어서 풀을 잔뜩 죽여 놓은 뒤에 혹시 남편이 알면 경이 내릴까봐 노자랑 밑천 푼을 주어서 떠나보낸다 그럼 울며 겨자 먹기로 삼보는 혼자 한숨을 쉬면서 허허 참 실상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불알보다 계집 편이 훨씬 낫군 하고 봇짐을 짊어지고 가버린다 이렇게 이삼 년을 지내고 난 어떤 가을 삼돌이란 놈이 그 뒷집에 머슴으로 왔다 놈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빌어먹던 놈인진 모르지만 논을 맬 때 콧소리나마 아르렁타령 마디나 똑똑히 하고 술잔이나 먹을 줄 알며 동료들 가운데 나서면 제법 구변이나 있는 듯 떠들어 젖히는 것이 그럴듯하고 게다가 힘이 쎄서 송아지 한 마리 옆에 끼고 개천 뛰기는 밥 먹듯하니 동네에서는 호랑이 삼돌이로 이름이 높다 놈이 음침해서 오던 때부터 동네 계집으로 반반한 것은 남 모르게 모두 건드려 보았지만 안협집 하나가 내내 말을 듣지 않으니 추근추근 귀찮게 구는 중이었다 때마침 여름이 되서 자기 집 안주인이 누에를 놓고 혼자는 힘이 드니까 안협집을 불러 같이 누에를 길러 실을 낳거든 반분하자는 약속을 한 뒤에 여름 내 함께 누에를 치게 된 걸 알고 기회만 엿보면서 흥 계집년이 배때가 벗어서 말쑥한 서방님만 얼르더라 어디 두고 보자 너도 깩소리 못 하고 한 번 당해야 할걸 건방진 년 하고는 술이 취하면 주먹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안주인이 치는 누에가 거의 오르게 되자 뽕이 다 떨어졌다 자기 집 울타리에 심은 뽕은 어림도 없이 다 따다 먹였고 그 후엔 삼돌을 시켜서 날마다 십리나 되는 건넛 마을 친척집 뽕을 얻어다 먹였지만 그것도 이제는 발가숭이가 되었다 이제는 뽕을 사다 먹이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다 먹이자면 돈이 든다 안주인 노파는 생각해 보았다 개량 뽕이 좋기는 좋지만 돈을 여간 받아야지 그리고 일일이 사서 먹였다가는 뽕값으로 다 들어가고 남는게 없겠어 그의 생각에는 돈 한푼 안 들이고 공짜로 누에를 땄으면 좋겠는 거다 돈 한푼을 들인다 하면 그 한푼이 전 수확에서 나오는 이익의 전부 같이 생각되어 못 견뎠다 뿐만 아니라 자기 혼자 이익을 먹는것 같으면 모르지만 안협집하고 동업으로 하는 것이니 안협집이 비록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한다 해도 그 힘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한 푼 만 못해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 공짜로 뽕을 돈 안 들이고 얻어 올 궁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안협집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뽕 때문에 큰일이요 하며 안협집에게는 무슨 도리가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글쎄 안협집 생각은 주인의 마음과는 또 달라서 남의 주머니 돈 백 냥이 내 주머니 돈 한 냥만 못하다 그래서 돈 주면 살텐데 하는 듯이 심상하게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 와야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데 들에 나갔던 삼돌이 툭 튀어 들어오다가 이 소리를 들었다 제딴에는 동정하는 표정으로 그거 큰일이네요 어떡하나 한참 허리를 짚고 생각해 보더니 헝 참 그 뽕은 좋더라만 생김새도 미선조각 같이 된 놈이 기름이 지르르 흐르는데 그놈을 먹이기만 하면 고치가 차돌같이 여물텐데 들으라는 말인지 혼자말인진 모르나 한마디 탁 던지고 말이 없다 귀가 반짝 띈 주인은 어디 그런 것이 있단 말이냐 하며 궁금증 난 사람처럼 묻는다 네 저 새술막에 있는 뽕밭이요 거기 있는 거 말씀이에요 혹시 좋은 수가 있을까 하려다가 남의 뽕밭 더구나 그것으로 살아가는 양잠소 뽕이라 말씨름만 하는 것이 될 것 같아서 응 나도 봤지 그게 그렇게 잘됐나 잘 됐겠지 그렇지만 그런 거야 있으면 뭐하니 언제 보셨어요 보기야 여러 번 봤지 올봄에 두릅 따러 갔다가도 보고 삼돌인 한참 있다가 싱긋 웃더니 은근하게 쥔 마님 제가 뽕을 한 짐 져다 드리면 탁주 많이 사 주실래요 듣던 중에도 그렇게 반가운 소리가 또 어디 있겠나 그럼 조오치 따오기만 하면 탁주가 문제야 귀찮스런 삼돌이도 이런 땐 쓸 만 하다는 듯 안협집도 환심 얻으려는 듯 웃음을 웃으며 삼돌을 본다 삼돌은 사내자식의 솜씨를 네 앞에 보여 주리라 하는 듯 기운이 나며 만족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자정 때나 되어 삼돌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문 밖으로 나갔다 나갔다가 한 두어 시간 만에 무엇인지 지고 오더니 그것을 뒤꼍 건넌방 뒤 창 밑에 뭉뚱그려 놓았다 이튿날 보니 딴은 미선쪽 같은 기름이 흐르는 뽕잎이었다 어디서 난걸까 주인하고 안협집은 수군수군 했다 그 녀석이 밤에 도둑질 해온 거겠지 뽕은 참 좋군 그렇지 참 좋네요 날마다 이만큼씩 만 가져오면 넉넉히 먹이겠는데요 두 사람은 뽕을 또 따오지 않을까봐 아무 말도 않고 뽕이 참 좋더라 오늘도 좀 또 따오지 하고 충동인다 놈은 두 손을 내저으며 쉬 떠들지 마세요 큰일나요 그게 그렇게 쉬우면 그 노릇만 하게요 까딱하다간 다리 마디가 두 동강이 난다구요 도둑해 온 삼돌이나 받아들인 두 사람이나 도둑질 왜 했어 하는 말은 없지만 서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하루는 주인이 안협집더러 이봐요 이번엔 임자가 하루 저녁 가봐요 그놈이 혹시 못 가게 되더라도 임자가 대신 갈 수 있게 말이예요 또 고삐가 길며는 밟힌다구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둘이 가서 한몫에 많이 따오는게 좋지 않겠소 안협집이 삼돌을 꺼리는 줄 알지만 제 욕심에 입맛이 달아서 자꾸 자꾸 충동인다 따다가 잡히면 어쩌구요 뭘 밤중에 누가 알우 그리고 혼자 가래나 삼돌이 놈하고 가랬지 글쎄 운이 나빠 잡히거나 하면 욕이죠 잡히는 것보다도 안협집의 걱정은 보기도 싫은 삼돌이 녀석하고 밤 중에 무인지경에를 같이 가라니 그것이 딱한 일이다 안협집은 정조가 헤프기로 유명한 만큼 또 매몰스럽기도 유명해서 한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죽어도 막무가내다 만냥 금을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삼돌이 그 중에 하나가 되어 간장을 태우는 모양이다 안협집은 생각하고 생각해서 결심해 버렸다 빌어먹을 녀석이 그 따위 맘을 먹거든 저 죽고 나 죽지 내가 기운은 없어도 하고 쌀쌀하게 눈을 가로뜨고 맘을 다져 먹었다 그리고는 뽕을 따러 가기로 했다 삼돌은 어깨춤이 저절로 추어진다 아하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드디어 때가 왔네 인제는 제가 꼭 당했지 삼돌은 신이 나서 저녁 먹고 마당 쓸고 소 여물 주고 도야지 병아리 새끼 다 몰아넣고 앞뒤로 돌아다니며 씻은 듯 부신 듯 다 해놓고 목물하고 발 씻고 등거리 잠뱅이 까지 갈아입은 후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듬뿍 한모금 빨아서 휘~ 내뿜으며 시간 오기만 기다린다 안협집은 보자기를 가지고 삼돌을 따라서 뽕밭을 향해 길을 나선다 날이 유달리 깜깜해서 앞의 개천까지 자세히 보이질 않는다 돌부리가 발끝을 건드리면 안협집은 어머 소리를 내며 천방지축으로 다리도 건너고 논 이랑도 지나고 해서 길 반쯤 왔다 삼돌은 속으로 궁리를 했다 뽕을 따기 전에 논이랑으로 끌고가 아니지 그러다가 뽕두 못 따가지고 오면 어쩔려고 저도 열녀가 아닌 다음에야 당하고 나면 할 말 없지 아주 그런 버릇이 없는 년 같으면 모르지만 옳지 좋은 수가 있어 뽕을 잔뜩 따서 이어 주면 지가 항우의 딸 년이야 큭 한번은 중간에서 쉬겠지 그럼 그때에 이렇게 궁리를 하다가 너무 말이 없으니까 심심파적도 될 겸 또는 실없는 농담도 좀 해서 마음을 떠보면 나중에 성사의 전제도 만들어 놓을 겸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다 삼보는 언제나 온대요 몰라 언제는 온다 간다 말하고 다니나 그래 영감은 밤낮 나돌아다니니 혼자 지내기 쓸쓸하시겠어 놈이 모르는 것 같이 새삼스레 시치미를 뗀다 별걱정 다 하네 어서 앞서 가 난 길이 서툴러 못 가겠어 매우 쌀쌀하시네 난 거기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지만 김참봉 아들은 쇠귀신 같은 놈이라 아무리 다녀도 잇속 없을걸 내 말이 틀리진 않지 안협집은 삼돌이 아주 터놓고 말을 하는 걸 들으니까 분해서 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대로 참으면서 뭐가 어째 말이라면 다 하는 줄 아는군 하고 뒤로 조금 떨어져 걸어간다 전엔 그 녀석이 미웠지만 남의 약점을 들어 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더 더러웠다 뽕밭에 왔다 삼돌이 철망으로 울타리 친 것을 들어 주자 안협집이 먼저 들어가고 나중에 삼돌은 그 무거운 다리를 성큼 하여 밭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다가 발끝에 삭정이 가시를 밟아서 딱 우지끈 소리가 나고는 조용했다 삼돌은 손에 익어서 서슴지 않고 따지만 안협집은 익숙하지도 못한 데다가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려서 마음대로 안 된다 삼돌인 뽕을 따면서도 이따가 안협집을 꾀일 궁리를 하지만 안협집은 이것 저것 다 잊어버리고 손에 닥치는 대로 뽕을 땄다 얼마쯤 땄을 때 갑자기 안협집의 뒤에서 누구야 하고 범 같은 소리를 지르는 남자 목소리가 안협집의 간담을 서늘 하게 했다

[책 읽어주는 여자] 최서해 5원 75전,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피어노벨라에서는 현재 한국 근대단편소설 읽기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노벨라의 이야기로 오늘도 소설 한편 뚝딱 들어보세요 마음과 몸이 편안한 시간 오늘 이야기는 최서해의 5원 75전 주인공의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단편인데요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하고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장안에는 궂은비가 내리고 삼각산엔 첫눈이 쌓이던 날이었다 나는 온 종일 엎드려서 신문 잡지 원고지와 씨름을 했다 마음은 묵직하고 머리가 띵한 것이 무엇을 읽어도 눈에 들지 않고 붓을 잡아도 역시 무엇이 써질 듯 하면서 써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화가 더럭더럭 나서 보던 잡지로 낯을 가리고 누워 버렸다 눈을 감았으나 졸음이 올 리가 없다 끝도 없고 머리도 없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는 터져 버리고 떠올라서는 터져 버렸다 생각의 실마리가 흐트러지고 그것이 현실과 항상 뒤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면 가슴이 갑갑하고 누웠던 자리까지 배기는 듯 편치 않았다 그만 벌떡 일어났다 일어났으나 또한 별수 없었다 바깥 날이 흐리니 방안은 어두컴컴해서 침울한 기분을 한껏 돋우었다 비는 개었는지 밖은 고요했다 나는 책상 위에 손을 얹고 멀거니 앉아서 창문만 보고 있었다 나리 나지막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나리 계세요 아까보다 좀 높게 불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대답이 없다 그런데 그 소리는 바로 내 방 창문 앞에서 울렸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소리인지 알았다 김 주사 나리 허허 이번에는 흐릿한 창문에 어둑한 그림자를 묵직 실으면서 더 가까이 와서 불렀다 나는 나를 나리 하고 찾을 리는 만무하다 하면서도 미닫이를 슥 열었다 주인이었다 허허허 툇마루에 비스듬히 올라 앉아서 두 손으로 마룻바닥을 짚고 나를 보는 주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벌써 그 웃음의 뜻을 알았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무슨 일이 있어요 정색하고 물었다 주인은 아첨 비슷하게 싱긋 웃더니 말하기 어려운 듯 머뭇머뭇했다 나 역시 다시 입을 못 벌리고 미닫이 고리를 잡은 채 주인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나는 낯이 근질근질함을 깨달았다 난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허 이것 참 큰일났습니다 왜요 지금 종로에 나갔다 들어오니 저놈의 자식들이 전기를 끊어 놓고 갔어요 선웃음치는 주인의 낯에는 그득한 어둠이 흘렀다 전기를 끊다뇨 글쎄 지난 달 전기세를 여태까지 못 냈죠 그것도 여러 달이면 모르지만 겨우 한 달 밀렸는데 다시 와서 재촉도 없이 끊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제가 있었으면 말마디나 했겠지만 안에서들만 있는데 왔으니 거 이거 저녁에 불을 못 보겠으니 이런 큰일이 없습니다 주인은 팔짱을 끼고 툇마루 기둥에 기대 앉아서 하늘을 쳐다본다 그것 참 안 됐습니다 나는 문을 닫지도 못하고 시원한 대답을 주지도 못했다 은연한 주인의 말 가운데에는 요구 조건이 있긴 하지만 지갑이 쇠냄새를 맡은 지가 하도 오래된 판이니 그 요구를 들을 수 없었다 들을 수 없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가 버릴 수도 없었다 아이 그놈의 난장이 같은 일본 놈이 저한테 전기 청원을 안 했다고 앙심을 먹었단 말이죠 앙심은 왜 그 놈한테 말하면 그 놈이 의뢰금 얼마를 떼어 먹지요 그게 미워서 회사에 직접 말했더니 그 놈이 앙심을 먹었단 말씀이지요 이놈에 세상 주인은 서리고 서렸던 분을 한꺼번에 쏟칠 듯이 혼자 언성을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한탄 비스듬하게 뿜었다 세상이란 그런 거죠 정작 책임을 지어야 할 나는 남의 소리하듯 쓸쓸히 대답했다 좀 어떻게 변통할 수 없을까요 주인은 화제를 슬쩍 바꿔 나를 본다 나는 벌써 그 소리가 나올거라 짐작은 했지만 주인의 시선이 내 낯을 스칠 때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네 하자니 거짓말이 되겠고 아니 하자니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글쎄 어떻게 하나 나는 주인의 시선을 피해 방안을 보면서 겨우 한 마디 했다 가슴이 맥맥한 것이 획책이 없었다 흥 나를 보던 주인은 어이없는 코웃음을 쳤다 니가 그럴 테지 그 웃음은 마치 나를 비웃는 듯이 들렸다 나는 더욱 무색했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모든 자존은 그만 이 순간에다 깨뜨러져 버렸다 아무 권리가 없었다 좀 어떻게 변통을 해 보세요 주인의 소리는 사형 선고같이 들렸다 나는 온몸이 장판속으로 자지러져 드는 듯했다 벌써 몇 달이냐 서너 달이 되도록 동전 한푼 이렇다는 말없이 파먹어 주었으니 이제는 주인 볼 면목이 없다 선금을 준다 하고 들어 와 놓고 한 달 두 달 이렇게 넉달이나 버텨 오니 주인인들 갑갑하지 않을 수 없었다 K사에서 560원 받을 것이 있지만 오늘 내일 하고 그것조차 얼른 주지 않으니 나도 속이려고 해서 속인 건 아니지만 근질근질하고 마음이 조리조리해서 세 끼 밥상 받을 때마다 살이 쪽쪽 내리는 듯했다 사실 살이 내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 서너 달 사이에 눈이 꺼지고 볼이 들어가서 보는 사람마다 중병을 앓았냐고 물었다 주인이 넉넉하거나 우락부락한 처지 같으면 사정도 해 보고 뱃심도 부려 보겠지만 그도 퍽 가난한 형세요 극히 온순한 사람이었다 또 나라는 위인이 그렇게 뱃심이 든든치 못한 터이니 밤낮 은근히 마음만 골릴뿐이었다 이렇게 서너 달이나 끌어 왔지만 주인은 첫날이 막날같이 내게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어떤 때 내가 쓸쓸히 앉았으면 담배까지 사다 주었다 그것 뿐인가 신던 양말까지 깨끗이 빨아다 놓았다 피차 같은 사람으로 누구는 먹고 누구는 지어 주며 누구는 부리고 누구는 부리우라는 패를 차고 있는건가 그런 것 저런 것 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양심은 아팠다 창밖에 빚꾼들이 모여 와서 주인을 땅땅 조르는 때면 내 기운은 더욱 줄어졌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빚꾼들까지 나를 노리는 듯하고 그네들께 쪼들려서 하늘만 쳐다보는 주인의 낯은 보기가 괴로와서 그럴때면 변소에 가는 것까지 주저거려졌다 이렇게 되니 무슨 일이 손에 잡히랴 그렇다고 방안에 자빠져 있을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집에 박혀서 꾸물꾸물 날을 보내면 일하기 싫어하는 부랑자패 같기도 해서 주인 보기가 더 안됐고 어디 나갔다 들어오면 행여나 해서 방에 슬그머니 따라 들어와서 눈치만 슬몃슬몃 보는 주인의 낯은 더 볼 수 없었다 죽도록 빌려준 것도 끌기만 하면서 주지 않고 나 때문에 돈 변통을 다니던 B까지 절망이 되는 바람에 나는 아주 두문불출할 작정으로 변소 출입 외에는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이렇게 들어앉으니 공상만 펄펄 자라 갔다 하루에도 머릿속에 청기와 집을 몇 백 개씩 지어 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눈을 번쩍 뜨면 그 모든 것이 돋아 오르는 햇발에 스러지는 안개가 되어버리고 어디까지든 현실은 현실이라는 느낌이 머리를 치는 때면 모면할 수 없는험악한 운명이 큰 물결같이 금방 목을 덮는 것 같아서 퍽 불쾌하고 괴로왔다 이런 때면 내게는 예술도 종교도 철학도 국가도 인류도 부모도 처자도 없었다 다만 내 앞을 가로막은 그 이상한 빗장 밖엔 없었다 그래도 버릇을 버리지 못해 책을 집어들거나 원고지를 대하면 무엇을 읽었는지 무엇을 쓰려고 했던지 막연할 뿐이었다 역시 떠오르는 것은 현재 내 앞을 가로막은 빗장이었다 이렇게 될수록 주인의 낯보기가 더욱 싫었다 문 밖에서 그의 음성만 들려도 괜히 신경이 들먹거렸다 그리고 안에서들까지 음식 범절에 등한히 하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사실 주인이 한 때 오늘은 좀 어떻게 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하다가도 글쎄 그러고 싶어도 되질 않아 그럽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더 말하지는 않아도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때마다 주인은 나보다 몇 층 위에 앉은 듯 쳐다 보였다 주인의 낯을 쳐다볼 때마다 그는 나를 내려누르고 내 몸을 얽는 무엇 같아서 나중엔 주인과 나 사이가 점점 멀어져 절교한 친구 사이처럼 허성허성 함을 깨달았다 어떤 때 다른 할 말이 있어도 나는 주저거리고 입을 못 열었다 밖에 나서면 길바닥에 깔린 돌까지 아무 권리와 세력 없는 나를 비웃고 꾸짖는 듯했다 이러던 판에 주인의 전기 타령이 나왔다 글쎄 그러면 이를 어쩝니까 주인의 낯에는 웃음이 스러졌다 글쎄 그거 안됐네요 난 연방 안됐구려만 불렀다 주인은 이마를 찡그렸다 이거 불을 켜야 안 쓰겠습니까 주인은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울듯울듯한 소리 속에 불평이 그득 흘렀다 나는 아무 말없이 문턱에 팔을 고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잔뜩 찌푸린 날씨가 또 무엇이 올 것 같다 바람은 없지만 쌀쌀한 기운이 뼈를 찔렀다 어디 좀 나가 보세요 오 원 칠십 오 전이에요 오르는 불평을 억제하려고 하면서도 억제치 못해 주인의 말은 떨렸다 글쎄 보시는 형편에 지금 어디가서 육 원 돈이나 얻는단 말씀입니까 난 너무도 어이없는 김에 이렇게 말했다 주인은 그래도 이젠 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른다 좀 나가 보세요 K사에 가 보시든지 내가 그새 너무도 미안해서 K사에서 좀 어떻게 될거 같은데 하고 주인을 대할 때마다 되뇌였고 또 어디 나갔다 들어올 때면 K사에 갔다 온다고 해서 나도 밥값 때문에 상당히 고심한다는 자취를 보이느라고 애쓴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 때문에 주인은 K사 타령을 끄집어낸 것이다 글쎄 K사도 이제 시간이 다 지난 다음에 가면 뭘 합니까 그러면 이 밤을 어떡합니까 전기를 끊어 놓았으니 주인은 기막히다는 듯이 울적 소리를 높이더니 다시 언성을 낮춰서 그래도 나리야 좀 변통을 해 보세요 하는 것은 마치 돈 받으려는 사람이 돈 꾸러온 사람 같았다 그걸 보니 나는 알 수 없이 가슴이 쯔르르 했다 글쎄 지금은 못해요 내일 봅시다 네좀 참으세요 허허 난 선웃음을 쳤다 내일요 이 밤은 어떡하구요 주인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밤엔 뭐 초를 사다 켭시다 흥 나도 내 소리에 우스워서 흥 하여 버렸다 하 초 살 돈은 있읍니까 주인은 입을 딱 벌렸다 글쎄 지금 없는 돈을 어디서 변통한다는 말입니까 없다니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없는 걸 없다고 안 하고 그래 있다고 해야 옳단 말입니까 난 짜증을 벌컥 내면서 벌떡 일어 서서 모자를 집어 썼다 주인은 아무 소리 없이 어색히 웃으면서 축대에 내려서는 나를 쳐다보았다 큰일이나 한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나오기는 했지만 갈 데가 없다 길 잃은 시골뜨기처럼 질적한 다방골 골목을 어청어청 헤어나왔지만 내 정신으로 내가 걷는 것 같지 않았다 멋없이 짜증낸 것을 생각하니 나도 우스웠다 더구나 멀쓱해서 쳐다보던 주인의 얼굴이 떠올라서 부끄럽고 미안스러웠다 연세로 봐서 내겐 아버지 뻘이나 되는 이가 무엇 때문에 나리 나리하고 아첨을 한담 난 알수 없이 가슴이 뻐근했다 어디 가서든 돈을 얻어야지 하고 혼자 결심을 했지만 결국 갈 데가 없다 물인지 땅인지 모르고 어청어청 종로 네거리까지 나왔을 때 머리에 언뜻 B군이 떠올랐다 B군은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고 또 나의 동창이다 그가 일본 가는 길에 서울에 잠깐 들렀었다 난 그를 찾아가려고 발을 서대문 쪽으로 돌렸다 어느새 전등은 눈을 떴다 질적한 거리는 번쩍번쩍 빛났다 컴컴할 하숙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졸여서 부리나케 걸었다 하지만 남의 노자를 잘라쓰고 얼른 채워 놓지 못하는 날이면 그의 길이 체연될 것을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 사람 내일이나 모레 줄 테니 자네 돈 오 원만 취해 주게 응 지금 급하니 B군은 쾌히 승낙했다 하늘을 가졌으면 이보다 더 기쁘며 땅을 맡았으면 이보다 더 좋으랴 나는 의기양양하게 하숙으로 향했다 난 전등이 꺼져서 껌껌한 문간을 지나 들어갔다 마당은 컴컴했다 두어방 미닫이에 비친 불빛은 꺼불꺼불했다 어느 때는 어디 나갔다가도 슬그머니 들어오던 나는 기침을 하면서 내 방문을 열었다 컴컴한 방 속에서 누릿한 장판 냄새가 흘러 나왔다 주인은 따라 나와서 초에 불을 켰다 아 김 주사 용서하세요 제가 홧김에 불쾌한 소리를 주인은 아까 일이 미안스럽다는 사과를 한다 나는 도리어 낯이 후끈했다 아니 천만에요 저야말로 참 제 홧김에 괜히 하면서 나는 오 원 지폐를 주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주인은 벙끗 웃었다 아무쪼록 노여워 마세요 천만에 말씀을 하십니다 주인도 나와 같이 웃었다 이 찰나 주인과 나 사이에 가로질렀던 담벽이 툭 터져서 더욱 가까와진 듯 했다 아까 피차 찌그러지던 낯은 티만치도 찾을 수 없었다 아아 단돈 오 원이로구나 나는 가슴이 찌르르하여 눈물이 핑돌았다 또 다시 내일이나 모레 주마 B군에게 한 말이 떠올라서 이마를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다지 김유정 2/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꽁보는 땀을 철철 흘리면서 좁다란 그 틈에서 감 하나를 손에 따 들었다 영락없이 작은 목침 같은 그런 돌덩이를 엎드린 그채 불빛에 비쳐 가만히 뒤져 보았다 번들번들한 놈이 그 광채가 매우 혼란스럽다 혹시 연철이나 아닐까 그는 돌 위에 눕혀 놓고 망치로 두드리며 깨 보았다 좀체로 쪽이 잘 안 나갈 만큼 쭌둑쭌둑한 금돌 그는 다시 집어 들고 눈앞으로 바싹 가져오며 실눈을 떴다 얼마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가슴은 무작정 뚝딱거리고 마냥 들뜬다 이 돌에 박힌 금만으로도 모르면 몰라도 하치 열 냥쭝은 넘겠지 천 원 천 원 그 뭔가 뭐야 더펄이는 이렇게 허둥지둥 달겨 들었다 노다지 하고 풀 죽은 대답 어어 노다지 하기 무섭게 더펄이는 우뻑지뻑 그 돌을 받아 들고 눈에 들이댄다 척척 휠 정도로 들어박힌 금 우리도 이젠 팔자를 고치는구나 그는 껍쩍껍쩍 엉덩춤이 절로 난다 이리 나오게 내 하겠네 그는 아우의 몸을 번쩍 들어 내놓고 제가 대신 들어간다 역시 받침대 쪽으로 다리를 쭉 뻗 고 그 틈바귀에 덥석 엎드렸다 몸이 워낙 커서 좀 둔하지만 아무래도 아우보단 힘이 낫겠지 그 좁은 틈에 타래징을 꽂아 박고 식식 하고 망치로 때린다 꽁보는 그앞에 서서 시무룩허니 흥이 식었다 금광일로 말하자면 제가 선생님이요 형은 제 지휘를 받아 왔던 것이다 뭘 안다고 풋둥이가 어줍대는가 돌쪽 하나 변변히 못 떼낼 것이 그는 형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얼핏 알았다 금을 보더니 완전히 변한다 저 곡괭이 좀 집어 주게 형은 고개도 안 들고 소리를 뻑 지른다 아우는 잠자코 대꾸도 안한다 사람을 너무 얕보는 그 꼴이 썩 아니꼬웠다 아 이 사람아 곡괭이 좀 얼른 집어줘 왜 그렇게 정신 놓고 서 있나 그리고 눈을 딱 부릅뜨고 쳐다본다 아우는 암말 않고 저편 구석에 놓인 곡괭이를 집어다 주었다 그리고 우두커니 다시 섰다 형이 무람없이 굴면 굴수록 그 태도는 시위에 가까웠다 힘 좀 있다고 주제넘게 꺼떡이는 그 화상이야 눈허리가 시면 시었지 그냥은 못 볼 것이다 또 땄네 내 기운 어떤가 형은 이렇게 잘난척하며 곡괭이를 연상 내려 찍는다 마치 죽통에 덤벼드는 돼지 모양이다 억척스럽게도 손뼘만한 감을 두쪽이나 따냈다 인제는 악이 아니면 세상 없어도 더는 못 딸 것이다 엑 엑 엑 그래도 억센 주먹에 굳은 동이 벌컥벌컥 나간다 제 힘을 몹시 자랑하는 형을 이윽히 바라보니 또한 그 속이 보인다 필연코 이 노다지를 혼자 먹으려고 하는 것이지 그러면 내가 있는 걸 몹시 꺼리겠지 하고 속을 태운다 이거 봐 자네 같은 건 골백번 와야 소용 없네 하고 또 뽐낼 땐 가슴이 선뜩했다 앞서는 형의 손에 목숨을 구해 받았지만 이번엔 같은 산골에서 그 주먹에 명을 도로 끊을지도 모른다 그는 형의 주먹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가엾게 앙상한 제 주먹에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만 속이 바르르 떨릴 뿐이다 그때 꽁보는 기겁을 하며 놀라 뒤로 물러섰다 어이쿠 하고 불시의 비명과 아울러 와르르 했다 쌓아 올린 받침대가 어쩌다 중턱이 무너졌다 모진 돌들이 더펄이의 장딴지며 넓적다리 엉덩이까지 그대로 엎눌렀다 살은 물론 으스러졌으리라 그는 엎어진 채 꼼짝못하고 아픔에 못 이겨 끙끙거린다 하지만 요행히 죽진 않았다 바로 위 공중에는 징그럽게 커다란 돌들이 내려 구르자 그 밑을 받친 조그만 조약돌에 걸려 미처 못굴러 내리고 간댕거리는 것이었다 이 돌만 내려 치면 그 밑의 그는 목숨은 고사하고 윽살이 될 것이다 여보게 내 몸 좀 빼주게 형은 몸은 못 쓰고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한다 그리고 또 아우 나 죽네 응 하고 더욱 애를 끊으며 빌붙는다 고개만 겨우 들었을 뿐 그 외에는 손조차 자유를 잃은 모양이다 아우는 무너지려는 받침대를 쳐다보며 얼른 그 머리맡으로 다가선다 발 앞에 놓인 노다지 세 쪽을 날쌔게 손에 잡자 도로 얼른 물러 섰다 그리고 눈물이 흐른 형의 얼굴은 돌아도 보지 않고 그 발로 허둥지둥 장벽을 기어오른다 이놈아 너머 기어올라 벼락같이 악을 쓰는 호통이 들렸다 그러자마자 우지끈 뚝딱 무서운 폭성이 들렸다 그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고는 좀 와스스 하다가 잠잠해졌다 그땐 이미 아우가 두 길이나 너머 기어올랐을 때다 갱도 입구까지 다 나와 그는 머리만 내밀어 사방을 두릿거리다가 그림자까지 사라진다 더펄이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침침한 어둠 속에 단지 굵은 돌멩이 만이 쫘악 흩어졌다 갱도 끝에 타다 남은 화롯불은 바야흐로 질듯질듯 껌벅거린다 그리고 된 바람이 애 하고 갱도로 모래를 쫘륵쫘륵 들이 뿜는다

붉은 산 김동인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동인의 붉은산입니다 1932년 문예지 삼천리에 발표된 단편입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떤 의사의 수기 그것은 여가 만주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풍속도 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병을 조사할 겸해서 일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가지고 만주를 시시콜콜이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에 모모촌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 일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모모촌은 조선사람 소작인만 사는 한 이십여 호 되는 작은 촌이었다 사면을 둘러보아도 한개의 산도 볼 수가 없는 광막한 만주의 벌판 가운데 놓여 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촌이었다 몽고사람 종자를 하나 데리고 노새를 타고서 만주의 촌촌을 돌아 다니던 여가 그촌에 이른 때는 가을도 다 가고 어느덧 광포한 북극의 겨울이 만주를 찾아온 때였다 만주의 어느 곳이나 조선사람이 없는 곳은 없지만 이러한 오지에서 한 동네가 죄 조선 사람뿐으로 되어 있는 곳을 만나니 반가왔다 더구나 그 동네는 비록 모두가 만주국인의 소작인이라 하나 사람들이 비교적 온량하고 정직하여 장성한 이들은 그래도 모두 천자문 한 권쯤은 읽은 사람이었다 살풍경한 만주 그 가운데서 살풍경한 살림을 하는 만주국인이며 조선인 동네를 근 일년이나 돌아다니다가 비교적 평화스런 이런 동네를 만나면 그것이 비록 외국인의 동네라 하여도 반갑겠거늘 하물며 우리 같은 동족임에랴 여는 그 동네에서 한 십여 일 이상을 일없이 매일 호별 방문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로 날을 보내며 오래간만에 맛보는 평화적 기분을 향락하고 있었다 삵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정익호라는 인물을 본 것이 여기서 이다 익호라는 인물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그 촌에서 아무도 몰랐다 사투리로 보아서 경기 사투리인 듯 하지만 빠른 말로 재재거리는 때에는 영남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고 싸움이라도 할 때는 서북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지라 사투리로써 그의 고향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쉬운 일본말도 알고 한문글자도 좀 알고 중국말은 물론 꽤 하고 쉬운 러시아 말도 할 줄 아는 점 등등 이곳저곳 숱하게 줏어먹은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의 경력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여가 그 촌에 가기 일년 전 쯤 빈손으로 이웃이라도 오듯 후덕덕 그곳에 나타났다 한다 생김생김으로 보아서 얼굴이 쥐와 같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눈에는 교활함과 독한 기운이 늘 나타나 있었다 발룩한 코에는 코털이 밖으로까지 보이도록 길게 났고 몸집은 작으나 민첩하며 나이는 스물 다섯에서 사십까지 임의로 볼 수 있었다 그 몸이나 얼굴 생김이 어디로 보든 남에게 미움을 사고 근접치 못할 놈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장기는 투전이 일쑤며 싸움 잘하고 트집 잘 잡고 칼부림 잘하고 색시에게 덤벼들기 잘하는 것이라 한다 생김생김이 벌써 남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거기다 하는 행동조차 변변치 못한 일뿐이라 그 촌에서도 아무도 그를 대척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하였다 집이 없는 그였으나 뉘 집에 잠이라도 자러 가면 그 집 주인은 두말 없이 다른 방으로 피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여주고 하였다 그러면 그는 이튿날 해가 낮이 되도록 실컷 잔 뒤에 마치 제 집에서 일어나듯 느직이 일어나서 조반을 청하여 먹고는 한마디의 사례도 없이 나가버린다 그리고 만약 누구든 그의 이 청구에 응치 않으면 그는 그것을 트집으로 싸움을 시작하고 싸움을 하면 반드시 칼부림을 하였다 동네의 처녀들이며 젊은 여인들은 익호가 이 동네에 들어온 뒤부터는 마음놓고 나다니지를 못하였다 철없이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도 몇이 있었다 삵 이 별명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어느덧 그 촌에서는 익호를 익호라 부르지 않고 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삵이 뉘 집에서 묵었나 김 서방네 집에서 다른 봉변은 없었다나 요행히 없었다네 그들은 아침에 깨면 서로 인사 대신으로 삵의 거취를 알아보고 하였다 삵은 이 동네에는 커다란 암종이었다 삵 때문에 아무리 농사에 사람이 부족한 때라도 젊고 튼튼한 몇 사람은 동네의 젊은 부녀를 지키기 위하여 동네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삵 때문에 부녀와 아이들은 아무리 더운 여름 저녁에라도 길에 나서서 마음놓고 바람을 쏘여보지를 못하였다 삵 때문에 동네에서는 닭의 가리며 돼지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밤을 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네의 노인이며 젊은이들은 몇번을 모여서 삵을 이 동리에서 내어쫓기를 의논하였다 물론 합의는 되었다 그러나 내어쫓는 데 선착할 사람이 없었다 첨지가 선착하면 뒤는 내 담당하마 뒤는 걱정 말고 형님 먼저 말해 보시오 제각기 삵에게 먼저 달겨들기를 피하였다 이리하여 동리에서 합의는 되었으나 삵은 그냥 태연히 이 동네에 묵어있게 되었다 며늘년들이 조반이나 지었나 손주놈들이 잠자리나 준비했나 마치 그 동네의 모두가 자기의 집안인 것 같이 삵은 마음대로 이집 저집을 드나 들었다 그 촌에서는 사람이라도 죽으면 반드시 조상 대신으로 삵이나 죽지 않고 하는 한마디의 말을 잊지 않고 하였다 누가 병이라도 나면 에잇 이 놈의 병 삵한테로 가거라 고 하였다 암종 누구나 삵을 동정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 삵도 남의 동정이나 사랑은 벌써 단념한 사람이었다 누가 자기에게 아무런 대접을 하든 탓하지 않았다 보이는 데서 보이는 푸대접을 하면 그 트집으로 반드시 칼부림까지 하는 그였지만 뒤에서 아무런 말을 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삵의 귀에까지 갈지라도 탓하지 않았다 흥 이 한마디는 그의 가장 큰 처세 철학이었다 흔히 곁 동네 만주국인들의 투전판에 가서 투전을 하였다 때때로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하소연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한다 할지라도 들을 사람도 없거니와 아무리 무섭게 두들겨 맞은 뒤라도 하루만 샘물에 상처를 씻고 절룩절룩한 뒤에는 또 이튿날은 천연히 나다녔다 여가 그 촌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송 첨지라는 노인이 그해 소출을 나귀에 실어 가지고 만주국인 지주가 있는 촌으로 갔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송장이 되었다 소출이 좋지 못하다고 두들겨 맞아서 부러져 꺾어진 송 첨지는 나귀등에 몸이 결박되어서 겨우 그 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놀란 친척들이 나귀에서 몸을 내릴 때에 절명하였다 그 촌에서는 왁자하였다 원수를 갚자 명 아닌 목숨을 끊은 송 첨지를 위하여 동네의 젊은이는 모두 흥분하였다 제각기 이제라도 들고 일어설 듯 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누구든 앞장을 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이때에 누구든 앞장을 서는 사람만 있었더면 그들은 곧 그 지주에게로 달려갔을 지 모른다 그러나 제가 앞장을 서겠노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제각기 곁사람을 돌아보았다 발을 굴렀다 부르짖었다 학대받는 인종의 고통을 호소하며 울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남의 일로 지주에게 반항하여 제 밥자리까지 떼우기를 꺼림인지 용감히 앞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여는 의사라는 여의 직업상 송 첨지 시체를 검시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여는 삵을 만났다 키가 작은 삵을 여는 내려다보았다 삵은 여를 쳐다보았다 가련한 인생아 인종의 거머리야 가치 없는 인생아 밥 버러지야 기생충아 여는 삵에게 말하였다 송 첨지가 죽은 줄 아나 여의 말에 아직껏 여를 쳐다보고 있던 삵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여가 발을 떼려는 순간 얼핏 삵의 얼굴에 나타난 비창한 표정을 여는 넘길 수가 없었다 고향을 떠난 만리 밖에서 학대받는 인종의 가엾음을 생각하고 그 밤은 여도 잠을 못 이루었다 그 억분함을 호소할 곳도 못 가진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고 여도 눈물을 금치를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여를 깨우러 오는 사람의 소리에 여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삵이 동구 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는 삵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상 곧 가방을 수습하여 가지고 삵이 넘어진 데까지 달려갔다 송 첨지의 장례식 때문에 모였던 사람 몇은 여의 뒤를 따라왔다 여는 보았다 삵의 허리가 기역자로 뒤로 부러져서 밭고랑 위에 넘어져 있는 것을 여는 달려가 보았다 아직 약간의 온기는 있었다 익호 익호 그러나 그는 정신을 못 차렸다 여는 응급수단을 취하였다 그의 사지는 무섭게 경련되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익호 정신드나 그는 여의 얼굴을 보았다 끝이 없이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었다 겨우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는 갔었습니다 어디를 그 놈 지주 놈의 집에 무얼 여는 눈물 나오려는 눈을 힘있게 닫았다 그리고 덥석 그의 벌써 식어가는 손을 잡았다 잠시의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의 사지에서는 무서운 경련이 끊임없이 일었다 그것은 죽음의 경련이었다 듣기 힘든 그의 작은 소리가 또 그의 입에서 나왔다 선생님 왜 보고 싶어요 전 보구 시 뭐이 그는 입을 움직였다 그러나 말이 안나왔다 기운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에 그는 또다시 입을 움직였다 무슨 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무얼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아아 죽음에 임하여 그의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었다 여는 힘있게 감았던 눈을 고즈너기 떴다 그때에 삵의 눈도 번쩍 뜨이었다 그는 손을 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돌이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런 힘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혀끝에 모아가지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왜 저것 저거 무얼 저기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선생님 저게 뭐예요 여는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황막한 만주의 벌판이 전개되어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노래를 불러주세요 마지막 소원 노래를 해주세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여는 머리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의 입에서는 창가가 흘러나왔다 여는 고즈너기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고즈너기 부르는 여의 창가 소리에 뒤에 둘러섰던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숭엄한 코러스는 울리어나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광막한 겨울의 만주벌 한편 구석에서는 밥 버러지 익호의 죽음을 조상하는 숭엄한 노래가 차차 크게 엄숙하게 울리었다 그 가운데 익호의 몸은 점점 식어갔다

[책 읽어주는 여자] 김유정의 아내, 1/2,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한 박자 쉬어가는 곳 피어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유정의 아내입니다 김유정은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29세에 요절한 작가죠 그리고 1930년대에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또는 의식구조 자체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들어주세요 그럼 김유정의 아내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던지 이쁘다고는 안할 것이다 아주 여자에 환장된 놈이라면 모르지만 나도 맨날 같이 지내긴하지만 아무리 잘 봐주려고해도 요만큼도 이쁘지가 않다 하지만 마누라가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 황소같은 아들만 줄창 빼 놓으면 그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죽을 밖에 별 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써 일 못해 이걸 누가 열쳤다고 그냥 먹여주냐 그러니 내 말이 젊을때 되는 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두자 하는 것이지 그리고 에미가 낯짝 글럿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다 아 바루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겟지만 즈 에미는 쥐였다 논 개떡 같에도 인석은 좀 똑똑하고 깔끔하게 생겼냐 말이다 비록 먹고 돌아서면 또 달라고 불 아귀처럼 덤비기는 하지만 참 인석이야말로 나한테는 아버지 보담도 할아버지 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마누라가 나한테 되지 않은 큰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이녀석을 낳았기 때문이다 전에야 그 상판대길 가지고 어디 끽소리나 했냐 흔히 말하길 마누라 얼굴은 제 눈의 안경이라 한다마는 아무리 썩은 눈깔이라도 이 얼굴만은 어째 볼 도리 없을거다 이마가 훌떡 까지고 양미간이 멀면 소견이 탁 티었다곤 한다 그럼 좋기는 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둥글넓적이 내려온 하관에 멋없이 쑥내민 게 입이란다 두툼은 하지만 위로 들린 입술 말 좀 하려들면 그닥 깨끗치 못한 윗니가 보기싫게 뻔찔 드러난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한복판에 달린 코나 좀 똑똑이 생겼다면 좀 낫겠다 첫째 눈에 띠는 것이 콘데 이렇게 말하면 흉을 보는 거 같지만 좀 잘 봐주려고 해도 먼 산 바라보는 도야지의 코가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걸 어쩌냐 꼴이 이러니 밤이면 내 눈치만 슬슬 살핀다 오늘은 구박이나 안할까 하고 은근히 애를 태우는 것이지 이게 가여워서 피곤한 몸 무릅쓰고 대개는 내가 먼저 말을 걸게된다 온종일 뭘 했느냐는둥 싸리문 좀 고쳐 놓으라 했더니 어떻게 됐냐는 둥 아니면 오늘 밤엔 웬일인지 코가 훨씬 좋아보인다는 둥 그러면 이 마누라가 금세 헤에 벌어지고 힝하게 내 곁에 와 앉어서는 어깨를 기대고 슬근슬근 부빈다 그리고 코가 좋아보인다니 정말 그러냐고 몸이 닳아서 묻고 또 묻고 한다 저도 믿지못할 그 사실을 한때의 위안이나마 또 한 번 들어보자는 심정이겠지 그 속을 알고 진짜 콧날이 스나부다 하면 마누라 대답이 뒷간엘 갈적마다 잡아댕기고 했드니 혹 나왔을지 모른다나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땐 한나절 밭고랑에서 시달린 몸이 그만 축 느러진다 그럼 말 한마디 붙일새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어버리지 그러면 제 얼굴 때문에 그런줄 알고 한구석에 가서 시무룩해서 앉었다 얼굴을 모로 돌려서 턱을 뻐쭉 쳐들고 있는걸 보면 흣 제깐엔 옆얼굴이나 한번 봐달라는 속셈이지 경을 칠 옆얼굴이라고 기름 짠 깨 찌꺼기지 뭐 좀 나은 줄 알고 이러든 마누라가 똘똘이를 낳아 놓고는 갑작이 세도가 댕댕해졌다 내가 들어가도 네 놈 은제 봤냔 듯이 좀체 거들떠보는 법이 없다 눈을 스르르 내려깔고는 잠자코 애한테 젖만 먹인다 내가 좀 애 머리라도 쓰담으면서 이자식 밤낮 잠만 자나 가만 둬 왜 깨놓고 싶은감 하고 사정없이 내 손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난 처음엔 어떻게 되는 셈인지 몰라서 멀거니 천장만 한참 쳐다봤다 내 자식 내가 만지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건 무슨 경우야 하지만 잘 따져 보니까 내가 억울할 건 조금도 없다 마누라가 나한테 큰체를 해야 될 권리가 있다는 걸 내 차차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턴 내가 이년 하면 저는 이놈 하고 대들기로 무언중 계약이 된거다 동네에서는 남의 속은 모르고 우리를 깍따귀들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툭하면 서루 대들려고 노리고만 있으니 말이지 하긴 요즘엔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을가봐서 만나기만 하면 이놈 저년 하고 먼저 대들기가 일쑤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만나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요 당신오면 같이 먹을려구 하고 일어나 반색을 하겠지만 우리는 안 그러기다 누가 그렇게 괭이 소리로 달라붙냐 방에 떡 들어서는 길로 우선 넓적한 그 궁뎅이를 발길로 퍽 드려 질른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차려 이눔이 웨 이래 다릴 꺾어놀라 하고 마누라가 고개만 겨우 돌리면서 나무 판 돈 뭐했어 또 술 처먹었지 이렇게 제법 탕탕 호령을 한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고 또 마누라 데리고 사는 멋이 있다 손자새끼 같은 낯을 해가지고 마누라 어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 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겠니 마누라 좋다는 건 욕하고 치고 차고 다 이러는 멋에 음 그렇게 치고 보면 혹 궁한 살림에 쪼들려서 악에 받힌 놈의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다 매한가지겠지 가다가 속이 맥맥하고 부하가 끓어오를 적이 있지 않냐 농사는 지어도 남는 거 없고 빚 에는 몰리고 게다가 집에 들어스면 자식놈 킹킹거려 마누라는 옷이 없으니 떨고 있어 이런 때 그냥 배길 수 있나 트죽태죽 꼬집어 가지고 마누라 비녀쪽을 턱 잡고는 한바탕 후들겨 대는구나 한참 그 지랄을 하고나면 등줄기 에 땀이 뿍 흐르고 한숨까지 후 이쯤하면 웬만치 속이 가라앉을 때지 그담엔 마누라를 도로 밀처버리고 담배 한 대 피어 물면 된다 이멋에 마누라가 고마운 물건이라 하는 것이고 내가 또 고년을 못잊어 하는 까닭이 거기 있는거다 그렇지 않다면 저를 계집이라고 등을 뚜덕여주고 그 못난 코를 좋아 보인다고 가끔이나마 추어줄 맛이 뭐야 하지만 마누라가 훌쩍거리고 앉어서 우는 걸 보면 이건 좀 재미가 없다 지가 주먹심으로든 입심으로든 나헌테 덤빌랴면 어림도 없지 쌈의 시초는 누가 먼저 걸어던간에 언제든지 경을 팥 다발같이 치고 나앉는 건 마누라 차지렸다 이리와 자빠져 자 곤둬 너나 자빠져 자렴 하고 마누라가 독이 올라서 돌아다도 안보고 튕긴다 그치만 한 서너 번 내려오라고 권하면 나중엔 저절로 내 옆으로 스르르 기어들게 된다 그리고 눈물 흐르는 상판으로 벙긋이 흘겨보이는 거이 아니냐 하니까 마누라로 보면 두들겨맞고 튕기는 멋에 나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원수같이 늘 싸운다고 정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분치고 우리것만치 찰떡처럼 끈끈한 놈은 다시 없을게다 미우면 미울수록 싸우면 싸울수록 잠시를 떨어지기가 아깝도록 정이 착착 붙는다 부부의 정이란게 이런건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영문모를 찰거머리 정이다 나 뿐 아니라 마누라도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같이 자리에 누으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업지 않지 하고 정말 잘난듯이 바짝바짝 대 든다 그럼 나는 이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겠냐 하 기가 막혀서 천정을 처다보고 피익 한마디 한다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구 다닐까 내니깐 이년아 데리구 살지 누가 건드리니 그 낯짝을 뭐 니 얼굴은 얼굴인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 거 내니깐 데리구살지 이러면 또 일어나서 땀 한번 흘 리고 다시 들어누울 수 밖에 없다 아 내 얼굴이 불밤송이 같다니 이래도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서 나중에 땅마지기나 만져볼 놈이라고 좋아하시던 이 얼굴인데 씨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손짓 발짓 하고 그러는게 성가셔서 쯪 대개는 그대로 넘어 간다 그래 내 너 이뻐할게 자식이나 줄줄이 나라 먹이지도 못할걸 자꾸 나서 뭘 하게 굶겨 죽일랴구 아 이년아 꿔다 먹이진 못하니 하고 소리는 뻑 지르지만 뒤는 캥긴다 더끔더끔 모아 두었다가 먹이지나 못하면 그걸 어떻게 하냐 줴다 버리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고 떼송장이 난다면 그래 이런 걸 보면 마누라가 나보다 훨씬 생각이 있는 걸 알 수 있겠다 물론 십 리 만큼 벌어진 양미간을 봐도 나완 한참 다르지만- 우리가 요즘 먹는것은 내가 나무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다 여름 같으면 품이나 팔겠지만 눈이 척척 쌓였으니 얼음을 깨먹겠냐 하기야 산골에서 어느 놈 치고 별수 있겠냐마는 하루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들이고 그 다음 날엔 읍에 갔다가 판다 나니깐 참 쌍지개질도 할 근력이 되겠지만 잔뜩 쌓은 나무 두 지개를 혼자서 차례대로 이놈 져다 놓고 쉬고 저놈 져다 놓고 쉬고 이렇게 해서 장찬 삼십 리 길을 한나절에 들어가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은제 한 지개 한 지개씩 팔아서 목구녕을 축일 수 있겠냐고 잘 받으면 두 지개에 팔십 전 운 나쁘면 육십 전 육십오 전 그걸로 좁쌀 콩 미역 뭐 그런걸 사들고 돌아 오는게지 죽을 쑤었으면 좀 오래 가겠지만 우리는 더럽게 그런 짓 안한다 먹다 못먹어서 뱃가죽을 웅켜쥐고 나슬지언정 으레 밥이지 똘똘이는 네 살짜리 어린애니깐 한 보시기 나는 즈 아버지니까 한 사발에다가 또 반 사발을 더먹고 그런데 마누라는 유독 두 사발을 처먹지 않냐 여자라 좋다 했더니 이게 밥버러지가 아닌가하고 한때는 가슴이 선뜻할 만큼 겁이 났다 없는 놈이 양이나 좀 적어야지 이렇게 계속 처먹으면 너 웬밥을 이렇게 처먹니 하고 눈을 크게 뜨니까 마누라 대답이 애난 배가 그렇지 그럼 저도 앨 나보지 하고 샐쭉이 토라진다 앗따 그래 마냥 처먹어라 나중 밥값은 그 배때기에 다 있고 거기 있는 거니까 어떤 때에는 내가 좀 들 먹고라도 그대로 내주고 말겠다 경을 칠 하지만 참 너무 처먹는다 그러나 마누라가 떡꾹이 농간을 해서 떡국이 농간하다 본래 재간이 없 더라도 나이가 들어 오랜 경험으로 제법 능숙한 솜씨를 보이다 그러나 마누라가 떡국이 농간을 해서 나보다 한결 응큼한 구석이 있다 아깐 농사를 지어 뭐하냐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 들병이 술이 든 병을 들고 남사당 패등 공연패를 따라다니며 술을 파는 여인 하기는 내 주변으론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사실 참 훌륭한 생각이다 밑지는 농사보다는 이밥에 고기에 옷 마음대로 먹고 입고 좀 호강이냐 하지만 마누라 얼굴을 이윽히 뜯어 보다가 고만 풀이 죽는구나 들병이에게 술 먹으러 오는 건 계집 의 얼굴 보자 하는 건데 어떤 밸 없는 놈도 저 낯짝엔 몸 달아 할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니 참 분하다 마누라가 조금만 똑똑이 나왔더라면 수가 나는걸 멀뚱이 쳐다보고 쓴 입맛만 다시니까 그 눈치를 챘는지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어야지-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겠니 그럼 하면 하지 못할 게 뭐야 이렇게 아주 번죽 좋게 장담을 한다 들병이로 나가서 식성대로 밥 좀 한바탕 먹어 보자는 속이겟지 몇 번 다져 물어도 제가 꼭 할 수 있다니까 앗따 그러면 한번 해보자꾸나 뭐 밑천이 드는 것도 아니고 소리나 몇 마디 반반히 가르쳐서 데리고 나스면 고만이니까 내가 밤에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를 앞에 앉히고 소리를 가르친다 우선 내가 무릎장단을 치며 아리랑 타령을 한 번 부르는거다 아리랑 아리랑

[책 읽어주는 여자] 심청 김유정 ,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한국문학,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유정의 심청입니다 1936년 문예지 중앙에 발표된 단편소설입니다 거반 오정이나 바라보도록 요때기를 들쓰고 누었든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키어 대문밖으로 나섰다 매캐한 방구석에서 혼자 볶을치 만치 볶다가 열벙거지가 벌컥 오르면 종로로 튀어나오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종로가 항상 마음에 들어서 그가 거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버릇이 시키는 노릇이라 울분할 때면 마지못하여 건숭 싸다닐 뿐 실상은 시끄럽고 더럽고해서 아무 애착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의 심청이 별난 것이었다 팔팔한 젊은 친구가 할일은 없고 그날그날을 번민으로만 지내곤 하니까 나중에는 배짱이 돌라앉고 따라 심청이 곱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불평을 남의 얼굴에다 침 뱉듯 뱉아붙이기가 일수요 건뜻하면 남의 비위를 긁어놓기로 한 일을 삼는다 그게 생각나면 좀 잗달으나 무된 그 생활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향락일런지도 모른다 그가 어실렁어실렁 종로로 나오니 그의 양식인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연은 마음의 거울이다 온체 심보가 이뻔새고 보니 눈에 띠는 것마다 모두 아니꼽고 구역이 날 지경이다 허나 무엇보다도 그의 비위를 상해 주는건 첫째 거지였다 대도시를 건설한다는 명색으로 웅장한 건축이 날로 늘어가고 한편에서는 낡은 단층집은 수리조차 허락지 않는다 서울의 면목을 위하야 얼른 개과천선하고 훌륭한 양옥이 되라는 말이었다 게다 각 상점을 보라 객들에게 미관을 주기 위하야 서루 시새워 별의별 짓을 다해가며 어떠한 노력도 물질도 아끼지 않는 모양 같다 마는 기름때가 짜르르한 헌 누데기를 두르고 거지가 이런 상점 앞에 떡 버티고서서 나리 돈한푼 주 하고 어줍대는 그 꼴이라니 눈이시도록 짜증 가관이다 이것은 그 상점의 치수를 깎을뿐더러 서울이라는 큰 위신에도 손색이 적다 못할지라 또는 신사 숙녀의 뒤를 따르며 시부렁거리는 깍쟁이의 행세 좀 보라 좀 심한 놈이면 비단껄 이고 단장 뽀이고 닥치는 대로 그 까마귀발로 웅켜 잡고는 돈 안낼 테냐고 제법 훅닥인다 그런 봉변이라니 보는 눈이 다 붉어질 노릇이 아닌가 거지를 청결하라 땅바닥의 쇠똥말똥만 칠게 아니라 문화생활의 장애물인거지를 먼저 치우라 천당으로 보내든 산채로 묶어 한강에 띠우든 머리가 아프도록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어청어청 종로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입으로는 자기도 모를 소리를 괜스리 중얼거리며 나리 한 푼 줍쇼 언제 어데서 빠졌는지애송이거지 한 마리 기실 강아지의 문벌이 조금 더 높으나 암튼 한 마리가 그에게 바짝 붙으며 긴치않게 조른다 혓바닥을 길게 내뽑아 웃입술에 흘러나린 두 줄기의 노란 코를 연실 훔쳐가며 졸르자니 썩 바쁘다 왜 이럽쇼 나리 한 푼 주세요 그는 속으로 피익 하고 선웃음이 터진다 허기진 놈 보고 설렁탕을 사달라는게 옳겠지 자기보고 돈을 내랄적엔 요놈은 거지 중에도 제일 액수 사나운 놈일 게다 그는 들은 척 않고 그대루 늠름이 걸었다 그러나 대답 한 번 없는데 골딱지가 낫는지 요놈은 기를 복복 쓰며 보채되 정말 돈을 달라는 겐지 혹은 같이 놀자는 겐지 나리 웨 이럽쇼 웨 이럽쇼 하고 사알살 약을 올려가며 따르니 이거 성가셔서라도 걸음 한 번 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고개만을 모루 돌리어 거지를 흘겨보다가 이 꼴을 보아라 그리고 시선을 안으로 접어 꾀죄죄한 자기의 두루마기를 한번 쭈욱 훑어보였다 하니까 요놈도 속을 채렸는지 됨됨이 저렇고야 하는 듯싶어 저도 좀 노려보드니 제출물에 떨어져 나간다 전차길을 건너서 종각 앞으로 오니 졸찌에 그는 두 다리가 멈칫하였다 그가 행차하는 길에 다섯 간쯤 앞으로 열댓살 될락말락한 한 깍쟁이가 벽에 기대여 앉었는데 까빡까빡 졸고 있는 것이다 얼굴은 뇌란게 말라빠진 노루가죽이 되고 화루전에 눈 녹 듯 개개풀린 눈매를 보니 필야 신병이 있는 데다가 얼마 굶기까지 하얐으리라 금시로 운명하는듯 싶었다 거기다 네 살쯤 된 어린 거지는 시르죽은 고양이처럼 큰놈의 무릎 위로 기어오르며 울 기운 조차 없는지 입만 벙긋 벙긋 그리고 낯을 째프리며 투정을 부린다 꼴을 봐한 즉 아마 시골서 올라온지도 불과 며칠 못되는 모양이다 이걸 보고 그는 잔뜩 상이 흐렸다 이 벌레들을 치워주지 않으면 그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문득 한 호기심이 그를 긴장시켰다 저 쪽을 바라보니 길을 치고 다니는 나리가 이 쪽을 향하야 꺼불적꺼불적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뜻밖의 나리였다 고보 때에 같이 뛰고 같이 웃고 같이 즐기든 그리운 동무 예수를 믿지 않는 자기를 향하야 크리스찬이 되도록 일상 권유하든 선량한 동무이었다 세월이란 무엔지 장래를 화려히 몽상하며 나는 장래 톨스토이가 되느니 칸트가 되느니 떠들며 껍적이든 그 일이 어제 같건만 자기는 끽 주체궂은 밥통이 되었고 동무는 나리로 그건 그렇고 하여튼 동무가 이자리의 나리로 출세한 것만은 놀램과 아울러 아니 기쁠 수도 없었다 오냐 저게 오면 어떻게 나의 갈 길을 치워주겠지 그는 머직아니 섰는 채 조바심을 태워가며 그 경과를 기다리었다 딴은 그의 소원이 성취되기까지 시간은 단 일분도 못걸렸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았다 아야야 으 응 갈테야요 이자식 골목안에 백여 있으라니 깐 왜 또 나왔니 기름강아지 같이 뺀질뺀질한 망할 자식 아야야 으름 응 아야야 갈텐데 왜 이리차세요 으 으 하며 기름강아지의 울음소리는 차츰 차츰 멀리 들리운다 이자식 어서 가봐 쑥 들어가 하는 날 벽력 소란하든 희극은 잠잠하였다 그가 비로소 눈을 뜨니 어느덧 동무는 그의 앞에 맞닥드렸다 이게 몇 해만이란 듯 자못 반기며 동무는 허둥지둥 그 손을 잡아흔든다 아 이게 누구냐 너 요새 뭐하니 그도 쾌활한 낯에 미소까지 보이며 참 오래간만이로군하다가 나야 늘 놀지 그런데 요새두 예배당에 잘다니나 음 틈틈이 가지 내 사무란 그저 늘 바쁘니까 대관절 고마우이 보기 추한 거지를 쫓아주어서 나는 웬일인지 종로깍쟁이라면 이가 북북 갈리는걸 천만에 그야 내 직책으로 하는 걸 고마울 거야 있나 하며 동무는 건아하야 흥있게 웃는다 이 웃음을 보자 돌연히그는 점잖게 몸을 가지며 오 주여 당신의 사도 베드로를 내리사 거지를 치워주시니 너머나 감사 하나이다 하고 나즉이 기도를 하고 난 뒤에 감사와 우정이 넘치는 탐탁한 작별을 동무에게 남겨 놓았다 자기가 베드로의 영예에서 치사를 받은 것이 동무는 무척 신이나서 으쓱이는 어깨로 바람을 치올리며 그와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때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전신줄에서 물찍똥을 내려깔기 며 비리구 배리구 지저귀는 제비의 노래는 그 무슨 곡조인지 알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어머니, 백신애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노벨라와 함께하는 편안한 시간 오늘은 백신애의 나의 어머니를 읽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28년에 발표된 작가 백신애의 처녀 작 나의 어머니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한세기 전 이땅에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비롯된 세대간 갈등의 한부분을 느껴볼 수 있을거에요 청년회 회관을 건축하기 위하여 회원끼리 소인극을 하게 되었다 문예부에 책임을 지고 있는 나는 이번 연극에도 물론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시골인 만큼 여배우가 끼면 인기를 많이 끌 수가 있다고 생각한 청년회 간부들은 여자인 내가 연극 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다른 여자들을 끌어내기가 편리하다고 기어이 나에게 전 책임을 맡기고야 만다 그러니 나의 소임은 출연할 여배우를 꾀어 들이는 것이 가장 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트레머리가 사 오인에 불과하는 이 시골이라 아무리 끌어 내도 남자들과 같이 연극을 하기는 죽기보다 더 부끄러워서 못하겠다 는 둥 또는 해도 관계 없지만 부모가 야단을 하는 까닭에 못하겠다는 등 온갖 이유가 다 많아서 결국은 여자라고는 아 무도 출연 할 사람이 없이 되고 부득이 남자들끼리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밤마다 y학교 빈 교실을 빌려서 연극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습을 시키고 있는 나는 여러 가지로 완고한 시골에서 신여성들의 취하기 어려운 행동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어 다른 위원들과 함께 여러 번 토혼도 해 보았지만 내가 없으면 연극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는 다른 위원들의 간청도 있어서 나는 주저하면서도 끝까지 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그 공연을 이틀 앞둔 날 이다 학교 사무실 시계가 열한 시를 치는 소리를 듣고야 우리는 연습을 그쳤다 딸자식은 의례히 시집갈 때까지 친정에서 먹여주는 것이 예부터 해오던 습관이라면 나도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머니의 한낱 딸이니 놀고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 언만 오빠는 oo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보통 학교 교원으로 있던 내가 여자 청년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일조에 권고사직 을 당하고 나서 그대로 할 일이 없으니 부득이 놀 수밖에 없이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식구가 단촐한 얼마 안 되는 집안 일이 끝나면 우리 어머니의 말씀마따나 빈둥 빈둥 놀아댄다 어떤 땐 회관에도 나가고 또 어떤 땐 가까운 곳으로 다니며 여성단체를 조직하기에 애를 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또는 밤이 새도록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을 하는 것 뿐이다 한 푼도 벌어들이지는 못하지만 어쩐지 난 나대로 조금도 놀지 않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종종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 어쩌니 하고 벌이 없는 것을 한탄하시기도 한다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까운 재주가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생각이다 그러면 나는 아우 바빠 죽겠는데 하고 딴청을 들이댄다 쓸데없이 남의 일만 하고 다니면서 바쁘기는 무엇이 바빠 하며 나를 빈정대신다 내가 밤낮 남의 일만 하고 다니는지 또는 내 할 일을 내가 하고 다니는지 그것은 둘째로 하고라도 나의 거동은 언제든지 놀고 있는것 같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오늘은 y모임에서 여자y회를 발기하니 와서 도와다오 하니 거절할 수도 없고 또 오늘은 k가 저의 집이 조용하니 그곳에도 가서 하려던 얘기를 해 주어야겠고 또 y회로 모이는 날이니 내가 빠지면 아니 될 것 친구가 보내준 책이 몇 권이나 있는데 그것도 읽어야 되겠고 여러 곳에서 편지가 왔으니 꼭 답도 해 주어야겠고 이것이 모두 나에게는 못 견딜 만치 바쁘고 모두가 해야만 할 일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남의 눈에는 한 푼도 수입 이 없으니 나는 날마다 놀기만 하는 것 같이 보이는게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 어머니 어머니에게는 하루나 이틀이 아니고 몇 해든지 자꾸 나 혼자만 바쁘고 남의 눈에는 아까운 재주를 놀리기만 하면서 먹기가 좀 어색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일곱 살부터 교원으로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이나마 받아서 꼭꼭 어머니 살림에 보태 드릴 때는 내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했었고 또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도 그만 참고 있으면 어머니가 척척 다 해 주시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어떻게든지 내 마음에 맞도록 해 주시려고 애를 쓰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으레 해야 할 말도 하기가 미안하고 아무리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불평을 말할 수가 없어졌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도 어디가 아프다는 말조차 하기가 미안해진다 병원 약값 이것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이 오륙인 씩이나 모두 장정의 밥을 먹으면서 일년 내내 한 푼도 벌이라고는 하는 인간이 없구나 하며 어머니의 얼굴이 좋지 않아지면 나는 말할 수 없는 미안스러움과 죄송스러운 감정에 북받치고 만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너무 심하게구시면 어떤 땐 아이 어머니도 내가 벌지 않으면 굶어 죽는가베 아직은 그래도 먹을 것이 있는데 하는 야속스런 생각도 난다 그러나 이 생각도 감옥에 들어 계시는 오빠를 위해 차입을 한다 사식을 댄다 바득바득 애를 쓰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만 가슴이 어두워지고 만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문이 닫혔으면 어떡하지 어머니가 아직 주무시지 않고 계 실까 하는 걱정과 함께 지금 나한테도 무슨 돈이 월급처럼 꼭꼭 나오는 데가 있었으면 하는 엉터리 없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가라앉지 않는 뒤숭숭한 가슴으로 조심히 대문을 밀었다 의외로 대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옳지 됐다 나는 소리 없이 살며시 대문 안에 들어서서 도적놈처럼 안방 동정을 살폈다 안방에는 등잔불이 감스릿하게 낮추어 있었다 어머니가 벌써 주무시는구나 하는 반갑고 안심된 생각에 갑자기 가벼워진 몸으로 가만히 대문을 잠그고 들어서려니까 안방 창문에 거무스름한 어머니 그림자가 마치 지나 가는 구름처럼 어른하더니 재떨이에 담뱃대를 함부로 탁탁 쎄리는 소리와 함께 길 게 한숨 소리 아이구 얘야 글쎄 지금이 어느 때냐 하는 어머니의 꾸지람이라기보다는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이구 어머니 아직 안 주무셨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하자 나도 떨리는 한숨이 길게 나왔다 방문 열고 들어서니 아직 이불도 펴지 않고 어머니는 밀창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금까지 애꿎은 담배만 피우며 나를 기다리신 모양이다 무겁던 가슴이 뜨끔해졌다 이러한 경우는 교원을 그만두게 된 후로는 수없이 당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대로 들어가 모르는 척 하고 누워 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가슴에 받쳐그대로 엉엉 마음 풀릴 때까지 울 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문턱에 걸치고 들여다보던 반신을 막 방안에 들여놓으며 어머니 앞에 덜컥 주저앉아서 하하 웃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 나는 울고 싶으리만치 괴로웠다 내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도 침울했던 까닭이다 이런 어머니 어디 갔다 오셨어요 벌써 열 시가 되어 오는데 나는 열 두 시가 가까워 오는 것을 다행히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노기를 덜고자 일부러 열 시라고 했다 물끄러미 등잔만 쳐다보던 거칠어진 어머니 얼굴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열 시 하며 나에게 반문했다 나는 또 가슴이 뜨끔해졌다 열 시 열 시가 무엇이냐 열 시 열 시라니 열 한 시 친지가 언제라고 벌써 닭 울 때가 되었다 나직하게 목을 빼 어안이 막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 같더니 그 피가 일제히 머리를 향하여 달음질쳐서 올라오는 것 같아 진작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글쎄 지금이 어느 때라고 니가 미쳤니 지금까지 어딜 갔다 오냐 말이다 그 말소리는 어머니다운 애정과 애달픔과 노여움이 한데 엉킨 일종 처참한 음조에 떨리는 그것이었다 어리광으로 어머니의 노기를 풀려고 하하 웃고 시작한 나는 어머니의 이 말소리에 몸을 어떻게 지탱할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 책상에다 머리를 내어 던지며 주저앉았다 어쩌면 남 부끄러운 줄도 그렇게 모르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갔다 오느냐 말이다 네가 지금 몇 살이니 응 차라리 나를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나 주든지 가기는 어딜 가요 연극 연습 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거기 갔었어요 나의 이 대답에 어머니는 기가 막힌 다는 듯 입을 벌린 그대로 얼굴이 틀어졌다 연극하는 데 아이구 얘 좀 보게 그곳이 글쎄 네가 갈 데니 아무리 상것의 소생이라도 계집애가 그런 데 가는 거 본 적이있니 모이는 자식들이란 모두 지 아비 지 어미는 모른다 하고 사회니 지랄이니 하고 쫓아다니는 천하 상놈들만 벅적이는델 어머니 잘못했어요 남의 말은 하면 무엇해요 저도 잘 알고 있지 않아요 그만 주무세요 나는 덮어놓고 어머니를 재우려 했다 나는 어찌하든지 어머니와는 도무지 말다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점점 어머니의 노기만 더할 뿐인것을 나는 잘 안다 이따금 어머니가 심심하실 때에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면 옛 이야기 끝에 성인도 시속을 따르란 말이 있지요 하며 이야기 꼬리를 멀리 돌려서 나의 입장과 행동을 변명도 하고 될 수 있는 정도까지 어머니를 깨 우려고 애를 쓴다 그럼 그때는 나에게 감복이나 한 듯이 너는 어떻게 그런 유식한 것을 다 아니 하고 엄청나게 감복하시며 기특하고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신다 그때만은 나도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숨을 쉬는 듯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나면서부터 완고한 옛 도덕과 인습에 푹 싸인 어머니이라 그만 씻어 버린 듯이 잊어버리고 다시 자기의 주관으로 들어간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머니와는 입다툼은 하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어머니를 누워 재우려고 겨우 책상에서 머리를 들었다 아이그 어머니 글쎄 그만 주무세요 정 그렇게 제가 잘못했거든 내일 아침이 또 있잖아요 그만 주무세요 네 어머니는 홱 돌아 앉아 담배만 자꾸 피우신다 그 입술은 여전히 노여움에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참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것만 야단하시면 어떻게해요 이제부터 그러지 말라고 하셨으면 그만이지 아이참 주무세요 왜 저를 사내자식으로 낳으시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잠도 못 주무시고 하실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억지로 어리광을 피우는 내 눈엔 눈물이 팽 돌았다 난 얼른 닦아 감추려 했지만 차디찬 널빤지 위에서 끝없이 떨고있을 오빠의 쓰린 생각이 문득 나며 덩달아 솟아오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 참 우스워 죽을 뻔 했어요 이 주사 아들이 여자가 돼서 꼭 여자처럼 어떻게 잘 하는지 우스워서 뱃살이 곧을 뻔 했어요 모레부터는 돈 받고 연극을 해요 그때는 저녁마다 어머니 공짜 구경 시켜 드릴게요 참 잘해요 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어머니의 노기는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노기가 높아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 무릎에 손을 걸었다 글쎄 왜 이러니 내야 잘 때 되면 어련히 잘라구 보기 싫다 내 눈 앞에서 없어져라 계집아이가 무슨 이유로 남자들과 같이 야단이냐 이런 기막힐 창피한 꼴이 또 어디 있어 어머니가 어디까든지 늦게 온 나를 이상하게 의심해서 자기 마음대로 기막힌 상상을 하여가며 나를 더럽게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터져 오르나 그래도 이를 바둑바둑 갈면서 어머니 잡시다 하고 떨치는 손을 다시 어머니의 무릎에 걸었다 내 팔자가 사나우려니까 천하 제일이라고 칭찬이 비 오듯 하던 자식들이 아이고 내 팔자도 너 보는데 좋다 좋다 하니 내내 그러는 줄 아니 그래도 제 집에 돌아가면 다 욕한단다 네 오라비도 그렇게 열이 나게 쫓아다니고 어쩌고 하더니 한번 잡혀간 뒤론 그만이더구나 너도 또 추켜내다가 네 오라비처럼 감옥 속에나 보내지 별 수 있을 줄 아니 나는 그만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자신의 편함과 혈육을 사랑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모르고 도덕과 인습에 사무친 저 어머니의 자기의 생명 같이 키워 놓은 단 두 오누이로 말미암아 오늘에 받는 그 고통을 생각할 때 난 가슴이 다시금 찌들하고 쓰려졌다 저 어머니가 무엇을 알리 차라리 꾸지람이라도 실컷 들어두자 하는 가엾은 생각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방안에 공기가 쌀쌀하게도 움직이더니 납을 녹여 붓듯이 무겁게 가라 앉는다 얘 밥 안 먹겠니 어머니의 노기는 한없이 올라가다 가도 풀리기도 잘한다 그건 마음이 약하신 어머니는 모든 짜증과 괴롬에 문득 속이 상하시다가도 그 속풀이를 하는 곳이 언제든 얼토당토 않은데 마주치고 만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 곧 눈물로 변해사라지고 만다 언제든지 밤참을 꼭꼭 잡수시는 어머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지금까지 잡수시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가슴이 차게 놀랐다 갑자기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안 먹겠어요 연극연습을 하던 때는 어느 정도 시장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모가지 까지 무엇이 꼭 찬것 같다 뒤미쳐 먹지 않어 왜 안 먹어 어머니는 조금 불쾌한 어조로 다시 권하셨다 잇따라 숟가락이 놋쇠 그릇에 칼칼스럽게 마주치는 소리가 났다 얼마 후 또다시 얘 밥 먹어라 네 오라비는 저렇게 떨고 있으련마는 그래도 나는 이렇게 나는 먹는다 저 나오는 거 보고 죽을려고 목 메인 한숨과 함께 숟가락을 집어 던진다 나는 지금까지 참았던 울음이 와락 치받쳐 전신이 흔들렸다 이윽고 다시 담배를 넣기 시작하시던 어머니가 지금까지의 것은 모두 잊어버린것 같은 부드러운 말소리로 다시 권하셨다 배고프지 좀 먹으렴 나는 감격에 받쳐 다시 가슴이 찌르르 해졌다 나 때문에 썩는 속을 오빠를 생각하여 눌러버리고 오빠를 생각하여 애끊는 장을 그나마 조금 편히 곁에 앉힌 나를 위해 억제하려는 가슴은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가슴을 잘 안다 그 괴로움을 숨쉴 때마다 느낀다 기어이 몸을 일으켜 다만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보이고 싶으리만치 내 감정은 서글펐다 천천히 마루로 나가시는 어머니가 얼마 후에 손에 식혜 한 그릇을 떠 가지고 들어오셔서 내 옆에 갖다 놓으시며 밥 먹기 싫거든 이거라도 좀 먹어라 나는 가슴이 터져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가엾은 어머니 가엾은 딸 담배 한 대를 또 피우고 난 어머니는 허리를 재이며 자리로 누우셨다 내가 이 식혜를 먹지 않으면 어머니 속이 얼마나 아프시랴 오빠 생각에 넘어가지 않는 음식이라 또 내가 먹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많이 먹는 척 하시는 가엾은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나는 한 입에 그 감주를 죄다 삼켜 버리고 크게 웃어서 어머니를 안심하시게 하고 싶은 감정에 꽉 찼으나 전신은 물과 같이 여물어졌다 석유가 닳을까 하여 잔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이웃집 시계가 새로 한 시를 땡쳤다 어머니가 후 한숨을 쉬셨다 아 어머니 가엾은 어머니 어머니의 속을 알지 못하고 야속한 어머니로만 여기는 줄 아시고 그다지 괴로워하십니까 이 몸을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김 가에게 바치어 기뻐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잠시라도 보고싶을 만큼 이 딸의 가슴은 죄송함에 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어머니를 마음 편케 모실 수가 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장래 내 남편이 되기를 어머니 모르게 허락한 k 그도 나와 같은 울음을 우는 불행과 저주에 헤매는 가난한 신세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어머니를 편케 할까요 그러나 나의 어머니여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가에게 이 몸을 바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내일 밤도 빠지지 않고 가야합니다 가엾은 나의 어머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