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여자] 복덕방, 이태준,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마음과 몸을 리셋하는 시간이죠 노벨라가 읽어 드리는 이태준의 복덕방 들으시면서 새로운 하루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철석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버리는 소리가 났다 주먹구구에 골똘했던 안초시에겐 놀랄 만한 폭음이었던지 다리 부러진 돋보기 너머로 꼭 모이를 쪼으려는 닭의 눈을 하고 수챗구멍을 내다본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거피해 버린녹두 껍질 녹두 빈대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한 오륙 년째 안초시는 말끝마다 젠장 아니면 흥 하는 코웃음을 붙이곤 한다 추석이 벌써 내일 모레지 젠장 안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했던 것은 거짓말이었던지 아래 윗니가 송곳 끝처럼 날카로워짐을 느꼈다 안초시는 빈 입에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빠드득 소리가 나게 한번 물어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 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빨아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쉽게 들리 질 않는다 거기는 한 조각의 녹두빈대나 한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진한 슬픔과 더 횡한 고적함이 품겨 있는 것 같았다 혹혹 소매 끝을 불어 보고 손 끝으로 튀겨 보기도 하다가 목침을 세우고 눕고 말았다 이사는 팔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가만 천이라 사로 했으니 사천이라 사천 평 매 평에 아주 줄여 잡아 오 환씩만 하게 돼두 사 환 칠십오 전씩이 남으니 그럼 사사는 십륙 일만 육 천 환하구 안초시가 다시 주먹구구를 거듭해서 얻어 낸 총액이 일만 구천 원 단 천 원만 들여도 일만 구천 원이 되리라는 셈속이니 만 원만 들이면 그게 얼만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마가 화끈했다 도사렸던 무릎을 얼른 곧추세우고 뒤나 보려는 사람처럼 쪼그렸다 마코 갑이 번연히 빈 것인 줄 알면서도 다시 집어다 눌러 보았다 주머니엔 단돈 십 전 그것도 안경 다리를 고친다고 벌써 세 번짼가 네 번째 딸에게서 사오십 전씩 얻어 가지고는 번번이 담뱃값으로 다 내어보내고 만 최후의 십 전 안초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백통화 한 푼을 얹은 야윈 손바닥 가만히 떨린다 서참의의 투박한 손을 생각하면 너무나 얇고 잔망스러운 손이거니 했다 그러나 이따금 술잔은 얻어먹고 이렇게 내 방처럼 그의 복덕방에서 잠까지 빌려 자건만 한 번도 집 거간이나 해먹는 서참의의 생활이 부럽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한번쯤은 무슨 수가 생겨 다시 한번 내 집을 쓰게 되고 내 밥을 먹게 되고 내 힘과 내 낯으로 다시 한번 세상에 부딪혀 보려니 믿어졌다 초시는 전에 어떤 관상쟁이가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주먹을 쥐어야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늘 그렇게 쥐어야지 했지만 문득 생각이 나 내려다볼 때는 으레 엄지손가락이 얄밉도록 밖으로만 쥐어져 있었다 그래서 드팀전을 하다가도 실패를 했고 그래서 집까지 잡혀서 장농가게를 내었다가도 그만 화재를 보았거니 하는 것이다 이놈의 엄지손가락아 안으로 좀 들어가아 젠장 하고 연습삼아 엄지손가락을 먼저 안으로 넣고 아프도록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았다 그리고 당장 내어보낼 돈이면서도 그 십 전짜리를 그렇게 쥔 주먹에 단단히 넣고 담배 가게로 나갔다 이 복덕방에는 늘상 세 늙은이가 모인다 언제 누가 와서 집을 보러 가자고 할지 몰라 늘 갓을 쓰고 앉아서 행길을 잘 내다보는 얼굴 붉고 눈 방울 큰 노인은 주인 서참의다 참의로 다니다가 합병 후에는 다섯 해를 놀면서 시기를 엿보았지만 별수가 없을 것 같아 이럭저럭 심심 파적으로 갖게 된 것이 이 가옥 중개업이었다 처음엔 겨우 굶지 않을 만한 수입이었으나 다이쇼 팔구년 이후로는 시골 부자들이 세금에 몰려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만 몰려들고 그런데다가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 다옥정 같은 중앙지대에는 그리 고옥만 아니면 만 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그 판에 봄 가을로 어떤 달에는 삼사백 원 수입이 있다 그러기를 몇 해 지나 가회동에 수 십 간 집을 세웠고 또 몇 해 지나지 않아서는 창동 근처에 땅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중개업자도 많이 늘었고 건양사 같은 큰 건축회사가 생겨 당자끼리 직접 팔고 사는 것이 원칙 처럼 되어 가기 때문에 중개료 수입은 전보다 훨씬 준 셈이다 하지만 이십여 간 집에 학생을 치고 싶은 대로 치기 때문에 서참의의 수입이 없는 달이라고 쌀값이 밀리거나 나뭇값에 졸릴 형편은 아니다 세상은 먹구 살게 마련이야 서참의가 흔히 하는 말이다 칼을 차고 훈련원에 나서 병법을 익힐 땐 한번 호령만 하고 보면 산천이라도 물러설 것 같던 그 기개와 오늘의 자기 한낱 가쾌로 복덕방 영감으로 기생 갈보 따위가 사글셋방 한 간을 얻어 달래도 예 예 하고 따라나서야 하는 만인의 심부름꾼인 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눈물이 아니 날 수도 없다 워낙 술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 땐 남몰래 이런 감회를 이기지 못해 술집에 들어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호반의 기개란 흔히 혈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인지 몸에서 혈기가 줄어듬에 따라 그런 감회를 일으키는 일도 요즘은 적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집에서 점심을 먹다 듣노라니 무슨 장사치의 외치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귀에 익은 목청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가 제법 무엇을 사라는 소리가 아니라 유리병이나 간장통 팔거이쏘 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그 목청이 보면 꼭 알만한 사람 같아서 일어나 마루 들창으로 내어다봤다 이번엔 가마니나 신문 잡지나 팔 거이쏘 하면서 가마니 두어 개를 지고 한 손엔 저울을 들고 중노인이나 된 사나이가 지나가는데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어디서 알았으며 이름이 무엇이며 애초에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가 감감해지고 말았다 오라 그렇군 분명 저런 하고 그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유리병과 간장통을 외는 소리가 골목 안으로 사라져 갈 즈음에야 서참의는 그가 누구인 것을 깨달아 냈다 동관 김참의 허 나이는 자기보다 훨씬 연소 했으나 학식과 재기가 있는데다 호령 소리가 좋아 상관에게 늘 칭찬 을 받던 청년 무관이었었다 이십여 년 뒤에 들어도 갈 데 없이 그 목청이요 그 모습이었다 전날의 그를 생각하고 오늘의 그를 보니 적이 감개에 사무쳐 밥숟가락을 멈추고 냉수만 거듭 마셨다 그러나 전에 혈기 있을 때와는 달라 그런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반인 둘째 아들이 학교에 갔다 들어서는 것을 보고 또 싸전에서 쌀값 받으러 오자 마누라가 선선히 시퍼런 지전을 내어 헤는 것을 볼 때 서참의는 이내 속으로 거저 살아야지 별수 있나 저렇게 개가죽을 쓰고 돌아다니는 친구 도 있는데 에헴 뿐만 아니라 그런 절박한 친구 에다 대면 자기는 얼마나 훌륭한 지체냐 하는 자존심도 없지 않았다 지난 일 그까짓거 생각할 거 뭐 있나 사는 날까지 허허허 여생을 웃으며 살 작정이었다 그래 그런지 워낙 좀 실없는 티가 있는데다 요즘 와서는 누구에게나 농지거리가 늘어 갔다 그래서 늘 눈이 달리고 뾰로통한 입으로 말끝마다 젠장 소리만 나오는 안초시와는 성미가 맞지 않았다 쫌보야 술 한잔 사주랴 쫌보라는 말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 같아 안초시는 이내 발끈해서 네깟 놈 술 더러워 안 먹는다 한다 화투패나 밤낮 떼면 느이 어멈이 살아온다던 하고 서참의가 발끝으로 화투장 들을 밀어 던지면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쌔근쌔근 하다가 부채면 부채 담뱃갑이면 담뱃갑 자기의 것을 냉큼 집어 들고 다시는 안 올 듯이 새침해서 나가 버린다 조게 계집이문 천생 남의 첩감이야 하고 서참의는 껄껄 웃어 버리지만 안초시는 이렇게 돼서 올라가면 한 이틀씩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안초시 딸의 무용회 날 밤이었다 안경화라고 한동안 토월회에도 다니다가 대판에 가 있느니 동경에 가 있느니 하더니 오륙 년 뒤에 무용가라 이름을 날리며 서울에 나타났다 바로 제일회 공연 날 밤이었다 서참의가 조르기도 했지만 안초시도 딸의 사진과 이야기가 신문마다 나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서 공짜표를 얻을 수 있는 대로 얻어 가지고 서참의뿐 아니라 여러 친구들에게 돌렸다 허 저기 한가운데서 지금 한창 다릿짓 하는게 자네 딸인가 남들은 다 멍멍히 앉았는데 서참의가 해괴한 것을 보는 듯 마땅치 않은 어조로 물었다 무용이란 건 문명국일수록 벗구 한다네 그려 약기는 한 안초시는 미리 이런 대답으로 막았다 모를 일이네 원 지금 총각놈들은 모두 등신인가 바 왜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탄하였다 우린 총각 시절에 저런 걸 보문 그냥 못 배기지 빌어 먹을 녀석 나잇값을 못 하구 개야 저건 개 안초시가 분통이 발끈거려 하는 소리였다 한 가지가 끝나고 불이 환하게 켜졌을 때다 도루 차라리 여배우 노릇을 댕기라구 그래라 여배운 그래두 저렇게 넓적다릴 내놓구 덤비진 않더라 그 자식 오지랖 경치게 넓으네 네가 안방 건는방이 멫 칸이요나 알았지 뭘 쥐뿔이나 안다구 그래 보기 싫거든 나가렴 안초시는 화를 발끈 냈다 그랬더니 서참의도 안방 건넌방 말에 화가 나서 꽤 높은 소리로 넌 또 뭘 아니 요 쫌보야 하고 일어서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안초시는 거의 달포나 서참의의 복덕방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걸 박희완 영감이 가서 데리고 왔었다 박희완 영감이란 세 영감 중의 하나로 안초시처럼 이 복덕방에 와서 잠을 자기까지는 안 하지만 꽤 쏠쏠히 놀러 오는 늙은이다 아니 놀러 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와서 공부도 한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을 하겠다고 속수국어독본을 노상 끼고 와서 삼국지 읽던투로 긴상 도코에 유키이마스카 어쩌고를 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수국어독본 뚜껑이 손때에 절고 또 어떤 때는 목침 위에 받쳐 베고 낮잠도 자서 머리때까지 새까맣게 절어 조선총독부 편찬이란 잔 글자들은 보이지 않게 되도록 대서업 허가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나 내나 다 산 것들이 업은 가져 뭘 허니 무슨 세월에 흥 하고 어떤 때 안초시는 한나절이나 화투패를 떼다 안 떨어지면 그 화풀이로 박희완 영감이 들고 중얼거리는 속수국어독본을 툭 채어 행길로 팽개치며 그랬다 넌 또 무슨 재수를 바라구 밤낮 화투패나 떨어지길 바라니 난 심심풀이지 그러나 속으로는 박희완 영감보다 더 세상에 대한 야심이 끓었다 딸이 평양으로 대구로 다니며 지방 순회까지 해서 제법 돈냥이나 걷힌 것 같지만 연구소를 내느라고 집을 뜯어 고친다 유성기를 사들인다 교제를 하러 돌아다닌다 하느라고 더구나 귀찮게만 아는 이 애비를 위해 쓸 돈은 예산에부터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얘 낡은 솜이 돼서 그런지 삯바느질이 돼서 그런지 바지 솜이 모두 치어서 어떤 덴 홑옷이야 암만해두 샤쓰 한 벌 사입어야겠다 하고 딸의 눈치만 보아 오다 한번은 입을 열었더니 어련히 알아서 사드릴라구요 하고 딸이 대답은 선선히 하였지만 샤쓰는 그해 겨울이 다 지나도록 구경도 못 했다 셔츠는 커녕 안경다리를 고치겠다고 돈 일 원만 달래도 일 원짜리를 굳이 바꿔다가 오십 전 한 닢만 주었다 안경은 돈을 좀 주무르던 시절에 장만한 것이라 테만 오륙 원 먹은 것이어서 오십 전만으로 그런 다리는 어림도 없었다 오십 전짜리 다리도 있지만 살 바에는 말쑥하고 맵시 있는 것을 택하던 초시의 성미라 더구나 면상에서 짝짝이로 드러나는 것을 사기가 싫었다 차라리 종이 노끈인 채 쓰기로 하고 오십 전은 담뱃값으로 나가고 말았다 안경다린 왜 안 고치셨어요 딸이 그날 저녁에 물었다 흥 초시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은 며칠 뒤에 또 오십 전을 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버지 보험료만 해두 한 달에 삼 원 팔십 전씩 나가요 했다 보험료나 타먹게 어서 죽어 달라는 소리로도 들렸다 그게 내게 상관 있니 아버지 위해 들었지 누구 위해 들었게요 그럼 초시는 정말 날 위해 하는거문 살아서 한푼이라두 다우 죽은 뒤에 내가 알 게 뭐냐 소리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십 전이면 왜 안경다릴 못 고치세요 초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좋고 낮은 걸 가리실 처지예요 그러나 오십 전은 또 마코 값으로 다 나갔다 이러기를 아마 서너 번째다 자식도 소용 없어 더구나 딸자식 그저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지 초시는 돈의 긴요성을 날로 날로 더욱 심각하게 느꼈다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 심심해서 운동삼아 좀 나다녀 보면 거리마다 짓느니 고층 건축들이요 동네마다 느느니 그림 같은 문화주택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물에서 갓 튀어나온 메기처럼 미끈미끈한 자동차가 등덜미에서 소리를 꽥 지른다 돌아다보면 운전수는 눈을 부릅떴고 그 뒤에는 금시곗줄이 번쩍거리는 살찐 중년 신사가 빙그레 웃고 앉았는 것이었다 예순이 낼 모레 젠장할 것 초시는 늙어 가는 것이 원통했다 어떻게 해서나 더 늙기 전에 적게 돈 만 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내 손으로 다시 한번 이 세상과 교섭해 보고 싶었다 지금 이 꼴로서야 문화주택이 암만 서기로 내게 무슨 상관이며 자동차 비행기가 개미떼나 파리떼처럼 퍼지기로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냐 세상과 자기와는 자기 손에서 돈이 떨어진 그 즉시로 인연이 끊어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면 송장이나 다름없지 뭔가 초시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지가 이미 오래였다 무슨 수가 없을까 아니면 무슨 그루테기가 있어야 비비지 그러다가도 그래도 돈냥이나 엎질러 본 녀석이 벌기도 하는 게지 하고 그야말로 무슨 그루터기만 만나면 꼭 벌기는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관변에 있는 모 유력자를 통해 비밀리에 나온 말인데 황해 연안에 제이의 나진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관청에서만 알 뿐이지만 축항 용지는 비밀리에 매수되었으며 머지않아 당국자로부터 공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거기가 황무진가 전답들인가 초시는 눈이 뻘개 물었다 밭이라데 밭 그럼 매평 얼마나 간다나 좀 올랐대 관청에서 사는 바람에 아무리 시굴 사람들이기루 그만한 눈치 없겠나 그래두 무슨 일루 관청서 사는지는 모르거든 그래 그래 그리 오르진 않었대 아마 평당 이십오륙 전씩이면 살 수 있다나 보데 하지만 화중지병이지 뭘 허나 우리가 음 초시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정말이기만 하면 한 시각이라도 먼저 덤비는 놈이 더 먹는 판이다 나진도 오륙 전 하던 땅이 한번 개항된다는 소문이 나자 그해에 오륙 전의 백 배 이상이 올랐고 삼사 년 뒤에는 땅 나름이지만 어떤 요지는 천 배 이상 오른 데가 많다 다 산 나이에 오래 끌 건 뭐 있나 올 해 안에 넘겨두 최소한도 오환씩야 문제 없을테지 혼자 생각한 초시는 대관절 어디란 말야 거기가 하고 나앉으며 물었다 그걸 낸들 아나 그럼 그 모씨라는 이만 알지 그리게 날더러 단 만 원이라도 자본을 움직이면 자기는 거기서도 어디어디가 요지 라는거 설계도를 복사해 낸 사람이니까 그 요지만 사겠다는 말이지 그리구 많이두 바라질 않어 비용 죄다 제치구 순이익의 이 할만 달라는 거야 그럴 테지 누가 그런 자국을 일러주구 구경만 하자겠나 이 할이라 이 할 초시는 생각할수록 이것이 훌륭한 그 무슨 그루터기가 될 것 같았다 나진의 선례도 있거니와 박희완 영감 말이 만주국이 되는 바람에 중국과의 관계가 미묘해져서 황해 연안에도 나진과 같은 사명을 갖는 큰 항구가 필요할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도 추측할 바라 했다 초시의 상식에도 그것은 믿을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피죤을 사서 거기서 아주 한 대를 피워 물고 왔다 어째 박희완 영감이 종일 보이질 않는다 다른 데로 자금운동을 다니나 보다 했다 서참의는 점심 전에 나간 사람이 어디서 흥정이 한 자리 떨어지느라고 그런지 아직 돌아오질 않는다 안초시는 미닫이틀 위에서 낡은 화투를 꺼냈다 허 이거 봐라 여간해선 잘 떨어지지 않던 거북 패가 단번에 뚝 떨어진다 누가 옆에 있어 좀 봐 줬으면 싶었다 아무래두 이게 심상칠 않어 이제 재수가 티나 부다 초시는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행길로 내던졌다 출출하던 판에 담배만 몇 대를 피고 나니 목이 컬컬해진다 앞집 수채에 뜨물에 떠내려 가다 막힌 녹두 껍질이 그저 누렇게 보인다 오냐 내년 추석엔 초시는 이날 저녁에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했다 실패는 했을지라도 그래도 십수 년을 상업계에서 논 안초시라 출자를 권유하는 수작만은 딸이 듣기에도 딴사람인 듯 놀라웠다 딸은 즉석에서는 가부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내 잊혀지지는 않았던지 다음날 아침엔 딸 편이 먼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초시가 박희완 영감에게 묻던 이상으로 시시콜콜히 캐어물었다 그러면 초시는 또 박희완 영감 이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소상히 설명했고 일년 안에 청장을 하더라도 최소한 오십 배 이상의 순이익이 날 것이라 장담 장담했다 딸은 솔깃했다 사흘 안에 연구소 집을 어느 신탁 회사에 넣고 삼천 원을 돌리기로 했다 초시는 금시발복이나 된 듯 뛰고 싶게 기뻤다 서참의 이놈 날 은근히 멸시했것다 내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 난 집을 살 테다 네깟놈이 천생 가쾌지 별거냐 그러나 신탁회사에서 돈이 되는 날은 웬 처음 보는 청년 하나가 초시의 앞을 가리며 나타났다 그는 딸의 청년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손에 단 일 전도 넣지 않았고 꼭 그 청년이 나서서 돈을 쓰며 처리하게 했다 처음엔 팩 나오는 노염을 참을 수가 없었으나 며칠 밤을 지내고 나니 적어도 삼천 원의 순이익이 오륙만 원은 될 것이라 만 원 하나야 어디로 가랴 하는 타협이 생겨서 안초시는 으슬으슬 그 이를테면 사위녀석격인 청년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일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삼천원 어치 땅을 사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해도 거기는 축항이 된다는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와 다사도에는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 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 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했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돈을 쓸 때는 일 원짜리 한 장 만져도 못 봤지만 벼락은 초시에게 떨어졌다 서너 끼씩 굶어도 밥 먹을 정신이 나지도 않았거니와 밥을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밑 도리듯 하는 건가 탄식만할 뿐이었다 밥보다는 술과 담배가 그리웠다 물론 안경다리는 그저 못 고쳤다 그러나 이제는 오십 전짜리는 커녕 단 십 전짜리도 얻어 볼 길이 없다 추석 가까운 날씨는 해마다의 그때와 같이 맑았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렸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번에도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매 끝을 불거나 떨지는 않았다 고요히 흘러 내리는 눈물을 그 더러운 소매로 닦았을 뿐이다 여름이 극성스럽게 덥더니 추위도 그럴 징조인지 예년보다 무서리가 일찍 내렸다 서참의가 늘 지나다니는 식은관사에 울타리가 넘게 피었던 코스모스들이 끓는 물에 데쳐 낸 것처럼 시커멓게 무르녹고 말았다 참의는 머리가 띵했다 요즘 와서 울기 잘하는 안초시를 한번 위로해 주려 엊저녁에는 데리고 나와 청요릿집으로 추탕집으로 새로 두 점을 치도록 돌아다닌 때문 같았다 조반이라고 몇 술 뜨기는 했지만 혀도 그냥 뻑뻑하다 안초시도 그럴 것이니까 해는 벌써 오정 때지만 끌고 나와 해장술이나 먹으리라하고 부지런히 내려와 보니 웬일인지 복덕방이라고 쓴 베 발이 아직 내어 걸리질 않았다 이 사람 봐아 어느 땐 줄 알구 코만 고누 그러나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닫이를 밀어 젖힌 서참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안초시의 입에는 피 얼굴은 잿빛이다 방 안은 움 속처럼 음습한 바람이 휭 끼친다 아니 참의는 우선 미닫이를 닫고 눈을 비비고 초시를 들여다보았다 안초시는 벌써 아니요 안초시의 시체일 뿐 둘러보니 무슨 약병인 듯한 것 하나가 굴러져 있다 참의는 한참 만에야 이 일이 슬픈 일인 것을 깨달았다 허 파출소로 갈까 하다 그래도 자식한테 먼저 알려야겠다 하고 말로만 듣던 그 안경화 무용연구소를 찾아가서 안경화를 데리고 왔다 딸이 한참 울고 난 뒤다 관청에 어서 알려야지 아니예요 그 하지 마세요 딸은 펄쩍 뛰었다 하지 말라니 저 저라니 제 명예도 좀 하고 그는 애원했다 명예 안 될 말이지 명예를 생각하는 사람이 애빌 저 모양으루 세상 떠나게 해 안경화는 엎드려 다시 울었다 그러다가 나가려는 서참의의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절 살려 주세요 소리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그럼 비밀은 내가 지킬 테니 나하자는 대루 할까 네 서참의는 다시 앉았다 부친 위해서 보험 든 거 있지 네 간이보험이요 무슨 보험이든 얼마나 타게 되누 사백팔십 원요 부친 위해 들었으니 부친 위해 다 써야지 그럼요 에헴 그럼 돌아간 이가 늘 속샤 쓰를 입구싶어 했어 상등 털샤쓰를 사다 입히구 그 위에 진견으로 수의 일습 구색 맞춰 짓게 허구 선산은 있나 묻힐 데가 웬걸요 없어요 그럼 공동묘지라도 특등지루 널찍하게 사구 장례식을 장하게 해야 말이지 초라하게 해버리면 내가 그저 안 있을거야 알아들어 네에 하고 안경화는 그제야 핸드백을 열고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았다 안초시의 소위 영결식이 그 딸의 연구소 마당에서 열렸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갔다 박희완 영감이 무얼 잡혀서 가져 왔다는 부의 이 원을 서참의가 장례비가 넉넉하니 자네 돈 그 계집애 줄 거 없네 하곤 우선 술집에 들러 거나하게 곱빼기들을 한 것이다 영결식장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고 무용가 안경화를 봐서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서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느라고 끽끽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 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을 했다 그 뒤를 따라 한 이십 명이 관 앞에와 꾸벅거렸다 그리고 뭐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 했을 때 에헴 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참의도 한마디 없을 순 없다는 듯이 나섰다 향을 한움큼이나 집어 놓자 연기가 시커멓게 올려 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헴 하더니 조사를 한다 나 서참읠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만 호살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 아무튼지 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 이 사람 취했네그려 하며 서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했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 보았지만 으흐흑 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소낙비 김유정 l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ㅣ책 읽어주는 노벨라

안녕하세요 피어 노벨라를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김유정의 소낙비 입니다 지금 우리는 1920 30년대 한국 단편 소설을 읽고 있죠 구십여년 전 이 땅에는 계급과 무지 그리고 빈곤 속에 또 여권은 전무한 사회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보다 먼저 새로운 문명에 접한 작가들은 그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김유정 의 소낙비 당시의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들어보세요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듯 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산매 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뛴다 뫼 밖으로 농군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마을 안의 공기는 쓸쓸했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 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매앰 매애맴 춘호는 자기 집 올 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 들은 묵삭은 오막살이집 방문 턱에 걸터앉아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사나흘 밤을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사에 고리삭은 그의 얼굴은 더욱 해쓱했다 아내에게 다시 한번 졸라 본다 그러나 위협하는 어조로 이봐 그래 어떻게 돈 이 원만 안 해줄 테여 아내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갓 잡아온 새댁 처럼 감자만 씻을 뿐 잠자코 있다 된다 안된다 좌우간 이렇다 말이 없으니 춘호는 울화가 터져 죽을 지경이다 그는 타지에서 떠돌아 온 몸이라 자기를 믿고 장리를 주는 사람도 없고 또 그 알량한 집을 팔려고 해도 단 이삼 원의 작자도 내닫지 않으니 앞뒤가 꼭 막혔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는 나이 젊고 얼굴 똑똑하겠다 돈 이 원 쯤이야 어떻게라도 될 수 있겠기에 묻는건데 들은 체도 안하니 괘씸한 듯 싶었다 그는 배짱을 부리며 다시 한 번 돈 좀 안 해줄 테여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대꾸는 역시 없다 춘호는 노기충천하여 불현듯 문지방을 떠다밀며 벌떡 일어섰다 눈을 흡뜨고 벽에 기댄 지게막대를 손에 잡자 아내 옆으로 바람같이 달겨들었다 이년아 기집 좋다는게 뭐여 남편의 근심도 덜어 줘야지 끼고 자자는 기집이여 지게막대는 아내의 연한 허리를 모질게 후렸다 까부라지는 비명은 모지락스리 찌그러진 울타리를 벗어 나간다 곧 이어 지게막대는 앉은 채 고꾸라진 아내의 발뒤축을 얼러 볼기를 내려 갈겼다 이년아 내가 언제부터 너에게 조르는 게여 법 같이 호통을 치며 남편이 지게막대를 공중으로 다시 울리며 모지름을쓸 때 아내는 에그머니 하고 외마디를 질렀다 연이어 몸을 일으키자 엎어질듯 싸리 문 밖으로 내달렸다 얼굴에 눈물이 흐른 채 황그리는 걸음으로 문앞의 언덕을 달려 내려가 개울을 건너고 맞은쪽에 뚫린 콩밭 길로 들어섰다 너 네가 날 피하면 어딜 갈 테여 발길을 막는 듯한 의미 있는 호령에 달아나던 아내는 다리가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어 싸리문 안에 아직도 지게막대를 들고 섰는 남편을 바라본다 어른에게 죄진 어린애같이 입만 종깃종깃 하다가 남편이 뛰어나올까 겁이 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쇠돌 엄마 집에 좀 다녀올께유 쭈뼛 쭈뼛 변명을 하고는 가던 길을 다시 횡허케 내걸었다 아내라고 요새 이 돈 이 원이 금시로 필요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자격으로나 노동으로나 돈 이 원이란 감히 땅띔도 못해볼 형편이었다 벌이래야 하잘것 없는 것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남에게 뒤질까 영산이 올라 산으로 빼는 것이다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달고 거한 산중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도라지 더덕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우중충한 돌 틈바귀로 잔약한 몸이 맨발에 짚신짝을 끌며 강파른 산등을 타고 돌려면 젖 먹던 힘까지 녹아 내리는 듯 진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아랫도리를 단 외겹으로 두른 낡은 치맛자락은 다리로 허리로 척척 엉겨 걸음을 방해한다 땀에 불은 종아리는 거칠은 숲에 긁혀 쓰라림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무거운 흙내는 숨이 탁탁 막히도록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삶에 발버둥치는 순진한 그의 머리는 아무 불평도 일지 않았다 가물에 콩 나기로 어쩌다 도라지 순이라도 어지러운 숲 속에 하나 둘 뾰족이 뻗어오른 것을 보면 기쁨에 넘치는 미소를 띠었다 때로는 바위도 기어올랐다 정히 못 기어오를 그런 험한 곳이면 칡덩굴에 매달리기도 한다 땟국에 절은 무명적삼은 벗어서 허리춤에다 꾹 찌르고 호랑이숲이라 이름난 강원도 산골에 매달려 기를 쓰고 허비적거린다 골 바람은 지날 적마다 알몸을 두른 치맛자락을 공중으로 날린다 그때마다 검붉은 볼기짝을 사양 없이 내보이니 칡덩굴이 그를 본다면 배를 움켜쥐어도 다 못 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윽한 산골이라 그 꼴을 비웃는 놈은 뻐꾸기뿐이었다 이리하여 해동갑으로 해갈을 하고 나면 캐어 모은 도라지 더덕은 얼러 사발 가웃 혹은 두어 사발 남짓하게 된다 그러면 동네로 내려와 주막거리에 가서 그걸 내주고 보리쌀과 사발 바꿈을 한다 그러나 요즘엔 그나마도 철이 겨워 소출이 없다 대신 남의 보리방아를 온종일 찧어주고 보리밥 그릇이나 얻어서는 집으로 돌아와 농토를 못 얻어 뻔뻔히 노는 남편과 같이 나누는 것이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다 그러고 보니 돈 이 원커녕 당장 목을 딴대도 피라도 나올른지 의문이었다 만약 돈 이 원을 빌린다면 아는 집에서 보리라도 꾸어 파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온 동네 아낙네들이 치맛바람에 팔자 고쳤다고 쑥덕거리며 은근히 시새우는 쇠돌 엄마가 아니고는 노는 벌이를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그는 자기 꼴 주제에 제물에 눌려서 호사로운 쇠돌 엄마에게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쇠돌 엄마도 처음에야 자기와 같이 천한 농부의 계집이련만 어쩌다 하늘이 도와 동네 부자양반 이 주사와 은근히 배가 맞은 뒤로는 얼굴도 모양 내고 옷치장도 하고 밥 걱정도 안하고 아주 금 방석에 딩구는 팔자가 되었다 그리고 쇠돌 아버지도 이게 웬 땡이냔 듯이 아내를 내어논 채 눈을 살짝 감아버리고 이 주사에게서 나는 옷이나 입고 주는 쌀이나 먹고 연년이 신통치 못한 자기 농사에는 한 손을 떼고 히짜를 뽑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춘호 처가 쇠돌 엄마에게 죽어도 가지 않으려는 그 속 까닭은 사실 여기에 있다 바로 지난 늦은 봄 달이 뚫어지게 밝은 어느 밤이었다 춘호가 보름 게추를 보러 산모퉁이로 나간 것이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이젠 자고 오려나 생각하고 막 드러누워 잠이 들려는데 웬 난데 없는 황소 같은 놈이 뛰어들었다 허둥지둥 춘호 처를 마구 깔다가 놀라서 으악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난 일이 있었다 어수룩한 시골 일이라 별반 풍설도 안 나고 쓱싹 되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동네부자 이 주사의 소행임을 비로소 눈치 챘다 그런 이유로 춘호 처는 쇠돌 엄마와 직접 관계는 없다고해도 그를 대하면 공연스리 얼굴이 뜨뜻해지고 몹시 어색했다 마치 죄나 진 듯이 그리고 더우기 쇠돌 엄마가 새댁 나는 속옷이 세 개구 버선이 네 벌이구 행 하며 아주 좋다고 핸들대는 그 꼴을 보면 혹시 자기에게 한 점을 두고서 비양거리는 거나 아닌가 하는 옥생각으로 무안해서 고개도 못 들었다 한편으론 자기도 좀만 잘했더면 지금쯤은 쇠돌 엄마처럼 호강을 할 수 있었을 그런 갸륵한 기회를 깝살려버린 자기 행동에 대한 후회와 애탄으로 마음을 괴롭히는 그 쓰라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욕을 보더라도 나날이 심해가는 남편의 무지한 매보다는 그래도 좀 헐할 게다 오늘은 한맘 먹고 쇠돌 엄마를 찾아가려는 것이었다 춘호 처는 이번 걸음이 헛발이나 안 칠까하는 일념으로 심화를 하며 수양버들이 쭉 늘여박힌 논두렁길로 들어섰다 그는 시골 아낙네로는 용모가 매우 반반했다 좀 야윈 듯한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소위 동네의 문자대로 외입깨나 함직한 얼굴이었으되 추레한 의복이며 퀴퀴한 냄새는 거지를 볼지른다 그는 왼손 바른손으로 번갈아 치맛귀를 여며가며 속살이 삐어질까 조심조심이 걸었다 감사나운 구름송이가 하늘 신폭을 휘덮고는 차츰차츰 지면으로 처져 내리더니 그예 산봉우리에 엉겨 살풍경이 되고 만다 먼데서 개짖는 소리가 앞뒷산을 한적하게 울린다 빗방울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차차 굵어지며 무더기로 퍼부어내린다 춘호 처는 길가에 늘어진 밤나무 밑으로 뛰어들어가 비를 피하며 쇠돌 엄마 집을 멀리 바라보았다 북쪽 산기슭 높직한 울타리로 뺑 돌려 두르고 앉았는 오묵하고 맵시 있는 집이 그 집이었다 그런데 싸리문이 꼭 닫힌 걸 보면 아마 쇠돌 엄마가 농군청에 저녁 새참을 나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쇠돌 엄마 오기를 지켜보며 오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빗방울은 뚝뚝 떨어지며 그의 뺨을 흘러 젖가슴으로 스며든다 바람은 지날 적마다 냉기와 함께 굵은 빗발을 몸에 들여친다 비에 쪼로록 젖은 치마가 몸에 찰싹 감겨 허리로 궁둥이로 다리로 살의 윤곽이 그대로 비쳐올랐다 무던히 기다렸으나 쇠돌 엄마는 오지 않았다 하도 진력이 나서 하품을 해가며 정신없이 서 있느라니 왼편 언덕에서 사람 오는 발자취 소리가 들린다 그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날쌔게 나무 틈으로 몸을 숨겼다 동이 배를 가진 이 주사가 지우산을 받쳐쓰고 쇠돌네 집을 향해 응뎅이를 껍쭉거리며 내려가는 길이었다 비록 키는 작달막하나 숱 좋은 수염이든지 온 동네를 털어야 단 하나뿐인 탕건이든지 썩 풍채 좋은 오십 전후의 양반이다 그는 싸리문 앞으로 가더니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문을 떠다밀고 속으로 버젓이 들어가버린다 이것을 보니 춘호 처는 다시금 속이 편치 않았다 자기는 개돼지같이 무시로 매만 맞고 돌아치는 천덕꾼이다 안팎으로 겹귀염을 받으며 간들대는 쇠돌 엄마와 사람된 치수가 두드러지게 다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쇠돌 엄마의 호강을 너무나 부럽게 우러러보는 반동으로 자기도 잘했더면 하는 턱없는 희망과 후회가 전보다 몇 갑절 쓰린 맛으로 그의 가슴을 찌푸뜨렸다 쇠돌네 집을 하염없이 건너다보다가 어느덧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굴러내린다 언덕에서 쓸려내리는 사탯물이 발등까지 개흙으로 덮으며 소리쳐 흐른다 빗물에 폭 젖은 몸뚱아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그는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당황한 시선으로 사방을 경계해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시선을 돌려 그 집을 쏘아보며 속으로 궁리해 본다 안에는 확실히 이 주사 뿐일 게다 그때까지 걸렸던 싸리문이라든지 또는 울타리에 널은 빨래를 여태 안 걷어 들이는 것을 보면 어떤 맹세를 두고라도 분명히 이 주사 외엔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놓고 비를 맞아가며 그 집으로 달려들었다 봉당으로 선뜻 뛰어오르며 쇠돌 엄마 기슈 하고 인기척을 낸다 물론 쇠돌 엄마의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그 음성이 나자 안방에서 이 주사가 번개같이 머리를 내밀었다 자기딴엔 꿈밖이란 듯 눈을 두리번 두리번하더니 옷 위로 볼가진 춘호 처의 젖가슴 아랫배 넓적다리로 발등까지 슬쩍 음흉히 훑어보고는 거나한 낯으로 빙그레 한다 그리고 자기도 봉당으로 주춤주춤 나오며 쇠돌 엄마 말인가 왜 지금 막 나갔지 곧 온댔으니 안방에 좀 들어가 기다리면 하고 매우 일이 딱한 듯이 어름어름한다 이 비에 어딜 갔에유 지금 요 밖에 나갔지 그러나 곧 올 걸 있는 줄 알고 왔는디 춘호 처는 이렇게 혼잣말로 낙심하며 섭섭한 낯으로 머뭇머뭇 하다가 그냥 돌아갈 듯 봉당 아래로 내려섰다 이 주사를 쳐다보며 물차는 제비같이 산드러지게 그럼 요담에 오겠에유 안녕히 계시유 하고 작별의 인사를 올린다 지금 온댔는데 좀 기다리지 담에 또 오지유 아닐세 좀 기다리게 여보게 여보게 이봐 춘호 처가 간다는 바람에 이 주사는 체면도 모르고 기가 올랐다 허둥거리며 재간껏 만류했지만 암만해도 안될 듯싶다 춘호 처가 여기엘 찾아온 것도 큰 기적이려니와 뇌성벽력에 구석진 곳이겟다 이렇게 솔깃한 기회는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는 눈이 뒤집히어 입에 물었던 장죽을 쭉 뽑아 방안으로 치뜨리고는 계집의 허리를 뒤로 다짜고짜 끌어안아서 봉당 위로 끌어올렸다 계집은 몹시 놀라며 왜 이러서유 이거 놓세유 하고 몸을 뿌리치려는 앙탈을 한다 아니 잠깐만 이 주사는 그래도 놓지 않으며 허겁스러운 눈짓으로 계집을 달랜다 흘러내리는 고의춤을 왼손으로 연신 치우치며 바른팔로는 계집을 잔뜩 움켜잡고는 엄두를 못 내어 짤짤매다가 간신히 방안으로 꺾꺾 몰아넣었다 안으로 문고리는 재빠르게 채였다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추 잎에 부딪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해 갔다 얼마쯤 지난 뒤였다 이만하면 길이 들었으려니 안심하고 이 주사는 날숨을 후우 하고 돌린다 실없이 고마운 비 때문에 발악도 못 치고 앙살도 못 피우고 무릎 앞에 고분고분 늘어져 있는 계집을 대견히 바라보며 빙긋이 얼러 보았다 계집은 온몸에 진땀이 쭉 흐르는 것이 꽤 더운 모양이다 벽에 걸린 쇠돌 엄마의 적삼을 꺼내 계집의 몸을 말쑥하게 훌닦기 시작한다 발끝부터 얼굴까지 너 열 아홉이지 하고 이 주사는 취한 얼굴로 얼간히 물어보았다 니에 하고 메떨어진 대답 계집은 이 주사 손에 눌리어 일어나도 못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다 이 주사는 계집의 몸을 다 씻고 나서 한숨을 내뽑으며 담배 한 대를 턱 피워 물었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 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없자 원 그래서야 어떻게 산단 말이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는 거냐 그러다 혹시 맞아죽으면 정장 하나 해볼 곳 없는 거야 허니 네 명이 아까우면 덮어놓고 민적을 가르는 게 낫겠지 하고 계집의 신변을 위해 염려를 마지않다가 번뜻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너 참 아이 낳다가 죽었다더구나 니에 어디 난 듯이나 싶으냐 계집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지며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외면했다 이 주사도 그까짓 것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웬 녀석의 냄새인지 무 생채 썩는 듯한 시크무레한 악취가 불시로 코청을 찌르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그런 줄은 소통 몰랐으나 알고 보니 비위가 몹시 역했다 그는 빨고 있는 담배통으로 계집의 배꼽께를 똑똑히 가리키며 얘 이 살의 때꼽 좀 봐라 그래 물이 흔한데 이것 좀 못 씻는단 말이냐 하고 모처럼의 기분을 상한 것이 앵하단 듯이 꺼림한 기색으로 혀를 찬다 하지만 계집이 참다 참다 이내 무안에 못 이겨 일어나 치마를 입으려 하니 그는 역정을 벌컥 냈다 옷을 빼앗어 구석으로 동댕이 치고는 다시 그 자리에 끌어앉혔다 그리고 자기 딸이나 책하듯 아주 대범하게 꾸짖었다 왜 그리 계집이 달망대니 좀 듬직치가 못하구 춘호 처가 그 집을 나선 것은 들어간 지 약 한 시간 만이었다 비가 여전히 쭉쭉 내린다 그는 진땀을 있는 대로 흠뻑 쏟고 나왔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천행으로 오늘 일은 성공이었다 그는 몸을 솟치며 생긋했다 그런 모욕과 수치는 난생 처음 당하는 봉변으로 지랄 중에도 몹쓸 지랄이었으나 성공은 성공이었다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생이 따르는 법이니 이까짓 거야 골백번 당한대도 남편에게 매나 안 맞고 의좋게 살 수만 있다면 그는 사양치 않을 것이다 이 주사를 하늘같이 은인같이 여겼다 남편에게 부쳐먹을 농토를 줄 테니 자기의 첩이 되라는 그 말도 죄송하였으나 더우기 돈 이 원을 줄테니 내일 이맘때 쇠돌네 집에서 넌즈시 만나자는 그 말은 무엇보다도 고마웠고 벅찬 짐이나 풀은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만 애키는 것은 자기 행실이 만약 남편에게 발각되는 나절엔 대매에 맞아죽을 것이다 그는 일변 기뻐하며 일변 애를 태우며 자기 집을 향해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가분가분 내려달렸다 춘호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려 뿌루퉁하니 홀로 앉았다 그는 고향인 인제를 등진 지 벌써 삼년 해를 이어 흉작에 농작물은 말도 못되고 따라서 빚장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는 날로 심했었다 마침내 하릴없이 집 세간살이를 그대로 내버리고 알몸으로 밤도주를 했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는다고 나이 어린 아내의 손목을 끌고 이 산 저 산을 넘어 표랑했다 그러나 우정 찾아들은 곳이 고작 이 마을이나 산 속은 역시 일반이다 어느 산골엘 가 호미를 잡아봐도 정은 조그만치도 안 붙었고 그곳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이 품을 벌려 그를 맞을 뿐이었다 터무니없다 하여 농토를 안 준다 일 구멍이 없으니 품을 못 판다 밥이 없다 결국 그는 피폐해 가는 농민 사이를 감도는 엉뚱한 투기심에 몸이 달떴다 요사이 며칠 동안을 두고 요 너머 뒷산 속에서 밤마다 큰 노름판이 벌어지는 기미를 알았다 그는 자기도 한몫 보려고 끼룩거렸지만 좀체로 밑천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원 수가 좋아서 이 이 원이 조화만 잘한다면 금시 발복이 못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삼 사 십 원 따서 동네의 빚이나 대충 가리고 옷 한 벌 지어 입고 진저리나는 이 산골을 떠나는 것이 그의 배포였다 서울로 올라가 아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고 둘이서 다구지게 벌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산 구석에서 굶어죽을 맛이야 없었다 그래서 젊은 아내에게 돈 좀 해오라니까 요리 매낀 조리 매낀 매만 피하고 곁들어주지 않으니 그 소행이 여간 괘씸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집으로 달려들자 미처 입도 벌리기 전에 남편은 이를 악물고 주먹 뺨을 냅다 붙인다 너 이년 매만 살살 피하고 어디 가 자빠졌다 왔니 볼치 한 대를 얻어맞고 아내는 오기가 걸려 벙벙했다 그래도 직성이 못 풀려 남편이 다시 매를 손에 잡으려 하니 아내는 질겁을 하여 살려달라고 두 손으로 빌며 개신개신 입을 열었다 낼 되유 낼 돈 낼 되유 하며 돈이 변통됨을 삼가 아뢰는 그의 음성은 절반이 울음이었다 남편이 반신반의하여 눈을 찌긋하다가 낼 하고 목청을 돋았다 네 낼 된다유 꼭 되여 네 낼 된다유 남편은 시골 물정에 능통하니만치 난데없는 돈 이 원이 어디서 어떻게 되는 것까지는 추궁해 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저으기 안심한 얼굴로 방문턱에 걸터앉으며 담뱃대에 불을 그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도 마음을 놓고 감자를 삶으러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니 남편이 곁으로 걸어오며 측은한 듯이 말린다 병 나 방에 들어가 어여 옷이나 말려 감자는 내 삶을께 먹물같이 짙은 밤이 내렸다 비는 더욱 소리를 치며 앙상한 그들의 방벽을 앞뒤로 울린다 천정에서 비는 새지 않으나 집지은 지가 오래 되어 고래가 물러앉다시피 된 방이라 도배를 못한 방바닥에는 물이 스며들어 귀죽축하다 거기다 거적 두 잎만 덩그렇게 깔아놓은 것이 그들의 침소였다 석유 불은 없어 캄캄한 바로 지옥이다 벼룩이는 사방에서 마냥 스물거린다 그러나 등걸 잠에 익숙한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누워 줄기차게 퍼붓는 밤비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가난으로 인해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모르고 나날이 매질로 불평과 원한에 복대기는 그들도 이 밤에는 불시로 화목했다 단지 남편의 품에 들은 돈 이 원을 꿈꾸어보면서 서울 언제 갈라유 남편의 왼팔을 베고 누웠던 아내가 남편을 향해 응석 비슷이 물어보았다 그는 남편에게 서울의 화려한 거리며 후한 인심에 대해 여러 번 들은 바 있어 일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몽상은 해보았으나 실지 구경은 못해보았다 얼른 이 고생을 벗어나 살기 좋은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곧 가게 되겠지 빚만 좀 없어도 가뜬하련만 빚은 낭종 줴더라도 얼핀 가유 염려 없어 이 달 안으로 꼭 가게 될 거니까 남편은 썩 쾌히 승낙했다 사실 그는 동네에서 일컬어주는 질꾼으로 투전장의 가보쯤은 시루에서 콩나물 뽑듯하는 능수였다 내일 밤 이 원을 가지고 벼락같이 노름판에 달려가서 있는 돈이란 깡그리 모집어올 생각을 하니 그는 은근히 기뻤다 그리고 교묘한 자기의 손재간을 홀로 뽐냈다 이번이 서울 첨이지 그는 서울 바람 좀 한번 쐬었다고 큰 체를 하며 팔로 아내의 머리를 흔들어 물어보았다 성미가 워낙 겁겁한지라 지금부터 서울 갈 준비를 착착 하고 싶었다 그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두메 산골 구석에서 자라먹은 아내를 데리고 가면 서울사람에게 놀림도 받을 게고 거리끼는 일이 많을 듯싶었다 그래서 서울 가면 꼭 지켜야 할 필수 조건을 아내에게 일일이 설명치 않을 수 없었다 첫째 사투리에 대한 주의부터 시작되었다 농민이 서울사람에게 꼬라리 라는 별명으로 감잡히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투리에 있을지니 사투리는 쓰지 말며 합세를 하십니까로 하게유를 하오로 고치되 말끝을 들지 말지라 또 거리에서 어릿어릿하는 것은 내가 시골뜨기요 하는 얼뜬 짓이니 갈 길은 재게 가고 볼 눈은 또릿또릿히 볼지라 하는 것들이었다 아내는 그 끔찍한 설교를 귀담아 들으며 모기소리로 네 네 를 하였다 남편은 두어 시간 가량을 샐 틈 없이 꼼꼼하게 주의를 다져놓고는 서울의 풍습이며 생활 방침 등을 자기의 의견대로 그럴싸하게 이야기하여 오다가 말끝이 어느덧 화장술에 이르게 되었다 시골 여자가 서울에 가서 안잠을 잘 자주면 몇 해 후에는 집까지 얻어 갖는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소문을 일찍 들은 바 있어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 날마닥 기름도 바르고 분도 바르고 버선도 신고 해서 쥔 마음에 썩 들어야 한참 신바람이 올라 주워 삼기다가 옆에서 쌔근쌔근 소리가 들리므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는 이미 곯아져 잠이 깊었다 이런 망할 거 남 말하는데 자빠져 잔담 남편은 혼자 중얼거리며 바른팔을 들어 이마 위로 흐트러진 아내의 머리칼을 뒤로 쓰담아넘긴다 세상에 귀한 것은 자기 아내 명색이 남편이면서 이날까지 옷 한 벌 변변히 못해 입히고 고생만 짓시킨 그 죄가 너무나 큰 듯 가슴이 뻐근했다 그는 왁살스러운 팔로 아내의 허리를 꼭 껴안아 자기 앞으로 바특이 끌어당겼다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리던 빗소리가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치고 점심때는 생기로운 볕까지 들었다 쿨렁쿨렁 눈물나는 소리는 요란히 들린다 시내에서 고기 잡는 아이들의 고함이며 농부들의 희희낙락한 미나리도 기운차게 들린다 비는 춘호의 근심도 씻어간 듯 오늘은 그에게도 즐거운 빛이 보였다 저녁 새참 때 되었을걸 얼른 빗고 가봐 그는 갈증이 나서 아내를 계속 재촉했다 아직 멀었어유 뭘 아내는 남편의 말대로 벌써부터 머리를 빗고 앉았으나 원체 달포나 가리지 않아 엉클은 머리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는 호랑이 같은 남편과 오랜만에 정다운 정을 나누어 보니 근래에 볼 수 없던 화색이 얼굴에 떠돌았다 어느 때에는 매적하게 생글생글 웃어도 보았다 아내가 꼼지작거리는 것이 보기에 퍽이나 갑갑했다 남편은 아내 손에서 얼레빗을 쑥 뽑아들고는 시원스레 쭉쭉 내려빗긴다 다 빗긴 뒤 옆에 놓인 밥 사발의 물을 손바닥에 연신 칠해가며 머리에다 번지르하게 발라놓았다 그래놓고 위서부터 머리칼을 재워가며 맵시 있게 쪽을 딱 찔러주더니 오늘 아침에 한사코 공을 들여 삼아놓았던 짚신을 아내의 발에 신기고 주먹으로 자근자근 골을 내주었다 인제 가봐 하다가 바루 곧 와 응 하고 남편은 그 이 원을 고히 받고자 손색 없도록 실패 없도록 아내를 모양내 보냈다 222 0

[책 읽어주는 여자] 제1과 제1장, 이무영, 2부,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집은 조그만 동산 밑 이 동네 면장이 첩 집으로 지었던 것을 일백 삼십 원에 사기로 했다 퇴직금이었다 그 앞으로 수택네집 소유인 천여평의 밭도 있어 거기에 심었던 무우와 배추도 그대로 수택의 소유로 이전이 되었다 첩의 집이었던 만큼 회칠도 했고 조그만 반침도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골집이다 수택의 큰 이불장만은 역시 들어가지를 않아서 봉당에다 받침을 하고 놓기로 했다 짓다 만 터라 마루가 없어서 그들 부처는 거기다 마루라도 들였으면 했으나 애들아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물가 비싼 세상에 마루는 들여 뭣 한다든 마루가 없어 밥을 못 먹진 않는다 하는 바람에 아내는 실쭉해 하면서도 대꾸만은 없었다 김영감은 아들 내외가 대처사람인 체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양복대기를 꼬이고 나오는 것도 눈에 가시처럼 대했고 며느리의 트레머리도 못 마땅해 한다 그래서 그 처는 쪽을 지었고 수택은 고의 적삼을 장만했다 시굴 시굴 해두 난 이런 시굴은 못 봤어요 산이 하나 변변한가 물 한 줄기가 시원한가 이런 곳에 와서 살 바엔 만주 벌판에 가서 황무지를 일쿠어 먹지 사실 수택도 아내의 이 말에는 동감이었다 전에는 무심히 보아 그랬던지 자연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나 멀쑥한 포플러와 아카시아 숲이 실개천 가에 나 있을 뿐 이렇다는 특징도 없는 산천이다 장성해서는 가본 일도 없었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대로라면 그 아카시아 숲 앞에는 상당히 깊은 물도 있었고 큰 고기도 은비늘을 번득이었고 숲에서는 매미며 꾀꼬리도 울었던 것 같이 기억이 되었지만 다시 가보니 조그만 웅덩이에는 오금에 차는 물이 고였고 날이 가문 탓도 있겠지만 송사리 떼가 발소리에 놀라 쩔쩔맬 뿐이다 숲 속의 원두막 정취도 그지없이 시적인 듯이 기억이 되었으나 막상 가보니 그 또한 평범하기 짝이 없다 숲 속은 그나마도 습했다 월여를 두고 가물었다건만 발을 들여 놀 때마다 지적지적 한다 꾀꼬리가 울었다고 기억한 것도 그의 착각이었다 이런 숲에 들어오면 꾀꼬리도 목이 쉬리라 싶었다 이런 데서도 우는 꾀꼬리가 있다면 필시 청상과부가 된 꾀꼬리겠지 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자연 이었던가 속기나 한 것처럼 허무해서 우두커니 섰으려니까 김영감이 꼴 지게를 지고 나온다 옛다 이건 네거다 이런데 와 살자면 모두 배워야지 숫돌 물이 뿌옇게 그대로 말라붙은 낫이다 수택은 아무 말없이 받아 들고 따라 가다가 자연에 대해 한 마디 했다 뭐 경치 애 넌 경치만 먹구 살 작정이냐 여기 경치가 어때서 산이 없나 물이 없나 숲이 있겠다 십리만 나가면 수리조합 보가 있겠다 볼 게 뭐 있어요 그것이 자기 아버지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퉁명스럽게 사방을 두리번 거리려니까 그래 여기 경치가 서울만 못하단 말이냐 하기가 무섭게 지게를 벗겨 내던지고는 상스러울 만큼 수택의 목덜미를 잡아 가랑이 속에다 집어 넣는다 자 봐라 먼산이 보이고 저 숲이며 저 물 하며 이만하면 되잖느냐 수택은 너무 서두는 통에 어리둥절하고만 있었다 엄한 독선생을 만난 때처럼 부자유 했다 그래 보렴 세상이란 모두 거꾸루 봐야 하는 게다 경치 경치 하지만 제대루 볼 땐 보잘것 없던 것이 가랭이 밑으로 보니까 희한하잖느냐 사람 산다는 것두 그러니라 너들 눈엔 여기 사람들 사는 게 우습지 허지만 여기 사람들은 상팔자야 두메로 들어가 보면 조밥이구 보리밥이구 간에 하루 한 낄 제대로 못 얻어 먹는다 그런 걸 내려다보면 되나 거꾸로 봐야지 너들 눈엔 우리가 이러구 사는게 개 돼지같이 뵈겠지만서두 알구 보면 신선야 신선 너들 월급쟁이에다 대 그 연기만 자옥한 들판에서 사는 서울 사람들에다 대 보렴 네 여기 사람들이 어떻던 너들처럼 얼굴이 새하얗진 않지 그게 신선이 아니구 뭐냐 이 급조 된 젊은 신선은 그 날 해가 지도록 끌려 다니며 왁새에 서뻑서뻑 손을 베며 풀을 베었다 하면 되리라고 생각한 낫질이 그 좁은 원고지 간에 글자를 써 넣기보다 이렇게 어려울거라곤 생각 못했던 것이었다 아침에는 새벽같이 끌리어 일어났다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어험 소리가 문턱에 난다 나가 보면 김영감의 삼태기에는 벌써 쇠똥이 그득하게 담겨져 있었다 네 봐라 이 놈이 줄 땐 허리가 아퍼도 논에다 넣두면 베가 그저 시커매지는구나 그까짓 암모니아에다 대 그걸 한 가마에 5원씩 주고 사다 넣느니 이 놈을 며칠 주었으면 돈 벌구 거름 생기구 자 어서 차빌 차려라 네 댁두 깨우구 해가 똥구멍까지 치밀었는데 몸이 근지러워 어떻게 질펀히 눴단 말이냐 수택 부부는 처음에는 허영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세숫물까지 떠다 바치라던 수택과 처가 매일처럼 그 드센 일을 한다 해서 동네에서 화제거리가 될 것은 상상만 해도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수택이 헌 양복조각을 입고 밭을 맨다거나 삽을 짚고 물꼬를 보러 간다거나 비틀비틀 꼴 지게를 지고 개천을 건너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경이의 눈으로 그를 맞았던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비탈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동이를 해먹었을 때도 그들은 웃는 대신 동정의 눈으로 보아주었고 호미를 들고 남편 뒤를 따라 나서는 것을 보고는 이웃집 달순이며 앞집 봉년이를 큰일이나 난 듯 불러다 구경을 시키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의 이런 경이의 시선을 등 뒤에 느끼며 일을 했다 이런 것이 그들에게는 심지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잘하는 것이 자랑도 되었지만 못하는 것이 부끄럼이 되지 않는 유리한 조건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애 어멈아 너 그렇게 호밀 깊이 묻으면 배추 뿌리에 바람이 들잖겠냐 요걸 요렇게 다루어 가지구 살짝 흙을 일으키고 이쪽 손으론 풀을 집어내야지 허 그래두 그러는구나 옳지 옳지 이렇게 새며느리 실상은 헌 며느리 지만 며느리 한테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어느새 수택의 등뒤에 와서 서 있는 것이었다 에이끼 미련한 것 배추밭 매는 걸 밥 먹듯 하는구나 밥 한 술 떠 넣구 반찬 한 가지 집어 먹구 그 식이 아니냐 아 이쪽으룬 흙을 이렇게 일으키면서 왼손으룬 풀을 집어 내야지 그걸 어떻게 따루 따루 아직 손에 안 익어 그렇습니다 아버지 수택은 이렇게 변명을 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 밤에는 거적 한 잎이 등에 지워 진다 물꼬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네게 준 건 난 모른다 농사 다 지어논 게니까 거둠세까지 네 손으로 해서 꼭꼭 챙겨놔야 삼동을 나지 동구를 벗어나오니 약간 일그러진 달이 아카시아 숲에 걸렸다 말복도 지난지 오래건만 아직도 바람은 무더웠다 천변에는 여기저기 동네 부인들이 보리밥 먹기에 흘린 땀을 들이고 아이들은 조약돌을 또닥또닥 두드린다 실개천 물소리도 제법 여물다 풀 숲에서 반딧불이 반짝이고 개구리 소리가 으슥히 어울리는 것이 역시 아직도 여름밤이다 수택은 빨래자리로 놓은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양치를 했다 아침 저녁으로 반죽한 치분으로만 닦아온 이가 물로만 웅얼웅얼 해서 뱉아도 입안이 환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는 삽을 질질 끌고 징검다리를 건너 논길로 들어섰다 광대 줄타듯 하던 논두덩도 어느새 평지처럼 평탄해진 것 같고 아랫종아리에 채이는 이슬이 생기있는 감촉을 준다 아스팔트를 거닐다가 상점에서 뿌린 물이 한 방울만 튀어도 시비를 걸던 일이 마치 옛날 꿈 같았다 이만하면 나도 농촌 제 1과는 마친 셈인가 구수한 풀내가 코를 통해서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그것이라고 느끼며 수택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려 본다 밤 이슬에 눅눅하니 젖은 셔츠에서도 차츰차츰 불쾌한 감촉이 없어져 간다 쫄쫄쫄 윗논배미서 아랫논으로 떨어지는 물꼬 소리에 금시 벼폭이 부쩍부쩍 살이 찌는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문학적인 감각 때문만이 아닌것 같다 여남은 다랑이 건너 도두룩한 밭 모롱이에서 누군지 단소를 처량스럽게 불고 있다 역시 물꼬 보는 사람이겠지 그 맞은편 아카시아가 몇 주 선 둔덕 원두막에서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술집 여인들이 놀러 나왔는지 여자들의 웃음 소리가 가끔 섞여 나온다 수택은 물꼬를 삥 한 번 둘러보고 원두막으로 어슬렁어슬렁 올라 갔다 발소리에 노랫소리가 뚝 그치며 누군지 소리를 딱 지른다 누구유 나요 어 서울 서방님이신가 그래 요샌 꼴지게가 등에 제법 붙든가 꺼르르 웃음이 터진다 시골 살면 그야말로 말소리에서도 흙내와 된장내가 나는 겐가 수택은 원두막 사닥다리를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내게선 언제부터나 흙냄새가 나려는고 분명히 울음 소리다 그도 여자의 아니 듣고 있을수록 그 울음 소리에는 귀가 익다 누굴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이 아주 띄었다 어느 땐지 멀리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뿐 어린 것들의 숨소리조차 고요하다 옆을 더듬어 보니 어린 것들만 만져지고 응당 그 옆에 누웠어야 할 아내가 없다 수택은 그대로 죽은 듯이 누워 눈에 정기를 모았다 또 울음 소리다 그것은 마치 앵금 줄을 긋는 듯 싶은 애절한 울음소리다 아내였다 여보 여보 대답 대신 울음 소리가 한층 높아 진다 그도 일어나서 아내의 옆으로 갔다 왜 그러오 말을 해야 알지 뉘가 뭐라 그럽디까 아뇨 그럼 어디가 아프오 또 말이 없다 말을 해야 알잖소 왜 그러오 설사가 나요 아내는 이 한 마디를 하고는 그대로 흑흑 느낀다 그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탁 터졌다 나이 삼십이 된 여자가 설사 난다구 자다 말구 일어나 앉아 운다 흐흐흐흐 설사가 자꾸자꾸 나니까 그렇지요 울음 반 말 반이다 그는 또 한 번 커다랗게 웃었다 그래 설사가 나면 약을 사다 먹든지 밥을 한끼 굶고서 하는데 아내는 그만둬요 당신처럼 무심한 이가 어딨어요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오던 날부터 설사 하구 눈이 퀭 하니 들어가도 일언반사가 없으니 그러기에 약을 사다 먹으랬지 내야 집에 붙어 있어야 알지 아내는 또 모를 소리를 한다 이렇게 나는 설사에 약이 무슨 소용이예요 밥을 갈아 먹어야지 그제야 수택은 설사 나는 원인을 눈치챘던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듣고 생각하니 자기도 오던 이튿날부터 설사가 났다 갑자기 물을 갈아 먹어 그려러니 했으나 며칠을 두고 설사가 계속되었다 실상은 아직까지도 소화가 그렇게 좋지는 못한 셈이었다 보리 끝이 자꾸 뱃속에 들어가서 장을 꼭꼭 찌르나봐요 필련이두 자꾸 배가 아프다고 저녁마다 한바탕씩 울고야 잠들어요 흥 창자두 흙내를 맡을 줄 알아야 할까보구나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직 살림 면모가 갖추어 지지도 못했고 여름에 따로 불을 때느니 밥만은 큰집에서 함께 먹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자니 시골에선 지금 이 철엔 꽁보리밥으로 신곡장을 대는 동안이다 쌀밥만 먹던 창자에 갑자기 깔깔한 보리쌀만 들어가니 문화생활만 해 오던 소화기가 태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 쌀을 좀 두어 달라지 사실 나두 늘 배가 쌀쌀 아팠는데 그걸 난 몰랐구려 야단나게요 아버님이 이번엔 또 창자를 거꾸로 달구 먹으라고 걱정하지 않으시겠어요 가랑이 속으로 경치를 본 이야기를 아내는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그만 자요 내 낼 아침에 아버님께 말씀해서 당분간은 쌀을 좀 섞어 먹도록 할테니까 그는 어린애를 달래듯 아내를 재웠다 추수만 끝나면 남편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데 유일한 희망을 붙이고 있는 줄을 알고 근 이십 일이나 설사를 하면서도 군말 한 마디 안했다는데 표시는 안했지만 여간 감격한 것이 아니었다 부디 그런 마음을 버리지 말라 했다 이튿날부터 쌀이 반은 섞여졌다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수택은 용기를 못 내고 필련이를 시켜 할아버지를 조르게 했던 것이다 할 수 없구나 그것들이 창자까지 사람 창잘 못 가졌으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시겠지 딸애는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재미나게 웃었다 그러나 쌀의 분량은 점점 줄어갔다 그 대신 보리가 늘었고 조가 뛰어 들었다 감자니 기장 같은 잡곡도 간혹 섞였다 하루 바삐 신곡이 나기를 기다리는것이 지금의 수택 부처와 어린애들에겐 유일한 낙이었다 이때부터 수택의 창작욕도 부쩍 늘어갔다 오래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서 매대기를 치던 어떤 장편소설의 상이 거의 가다듬어질 무렵에는 수택이가 물꼬를 매고 이듬매기를 해준 벼도 누렇게 익어갔다 집 앞 텃밭의 배추도 제법 자리를 잡고 토실토실 살쪄 갔다 사람이란 이렇게 욕심이 많은 겐가 싶었다 손이라야 몇 번 댄 곡식도 아니건만 야무지게 여문 벼알이며 배추 한폭에까지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한 그윽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깨알처럼 싀여진 원고지의 글자를 보는 때의 그 애정 그 감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년 내 피와 땀을 흘려야 벼 한 톨 얻어먹지 못하고 빈 손만 털고 일어나는 소작인들의그 애절해 하던 심정도 지금에서야 이해되는 것 같았고 매년 그러리라는 것을 빤히 내다 보면서도 그 농사를 단념하지 못하는 그네들의 심정도 이해되는 것 같았다 타작마당에서 벼 한 톨이라도 더 차지할 것을 전제로 할 애정 임에는 틀림 없겠지만 단지 그러한 의욕만으로 그처럼 이나 벼 한 폭 배추 한 잎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종이 값도 못되는 원고료를 전제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보는 동안에는 그러한 관념이 전혀 없이 그저 맹목적인 정열을 글자 한 자 한 자 마다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했다 애정이란 이해관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수택은 또 한 번 생각한다 이 애정 그것으로 인류는 살아가는 것이요 이 애정으로 도덕을 삼는 데서만 인류는 행복될 것이다 싶었다 아버지가 늘 말하던 소위 흙냄새와 된장내란 결국 이런 애정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대처사람들에게서는 흙냄새가 안 난다는 그 말은 곧 이 이해를 초월한 애정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언젠가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 도둑을 잡았다고 자기 아버지는 그를 때렸다 도둑질은 분명히 악이다 악을 제지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선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그리고 가져야 할 위대한 정신인 동시에 본능이다 이 선 이 본능에 대해서 그의 아버지는 지게작대기로서 예물했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도둑질을 악으로서 인정치 않는 것일까 하면 그렇지는 않다 흙 속에서 나서 흙과 같이 자라고 흙과 더불어 살아온 그에게는 포근포근한 흙의 감정과 김가고 이가고 정가고 간에 씨만 뿌려주면 길러주는 그러한 흙의 애정 속에서 살아온 그는 없어서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놈 보다도 흙의 냄새를 맡을 줄 모르고 흙의 애정을 유린한 철두철미 대처사람인 아들에게 보다 더 증오를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수택은 무서운 정열로 자기의 농작물을 사랑했다 그것은 자기의 작품을 사랑하던 그 정열이었다 문득 꺼칠해진 벼폭을 발견하고는 인쇄된 자기 작품에서 전후 뒤바뀐 귀절을 발견할 때와 똑 같이 놀랐다 그것은 그지없이 불쾌한 순간이었다 수택은 그대로 논으로 뛰어들었다 아랫동아리부터 벼폭이 노랗게 말라 든다 이삭은 알맹이 한 개 안 든 빈 쭉정이었다 격한 나머지 그는 벼폭을 잡고 나꾸었다 각충이란 놈이 밑 대궁에 진을 치고 보기 좋게 까먹은 것이었다 그는 삼십여 년의 반생 동안 이처럼 격한 일이 없었다 이만큼 어떤 물건이나 생물에 대해서 증오를 느껴 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자기 혈관 속에 이토록이나 잔인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처음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는 벼폭을 발기고 일일이 각충을 잡아냈다 그래서는 돌 위에다 놓고 짓찧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 처음으로 미움다운 미움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수택은 처음 고향에 돌아와서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디찬 것을 느꼈었다 말만 고향이지 눈에 익은 얼굴도 거의 없었다 파도에 밀린 뱃조각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어 태반은 타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때 그 차디찬 시선에 그는 일종의 반감까지 일으킨 일이 있었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그래도 자기 아버지가 아들에게 품고 있던 증오보다는 오히려 나은 것이었다 싶었다 그렇다 하루바삐 나도 대처 사람의 탈을벗고 흙과 친하자 그래서 흙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를 때 누군지 귀에다 대고 소리를 꽥 지른다 그것은 퇴화다 그것은 대처 사람인 또 다른 수택이었다 물방울 한 개만 튀어도 시비를 가리고 파리 한 마리에 상을 찡그리고 백화점에서 한 시간씩이나 넥타이틀 고르던 도회인의 반역이었다 퇴화 퇴화 좋다 아니 패배다 패배자의 역변이다 도시생활 문명사회에서 생활 경쟁에 진 패배자의 자위수단이다 그것은 아무것이든 좋다 그는 이렇게 발악을 했다 이렇게 마음의 투쟁은 날을 거듭할수록에 격렬해 갔다 수택이 자기의 피에는 흙의 전통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누르면 누를수록 문화에 주린 도회인의 반항은 억세갔다 포근포근한 흙을 밟는 평범한 감촉보다도 가죽을 통해서 오는 포도의 감촉이 얼마나 현대적인가 했다 그것은 마치 낡을 대로 낡은 지폐를 만질 때와 빠작 소리가 그대로 나는 손이 베어질 것 같은 새 지폐를 만질 때 감촉과의 차이와도 같았다 사람에게서나 자연에서나 입체적인 선의 미가 그리웠다 아니다 참자 흙과 친하자 수택은 벌떡 일어났다 참새떼가 와 하고 풍긴다 이 젊은 도회인이 도회의 환상에 사로잡힌 동안 참새떼들은 양양해서 벼 톨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여 우이 건너 다랑이로 옮겨 앉는 참새를 쫓으면서 논둑을 달렸다 참새떼는 적어도 수 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한 마리가 한 알씩만 까 먹었대도 수백 톨을 까 먹었을 것이다 그는 달리다 말고 벼 이삭에 눈을 주었다 누렇게 익은 벼폭들이 생기가 없다 그때 울컥하고 가슴에 치미는 것이 있다 증오였다 도시 생활에서 세련이 된 현대인의 증오였다 갖은 정성과 피와 땀으로 가꾼 곡식을 장난하듯 까 먹고 다니는 참새에 대한 증오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에 찬다 우여 우이 꼼짝도 않고 참새떼는 못 견디어 하는 이삭에 그대로 조롱조롱 매달렸다 그는 무서운 정열로 기관총을 사모했다 전쟁 영화에서 보듯이 한 번 빙 둘렀으면 톡톡 소리와 함께 소나기처럼 떨어질 참새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 도회인의 감각은 기분으로 나마 위안을 받은 것이었다 집에 도둑이 든 날 수택을 때릴때 아버지가 자기에게 느끼던 증오도 이런 것이었을까 한결 볕이 얇아졌다 벌레 소리도 훨씬 애조를 띠고 달빛도 감상을 띠었다 이 집 저 집에서 마당질 소리가 나고 밤이면 다듬이 소리도 여물어 갔다 수택의 집에서도 새벽부터 타작이 시작되었다 한 모로는 벼를 져 나르고 한 모에서는 때려라 소리를 연발하며 위세를 올렸다 한 모에서는 도급기가 붕붕 하고 돌아간다 여인네들의 치맛자락에서도 바람이 난다 수택도 벗어 붙이고 지게를 졌다 아직 다리는 허청거리나 그래도 대여섯 묶음씩 져 날랐다 이제는 그의 노동을 신성시 하는 사람도 없었고 동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명실공히 한 농부였다 서투른 낫질에 손가락을 두 개나 처맸지만 보는 사람도 그것을 큰 상처로 알지도 않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아내 역시 호미자루에 터진 손바닥이 아물지를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혼자 일어나 앉아 밤을 새어가며 울지는 않았다 아프니 자시니 했다가 그 말이 시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동정 대신에 핀잔을 맞을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끔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에게만 후하지 자식들 한테는 너무 박하다는 불평을 말하는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시인을 하는 정도로써 가라앉았다 사실 그 자신도 다소 심하지 않은가 하는 불평은 여러 번 품었었다 손에 익잖은 자식이 서투른 낫질을 하다가 손을 다치어도 먼저 핀잔부터 주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증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도 부리나케 볏단을 져 날랐다 이 볏단의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거의 전부가 낡아빠진 맥고모자를 뒤꼭지에 붙인 되바라진 젊은 친구의 손으로 넘어가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수택은 그것을 억지로 생각지 않으려 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 위인이 나와서 버티고 선 후로는 분명히 얼굴에 검은빛을 띠웠다 자식에게 그런 눈치를 안 보이려고 비상한 노력을 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엿보였다 수택도 아버지의 이 노력에 협조를 했다 도합 스물두 마지기에서 사십 석이 났다 사십 석에서 스물 닷 섬이 소작료로 제해졌다 사십 석에서 스물 닷 섬 열 닷 섬 그의 지식은 처음 긴요하게 쓰여 졌다 그러나 이 지식은 정확성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서 비료대로 한 섬 두 말이 제해졌고 아내와 아이들의 설사를 치료한 쌀값으로 장리변을 쳐서 열두 말이 떼였다 지세도 또 몇 말인지 떼였다 그는 말질을 하는 되강구가 바로 지주나 되는 것처럼 그의 손목이 미웠다 우루루 덤비어 되강구의 목덜미를 잡아 나꾸고 볏더미 속에다 처박고 싶은 충동을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었다 수택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옴팡하니 들어간 눈에서는 황혼을 뚫고 무시무시한 살기 띤 빛이 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방공연습을 할 때의 그 휘황한 몇 줄의 탐조등 광선을 연상하였다 김영감은 꼼짝도 않고 한 자리에 서 있었다 볏더미를 보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사음을 노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영감은 내년 이때까지 살아갈 길을 궁리하는 것이었다 자 짊어져라 수택은 깜짝 놀랐다 남은 벼 여남은 섬이 가마니에 채워졌다 전혀 자신은 없었으나 벼 이백 근을 못 지겠노란 말도 하기 싫어서 지겟발을 디밀었다 어차 옆에서는 벌써 지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도 엇차 소리를 쳤다 땅띰도 않는다 자 들어 줄께니 엇차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무릎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오금은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대로 똑 꺾인다 안되겠느니 다른 사람이 지라느니 이론이 분분하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 지기까지는 버티었다 이를 북북 갈며 기를 썼다 힘을 북 주었다 오금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리가 허청하며 모여 선 사람들의 저것 저것 소리를 귓결에 들으며 그대로 픽 한 쪽으로 넘어 가고 말았다 넘어간 순간 에이끼 천치자식 하는 김영감의 소리와 함께 빗자루가 눈앞에 휙 한다 머리에 동였던 수건이 벗겨졌다 나오게 내 짐세 나와 하는 누군지의 말을 영감의 호통같은 소리가 삼켰다 놔 두개 놔 둬 나이 사십이 된 자식이 벼 한 섬 못 지겠는가 져라 져 어서 일어나 그는 이를 악물고 또 힘을 북 주었다 오금이 번쩍 떴다 뒤뚝뒤뚝 몇 걸음 옮겨 놓는데 눈과 콧속이 화끈하며 무엇인지 흘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저 피 코필 쏟는군 내려 놓게 하는 동네 사람들 소리 끝에 놔들 두게 죄다 남이 피땀을 흘리구 지어논 농살 먹는 세상에 제 손으로 진 제 곡식을 못 져다 먹는 놈이 있단 말인가 놔들 두게 수택은 눈물과 코피를 확확 쏟아 가면서도 그래도 자꾸 걸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 감자, 김동인,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김동인의 감자입니다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감자는 간결한 문체로 사건의 경과만을 철저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제시한 자연주의 소설입니다 싸움 간통 살인 도둑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 이 위에 드는 농민 이었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 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 년이나 위인데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 마지막에 복녀를 산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 밭깨나 얻어주면 종자나 뿌려둔 뒤에는 후치질도 안하고 김도 안 매고 그냥 버려두었다가는 가을에 가서는 되는 대로 거두어서 금년은 흉년이네 하고 전주집에는 가져도 안가고 자기 혼자 먹어버리고 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한밭을 이태를 연하여 붙여본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그 동네에서는 밭을 못 얻으리 만큼 인심과 신용을 잃고 말았다 복녀가 시집을 온 뒤 한 삼사 년은 장인의 덕으로 이렁저렁 지내갔으나 이전 선비의 꼬리인 장인도 차차 사위를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가에까지 신용을 잃게 되었다 그들 부처는 여러 가지로 의논하다가 하릴없이 평양 성 안으로 막벌이로 들어왔다 그러나 게으른 그에게는 막벌이나마 역시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연광정에 가서 대동강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찌 막벌이인들 될까 한 서너 달 막벌이를 하다가 그들은 요행 어떤 집 행랑 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 하여 쫓겨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 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가지고 남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벳섬 좀 치워달라우요 남 졸음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이십 년이나 밥 처먹구 그걸 못치워 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 이년 뭘 이러한 싸움이 그치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집에서도 쫓겨나왔다 이젠 어디로 가나 그들은 하릴없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리어오게 되었다 칠성문 밖을 한 부락으로 삼고 그곳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업은 거러지요 부업으로는 도둑질과 자기네끼리의 매음 그밖에 이 세상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죄악이었었다 복녀도 그 정업으로 나섰다 그러나 열 아홉 살의 한창 좋은 나이의 여편네에게 누가 밥인들 잘 줄까 젊은 거이 거랑은 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이 병으로 죽어가거니 어쩌거니 핑계는 대었지만 그런 핑계에는 단련된 평양 시민의 동정은 역시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드는 편이었었다 그 가운데서 잘 수입되는 사람은 하루에 오리짜리 돈 만으로 일원 칠팔십 전의 현금을 쥐고 돌아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극단으로 나가서는 밤에 돈벌이 나갔던 사람이 그날 밤 사 백 여 원을 벌어 가지고 와서 그 근처에서 담배장사를 시작한 사람까지도 있었다 복녀는 열 아홉 살이었었다 얼굴도 그만하면 빤빤하였다 그 동네 여인들이 보통 하는 일을 본받아서 그도 돈벌이 좀 잘하는 사람의 집에라도 간간 찾아가면 매일 오륙십 전은 벌 수가 있었지만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냈다 굶는 일도 흔히 있었다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끓었다 그때 평양 부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데 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 부로 쓰게 되었다 빈민굴 여인들은 모두 다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 명 쯤이었었다 복녀도 그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 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사이에 차고 하였다 하루에 삼십이 전 씩의 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엿새 하는 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부 한 여나믄 사람은 언제나 송충이는 안 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품삯은 일하는 사람의 삯전보다 팔 전이나 더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감독은 한 사람뿐이었는데 감독도 그들이 놀고 있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때때로는 자기까지 섞여서 놀고 있었다 어떤 날 송충이를 잡다가 점심 때가 되어 나무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 감독이 그를 찾았다 복네 얘 복네 왜 그릅네까 그는 약통과 집게를 놓고 뒤로 돌아섰다 좀 오나라 그는 말없이 감독 앞에 갔다 얘 너 음 데 뒤 좀 가보자 뭘 하례요 글쎄 가야 가디요 형님 그는 돌아서면서 인부들 모여 있는데로 고함쳤다 형님두 갑세다가례 싫다 얘 둘이서 재미나게 가는데 내가 무슨 맛에 가갔니 복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면서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가보자 감독은 저편으로 갔다 복녀는 머리를 수그리고 따라갔다 복네 갔구나 뒤에서 이러한 조롱 소리가 들렸다 복녀의 숙인 얼굴은 더욱 발갛게 되었다 그날부터 복녀도 일 안하고 품삯 많이 받는 인부 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아직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이 하는 짓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어디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 일본말로 하자면 삼 박자같은 좋은 일은 이것뿐이었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이 된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 뒤부터는 그의 얼굴에는 조금씩 분도 바르게 되었다 일년이 지났다 그의 처세의 비결은 더욱 더 순탄히 진척되었다 그의 부처는 이제는 그리 궁하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이것이 결국 좋은 일이라는 듯이 아랫목에 누워서 벌신벌신 웃고 있었다 복녀의 얼굴은 더욱 이뻐졌다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 복녀는 돈 좀 많이 벌은 듯한 거지를 보면 이렇게 찾는다 오늘은 많이 못 벌었쉐다 얼마 도무지 열 서너 냥 많이 벌었쉐다가레 한 댓 냥 꿰주소고레 오늘은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 난 원 이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더라 자 꿰주디 그대신 응 알아있디 난 몰라요 해해해해 모르믄 안 줄 테야 글쎄 알았대두 그른다 그의 성격은 이만큼까지 진보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 밭에 감자며 고구마 배추를 도둑질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잣개나 잘 도둑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도둑질 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중국인 왕 서방이었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집에 가 왕 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믄 가디 훤 것두 못 갈까 복녀는 엉덩이를 한번 홱 두른 뒤에 머리를 젖기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 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네 아니야 복녀는 홱 돌아서보았다 거기는 자기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 형님두 들어갔댔쉐까 님자두 들어갔댔나 형님은 뉘 집에 나 눅서방네 집에 님자는 난 왕 서방네 형님 얼마 받았소 눅 서방네 그 깍쟁이 놈 배추 세 페기 난 삼원 받았디 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십 분쯤 뒤에 그는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원을 내어놓은 뒤에 아까 그 왕 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 뒤부터 왕 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 한참 왕 서방이 눈만 멀찐멀찐 앉아 있으면 복녀의 남편은 눈치를 채고 밖으로 나간다 왕 서방이 돌아간 뒤엔 그들 부처는 일원 혹은 이원을 가운데 놓고 기뻐하고 하였다 복녀는 차차 동네 거지들한테 애교를 파는 것을 중지하였다 왕 서방이 분주하여 못 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 왕 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 복녀의 부처는 이제 이 빈민굴의 한 부자였었다 그 겨울도 가고 봄이 이르렀다 그때 왕 서방은 돈 백원으로 어떤 처녀를 하나 마누라로 사오게 되었다 흥 복녀는 다만 코웃음만 쳤다 복녀 강짜하갔구만 동네 여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면 복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웃고 하였다 내가 강짜를 해 그는 늘 힘있게 부인하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생기는 검은 그림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놈 왕 서방 네 두고 보자 왕 서방이 색시를 데려오는 날이 가까왔다 왕 서방은 아직껏 자랑하던 길다란 머리를 깎았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마침내 색시가 오는 날이 이르렀다 칠보단장에 사인교를 탄 색시가 칠성문 밖 채마 밭 가운데 있는 왕 서방의 집에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왕 서방의 집에는 중국인들이 모여서 별한 악기를 뜯으며 별한 곡조로 노래하며 야단하였다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 서서 눈에 살기를 띠고 방안의 동정을 듣고 있었다 다른 중국인들이 새벽 두시쯤 하여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복녀는 왕 서방의 집 안에 들어갔다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워 있었다 신랑 신부는 놀라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것을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는 왕 서방에게 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웃음이 흘렀다 자 우리집으로 가요 왕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눈만 정처 없이 두룩두룩 하였다 복녀는 다시 한번 왕 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 우리 오늘 밤 일이 있어 못 가 일은 밤중에 무슨 일 그래두 우리 일이 복녀의 입에 아직껏 떠돌던 이상한 웃음은 문득 없어졌다 이까짓 것 그는 발을 들어서 치장한 신부의 머리를 찼다 자 가자우 가자우 왕 서방은 와들와들 떨었다 왕 서방은 복녀의 손을 뿌리쳤다 복녀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섰다 그가 다시 일어섰을 때는 그의 손에 얼른얼른 하는 낫이 한 자루 들리어 있었다 이 되놈 죽에라 이놈 나 때렸디 이놈아 아이구 사람 죽이누나 그는 목을 놓고 처울면서 낫을 휘둘렀다 칠성문 밖 외따른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왕 서방의 집에서는 일장의 활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활극도 곧 잠잠하게 되었다 복녀의 손에 들리어 있던 낫은 어느덧 왕 서방의 손으로 넘어가고 복녀는 목으로 피를 쏟으면서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다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무덤으로 못 갔다 왕 서방은 몇 번을 복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복녀의 남편도 때때로 왕 서방을 찾아갔다 둘의 사이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 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 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 의사 왕 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 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가져갔다

[책 읽어주는 여자] 가을과 산양, 이효석,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이효석의 가을과 산양 화단 위 해바라기 송이가 칙칙하게 시들었을 젠 벌써 가을이 완연한 듯하다 해바라기를 비웃는 듯 국화가 한창이다 양지쪽으로 날아드는 나비 그림자가 외롭고 풀숲에서 나는 벌레소리가 때를 가리지 않고 물 쏟아지듯 요란하다 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그 어느 때를 가릴까 사람의 오장육부를 가리가리 찢으려는 심산인 듯하다 애라에게는 가을같이 두려운시절이 없고 벌레소리같이 무서운 것이 없다 지난 칠년 동안 준보를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어느 가을인들 애라에게 쓸쓸하지 않은 가을이 있었을까 밤 자리에 이불을 쓰고 누우면 눈물이 되로 흘러 베개를 적신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묻는다 외롭고 적적하고 얄궂은 것 칠년 동안에 얻은 결론이 이것이었다 여러해 동안 적어온 사랑의 일기가 홀로 애태우고 슬퍼한 피투성이의 기록이었다 준보는 언제나 하늘 위에 있는 별이다 만질 수 없고 딸 수 없고 영원히 자기의 것이 아닌 하늘 위 별이다 한 마리의 여우가 딸 수 없는 높은 시렁 위 포도송이를 바라보고 딸 수 없음으로 그 아름다운 포도 를 떫은 것이라고 비난하고 욕질한 옛날 이야기를 생각하며 애라는 몇 번이나 그 여우를 흉내 내서 준보를 미워해 보려고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헛일이어서 준보는 날이 갈수록에 더욱 그립고 성스럽고 범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 보였다 이 세상은 왜 있으며 자기는 왜 태어났으며 자기와 인연 없는 준보는 왜 나타났을까 준보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은 왜 그다지도 어긋나며 준보가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데도 왜 자기의 마음은 한결같이 그에게로 기울을까 자나깨나 애라에게는 이것이 큰 수수께끼였다 준보가 옥경이와 결혼한다는 발표가 났을 때가 애라에게는 가장 무서운 때였다 친구인 옥경이의 애꿎은 야유였을까 결혼의 청첩은 왜 보내 왔을까 애라에게는 여러 날 동안의 무서운 밤이 닥쳐왔다 자기의 육체를 저주하고 얼굴을 비쳐주는 거울을 깨뜨려버렸다 칠년 동안의 불행을 실어 온다는 거울을 깨뜨려버리고는 어두운 방 안에서 죽음을 생각했다 몸이 덥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 냄새가 흘러오면서 세상이 금방 바서지는 듯했다 그 괴로운 죽음의 환영에서 벗어나는데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준보를 얼마나 미워하고 옥경이를 얼마나 저주했을까 그런 고패를 겪었건만 그래도 여전히 준보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끊어 지지 않음은 웬일일까 준보는 자기를 위해 태어난 꼭 한 사람일까 전세에서부터 미래까지 자기가 찾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준보라는 지목을 받아 온 것일까 너무도 고전적인 자기의 사랑에 애라는 싫증이 나면서도 한편 여전히 그 사랑에 매어 가는 스스로의 감정을 어쩌는 수 없었다 준보 외에 그의 영혼을 한꺼번에 끌어당길 사람은 다시는 그의 앞에 나타날 성싶지는 않았고 그런 추잡한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싫었다 준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그에게는영원의 꿈이요 먼 나라이다 준보의 아름다운 환영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평생을 지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애라에게는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이 솟아올랐다 일르는 말은 안 듣구 언제까지든지 어쩌자는 심사니 늙어 빠질 때까지 사람이 홀몸으로 지낼 수 있을 줄 아나부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혼인 말을 되풀이하고는 딸의 마음을 야속히 여기고 때때로 보챈다 그러나 애라는 자기 방에 묻힌 채 책을 읽거나 무료해지면 염소를 끌고 풀밭으로 나간다 고요한 마음의 생활을 보내며 준보들의 동정을들으면서 가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해 왔다 며칠 전 준보에게서 편지를 받고 애라는 가라앉았던 가슴이 다시 설레기 시작하고 마음의 상처가 다시 살아났다 준보 부부가 별안간 음악수업차로 미주로 떠나게 되어 그들의 송별회를 친구들이 발기 한 것이었다 인쇄된 청첩에 준보는 기어이 참석 해 달라는 뜻을 따로 적어서 보냈던 것이다 초문의 소식에 애라는 놀라며 곧 옷을 차리고 나섰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머뭇거려도 보았지만 결국 참석하기로 했다 오후의 호텔은 고요하면서도 그 어디인지 인기척을 감추고 수떨스런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손님들의 자태는 그리 보이지 않건만 연회를 준비하는 중인지 직원들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 눈에 삼삼거린다 복도를 들어가 바른편 객실을 기웃거렸을 때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인 듯한 사오인이 웅얼거리고들 앉았다 낯설은 속에 어울리기도 겸연해서 애라는 복도를 돌아 왼편 객실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한 사람의 직원이 계산에 열중하고 있을 뿐 객실은 고요하다 애라는 차 한잔을 주문하고 창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창밖의 조그만 뜰에는 여름 한철 깊은 그늘 속에서 이슬을 뿜고 있었을 몇 포기의 깨끗한 백양나무가 어느덧 가을을 맞이해서 차차 병 들어 가는 잎들이 바람도 없건만 애잔하게 흔들리고 있다 가을은 어느 구석에든지 숨어 드는구나 여기도 밤에는 벌레소리가 얼마나 요란할까 생각하면서 찻잔을들려고 할 때 공교롭게도 문득 눈 앞에 나타난 것이 준보였다 그날 모임의 주빈답게 검은 예복으로 단장한 그의 자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선하게 눈을 끌었다 그렇게 가깝게 면대하기는 오랫 만이었다 언제든지 그의 앞이 어렵고 스스럽고 부끄러운 애라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고개를 숙여 버렸다 진작 만나 뵙고 여러 가지 얘기 드리려던 것이 갑작스레 떠나게 돼서 이제야 기회를 얻었습니다 옥경이의 희망도 있구 해서 별안 간 미주행을 계획한 것인데 한 일년 지내구 내년 가을에는 유럽 으로 건너갈 작정입니다만 준보의 당황한 설명에 애라는 한 참이나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실 줄 알았죠 별일 없으면서두 떠나신다니 섭섭해요 어디를 가시든지 편안하셔야죠 두 분의 행복을 비는 것이 이제는 제 행복이 됐어요 행복이구 불행이구 간에 어쩌는 수없이 그것만이 밟아야 할 길이 된걸요 다음 말까지는 또 한참이나 걸렸다 남의 집 창밖에 서서 안을 기웃거리는 가난한 마음을 짐작하실 수 있으세요 안에는 따뜻한 불이 피고 평화와 단란이 있죠 밖에 서 있는 마음은 춥고 떨리고 준보가 그 대답을 하는데 역시 한참이 걸린다 경우가 어떻게 됐든 간에 그 동안의 애라씨 심정을 나는 감사의 생각 없이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칠년 동안의 변함없는 정성에 값 갈 만한 사내가 아닌 것을요 감사란 말같이 싫은 말은 없어요 제가 요구할 권리가 없듯이 감사 하실 것은 없으세요 감사는 하면서도 요구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합니다 일이 애꿎게 그렇게 되는군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엔 무심했던 것이 차차 그 곧은 열정을 알게 됐을 때 난 무서워도 졌습니다 그래요 전 남을 무섭게만 구는 허수아빈지두 몰라요 운명이라는 것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슬픈 것 기쁜 것 어쩌는 수없는 운명이라는 것 운명을 생각할 때 진저리가 나구 울음이 나요 거역하구 겨뤄봐두 할 수 없는 것 고지식이 항복할 수밖엔 없는 것 결국 그렇게 돌리구 그렇게 생각할 수밖엔 없겠죠 슬픈 일이긴 하지만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그 객실에까지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되었을때 두 사람은 대화를 그쳤으나 이윽 고 다른 방에서 연회가 시작 되었을 때에도 애라에게는 은근히 준보의 모습만이 바라보였다 그의 옆에 앉은 옥경이의 자태까지도 범하기 어려운 하늘 위의 존재로 보임은 웬일이었을까 연회가 끝난 후 여흥으로 부부의 피아노 듀엣 연주가 있었다 건반 앞에 나란히 앉아 가벼운 곡조를 울리는 두 사람의 자태는 그대로 가 바로 곡조에 맞춰 승천하는 한쌍의 천사의 자태이지 속세의 인간의 모습들이 아니었다 그렇듯 아름다운 두 사람의 모양 은 애라와는 너무도 먼 지경에 놓여 있었다 그 거리가 구만리일까 십만리일까 애라는 그날 밤 같이 준보들과의 사이에 큰 거리를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이것이 준보가 말한 운명이란 것인가 애라는 새삼스레 서러운 생각이 들면서 그날 밤 참석을 후회하며 될 수 있으면 그 자리를 물러나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런 무례를 범할 수도 없어 그 괴로운 운명의 시간을 그대로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가슴속은 보이지 않는 눈물로 젖었다 괴로운 시간에서 놓여서 사람들과 함께 식당을 나오게 되었을 때 그 다음 괴로움이 준비되어 있었다 옥경이가 긴한 듯이 달려와서 옆에 서는 것이다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긴 하지만 한편 미안두 해요 그러나 옥경이의 태도는 자랑에 넘치는 태도였지 미안하다는 태도는 아니었다 애라두 소풍 겸 저리로 떠나 보면어때 좁은 데서 밤낮 속만 태우지말구 조롱인지 충고인지 그러나 애라는 그것을 충고로 듣는 것이 옳을 듯 했다 목적두 없이 가서 뭘하게 그렇게 또렷한 목적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목적을 가졌다고 다이루어지는 것두 아니구 그냥 맘속에 늘 무엇을 생각하고만 있으면 그것이 목적이 아닐까 무얼 생각하게 가령 고향을 생각해도 좋지 외국에 가서 고향을 생각하는 속에 목적은 아니지만 그 무엇이 있을 법 하잖아 어서 무사히 다녀들이나 와요 유럽으로나 떠나 봐요 내년 가을 쯤 파리에서 같이 만나게 애라에게는 옥경이와의 대화가 마냥 괴로운 것이었다 준보들과 작별하고 그 괴로운 분위기를 떠나 한 걸음 먼저 거리로 나왔을 때 지옥을 벗어난 듯도 했지만 한편 거리의 등불이 왜 그리 쓸쓸하게 보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왜 그리 무의미하게 보였을까 찻집에 들렀을 때 레코드에서는 베토벤의 운명교향악이 흘렀다 열리지 않는 운명의 철문을 두드리는 답답하고 육중한 음향이 거의 육체를 협박해 오는 지경이었다 운명교향악은 음악이 아니오 운명 그것이다 운명교향악을 작곡한 베토벤은 음악가가 아니오 미치광이나 그렇지 않으면 조물주다 애라는 운명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고 금방이라도 미칠 듯이 몸이 떨리곤 한다 찻집에서까지 운명교향악을 틀 필요가 뭐야 즐겁게 차 먹으러 오는 곳에 미치광이 음악이 어울리기나 한가 애라는 중얼거리며 주문했던 차도 마시는 둥 만 둥 찻집을 뛰어나와 버렸다 등줄기를 밀치는 듯 등뒤에서 교향악 이 애꿎게 울려오는 것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 애라의 마음속에는 무거운 구름이 겹겹으로 드리웠다 이튿날 역에서 준보 부부를 떠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애라는 한꺼번에 세상이 허물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며 눈알이 둘러 패일 지경으로어두웠다 두 번째 죽음을 생각하고 약국에서 사온 약병을 밤새도록 노리면서 한 생각을 되하고 또 되풀이 하는 동안 마침내 죽음 역시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차피 짓궂은 운명이라면 그 운명과 겨뤄 보는 것이 어떨까 진 줄은 뻔히 알지만 그 패배의 결론과 다시 대항하는 수도 있지 않은가 즉 두 번째 싸움이다 이번이야말로 사생결단의 무서운 싸움이다 이렇게 깨닫자 애라에게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한 줄기의 빛이 돋아오며 문득 옥경이의 권고가 생각 났다 유럽으로나 떠나 봐요 내년 가을쯤 파리에서 같이 만나게 또렷한 목적 가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냥 마음속에 늘 무엇을 생각하구만 있으면 그것이 목적이 아닐까 옥경이가 무슨 뜻으로 했던지 간에 이제 애라에게는 이것이 한 줄기의 암시였다 애라는 머리 속에 가 보지 못한 외국을 환상하며 책시렁에서 한권의 책을 뽑아 기행문의 구절구절을 마음속에 외어 보는 것이었다 시월을 잡아들면 파리는 벌써 아주 겨울 기분이 돈다 나뭇잎새는 죄다 떨어지고 안개 끼는 날이 점점 늘어가서 그 안개 속을 사람의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거무스름하게 움직이게 된다 그 사람의 그림자를 마치 자기의 그림자인 듯 상상하고 그 파리의 한 구석에서 준보를 만나게 될 것을생각하면서 기행문의 구절구절을 아끼면서 두 번 읽고 다시 되풀이했다 그날부터 애라에게는 또렷한 구체적 계획도 없으면서 다시 먼 곳을 꿈꾸는 버릇이 시작 되었다 외국의 풍경을 상상하고 준보의 뒷일을 궁금히 여기면서 그러나 사실 하루하루가 더욱 쓸쓸 하고 적막해 갈 뿐이었다 외로운 꿈에서 깨어서는 게같이 방 속에서 나와 뜰에 맨 흰 염소를 데리고 집 앞 풀밭을 거닌다 턱아래 불룩하게 수염을 붙인 흰 염소는 그 용모만으로도 벌써 이 세상에 쓸쓸하게 태어난 나그네다 초점 없는 흐릿한 시선을 풀밭에 던지면서 그 어느 낯설은 나라에서 이 세상에 잘못 온 듯이 쓸쓸하게도 운다 울면서 풀을 먹고 풀에 지치면 종이를 좋아 한다 그 애잔한 자태에 애라는 자기 자신의 모양을 비쳐 보고 운명을 생각하면서 종이를 먹인다 한 권의 잡지면 여러 날을 먹는다 백지를 먹을 뿐 아니라 인쇄된 글자까지를 먹는다 소설을 먹고 시를 먹는다 잡지 대신에 애라는 하루는 묵은 일기장을 뜯어서 먹이기 시작했다 칠년 동안의 사랑의 일기 이제는 쓸모 없는 운명의 일기 그 두터운 일곱 권의 일기장을 모조리 찢어서 염소의 뱃속에 장사지내기 시작 했던 것이다 흰 염소는 애잔한 목소리로 새침 하게 울면서 주인의 운명을 슬픈 역사를 싫어 하지 않고 꾸역꾸역 먹는다 염소 배가 불러지면 주인은 염소를 몰고 풀밭을 떠나 강가로 간다 물을 먹이면서 주인은 흰 돌 위에 서서 물소리 속에 흘러간 지난날을 차례차례로 비추어 본다 해가 꼬박 져서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게같이 꿈의 보금자리인 방으로 기어든다 방에서는 가을 화단이 하늘같이 맑게 그러나 쓸쓸하게 내다보인다 해바라기 송이가 칙칙하게 시들고 국화가 한창이다 양지쪽으로 날아 드는 나비 그림자가 외롭고 풀숲에서 나는 벌레소리가 때를 가리지 않고 물 쏟아지듯 요란하다 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그 어느 때를 가릴까 사람의 오장육부를 가리가리 찢으려는 심사인 듯도 하다 애라에게는 가을같이 두려운 시절이 없고 벌레소리같이 무서운 것이 없다 밤 자리에 이불을 쓰고 누우면 눈물이 되로 흘러 베개를 적시고야 만다

[책 읽어주는 여자] 옥토끼 김유정, 한글자막(CC), 한국단편소설오디오북, 소설읽기, Korean Novel with Korean Subtitle

안녕하세요 노벨라예요 오늘은 김유정의 옥토끼를 읽겠습니다 옥토끼는 1936년 여성 7월호에 발표된 단편입니다 나는 한 마리 토끼 때문에 자나 깨나 생각하였다 어떻게 하면 요놈을 얼른 키워서 새끼를 낳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었다 이 토끼는 하느님이 나에게 내려 주신 보물이었다 몹시 춥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가 아직 꿈 속에서 놀고 있을 때 어머니가 팔을 흔들어 깨우셨다 아침잠이 번히 늦은데다가 자는데 깨우면 괜스레 약이 오르는 나였다 팔꿈치로 그 손을 툭 털어 버리고 아이 참 죽겠네 골을 이렇게 내자니까 너 이 토끼 싫으냐 하고 그럼 고만두란 듯이 은근히 나를 댕기고 계신 것이다 나는 잠결에 그럼 아버지가 아마 오랜만에 고기 생각이 나서 토끼 고기를 사오셨나 그래 어머니가 나를 먹이려구 깨우시는 것이 아닐까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뻑뻑한 눈을 떠보니 이게 다 뭐냐 조막만하고 아주 하얀 옥토끼 한마리가 어머니 치마 앞에 폭 싸 여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곱을 부비고 허둥지둥 다가 앉으며 이거 어서 났수 글쎄 글쎄 어서 났냔 말이야 하고 조급히 물으니까 아침에 쌀을 씻으러 나가니까 우리 부뚜막 위에 올라앉아서 웅크리고 있더라 아마 누집에서 기르는 토낀데 빠져 나왔나봐 어머니는 얼른 두 손을 화로 위에 부비면서 무척 기뻐하셨다 그 말씀이 우리가 이 신당리로 떠나 온 뒤로는 이날까지 지지리지지리 고생만 하였다 이렇게 옥토끼가 그것도 이 집에 네 가구가 있으련만 그 중에서 우리를 찾아 왔을 적에는 새해부터는 아마 운수가 좀피려는 거나 아닐까 하시며 고생 살이에 찌들은 한숨을 내쉬셨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의 딴 희망이 있지 않아선 안 될 것이다 이런 귀여운 옥토끼가 뭇사람을 제치고 나를 찾아 왔음에는 아마 나의 심평이 차차 피려나부다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치마 앞에서 옥토끼를 집어내 들고 고놈을 입에 대 보고 뺨에 문질러 보고 턱에다 받쳐도 보고 하였다 참으로 귀엽고도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나는 아침 밥도 먹을 새 없이 그리고어머니가 팔을 붙잡고 너 숙이 갖다 줄려고 그러니 내 집에 들어온 것은 남 안 주는 법이야 인내라 인내 이렇게 굳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덜렁거리고 문 밖으로 나섰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숙이를 문간 으로 넌지시 불러내다가 이 옥토끼 잘 길루 하고 두루마기 속에서 고놈을 꺼내 주었다 나의 예상대로 숙이는 가손진 그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두 손으로 담싹 집어다가는 저도 역시 입을 맞추고 뺨을 대보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가슴에다 막 부등켜 안은 데는 나는 고만 질색을 하며 아 아 그렇게 하면 뼈가 부서져 죽수 토끼는 두 귀를 붙들고 이렇게 하고 토끼 다루는 법 까지 아르켜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라는 대로 두귀를 붙잡고 섰는 숙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이 집이 내 집이라 하고 또 숙이가 내 아내라 하면 얼마나 좋올까 하였다 숙이가 여자 양말 하나 사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그래라고 승낙한 지가 달장근이 되련만 그것도 못 하는 걸 생각하니 내 자신이 불쌍 도 하였다 요놈은 크거든 짝을 채워서 우리 새끼를 자꾸 받읍시다 그 새끼를 팔구 팔구 하면 나중에는큰 돈이 그러고 토끼를 쳐들고 들여다보니 대체 수놈인지 암놈인지 분간을 모르겠다 이게 저으기 판심이 되어 그런데 뭔지 알아야 짝을 채지 하고 혼자 투덜거리니까 그건 인제 숙이는 이렇게 낯을 약간 붉히더니 어색한 표정을 웃음으로 버무리며 낭중 커야 알지요 그렇지 그럼 잘 길루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담날 부터 매일 한 번씩 토끼 문안을 가고 하였다 토끼가 나날이 달라간다는 숙이의 말을 듣고 나는 퍽 좋았다 요새두 잘 먹수 하고 물으면 네 무우 찌끼만 주다가 오늘은 배추를 주었더니 아주 잘 먹어요 하고 숙이도 대견한 대답이었다 나는 이렇게 병이나 없이 잘만 먹으면 다 되려니 생각하였다 아니나 다르랴 숙이가 인젠 막 뛰어다니고 똥도 밖에 가 누구 들어와요 하고 까만 눈알을 뒤굴릴 적에는 아주 훤칠한 어른 토끼가 다 되었다 인제는 짝을 채 줘야 할 터인데 하고 나는 돈 없음을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돈을 변통할 길이 없어서 내가 입고 있는 두루마기를 잡힐까 그러면 뭘 입고 나가냐 이렇게 양단을 망설이다가 한 댓새 동안 토끼에게 가질 못 하였다 그러나 하루는 저녁을 먹다가 어머니가 금칠 어메게 들으니까 숙이가 그토끼를 잡아 먹었다더구나 하고 역정을 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우리 어머니는 싫다는 걸 내가 디리 졸라서 한 번 숙이네한테 통혼을넜다가 거절을 당한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아직 어리다는 것이나 그 속셈은 돈 있는 집으로 딸을 내놓겠다는 내숭이었다 이걸 어머니가 아시고 모욕을 당한 듯이 그들을 극히 미워하므로 그럼 그렇지 그것들이 짐생 구여운 줄이나 알겠니 그래 토끼를 먹었어 나는 이렇게 눈에 불이 번쩍 나서 밖으로 뛰어 나왔으나 암만 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제 손으로 색동조끼 까지 해입힌 그 토끼를 설마 숙이가 잡아 먹을 성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숙이를 불러 내다가 그 토끼를 좀 잠깐만 뵈 달라 하여도 아무 대답이 없이 얼굴만 빨개져서 서 있는 걸 보면 잡아 먹은 것이 확실 하였다 이렇게 되면 이놈의 계집애가 나에게 벌써 맘이 변한 것은 넉넉히 알 수 있다 나중에는 같이 살자고 우리끼리 맺은 그 언약을 잊지 않았다면 내가 위하는 그 토끼를 제가 감히 잡아 먹을 리가 없지 않는가 나는 한참 도끼눈으로 노려보다가 토끼 가질러 왔수 내 토끼 도루 내주 없어요 숙이는 거반 울 듯한 상이더니 이내 고개를 떨어치며 아버지가 나두 모르게 하고는 무안에 취하여 말끝도 다 못 맺는다 실상은 이때 숙이가 한 사날 동안이나 밥도 안 먹고 대단히 앓고 있었다 연초 회사에 다니며 벌어 들이는 딸이 이렇게 밥도 안 먹고 앓으므로 그 아버지가 겁이 버쩍 났다 그렇다고 고기를 사다가 몸보신 시킬 형편도 못되고 하여 결국에는 딸도 모르게 그 옥토끼를 잡아서 먹여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속은 모르니까 남의 토끼를 잡아 먹고 할 말이 없어서 벙벙히 섰는 숙이가 미웠다 뭘 못 먹어서 옥토끼를 하고 다시 옥토끼 내놓슈 가져 갈테니 하니까 잡아 먹었어요 그제서야 바로 말하고 언제 그렇게고였는지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무엇을 생각했음인지 허리춤을 뒤지더니 그 지갑 그 지갑은 우리가 둘이 남몰래 약혼을 하였을 때 금반지 살 돈은 없고 급하긴 하고 해서 내가 야시에서 15전 주고 사넣고 다니던 돈지갑을 대신 주었는데 그것을 내놓으며 새침히 고개를 트는 것이다 망할 계집애 남의 옥토끼를 먹고 요렇게 토라지면 나는 어떡 하란 말인가 하나 여기서 더 지껄였다가는 나만 앵한 것을 알았다 숙이의 옷가슴을 부랴사랴 헤치고 허리춤에다 그 지갑을 도로 꾹 찔러 주고는 쫓아 올까봐 집으로 힝하게 달아왔다 게다가 내 옥토끼를 먹었으니까 암만 즈 아버지가 반대를 하더라도 그리고 제가 설혹 마음이 없더라도 인제는 하릴없이 나의 아내가 꼭 되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생각하고 이불 속에서 잘 따져 보다 이 옥토끼가 나에게 참으로 고마운 동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인제는 틀림없이 너는 내거다